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애를 같이하지 말라 (고후6:1-18)
본문
1. 우리 나라 사람들, 특히 정치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김구 선 생을 꼽는데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걸핏 하면 `현실론'을 내세우는 정 치인들이 현실정치에 능숙하게 타협해 권력을 잡았던 사람들을 제치고, 당시엔 실패한 것 같았지만 `원칙'을 지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김구 선생 을 존경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조국광복과 민족통일의 외길을 걸 었던 선생의 올곧은 성품에 대한 흠모하는 것입니다. 김구 선생은 눈앞의 이익에 탐닉하지 않았습니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현실정치와 역사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일이 요즘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름아닌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 한 조기사면 논쟁이 그것입니다. 전노씨를 추종하던 일부 세력들이 광 복절 특사를 겨냥해 사면 청원운동을 벌이고, 일부 시민단체들은 반대운 동으로 날카롭게 맞서고 있습니다. 배경에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결말이 나리라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정치권에 압 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권이 전노씨 문제를 대하는 시각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신한국당의 대선 후보 경선과정에서 많은 예비 후 보들이 두 사람의 사면을 노골적으로 거론했습니다. 이는 영남 지역의 표를 의식하여 타협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야 당도 전노씨 사면에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무주공산인 대구 경북지역의 표몰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열심히 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전노씨의 사면 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영삼 대통령이역사의 심판에 맡기자! 며 미루고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했으나 국민들이 민족정기와 사회정의 를 바로세워야 한다며 들고 일어나 결국 518특별법을 제정케 하고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된다.는 본보기를 남긴 것이 아니었습니까 수 백 명을 학살하고 권력을 찬탈해 온갖 영화를 누리고는 잠시 감옥에 `들렸다 가' 나와 다시 큰소리치게 한다면 역사에 무엇을 교훈으로 남기겠습니까 더욱이 이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참회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빼돌려 숨겨놓은 돈의 행방을 밝힌 적도 없습니다.
지금 감옥에는 전노 씨의 군사통치에 항거했거나 이들의 잘못된 정치로 말미암아 생긴 상당 수 양심수들이 갇혀 있습니다. 광주비극의 상흔이 채 아물지도 않았습니다. 김구 선생은 마음 속에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에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위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 겠다.고 당장 손해볼 줄 알면서도 험난한 `역사의 정도(正道)'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김구 선생은 현실정치와 타협하고 어울리지 아니함으로 역 사의 장에서 퇴장했을지라도 그의 타협하지 아니하는 불굴의 정신은 혼 탁한 오늘의 현실정치 사회에서 사표(師表)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은 하나의 본성입니다. 돼지는 돼지의 본성을 가졌 기 때문에 흙 구덩이에서 다른 돼지들과 함께 어울립니다. 또한 양은 양 의 본성을 가졌기에 목장에서 다른 양들과 함께 풀을 뜯습니다. 그리스도 인은 신의 성품을 지녔기에, 주님의 삶의 모습을 닮은 생활을 하며 성도 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본문의 말씀은 다음 성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신22:9)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 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이 빼앗김이 될까 하노라 (신22:10)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신22:11)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소는 유대인에게는 깨끗한 짐승이었으나, 나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짐승들에게 나란히 멍에를 씌운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두 짐승은 서로 반대되는 본성을 가졌기에 도무지 함께 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을 한 멍에로 묶는다는 것은 잔인한 일 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멍에를 멘다는 것은 극히 위험한 것입니다. "(고후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본문의 말씀은 성도로써 신앙과 성결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불신자와 타협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바 로 성도는 여호와 여호와 하나님의 성민(聖民)으로 택함 받아 하나님 기업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의식주의 모든 생활에 있어서 구별되 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14: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신14:2)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 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 (신14:3) 너는 가증한 물건은 무엇이든 지 먹지 말라 (신14:4) 너희의 먹을 만한 짐승은 이러하니 곧 소와 양과 염소와 (신14:5) 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럼한 사슴과 산 염소와 볼기 흰 노 루와 뿔 긴 사슴과 산양들 (신14:6) 무릇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 (신14:7) 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 곧 약 대와 토끼와 사반, 그것들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너희에게 부정하고 (신14:8)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 뿐만 아니라 '불신자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으라'는 것입니다. "(고후6: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이 본문은 이사야서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사52: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 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거기서 나와 떠나라'는 것은 반드시 장소적으로 분리(分離)하라는 것 이 아닙니다. 성도로서 성결 보존하기 위해 이 지방에서 저 지방으로 이 사를 다녀야 한다는 것은 신약 성경에 없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세상에 대해 도덕적 영적으로 구별되게 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런 명 령으로 종종 그 백성을 인도해낸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아브라함을 불러 낸 일이라든가, 롯을 소돔 고모라에서 불러내 구원하신 일이라든가, 이스 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일이라든가 하는 것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성결을 위협하는 죄악에서 서슴지 말고 즉각 떠나라는 것입니다. 성결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하신 뜻입니다. 성령님의 모든 열매들은 모두 성결을 바탕으로 맺히는 거룩한 열매들 입니다.
