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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단5: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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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대학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수능 점수 발표가 있었고 모든 신문들은 그 점수들을 분석하고 어느 점수로는 어느대학 어떤과를 선택할 수 있는 지를 예상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저희집에도 입시생이 있기 때문에 저도 그 기사를 보고 또 보고 하면서 우리 아이의 점수로 어느 대학 무슨과를 갈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름대로 누구에게나 가고 싶은 대학과 가고 싶은 학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고 싶다고 다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 합당한 점수가 나와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점수가 미달된다면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동안 성실히 공부를하여 좋은 점수를 얻은 학생들은 비교적 좋은 대학과 학과에 진학하여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게으름을 부리다가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한 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할 기회를 놓치거나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 대학에 억지로 들어가거나 공부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제 아이의 수능 점수를 가지고 이것 저것 깊이 생각을 하다가 우리의 인생과 신앙생활도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점수가 있어서 그 점수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축복된 생활과 삶의 수준이 결정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가고 싶어하는 대학이 있고 전공하고 싶은 학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학과 학과에는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고 그 대학과 학과가 요구하는 능력만 갖춘다면 대통령의 아들도 들어갈 수 있고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의 아들이라고 하여도 그 대학과 학과에 입학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하면 그는 절대로 그 대학과 학과에 입학할 수 없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만 바라고 희망하는 축복된 생활과 삶이 있습니다. 그와같은 삶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와같은 삶을 운명과 팔자로 묶어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와같은 복된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서 누구나 그와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신앙생활 점수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된 삶의 단계에 따라 하나님이 정하시고 요구하시는 점수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영적인 수능 점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수능 점수가 높은 사람은 그에 합당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이고 그것이 모자라는 사람은 그가 바라고 희망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축복된 생활은 구원과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지만 구원얻은 사람이 이 땅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축복된 생활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면류관은 그의 행함과 신앙생활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1 아이들에게 수능 점수가 있듯 우리에게도 신앙생활의 점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학생들의 수학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테스트하셔서 점수를 주신다면 그것은 절대로 조금의 오차나 실수도 없는 정확한 것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아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바벨론의 마지막 왕이었던 벨사살 왕은 자신의 잔치를 배설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노략질 해온 금그릇과 은그릇을 가지고 음식과 술을 담아 먹는 등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을 자행하였습니다. 그 때 벽에서 손가락이 나와 벽에다 글을 쓰는 무섭고도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아무도 그 글씨를 읽지도 해석하지도 못해 그 두려움이 더 컸었습니다. 그때 다니엘이 왕의 앞에서 그 글을 읽고 해석해 주었는데 벽에 쓰여진 글씨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씨로서 '메네'라는 말의 뜻은 세어본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벨사살왕을 세어 보시니 모자란다는 뜻이었고, '데겔'이라는 말의 뜻은 저울에 단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왕을 저울에 달아 보시니 무게가 부족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우'라고 하는 말은 그리고의 뜻이고 '바르시'이라는 말의 뜻은 히브리음으로는 바사 즉 페르시아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되고 갈대 사람들의 음으로는 나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뜻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께서 벨사살왕을 세어 보시고 저울에 달아 보시니 부족하고 모자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빼앗아 바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해석대로 벨사살왕은 그날 밤에 죽임을 당하게 되었고 바벨론 나라는 바사 즉 페르시아에 망하게 되어 역사에 종막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날에 이 땅을 심판하라 오실 것이라는 내용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시지 않으시지만 언제나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살펴보시며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의 저울에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하여 힘써야만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무엇이라고 평가하는가보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실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하나님의 판단을 따라 살아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옳은 평가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바르느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혹 사람에게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라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여 주시고 옳다 평가해 주신다면 그것은 절대로 소용없는 일이거나 잘못된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판단을 바라보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실수하고 잘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의 판단을 바라보고 일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판단을 바라보고 일하였기 때문입니다. 말하기는 쉬우나 아무리 믿음의 생활을 한다고 하여도 사람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판단을 바라보고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기 위해 힘쓰고 노 2 력 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바라보고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떠한 면을 중히 여기시는 가를 생각하여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생활의 점수를 평가하려고 하실 때 하나님은 대략 다음과 같은 면들을 중점적으로 먼저 보시고 판단하실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수능 시험에도 보면 외국어의 청취 능력을 테스트하는 문제가 있고 영어나 국어의 경우에도 지문을 주고 그것을 얼마나 잘 이해하였는가를 알아보는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끔 우리들에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바로 이 '들을 귀'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말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인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듣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불편한 마음으로 언짢게 듣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듣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담스럽게 듣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기쁘게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들으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설교 시간에도 경청하고 그 말씀을 듣는 얼굴 표정이 밝고 맑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부담스럽게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듣는 일을 가급적 회피하려고 합니다. 일년이 다 가도록 성경 한 번을 자기 손으로 펼처 드는 법이 없고 설교 시간에도 졸기가 일수고 설교를 듣는 표정도 그렇게 어둡고 딱딱할 수가 없습니다. 학교 공부시간에 진도를 따라 가는 아이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공부를 재미있어 하지만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공부가 재미없어서 시간이 지루하여 졸고 떠들며 더 나아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공부 시간에 빠지고 결국 문제만 일으키는 아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도 보면 영적인 우등생이 있고 영적인 열등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면에서 볼 때 영적인 열등생이라고 판단이 되십니까 아니면 영적인 우등생이라고 판단이 되십니까
둘째, 말씀대로 순종하여 실천하는 능력입니다. 모든 공부는 우리의 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이 될 때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공부가 공부로만 끝난다면 그것은 죽은 학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이야기하라고 할 때 선진국은 쓸데 없는 공부를 거의 하지 아니하고 거의 쓸데 있는 공부만 하는데 반하여 후진국이 될 수록 쓸데 없는 공부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교육은 아직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그 말씀을 잘 이해하고 또 감동까지 했다고 하여도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평가에서 절대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설교도 잘듣고 신앙이 아주 좋은 신앙인인 것 같은데 세상과 가정에 나가서 전혀 말씀과 상관없는 삶을 산다면 그는 하나님의 평가에서 절대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면에서 볼 때 신앙생활의 평가는 교회에서 보다는 직장과 가정에서 더 정확 3 한 평가를 할 수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셋째,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과 그것에서 우러나오는 헌신과 충성의 능력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영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결혼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남편에게 있어서 제일 좋은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요 아내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아무리 학식과 명예가 높고 재산이 많다고 하여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절대로 좋은 남편과 아내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우리 신앙생활과 영적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평가하실 때 중요하게 보실 것은 우리의 재산과 학벌이 아닙니다. 우리의 세상적인 지위와 명예가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하나님은 가장 중요하게 보시고 평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일을 위하여 기꺼히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바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으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체면 때문에 억지로 마지못해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마음으로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한다면 그의 영적인 점수는 낙제점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올해도 한해가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해 한해가 지나가면서 갈수록 우리의 인생도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올 한해가 지나감으로 우리의 생명도 한해만큼 줄었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우리는 영적인 고3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평가와 시험을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영적인 고3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수학 능력을 평가하시고 나신 후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말씀하시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하는 평가를 받아야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와같은 평가를 받아야 할 사람중에 내가 들어갈 확률도 상당히 높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하나님의 저울과 하나님의 계산기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계산에 모자라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하여 다시한번 믿음의 옷깃을 여기며 신앙의 경주를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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