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된 자와 나중된 자 (막10:28-31)
본문
옛날 중국사람들은 인간의 인체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심장은 오른쪽에 있고 간장은 왼쪽에 있다―그렇게 늘 생각해 왔더랍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회의 신부인 Jacob Rho 라고 하는 분이 서양 인체 해부학을 중국말로 번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사람 하나가 이 해부학을 보니까 거기에는 "심장은 왼쪽에 있고 간장은 오른쪽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서양사람과 동양사람은 얼굴이 다르듯이 인체도 다르구나. 우리는 분명히 오른쪽에 심장이 있고 왼쪽에 간장이 있는데 서양사람들은 왼쪽에 심장이 있고 오른쪽에 간장이 있구나'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는 겁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내가 아무리 옳게 여기고 오래 동안 신조처럼 생각했던 것이라도 오늘 와서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그걸 잊어 버려야지요. 의식을 바꾸어야죠. 생각을 고쳐야지. 그저 자기 생각을 고집하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겠습니까. 여러분, 개혁이라는 것이 뭡니까 개혁은 변화에 응하는 적극적 방법을 말하는 겁니다. 변화되는 변화가 아니라 선택적으로, 의식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그것이 바로 개혁입니다.
그런데, 개혁 가운데 가장 어려운 개혁이 생각을 뜯어고치는 겁니다. 집을 바꿀 수도 있고, 직업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여전히 안 바꿔집니다. 심지어는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도 그 기본적인 생각은 여전히 그대로 머물러, 고정관념에 머물러 있는 그런 사람들을 봅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생각만 좀 바꾸면 자유 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으련만 그 생각 하나를 돌리지 못해서 한평생 아주 참 처절하게 비참하게 그렇게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실패하는 이유가 있다면, 역시 무능하기 때문이겠죠. 그 무능한 이유는 무지 때문입니다. 무지보다 더 무서운 것은 편견입니다. 잘못된 지식은 없느니만 못합니다. 왜냐면은 잘못된 지식과 편견과 고집에 매여있는 동안은 자기 스스로는 교만해 지고, 언젠가는 가슴을 치며 후회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지식은 인격과 인간과 모든 것을 망칩니다.
그런데, 잘못된 지식은 고집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면 내가 얼마나 잘못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거예요. 이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편견의 노예가 될 때 가장 불행한 사람, 가장 비참한 사람으로 전락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써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 말씀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대로 보면은 특별히 베드로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예수의 제자가 되려는 분들에게 주시는 가장 핵심적이고 결정적 교훈입니다. '먼저 된 자로써 나중 될 것이다. 나중 된 자로써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대단히 의미심장한 그런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말씀의 깊은 의미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깨뜨리라는 것입니다. 자, 먼저 됐다는 게 뭡니까. 먼저 아는 것이지요. 지식에 대한 먼저, 그 다음에 또 경험에 대해서 먼저예요. '내가 다 해 봤다' 이거예요. 다 지내 봤다. 그거 위험한 일입니다. 당신이 몇 가지나 경험했는데요. 어떤 분이 그런 얘기하던데요. 남자라는 것은 다 못 씁니다. 늑대입니다. 검습니다. 그러더니, "여보세요, 내 얼굴 좀 보고 말하세요. 당신 앞에 선 사람도 지금 남자입니다.아이고, 목사님은 아니고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남자는 이게 얼마나 무서운 얘기입니까. 도대체 당신이 몇 남자나 만나 보았소.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Generalization, 이 보편화라고 하는 것처럼 무서운 죄가 없는 거예요. 도대체 내 경험이 도대체 얼마나 미미하고 적은 것이고 불완전 한 건데 자기 경험을 의지해서 '먼저 다 경험했다' 이게 망조가 아니겠어요. 경험이라는 것 참 미미하고 국한 적인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지식, 자기 경험, 그리고 자기 믿음, 이런 걸로 인해서 자기가 먼저 됐다는 거죠. 내가 먼저 믿어서 성경도 많이 알고 내가 봉사도 하고 뭐 믿음의 선배가 됐다고 합니다. 그거 조심해야 됩니다. 