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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남편 (엡5: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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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심 하게 되지만, 없으면 목숨 이 위태로운 것은 무엇입니까 공기와 아내입니다. 지난번 남성 교우들 끼리 모여서 의견 일치를 본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아내가 집에 있을 때는 있는둥 마는둥 있어도 그만 없어 도 그만인데, 한 번 집을 비우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생활이 안될 정도라는 겁니다. 아내가 이런 존재라는 데 사 실 남성 교우들 전부 동의를 했습니다.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 보면 아내가 어느날 갑자기 집 을 나갑니다. 일 때문에 매일 밤 늦게 들어오고 집에 와서도 일 을 들고 들어오는 하숙생 남편이, 갑자기 아내가 집을 나가 버리는 상황을 당한 겁니다. 그리고 그 남편이 애를 키우는 데, 가관 입니다. 영화 대로라면, 아내된 여성 교우 여러분! 자신의 존재 를 확인하고 싶으면 몇일 만이라도 집을 나가 보세요. 그리고 남 편된 교우 여러분! 아내가 어느날 집을 갑자기 나가기 전에, 오늘 에베소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가정 의 보금 자리를 만들기 위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에서 남편들에 대한 말씀의 명령은 한 마디로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수준이 있는 겁니다.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25절) 여기에서 '사랑'이라는 말 있지요 이 사랑이라는 말의 무게를 좀 살펴 봐야 합니다. 헬라어에서는 사랑을 표현하는 말이 네 가 지가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스톨게', 친구의 사랑은 '필레 오', 연인의 사랑은 '에로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Agape) 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할 때의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의 사랑도 아가페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의 아내 사랑은 거의 신적인 사랑의 수준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을 하자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 그런 수준으로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아내 사랑 원칙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 아내가 남편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에 베소서와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요. 그랬더니 남성 교우들 어깨가 확 펴지고 목에 힘이 주어지더 라고요. 속으로 전부 '그럼 그렇지. 명령에 복종해야지! 암 암 맞는 말씀이야. 은혜로운 말씀이야!' 뭐 이러고 있는 것 같이 보 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좋아 하지 마세요. 오늘 말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남편들아 !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 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것이 남편들에 대한 성경의 명령입니다. 자, 한 번 무게를 달아 봅시다. 복종하고 순복하는 것이 쉽습니까 아니면, 십자가 에 달려 목숨 내어 놓는 일이 더 쉽습니까 복종은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만, 목숨을 버리는 사랑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목 숨을 내어 놓는 일이 더 어렵지요 그러니 남편의 책임이 더 큽니다. 남편의 역할이 더 어렵습니다. 그러니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이 말씀, 절대 남편의 착취구조를 정당화 하는 말씀 이 아닙니다. 때문에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의 명령은 참으로 엄중한 것입니다. 요구 수준도 한결 높습니다. '그리스도가 교회 를 사랑하듯이'입니다. 이제, 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한 그 숭고한 아가페적 사랑의 의미를 한번 새겨 봅시다. '아가페' 사랑의 속성은 세 가지입니다. 비이기적, 무조건적, 헌신적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교회를 사랑하시는 모습입니다.
첫째는 믿음의 남편은 자기 위주의 생활이 아니라, 아내 위주 의 생활을 합니다. 이것이 비이기적인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이 세상의 아내들은, 무엇보다도 남편들의 자기 위주의 삶 때문에 상처 받고 힘들어 합니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라는 영화에도 보면 그래요. 남편은 전 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양육권 때문에 법정에서 남편측 변호사가 아내에게 거칠게 심문을 합니다. " 남편이 폭력 을 습니까 아니요. 돈을 못 벌어 왔습니까 아니요. 외도를 했습니까 아니요. 아이를 학대했습니까 아니요." 아내측 변호사가 아내에게 심문을 합니다. " 왜 아내가 집을 나갔습니까" 아내 말합니다. " 너무 너무 힘든 삶이었습니다. 남편은 일에 미친 사람 처럼 살아가고, 저는 수족 처럼 톱니바퀴 처럼 돌아가기를 바라고, 그 외의 것은 무시하고 외면합니다. 저는 점점 더 힘들어 져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남편도 이걸 인정합니다. 아내는 견디다 못해 가정 을 뛰쳐 나갑니다. 왜 파경에 이르게 돼었습니까 남편의 자기 위주의 생활 때문입니다. 영화는 완전한 해피 앤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에 두 부부는 화해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형제를 실족케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 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나는 잘 하고 있지만 상대방 이 상처받으면 그게 실족케 하는 것입니다. 