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해야 할 일 (눅12:22-34)
본문
우리는 날마다 근심 걱정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걱정거리를 살펴보면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염려하면서 근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의 염려를 살펴보면, 40%가 일어나지도 않는 일에 대한 것이고, 30%가 이미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것이며, 12%가 사실 아닌 타인의 잘못된 판단의 비난에 대한 것이고, 10%가 건강에 대한 불필요한 것이며,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8%뿐이라고 합니다. 본문은 바로 이런 염려라는 주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려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병입니다. 병이라도 단순한 병이 아니라 전염병입니다. 한 사람이 염려하게 되면 그의 주변 사람들이 전염되어 같은 병을 앓게 됩니다. 남편이 염려하면 아내가 염려하게 됩니다. 부모가 염려하면 자녀들이 염려하게 됩니다. 사장이 염려하면 사원들이 염려하게 됩니다. 부자는 재물이 많아 염려하고 가난한 사람은 재물이 없어 염려합니다. 예수님은 먹고 마시는 문제로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기 때문입니다(29-30절). 어느 날 공자의 제자가 물었다.선생님,저 하늘에 별의 수효가 얼마나 될까요. 그때 공자는 너무 멀리 있는 것이라 알 수 없다고 대답했다.그러자 제자는 다시 묻기를 선생님,그러면 바로 눈 위에 있는 눈썹의 수가 얼마나 될까요라고 물었다.이때의 대답은 알 필요가 없어서 모른다고 답했다고 한다.먼 것도 모르고 가까운 것도 모르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신다는 사실은 몹시 중요합니다. 그분은 세상 통치자들과 같지 않습니다. 종종 개인이나 단체가 자신들의 사정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신문고를 두드리기도 했고 오늘날은 시위를 하기도 하고 시장이나 대통령에게 진정서를 보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알리기 위해서 그렇게 번거롭고 힘든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재와 과거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식주가 필요함을 아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다른 여러 가지 필요가 있음을 아십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필요까지도 아십니다. 영적인 필요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기를 기뻐하시기 때문 입니다(31-32절). 하나님은 까마귀에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도록 눈과 날개와 부리를 주시고 먹을 것도 주십니다. 까마귀가 직접 심지 않은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먹도록 하십니다. 동식물의 공생공존은 생태계를 유지시켜가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백합화에게 아름다운 모양과 영광을 주십니다. 아무리 잘 만든 조화라 할지라도 물기를 머금기도 하고 성장의 변화가 나타나는 생화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백합화 한 송이를 가리키며 솔로몬의 모든 영화로도 견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시는 손길은 이처럼 하찮은 새 한 마리와 꽃 하나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만물 중 하나님께 가장 귀한 존재입니다. 그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특히 구원받은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아낌 없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못 미치는 것들을 붙들고 안 주실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본문 32절에는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기록되어 있고, 디모데전서 6:17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신자들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따라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31).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33은 좀더 자세하게 주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것은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염려가 아님을 깨닫게 해 줍니다. 염려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일이 닥치고 문제가 생기면 염려부터 하는 것입니다. 염려 자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키로 염려하는 사람이 염려한다고 해서 키를 한 자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학습 진도가 부진한 자녀 때문에 염려한다고 해서 자녀가 공부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 문제로 염려한다고 해서 배필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직장 문제로 염려한다고 해서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염려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염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려는 삶의 의욕을 꺾습니다. 따라서 염려가 아닌 다른 방법을 먼저 강구해야 합니다. 염려하다가 자살하는 것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 가난한 고등학생이 면허도 없으면서 친구 오토바이를 빌려 타다가 사고를 냈는데 100여 만원에 이르는 배상금이 없어 염려하다가 자살했다고 합니다. 온몸에 에이즈의 증상처럼 반점이 생기는 것으로 염려하다가 멀쩡한 처녀가 자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가난에 찌든 생활에 염증을 느껴 자살하는 일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목숨이 음식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먹을 것이 없더라도 살아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입을 것이 없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의복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삶을 둘러싼 환경이 추하고 가혹하게 여겨질지라도 삶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기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살을 하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이 땅위에서의 일시적인 삶도 그처럼 귀한데 영원한 삶은 얼마나 더 귀하겠습니까 영원한 삶 즉 영생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기 마련입니다. 순서대로 하지 않으면 일을 하긴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며 힘은 힘대로 들도록 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두 사람은 똑같은 도끼를 가지고 5시간 동안 나무를 베었다.두 사람의 일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었다.한 사람은 꼬박 5시간에 걸쳐 나무를 베었고 또한 사람은 50분에 걸쳐 나무를 벤후 10분 쉬기를 거듭했다.