심리학자 Golden Allport 라는 분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편견을 만드는 것도 종교요. 편견을 깨뜨리는 것도 종교다.' 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편견이 점점 굳어지고 그 자기 생각이 敎理化 되면서 무서운 고정관념을 만듭니다. 그런가 하면, 편견을 깨뜨리는 회개 운동도 교회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할 때에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우리의 가치관을 바꾸고, 우리의 뜻을 바꾸고, 우리의 모든 경험으로부터 온 자기 의지까지 이제 와서 다 바꿔요. 그것이 회개올시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는 종래에 그런 생각을 많이 해 왔어요.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 돈이 행복의 기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돈 있는 사람은 행복할 거다 생각했어요. 어쩌면 내가 돈 있어 보지 못해서 그런지도 몰라요. 그 돈 있는 사람이 꼭 행복한 것이 아닌데. 그것도 편견입니다. 또 요새 같은 세대는요 요새는 그저 누구든 여러분 빚 없으면 부자입니다. 그 마이너스는 아니니까요. 요새 와서 행복한 사람 많습니다. 요새 와서 가장 불행하고 고민이 많은 사람은 돈 많은 사람입니다. 그도 부동산 많고, 증권 가졌던 사람들. 안 그렇습니까 증권 모르고 뭐 돈이 있어야 증권 사지요. 좋은 증권도 없고 부동산도 없고. 요새 부동산이 일본이요 일본 동경이 80%가 아니라, 8분의 1로 땅값이 떨어졌습니다. 8분의
1. 이건 먼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도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8분의 1로 떨어지니까 그것을 보증했던 은행이 막 그대로 넘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 바로 이 아시아 경제인데, 여러분, 부동산 없는 여러분, 나와 더불어 편하지요.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모르겠다. 안 그렇습니까 그러나 지금, 땅 많이 가졌던 사람들, 돈 가졌던 사람들, 특별히 증권 가졌던 사람들 이건 지금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니까 淸貧樂道 올시다. 아무 것도 없던 사람들도 아마 그럴 거예요. 다 내 팔자인줄 알아라. 이게 다 보통 내 덕이냐. 생각해 보세요. 그저 있으면 다 복 인줄만 알았지만 벌써 그런 것이 아니에요. 짧은 세상을 살면서 벌써 우리는 깨달은 게 그거예요. 있다고 복이 아니에요. 게다가 또 출세했다고 복입니까 아이고 출세한 사람들 요새 고생 많이 하더군요. 죽을 지경입니다. 어떤 사람은 또 어떤 회사에 있다가 오래 전에 뭐 몇 년 전에 감원 당해서 아주 슬퍼하고 낙심하고 나더러 기도해 달라고 하더니, 요새 와서는 '내가 복입니다. 자칫 했으면 지금 청문회 나갈 뻔했거든요.'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것은 복 일거다, 뭐 일류대학을 나오면 못 될 거다, 고시 합격하면 복은 된 거다.―아닙니다. 그것도 고정관념이에요. 낙제가 복이라는 것을 몰랐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만 생각하지 말아라 이거예요. 먼저 된 자가 기득권이 아네요.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먼저 된 자로써 나중 될 자가 많으니라. 이걸 알아야지요. 참 중요한 얘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이 특별히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들을 보고하는 말이에요.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들 종교적으로 먼저 된 사람들입니다. 열심히 믿고 성경 많이 알고 성경 공부 많이 하고 전문적인 종교인이요. 자 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 먼저 된 사람들, 바로 이 먼저 됐다는 고정관념을 깨지 못해서 저들은 예수를 영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중 될 수밖에. 안 그렇습니까 그 조금 아는 성경 그게 문제요. 또 좀 거룩하다고 하는 게 문제요. 남보다 좀 깨끗하게 산다고 하는 게 바로 이 문제입니다. 그 때문에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할 수가 없었어요. 마침내 그들은 영원히 나중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깊이 생각할 문제입니다. 나는 언젠가 성경을 읽다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1장 31절에 말씀하시기를 그 바리새인 교인보고 하는 말입니다. '창기와 세리가 너희보다 하늘나라 먼저 들어간다.' 제가 그 말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고 하니, 그 말씀이 참 담대한 말씀이기도 하고 정확한 말씀이기도 하지만은,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십자가에 돌아가셔도 할 말이 없다. 