이게 연자 맷돌을 메 야할 죄라는 것입니다. 내 위주의 삶에 대한 경고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남성은 더 이기적일 수 있습니다. 남성 중에서도 결혼한 남성은 더 지독 하게 이기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의 남편들은 말씀 앞 에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덧 입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남편들은 뭐 든지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삶은 나 위주의 생활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교회를 구원하기 위한 생활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나 깨나 교회의 구원을 위해 활동하셨습니다. 교회를 위해 박해를 당하시고, 교회를 위해 심문을 당하시고, 교회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누가 말한 대로 십자가 위에서 천군과 천사를 동 원해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군인들을 싹쓸이 할 수 있는 대도 물과 피를 흘리면서 십자가를 다 지셨습니다. 왜요 교회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의 삶은 오직 교회를 구원하기 위한 삶입니다. 교회 위주의 삶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 위주의 삶이었듯이, 남편들은 아내 위주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말씀의 가르침입니다. 사실 이 땅의 모든 남편들, 사실 속으로 아내에게 얼마나 불평 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간증을 하나 하지요. 저는 교회를 섬기면서 '사모'라는 역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남편의 직업이 아내에게 결 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두가지 직업이 있습니다. 하나는 대통령 이고 하나는 목사입니다. 대통령의 부인에게 국가에서 급료가 나 가는 건 아니지만, 대통령의 부인은 해야하는 일이 많습니다. 목사의 아내도 사례비가 나가는 건 아니지만, 해야 하는 일이 많고 요구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렇듯, 이 두 직업은 아내의 존재가 남편의 일과 운명적으로 한 묶음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웃스개 소리를 합니다. 힘들더라도 대통령 영부인 정 도로 좀 폼을 재고 살라고 말입니다. 말이야 그렇게 하지만 저도 속으로는 아내에게 요구하는 게 여 간 많은게 아닙니다. 남들이 다 하는 자녀양육, 가사노동, 집안 살림, 남편 시중에 저는 목회일로 몇 가지를 더 추가 합니다. 개 인비서에 타이프라이터, 주보접고 테이프 녹음하고 자잘한 일 시 키는 사무원에, 심방 대동자로, 교회학교 교사로, 공동식사 비상 대기조로, 교회 청소부로, 상설 꽂꽂이 담당자로, 전화심방 담당 자로, 여성교우 상담자로, 대외 접촉 사교 파트너로 그 외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요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제 성격이 보기보다 은근히 예민하고 까다로와서 더 철저하게 요구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늘 불평이 입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요 즈음은 제가 좀 마음을 달리먹고 있습니다. 저의 아내는 지난 10 년간 개척 교회를 하면서 이 많은 일을 다 감당을 잘 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내를 지극히 평범한 한 평신도로 돌려 드리 려고 합니다. 어떨때는 은근히 요구사항이 많이 생기지만, 아, 내가 평신도로 격하를 했었지 이렇게 마음을 먹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남편들이 왜 아내에게 불평을 합게 됩니까 내 위주의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입맛에 안 맞아서 그렇습니다. 나 편한 대로 안 해 줘서 그렇습니다. 나의 취향 대로 안해 줘서 그렇습니다. 내 생각 대로 안 움직여서 그렇습니다. 모두 내 위주입니다. 그래서 불평입니다 . 예수님이 3년 사역 동안 불평하려면 참 많았을 것입니다. 제자 들은 왜 그모양인지 모르겠어요. 도대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고난의 잔을 이야기 하는 데, 영광의 잔으로 생각하며 다툽니다. 낮은 자리에 가라고 하는데 높아지려고 야단입니다. 발을 손수씻기시면서 까지 가르키셨는데, 섬김은 커녕 서로 지배 하려고 야단들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철야기도를 하 시면서 맘이 괴로워 죽을 지경인 데, 제자들은 쿨쿨 잠도 잘 잡니다. 제자들을 구원하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는 판인데도, 한 사람도 죽음의 순간을 지키지 못하고 다 도망가 버립니다. 이러니 그리스도가 제자를 향해 불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불평하기로 치면 사흘 밤낮을 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죽음까지 묵묵히 피를 흘리시면서 제자들 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게 구원한 제자들은 오순절 사건후 모두 능력있는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한 숭고한 사랑 앞에, 우리 남편 들은 날마다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날마다 죽고 날마다 살아야 합니다. 이 그리스도의 헌신과 사랑의 복음 앞에 우리 남편들은 날마다 세례를 받읍시다. 신랑과 남편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 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둘째, 믿음의 남편은 헌신적인 사랑을 합니다. 원래 '헌신적이다'라는 말 교회에서 아니면 잘 안쓰는 말입니다. 옛날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지금에도 유일하게 쓰이는 용 도는 '헌신적인 아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성경 적으로 보면 아내에게 보다는 남편에게 써야 되는 말입니다. 순복하는 아내,헌신적인 남편이게 성경적인 표현입니다. 