그런데 나중에 결과를 보니 5시간 동안 꼬박 일한 사람보다 10분 쉰 사람이 더 많은 나무를 벤 것이 아닌가.꼬박 일한 나무꾼이 그 비결을 묻자 능률의 나무꾼 이 대답했다. 나는 10분 쉬는 동안 도끼날을 갈았답니다 예수님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녀야 할 삶에 대한 바른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머리로서 다스리시는 교회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우리 마음 속에 영적 질서가 잡히고 평안이 임할 때 그곳도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로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자에게 생활의 필요들을 하나님께서 더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는 문제로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붙들고 있는 삶은 채워질 수 없습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중에서도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구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토끼와 개구리의 우화-토끼들은 죽기로 결심했으나 자기들의 움직임을 보고 두려워하는 개구리들을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은 믿음을 좇는 삶이고, 우선순위를 좇는 삶이며, 구제하는 삶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를 그분께 다 맡기십시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산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짐꾼입니다. 저 높은 정상을 올라가기 위해 많은 장비가 필요하는데 산 중턱까지 짐을 옴겨주는 사람을 헬퍼(helper)라고 합니다. 우리 말로는 "도와주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헬퍼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길에서도 절대적인 능력과 힘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헬퍼가 필요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헬퍼가 되십니다. "네 짐을 내게 다 맡겨라염려도 맡겨라네 길도 맡겨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한 여인이 스위스 중부에 있는 5천 피트의 리치산 정상에 오르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짐은 적지 않았습니다. 친절한 안내자는 그녀에게 짐을 운반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눈길로 자신의 짐 일부만 맡기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오르겠다고 했습니다. 산에 오를수록 그 여인은 자신의 짐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안내자는 등산용 지팡이만 빼고 그 외의 짐은 자기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고집스럽게 짐을 가지고 오르며 힘들어 했습니다. 보다 못한 안내자는 다시 한번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기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녀는 한참 후에 모든 짐을 안내자의 튼튼한 어깨에 짐을 맡곁습니다.모든 짐을 맡기고서야 나머지 길을 쉽게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짐을 맡긴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짐을 맡기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짐을 맡기는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뉴턴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난로가에 앉아서 책을 읽던 뉴턴이 갑자기 큰 소리로 하녀를 부르더니 "난로불이 너무 뜨거우니 불 좀 낮추라"고 말합니다. 그 난로는 장작을 사용해서 불을 지피는 것이므로 당장 줄이기는 힘듭니다. 요즘의 전깃불이나 가스불처럼 쉽게 조절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오르는 장작불을 어떻게 낮춥니까 하녀는 잠시 바라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님께서 의자를 조금 뒤로 물리시면 되지 않겠어요" 불을 낮추는 것과 의자를 뒤로 물리는 것. 어느 편이 더 쉽겠습니까 지금 뉴턴은 매우 중요한 것을 생각하느라고 의자를 뒤로 물리면 된다는 사소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느 쪽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까 무엇을 집중적으로 생각해야 합니까 대개 근심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시시한 것부터 생각하는 반면 걱정 근심 없이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중요한 것부터 생각합니다. 무엇부터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염려를 함으로써 하나님도 안 보이게 되고, 그 동안 받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도 망각하며 부인하게 됩니다. 염려에 싸여 있으면 나는 전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느끼고, 내 주위에 진정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낍니다. 이렇듯 염려함으로 불신앙에 빠지게 되고, 생명도 잃게 되며 가장 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잊게 됩니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기 때문입니다(29-30절). 어느 날 공자의 제자가 물었다.선생님,저 하늘에 별의 수효가 얼마나 될까요. 그때 공자는 너무 멀리 있는 것이라 알 수 없다고 대답했다.그러자 제자는 다시 묻기를 선생님,그러면 바로 눈 위에 있는 눈썹의 수가 얼마나 될까요라고 물었다.이때의 대답은 알 필요가 없어서 모른다고 답했다고 한다.먼 것도 모르고 가까운 것도 모르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신다는 사실은 몹시 중요합니다. 그분은 세상 통치자들과 같지 않습니다. 종종 개인이나 단체가 자신들의 사정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신문고를 두드리기도 했고 오늘날은 시위를 하기도 하고 시장이나 대통령에게 진정서를 보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알리기 위해서 그렇게 번거롭고 힘든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재와 과거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식주가 필요함을 아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다른 여러 가지 필요가 있음을 아십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필요까지도 아십니다. 영적인 필요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기를 기뻐하시기 때문 입니다(31-32절). 하나님은 까마귀에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도록 눈과 날개와 부리를 주시고 먹을 것도 주십니다. 까마귀가 직접 심지 않은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먹도록 하십니다. 동식물의 공생공존은 생태계를 유지시켜가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백합화에게 아름다운 모양과 영광을 주십니다. 아무리 잘 만든 조화라 할지라도 물기를 머금기도 하고 성장의 변화가 나타나는 생화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백합화 한 송이를 가리키며 솔로몬의 모든 영화로도 견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시는 손길은 이처럼 하찮은 새 한 마리와 꽃 하나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만물 중 하나님께 가장 귀한 존재입니다. 그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특히 구원받은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아낌 없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못 미치는 것들을 붙들고 안 주실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본문 32절에는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기록되어 있고, 디모데전서 6:17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신자들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따라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31).