당시에 그 높고 거룩하고 귀한 존재들을 향해서 그래, 그 사람들은 천당 못 가고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는 더러운 창기와 세리, 너희들이 하늘나라 먼저 간다―이래 놨으니 이러고 살아 남기를 바래요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게 사실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고정관념을 깨세요. 뭐 안다는 거 잊어버리세요. 뭐 옛날에 알아 보았자 요새 초등 학생만도 못해요. 그런 줄 아시고요. 옛날에 박사라 해봤자 그거 별거 아닙니다. 그거 내 놓을 것도 못 되고요. 가져봤자 우리가 지금 나라가 흔들리는 판에 가진 게 뭐 있습니까. 빚더미에 올라앉았는데 뭐 가졌느니, 뭐 되었느니 뭐 아느니, 힘이 있느니, 잊어버리세요. 깨끗이 밀어 버리고 다 치워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됐다고 하는 생각. 깨끗이 잊으라 그 말이에요. 그러면은 얼마나 편한데요. 지금도 그 생각 때문에 내가 과거에 어떻고, 내가 어떻고 그 생각 때문에 고생이더라고요, 보니까. 빨리 잊어 버려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사람 오히려 먼저 될 자가 많을 것이라고요. 또 예수님의 이 말씀의 깊은 뜻은 말이에요. 미래의 가능성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에요. 먼저 됐다고 해서 반듯이 먼저 되는 거 아니고, 나중 됐다고 해서 늦지 않아요. 그에게도 미래는 보장되어 있어요. 행과 불행은 결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행복할 거다 영원히 행복할 것도 아니고, 재산이 있다고 자손 만대에 누려 가면서 그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생각했지만 어림도 없는 얘기입니다. 잊어버리세요. 한 당대도 못 지키는데 자손까지 물려 줄 거 없습니다. 잊어버리세요. 벌써 운명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나중 됐다고 슬퍼 할 것 없어요. 그가 먼저 될 것이고, 지금 복되다고 해서 그 삶에게 복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꼭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듯이 혹 내가 불행하고 내가 지금 처절하다 하더라도 나중 된 내가 먼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행복과 밝은 운명은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요. 한 정원의 영주 한 사람이 산책을 합니다. 그 곳 정원사 청년 하나가 열심히 정원을 가꾸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정원을 잘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화분이 있는데 나무 화분을 또 더 조각을 해서 예쁘게 꽃을 새겨 가면서 정원을 단장하는 것을 보고 영주는 너무 감격해서 "자네는 그런 일을 한다고 임금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어째서 그런 일을 하고 있는가"했더니 이 청년이 하는 말이 "나는 이 정원을 사랑합니다. 내 직무를 다 하고 나서 시간이 남을 때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이 나무 통으로 만든 화분을 내가 이렇게 조각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 생각이 너무 기특하고 또, 손재주도 있는 것 같아서 그 영주가 이 청년을 불러다가 조각 공부를 시킵니다. 이것으로 大成하게 됩니다. 한낱 정원사로써 한 평생을 살다가 끝나야 될 사람이요. 그러나 그가 자기 본분을 정성을 다 할 때에 그를 기용해서 이렇게 조각을 공부 시켰더니 바로 이 사람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미켈란젤로(Michelangelo)입니다. 그는 한낱 정원사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본분을 잘 감당하는 중에 세계적인 유명한 조각가가 됩니다. 여러분, 나중 되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에요. 지금 내 신분이 낮다고 끝난 게 아니에요. 지금 내가 가난하다고 내가 불행한 게 아니에요. 먼저 된 자로써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써 먼저 될 자가 많겠다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또한 오늘 본문의 말씀은 현실에 나타나 위장되고 위선적 헌신에 대해서 주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 모든 것을 버리고 쫓으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 보다 어렵다." 이런 말씀을 하실 때에 베드로가 한마디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쫓습니다." 칭찬들을 뻔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 말씀은 "정말 네가 다 버렸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직업도 버렸어요. 또 자기 가정도 버렸어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자존심을 버리지 못 했어요. 허영심이나 명예를 버리지 못 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 앞에 청원을 합니다. "우편에 좌편에 앉게 해 주세요." 할 때에 제자들이 분히 여겼다고 성경은 분명히 41절에서 말합니다. 