왜 요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25절)고 말씀 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 을 주는 것, 헌신입니다.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것, 이게 바로 헌신입니다. 이걸 남편에게 요구하고 있으니 '헌신적인 남편'이 란 말이 딱 어울리는 겁니다. 남편을 위한 열계명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아내를 관리하 지 말라. 아내는 재산이 아니라 동반자이다." 아내는 관리의 대 상이 아니라 헌신과 섬김의 대상이라는 것 귀 기울여 경청할 필 요가 있습니다. 사랑은 희생적 사랑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남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헌신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몸을 내어 주고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피 를 흘려야 합니다. "아내에게 헌신적인 남편" 이것이 오늘 에베소서가 명령하는 것입니다. 몸을 내어 주는 사랑, 불편을 감소하는 사랑, 져주는 사랑, 써빙하는 사랑, 섬기는 사랑 이거 모두 헌신적인 사랑의 다른 표현입니다. 남편의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부장 형, 나몰라라형, 소근소근형, 바보온달형 등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어떤 유형이든 간에 헌신적인 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명령입니다. 왜요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25절)고 말씀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권위는 희생의 권위, 모범의 권위, 종의 권위입니다. 목자의 권위, 가장의 권위도 마찬 가지입니다. 종의 권위, 모범 의 권위, 헌신의 권위입니다. 남성들은 전통적으로 가부장의 구 조에서 섬김을 받으며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 구조를 뒤 집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때 까지 남편들은 대접 받고, 섬김 받고, 높임받고, 희생을 상납받는데 5천년 동안 익숙 해져 있습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제는 믿음 안에서 섬기고 헌신할 때입니다. 헌신한다는 것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은 가정의 프로듀서로 헌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듀서는 누구입니까 프로그램을 만 드는 연출가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들은 가정 분위기를 연출할 책임이 있습니다. 연출가입니다. 유대 탈무드에 이런 재미있는 격언이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 에게 추근 거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추근 거리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남자는 자기의 잃은 갈비뼈를 되 찾 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분위기를 연출할 책임, 남편에게 있습니다. 가장의 리드가, 특히 남편의 리드가 어 설프면 졸작이 나옵니다. 가정은 사업체가 아니고 예술 작품 세 계입니다. 이득을 남기고 공략을 하고 획득을 하는 그런 사업체 적 세계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미술, 조각, 시, 연극 같은 예 술 작품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인드를 좀 바꿔야 합니다. 특히 가정 분위기를 잘 연출하는 데 헌신하도록 하세요. 그대들 남편들이 얼마나 정렬적이고 세심하게 연출에 헌신하느냐에 따라 가정의 분위기는 천국으로 바뀔 수도 있고 지옥으로 바뀔수도 있 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세째, 믿음의 남편은 아내를 영광스럽게 세워야 합니다. 자 27절을 한번 보세요. "자기 앞에 영광 스러운 교회로 세우 사" 그렇습니다. 아내를 영광스럽게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디에 세우게 됩니까 자기 앞에 세우는 겁니다. 이 세상 의 모든 남편은 아내를 자기 앞에 세우게 됩니다. 영광스러운 몸 으로 세우든 천하고 추한 모습으로 세우든 자기 앞에 세우게 되 어 있습니다. 그러니 남자들은 앞세운 아내를 보고 먼저 평가 받 습니다. 그러니 영광스럽게 세워야 합니다. 한 몸이기 때문에 그 렇습니다. 한 존재로 평가 받습니다. 우리 나라 대통령이 있습니다만 부인 때문에 독재자의 잘못이 좀 묻히는 경우도 있고, 부인 때문에 실정에 대해 더 가혹하게 욕을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28절)는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왜요 부부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남 편의 인격은 아내를 보고 판단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영광스러운 존재로 아내 를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남편들에 대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한 사랑은 자기위주가 아닙니다. 헌신적 입니다.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 닙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죄많고 혈기 많 고 이기적인 인간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헌신을 흉내 조차 낼 수 이ㅆ습니까 그러나 자신을 십자가 앞에 내어 놓고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것이라(갈2:20)" 내 안 에 그리스도가 사시게 하면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몸 으로 체험하고 누리고 감격하는 믿음의 사람은 가능합니다. 성령님 의 능력을 가지고 주님되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 입으면 우리도 그리스도 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의 장성 한 분량 까지 자라라"고 했습니다. 이런 변화의 축복이 가득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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