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33은 좀더 자세하게 주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것은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염려가 아님을 깨닫게 해 줍니다. 염려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일이 닥치고 문제가 생기면 염려부터 하는 것입니다. 염려 자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키로 염려하는 사람이 염려한다고 해서 키를 한 자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학습 진도가 부진한 자녀 때문에 염려한다고 해서 자녀가 공부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 문제로 염려한다고 해서 배필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직장 문제로 염려한다고 해서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염려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염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려는 삶의 의욕을 꺾습니다. 따라서 염려가 아닌 다른 방법을 먼저 강구해야 합니다. 염려하다가 자살하는 것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 가난한 고등학생이 면허도 없으면서 친구 오토바이를 빌려 타다가 사고를 냈는데 100여 만원에 이르는 배상금이 없어 염려하다가 자살했다고 합니다. 온몸에 에이즈의 증상처럼 반점이 생기는 것으로 염려하다가 멀쩡한 처녀가 자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가난에 찌든 생활에 염증을 느껴 자살하는 일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목숨이 음식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먹을 것이 없더라도 살아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입을 것이 없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의복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삶을 둘러싼 환경이 추하고 가혹하게 여겨질지라도 삶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기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살을 하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이 땅위에서의 일시적인 삶도 그처럼 귀한데 영원한 삶은 얼마나 더 귀하겠습니까 영원한 삶 즉 영생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기 마련입니다. 순서대로 하지 않으면 일을 하긴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며 힘은 힘대로 들도록 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두 사람은 똑같은 도끼를 가지고 5시간 동안 나무를 베었다.두 사람의 일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었다.한 사람은 꼬박 5시간에 걸쳐 나무를 베었고 또한 사람은 50분에 걸쳐 나무를 벤후 10분 쉬기를 거듭했다.
그런데 나중에 결과를 보니 5시간 동안 꼬박 일한 사람보다 10분 쉰 사람이 더 많은 나무를 벤 것이 아닌가.꼬박 일한 나무꾼이 그 비결을 묻자 능률의 나무꾼 이 대답했다. 나는 10분 쉬는 동안 도끼날을 갈았답니다 예수님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녀야 할 삶에 대한 바른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머리로서 다스리시는 교회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우리 마음 속에 영적 질서가 잡히고 평안이 임할 때 그곳도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로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자에게 생활의 필요들을 하나님께서 더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는 문제로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붙들고 있는 삶은 채워질 수 없습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중에서도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구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토끼와 개구리의 우화-토끼들은 죽기로 결심했으나 자기들의 움직임을 보고 두려워하는 개구리들을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은 믿음을 좇는 삶이고, 우선순위를 좇는 삶이며, 구제하는 삶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를 그분께 다 맡기십시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산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짐꾼입니다. 저 높은 정상을 올라가기 위해 많은 장비가 필요하는데 산 중턱까지 짐을 옴겨주는 사람을 헬퍼(helper)라고 합니다. 우리 말로는 "도와주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헬퍼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길에서도 절대적인 능력과 힘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헬퍼가 필요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헬퍼가 되십니다. "네 짐을 내게 다 맡겨라염려도 맡겨라네 길도 맡겨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한 여인이 스위스 중부에 있는 5천 피트의 리치산 정상에 오르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짐은 적지 않았습니다. 친절한 안내자는 그녀에게 짐을 운반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눈길로 자신의 짐 일부만 맡기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오르겠다고 했습니다. 산에 오를수록 그 여인은 자신의 짐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안내자는 등산용 지팡이만 빼고 그 외의 짐은 자기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고집스럽게 짐을 가지고 오르며 힘들어 했습니다. 보다 못한 안내자는 다시 한번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기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녀는 한참 후에 모든 짐을 안내자의 튼튼한 어깨에 짐을 맡곁습니다.모든 짐을 맡기고서야 나머지 길을 쉽게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짐을 맡긴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짐을 맡기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짐을 맡기는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뉴턴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난로가에 앉아서 책을 읽던 뉴턴이 갑자기 큰 소리로 하녀를 부르더니 "난로불이 너무 뜨거우니 불 좀 낮추라"고 말합니다. 그 난로는 장작을 사용해서 불을 지피는 것이므로 당장 줄이기는 힘듭니다. 요즘의 전깃불이나 가스불처럼 쉽게 조절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오르는 장작불을 어떻게 낮춥니까 하녀는 잠시 바라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님께서 의자를 조금 뒤로 물리시면 되지 않겠어요" 불을 낮추는 것과 의자를 뒤로 물리는 것. 어느 편이 더 쉽겠습니까 지금 뉴턴은 매우 중요한 것을 생각하느라고 의자를 뒤로 물리면 된다는 사소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느 쪽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까 무엇을 집중적으로 생각해야 합니까 대개 근심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시시한 것부터 생각하는 반면 걱정 근심 없이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중요한 것부터 생각합니다. 무엇부터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염려를 함으로써 하나님도 안 보이게 되고, 그 동안 받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도 망각하며 부인하게 됩니다. 염려에 싸여 있으면 나는 전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느끼고, 내 주위에 진정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낍니다. 이렇듯 염려함으로 불신앙에 빠지게 되고, 생명도 잃게 되며 가장 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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