왜 분히 여긴 겁니까 아직도 허영심이 있거든요. 시기와 질투가 있었거든요. 다 버린 것 같으나 버린 것이 아니에요. 온전하게 주를 따른다고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더라고요. 그것이 이런 때 표출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 고로 정말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에 대한 욕망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야만 깨끗한 주의 제자가 되겠는데 베드로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분히 여기기도 하고 시기, 질투하기도 하고 결국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게 되었더란 말입니다.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두 수도사가 순리의 길을 떠나다가 어디서 강을 건너게 됩니다. 이 허리까지 물이 흐르고 있는데 어차피 옷을 좀 적시면서 강을 건널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화려한 옷을 입고 서 있습니다. 이 옷을 벗고 건너야 가는데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무슨 도움이 없을까 하고 기다리는 것을 보고 수도사 한 청년이 "제가 도와 드리지요. 업히세요" 그래가지고 수도사가 이 아리따운 여자를 업고 강을 건너갔더랍니다. 고맙다고 서로 인사하고 헤어진 다음에 계속해서 길을 가는데 한 시간쯤 갔을 때에 그 아가씨를 업고 가지 아니한 그 수도사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 친구가 이 아가씨를 업고 갈 때에 체온이 오고 가고 얼마나 좋았을까 나빴을까' 뭐 이 생각을 하다가 화가 났어요. 그래가지고 한마디 했답니다. "이 사람아! 수도사가 되어 가지고 아가씨를 업고 다니다니 이게 있을 수가 없는 타락이다." 그러니까 그 아가씨를 업고 건너갔던 그 수도사는 하는 말이 "그 무슨 말인가! 한시간 전의 일인데 난 벌써 잊었는지 오래인데 별걸 다 기억하고 있구만." 누가 수도사입니까.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다 잊어버리고 깨끗이 잊어버리고 주를 쫓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 있고요, 뿐만 아니라 오늘 이 말씀의 깊은 뜻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에요. 먼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나중 되었다가 다시 먼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내가 나 자신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또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도 시험을 이기는 것도 은혜요, 좀 더 나아가서는 순교 할 수 있는 것은혜입니다.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는 하나님이 주시는 큰 특별한 축복입니다. 오직 은혜가 있을 뿐이요, 먼저 되고 나중 되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더란 말입니다. 특별히 신앙의 현재성을 강조합니다. 오로지 섬기는 마음, 오로지 주를 사랑하는 마음, 그것으로 살아갈 뿐이고 內實을 기할 뿐이요. 으뜸이 되느냐 뒤로 가느냐, 먼저 되느냐 뒤가 되느냐, 크냐 작으냐, 우편이냐 좌편이냐 이런 것에 신경 쓰지 마세요. 가만히 보면 처음 예수를 믿을 때는 하나님만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출발했다가 신앙생활 하면서 뭐 집사도 권사도 장로도 또 먼저 되고 뒤에 되고, 선배요 후배요 뭐 이러다가 손해보는 분이 많아요. 다 잊어버리세요. 오로지 주님만 생각하세요. 베드로가 먼저 된 것 같으나 순교는 스데반이 먼저 합니다. 베드로가 교회를 시작할 때는 삼 천명을 앞에 놓고 설교하는 위대한 사도였지만 뒤늦게 예수를 믿은 사도 바울에게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바울이 더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보세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고 나만의 진실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의 아버지가 어느날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납니다. 강도가 그를 향하여 "있는 거 다 내놔!" 그럽니다. 있는 대로 다 내 놓았습니다. "이게 다냐이게 답니다." 그걸 가지고 가고 이 사람은 놓아주었습니다. 목숨이 아까우니까 도망을 하는데 뭐 덜렁덜렁 걸려요. 가만히 보니까 금 덩어리 몇 개를 혹 잃어버릴까 해서 옷소매에다 이렇게 꿰맨 게 있었는데 그게 덜렁거리는 거예요. '아! 내가 거짓말을 했구나.' 이 금 덩어리를 가지고 다시 강도한테 가서 "아까 그게 다 라고 한 건 거짓말입니다. 아 여기 보니까 금 덩어리가 여기 있는데 내가 이런" 그 때에 그는 생각했습니다. 금 덩어리가 있고, 없고가 아니라 내가 거짓말했다는 것은 일평생 잊을 수 없는 게요. 이건 나를 괴롭힐 거예요. 금 덩어리가 문제가 아니에요. 도로 갖다 주었더니 이 말을 듣고 강도들이 다 회개를 합니다. 여기저기서 모았던 금 덩어리들을 다 내어놓고 우리를 위해 기도 해 주세요. 그리고 회개했다는 겁니다. 위대한 진실입니다. 뭐 돈 몇 푼 얻기 위해서 거짓말 해 봤자 그 영혼은 계속 썩어 가는 것이올시다. 인격은 망합니다. 다 이루고 있는 거 같으나 진실을 찾았을 때 그는 용기의 사람, 능력의 사람, 권세 있는 그리스도 인이 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시기와 질투는 종교성이 짙은 죄악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시기와 질투, 편견 깨끗이 버리고 순수한 겸손과 오직 은혜의 사람이 될 때에 그는 위대한 용기의 사람이 됩니다.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먼저 됐습니까, 끝까지 먼저 될 것이고, 나중 되었습니까, 다시 그가 먼저 될 것입니다. 이런 위대한 역사가 여러분의 신앙 생활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개혁 가운데 가장 어려운 개혁이 생각을 뜯어고치는 겁니다. 집을 바꿀 수도 있고, 직업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여전히 안 바꿔집니다. 심지어는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도 그 기본적인 생각은 여전히 그대로 머물러, 고정관념에 머물러 있는 그런 사람들을 봅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생각만 좀 바꾸면 자유 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으련만 그 생각 하나를 돌리지 못해서 한평생 아주 참 처절하게 비참하게 그렇게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실패하는 이유가 있다면, 역시 무능하기 때문이겠죠. 그 무능한 이유는 무지 때문입니다. 무지보다 더 무서운 것은 편견입니다. 잘못된 지식은 없느니만 못합니다. 왜냐면은 잘못된 지식과 편견과 고집에 매여있는 동안은 자기 스스로는 교만해 지고, 언젠가는 가슴을 치며 후회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지식은 인격과 인간과 모든 것을 망칩니다.
그런데, 잘못된 지식은 고집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면 내가 얼마나 잘못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거예요. 이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편견의 노예가 될 때 가장 불행한 사람, 가장 비참한 사람으로 전락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써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 말씀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대로 보면은 특별히 베드로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예수의 제자가 되려는 분들에게 주시는 가장 핵심적이고 결정적 교훈입니다. '먼저 된 자로써 나중 될 것이다. 나중 된 자로써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대단히 의미심장한 그런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말씀의 깊은 의미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깨뜨리라는 것입니다. 자, 먼저 됐다는 게 뭡니까. 먼저 아는 것이지요. 지식에 대한 먼저, 그 다음에 또 경험에 대해서 먼저예요. '내가 다 해 봤다' 이거예요. 다 지내 봤다. 그거 위험한 일입니다. 당신이 몇 가지나 경험했는데요. 어떤 분이 그런 얘기하던데요. 남자라는 것은 다 못 씁니다. 늑대입니다. 검습니다. 그러더니, "여보세요, 내 얼굴 좀 보고 말하세요. 당신 앞에 선 사람도 지금 남자입니다.아이고, 목사님은 아니고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남자는 이게 얼마나 무서운 얘기입니까. 도대체 당신이 몇 남자나 만나 보았소.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Generalization, 이 보편화라고 하는 것처럼 무서운 죄가 없는 거예요. 도대체 내 경험이 도대체 얼마나 미미하고 적은 것이고 불완전 한 건데 자기 경험을 의지해서 '먼저 다 경험했다' 이게 망조가 아니겠어요. 경험이라는 것 참 미미하고 국한 적인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지식, 자기 경험, 그리고 자기 믿음, 이런 걸로 인해서 자기가 먼저 됐다는 거죠. 내가 먼저 믿어서 성경도 많이 알고 내가 봉사도 하고 뭐 믿음의 선배가 됐다고 합니다. 그거 조심해야 됩니다. 심리학자 Golden Allport 라는 분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편견을 만드는 것도 종교요. 편견을 깨뜨리는 것도 종교다.' 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편견이 점점 굳어지고 그 자기 생각이 敎理化 되면서 무서운 고정관념을 만듭니다. 그런가 하면, 편견을 깨뜨리는 회개 운동도 교회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할 때에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우리의 가치관을 바꾸고, 우리의 뜻을 바꾸고, 우리의 모든 경험으로부터 온 자기 의지까지 이제 와서 다 바꿔요. 그것이 회개올시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는 종래에 그런 생각을 많이 해 왔어요.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 돈이 행복의 기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돈 있는 사람은 행복할 거다 생각했어요. 어쩌면 내가 돈 있어 보지 못해서 그런지도 몰라요. 그 돈 있는 사람이 꼭 행복한 것이 아닌데. 그것도 편견입니다. 또 요새 같은 세대는요 요새는 그저 누구든 여러분 빚 없으면 부자입니다. 그 마이너스는 아니니까요. 요새 와서 행복한 사람 많습니다. 요새 와서 가장 불행하고 고민이 많은 사람은 돈 많은 사람입니다. 그도 부동산 많고, 증권 가졌던 사람들. 안 그렇습니까 증권 모르고 뭐 돈이 있어야 증권 사지요. 좋은 증권도 없고 부동산도 없고. 요새 부동산이 일본이요 일본 동경이 80%가 아니라, 8분의 1로 땅값이 떨어졌습니다. 8분의
1. 이건 먼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도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8분의 1로 떨어지니까 그것을 보증했던 은행이 막 그대로 넘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 바로 이 아시아 경제인데, 여러분, 부동산 없는 여러분, 나와 더불어 편하지요.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모르겠다. 안 그렇습니까 그러나 지금, 땅 많이 가졌던 사람들, 돈 가졌던 사람들, 특별히 증권 가졌던 사람들 이건 지금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니까 淸貧樂道 올시다. 아무 것도 없던 사람들도 아마 그럴 거예요. 다 내 팔자인줄 알아라. 이게 다 보통 내 덕이냐. 생각해 보세요. 그저 있으면 다 복 인줄만 알았지만 벌써 그런 것이 아니에요. 짧은 세상을 살면서 벌써 우리는 깨달은 게 그거예요. 있다고 복이 아니에요. 게다가 또 출세했다고 복입니까 아이고 출세한 사람들 요새 고생 많이 하더군요. 죽을 지경입니다. 어떤 사람은 또 어떤 회사에 있다가 오래 전에 뭐 몇 년 전에 감원 당해서 아주 슬퍼하고 낙심하고 나더러 기도해 달라고 하더니, 요새 와서는 '내가 복입니다. 자칫 했으면 지금 청문회 나갈 뻔했거든요.'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것은 복 일거다, 뭐 일류대학을 나오면 못 될 거다, 고시 합격하면 복은 된 거다.―아닙니다. 그것도 고정관념이에요. 낙제가 복이라는 것을 몰랐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만 생각하지 말아라 이거예요. 먼저 된 자가 기득권이 아네요.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먼저 된 자로써 나중 될 자가 많으니라. 이걸 알아야지요. 참 중요한 얘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이 특별히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들을 보고하는 말이에요.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들 종교적으로 먼저 된 사람들입니다. 열심히 믿고 성경 많이 알고 성경 공부 많이 하고 전문적인 종교인이요. 자 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 먼저 된 사람들, 바로 이 먼저 됐다는 고정관념을 깨지 못해서 저들은 예수를 영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중 될 수밖에. 안 그렇습니까 그 조금 아는 성경 그게 문제요. 또 좀 거룩하다고 하는 게 문제요. 남보다 좀 깨끗하게 산다고 하는 게 바로 이 문제입니다. 그 때문에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할 수가 없었어요. 마침내 그들은 영원히 나중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깊이 생각할 문제입니다. 나는 언젠가 성경을 읽다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1장 31절에 말씀하시기를 그 바리새인 교인보고 하는 말입니다. '창기와 세리가 너희보다 하늘나라 먼저 들어간다.' 제가 그 말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고 하니, 그 말씀이 참 담대한 말씀이기도 하고 정확한 말씀이기도 하지만은,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십자가에 돌아가셔도 할 말이 없다. 당시에 그 높고 거룩하고 귀한 존재들을 향해서 그래, 그 사람들은 천당 못 가고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는 더러운 창기와 세리, 너희들이 하늘나라 먼저 간다―이래 놨으니 이러고 살아 남기를 바래요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게 사실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고정관념을 깨세요. 뭐 안다는 거 잊어버리세요. 뭐 옛날에 알아 보았자 요새 초등 학생만도 못해요. 그런 줄 아시고요. 옛날에 박사라 해봤자 그거 별거 아닙니다. 그거 내 놓을 것도 못 되고요. 가져봤자 우리가 지금 나라가 흔들리는 판에 가진 게 뭐 있습니까. 빚더미에 올라앉았는데 뭐 가졌느니, 뭐 되었느니 뭐 아느니, 힘이 있느니, 잊어버리세요. 깨끗이 밀어 버리고 다 치워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됐다고 하는 생각. 깨끗이 잊으라 그 말이에요. 그러면은 얼마나 편한데요. 지금도 그 생각 때문에 내가 과거에 어떻고, 내가 어떻고 그 생각 때문에 고생이더라고요, 보니까. 빨리 잊어 버려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사람 오히려 먼저 될 자가 많을 것이라고요. 또 예수님의 이 말씀의 깊은 뜻은 말이에요. 미래의 가능성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에요. 먼저 됐다고 해서 반듯이 먼저 되는 거 아니고, 나중 됐다고 해서 늦지 않아요. 그에게도 미래는 보장되어 있어요. 행과 불행은 결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행복할 거다 영원히 행복할 것도 아니고, 재산이 있다고 자손 만대에 누려 가면서 그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생각했지만 어림도 없는 얘기입니다. 잊어버리세요. 한 당대도 못 지키는데 자손까지 물려 줄 거 없습니다. 잊어버리세요. 벌써 운명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나중 됐다고 슬퍼 할 것 없어요. 그가 먼저 될 것이고, 지금 복되다고 해서 그 삶에게 복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꼭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듯이 혹 내가 불행하고 내가 지금 처절하다 하더라도 나중 된 내가 먼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행복과 밝은 운명은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요. 한 정원의 영주 한 사람이 산책을 합니다. 그 곳 정원사 청년 하나가 열심히 정원을 가꾸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정원을 잘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화분이 있는데 나무 화분을 또 더 조각을 해서 예쁘게 꽃을 새겨 가면서 정원을 단장하는 것을 보고 영주는 너무 감격해서 "자네는 그런 일을 한다고 임금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어째서 그런 일을 하고 있는가"했더니 이 청년이 하는 말이 "나는 이 정원을 사랑합니다. 내 직무를 다 하고 나서 시간이 남을 때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이 나무 통으로 만든 화분을 내가 이렇게 조각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 생각이 너무 기특하고 또, 손재주도 있는 것 같아서 그 영주가 이 청년을 불러다가 조각 공부를 시킵니다. 이것으로 大成하게 됩니다. 한낱 정원사로써 한 평생을 살다가 끝나야 될 사람이요. 그러나 그가 자기 본분을 정성을 다 할 때에 그를 기용해서 이렇게 조각을 공부 시켰더니 바로 이 사람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미켈란젤로(Michelangelo)입니다. 그는 한낱 정원사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본분을 잘 감당하는 중에 세계적인 유명한 조각가가 됩니다. 여러분, 나중 되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에요. 지금 내 신분이 낮다고 끝난 게 아니에요. 지금 내가 가난하다고 내가 불행한 게 아니에요. 먼저 된 자로써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써 먼저 될 자가 많겠다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또한 오늘 본문의 말씀은 현실에 나타나 위장되고 위선적 헌신에 대해서 주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 모든 것을 버리고 쫓으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 보다 어렵다." 이런 말씀을 하실 때에 베드로가 한마디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쫓습니다." 칭찬들을 뻔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 말씀은 "정말 네가 다 버렸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직업도 버렸어요. 또 자기 가정도 버렸어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자존심을 버리지 못 했어요. 허영심이나 명예를 버리지 못 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 앞에 청원을 합니다. "우편에 좌편에 앉게 해 주세요." 할 때에 제자들이 분히 여겼다고 성경은 분명히 41절에서 말합니다. 왜 분히 여긴 겁니까 아직도 허영심이 있거든요. 시기와 질투가 있었거든요. 다 버린 것 같으나 버린 것이 아니에요. 온전하게 주를 따른다고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더라고요. 그것이 이런 때 표출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 고로 정말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에 대한 욕망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야만 깨끗한 주의 제자가 되겠는데 베드로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분히 여기기도 하고 시기, 질투하기도 하고 결국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게 되었더란 말입니다.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두 수도사가 순리의 길을 떠나다가 어디서 강을 건너게 됩니다. 이 허리까지 물이 흐르고 있는데 어차피 옷을 좀 적시면서 강을 건널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화려한 옷을 입고 서 있습니다. 이 옷을 벗고 건너야 가는데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무슨 도움이 없을까 하고 기다리는 것을 보고 수도사 한 청년이 "제가 도와 드리지요. 업히세요" 그래가지고 수도사가 이 아리따운 여자를 업고 강을 건너갔더랍니다. 고맙다고 서로 인사하고 헤어진 다음에 계속해서 길을 가는데 한 시간쯤 갔을 때에 그 아가씨를 업고 가지 아니한 그 수도사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 친구가 이 아가씨를 업고 갈 때에 체온이 오고 가고 얼마나 좋았을까 나빴을까' 뭐 이 생각을 하다가 화가 났어요. 그래가지고 한마디 했답니다. "이 사람아! 수도사가 되어 가지고 아가씨를 업고 다니다니 이게 있을 수가 없는 타락이다." 그러니까 그 아가씨를 업고 건너갔던 그 수도사는 하는 말이 "그 무슨 말인가! 한시간 전의 일인데 난 벌써 잊었는지 오래인데 별걸 다 기억하고 있구만." 누가 수도사입니까.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다 잊어버리고 깨끗이 잊어버리고 주를 쫓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 있고요, 뿐만 아니라 오늘 이 말씀의 깊은 뜻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에요. 먼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나중 되었다가 다시 먼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내가 나 자신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또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도 시험을 이기는 것도 은혜요, 좀 더 나아가서는 순교 할 수 있는 것은혜입니다.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는 하나님이 주시는 큰 특별한 축복입니다. 오직 은혜가 있을 뿐이요, 먼저 되고 나중 되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더란 말입니다. 특별히 신앙의 현재성을 강조합니다. 오로지 섬기는 마음, 오로지 주를 사랑하는 마음, 그것으로 살아갈 뿐이고 內實을 기할 뿐이요. 으뜸이 되느냐 뒤로 가느냐, 먼저 되느냐 뒤가 되느냐, 크냐 작으냐, 우편이냐 좌편이냐 이런 것에 신경 쓰지 마세요. 가만히 보면 처음 예수를 믿을 때는 하나님만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출발했다가 신앙생활 하면서 뭐 집사도 권사도 장로도 또 먼저 되고 뒤에 되고, 선배요 후배요 뭐 이러다가 손해보는 분이 많아요. 다 잊어버리세요. 오로지 주님만 생각하세요. 베드로가 먼저 된 것 같으나 순교는 스데반이 먼저 합니다. 베드로가 교회를 시작할 때는 삼 천명을 앞에 놓고 설교하는 위대한 사도였지만 뒤늦게 예수를 믿은 사도 바울에게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바울이 더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보세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고 나만의 진실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의 아버지가 어느날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납니다. 강도가 그를 향하여 "있는 거 다 내놔!" 그럽니다. 있는 대로 다 내 놓았습니다. "이게 다냐이게 답니다." 그걸 가지고 가고 이 사람은 놓아주었습니다. 목숨이 아까우니까 도망을 하는데 뭐 덜렁덜렁 걸려요. 가만히 보니까 금 덩어리 몇 개를 혹 잃어버릴까 해서 옷소매에다 이렇게 꿰맨 게 있었는데 그게 덜렁거리는 거예요. '아! 내가 거짓말을 했구나.' 이 금 덩어리를 가지고 다시 강도한테 가서 "아까 그게 다 라고 한 건 거짓말입니다. 아 여기 보니까 금 덩어리가 여기 있는데 내가 이런" 그 때에 그는 생각했습니다. 금 덩어리가 있고, 없고가 아니라 내가 거짓말했다는 것은 일평생 잊을 수 없는 게요. 이건 나를 괴롭힐 거예요. 금 덩어리가 문제가 아니에요. 도로 갖다 주었더니 이 말을 듣고 강도들이 다 회개를 합니다. 여기저기서 모았던 금 덩어리들을 다 내어놓고 우리를 위해 기도 해 주세요. 그리고 회개했다는 겁니다. 위대한 진실입니다. 뭐 돈 몇 푼 얻기 위해서 거짓말 해 봤자 그 영혼은 계속 썩어 가는 것이올시다. 인격은 망합니다. 다 이루고 있는 거 같으나 진실을 찾았을 때 그는 용기의 사람, 능력의 사람, 권세 있는 그리스도 인이 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시기와 질투는 종교성이 짙은 죄악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시기와 질투, 편견 깨끗이 버리고 순수한 겸손과 오직 은혜의 사람이 될 때에 그는 위대한 용기의 사람이 됩니다.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먼저 됐습니까, 끝까지 먼저 될 것이고, 나중 되었습니까, 다시 그가 먼저 될 것입니다. 이런 위대한 역사가 여러분의 신앙 생활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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