그러므로 성결을 바탕으로 한 성령님의 열매들을 맺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시19: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예수님께서도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 요." 야고보는 말하기를, "(약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여기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도 하나님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있어야 성결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만큼 성결에 이르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을 모르 면 모를수록 그만큼 영육간에 더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 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시며 제사를 원치 아니 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사도 바울도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 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성도의 성결 보존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결을 단련하기 위한 도장(道場)인 것입니다.
사무엘 루사포드씨는 "악마란 성도들의 신앙과 인내를 연마하는 숫돌 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알기는 사탄이란 언제나 새로운 예루살렘 건축을 위하여 도을 닦는 연장이 되기 위하여 찾아오는 줄 안다."고 했습니다. 밀톤의 시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악이 하나님이나 사람의 마음 속에 드나들 수 있지만, 받지않고 물리 치면 아무 자국이나 허물도 남지 않으리."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죄의 유혹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리고 거룩한 성령님의 지배 가운데 살게 되면 얼마든지 죄의 자국이나 흔적이 아니라 그리스도 의 거룩한 흔적이 남아 성결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영어에서 건강하다는 낱말과 거룩하다는 말과는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건강한 상태는 병이 없다는 증거이며, 거룩함은 영혼이 죄가 없다는 증거 입니다. 기독교인의 성결은 원죄를 깨끗이 하는 것이며 다른 것은 아직 청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영혼에 건강을 회복한 상태이지만 그것으로는 아직 병에 자신을 갖지 못합니다. 가령 아이가 지금 건강하다고 해서 어 른이 되어서도 결코 병에는 자신이 있다고는 못하는것과 같습니다. 온전 히 깨끗해진 자도 영아기와 청년기와 장년기가 있습니다. 깨끗하여 짐은 영혼에서 죄를 밖으로 몰아내는 것을 말하며 결실은 그때부터 힘과 아름 다움으로 자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죄의 유혹을 받아 잠시 어려움이 있지만 곧 면역체계가 세워져 건강한 삶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선민(選民)이며, 세상과 분 리되어 성결 보존해야 하는 성민(聖民)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현세 에 몸담은 채 살고 있으며 세상 자체가 자신들의 삶의 토양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세상과 안 믿는 사람들과 완전히 관계를 끊어버리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불신자와 분리 내지는 구별될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불신자들과 교제함으로 신앙생활, 성결보존의 생활에 손상을 입을 것을 우려해서 한 말씀이지 결코 그 들과 일체의 교제를 끊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고전5:9)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 거니와 (고전5: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장차 구원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 이 세상의 오염에 조금이라도 개입함 으로써 자신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올 때까지, 세상을 최후로 심판하실 그때까지, 추수 때까지는 알곡 과 가라지가 함께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가라지가 맹위를 떨친다 할지라 도 끝까지 알곡으로 남아 있어야만 거룩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성도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항상 함께 거하시는 지성소라는 것입니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듯이 우리도 언제나 음행과 호색, 우 상숭배, 술취함, 방탕 등과 같은 인간적인 더러운 것들이 우리 안에 머무 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의 심령 속에 하나님 의 거룩한 말씀과 성령님이 항상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파하며, 진리를 따라 살게 될 때, 많은 고난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다시말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매일 죽음의 위험과 환난을 겪고 있는 바울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자 요 그들이 누리는 세상의 기쁨과 쾌락을 깨뜨리는 우울하고 침울한 자요 궁핍한 때가 더 많은 가난한 자로 비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 이 끝났다고 외치는 순간에 바울은 다시 소생했으며, 죽음의 순간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냈으며, 마음 속에 항상 샘솟듯 솟아오르는 기쁨을 느 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기쁨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 를 증거함으로써 그들에게 영적 부요를 누리게 하며 하나님 나라를 유업 으로 받게 했습니다. 참으로 바울은 "(고전3:22).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 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다."소유한 자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바울 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기꺼이 그리스도께서 당한 모든 고난을 함께 받겠다고 고백하면서 모든 성도들에게 이 세상에서 어떤 경 우에도 타협하지 말고 성결 보존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 이니라."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진정한 부요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얼마나 영적 으로 부요했던 사람이었습니까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 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 라봄이라." 사도 바울도 영적으로 부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빌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 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이 말씀의 뜻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의(義)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 버려도 좋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많은 사람을 부요 하게 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육적으로 가난하여 남긴 재산은 한 푼 도 없었으나 영적으로 부요하여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한 생활에 부요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 으로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소유케 함으로 많은 사람을 진정한 부요한 자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자신과 더불어 모든 인류가 영적 부요한 자가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며 산다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물 한 방울 찍어 마실 수 없는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 민족이 부강해지는 것이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모든 나라 민족이 영원히 사는 하늘나라에서 부요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눅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85세 고령의 일본최고의 전도자, 혼다 고지 목사가 무릎을 꿇어 큰 절 을 하며 자기 민족이 지은 죄악을 사죄했습니다.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 일 저녁 명성교회에서 열린 97성회에서 <일본의 빌리그레이엄>으로 불리 며 일본크리스천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있는 그는 지금까지 30여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한국민족 앞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일제가 <조센징> 으로 폄하했던 한국민들에게 큰 절을 하며 사죄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그 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한국민들에게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으면 괴로 워 견딜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사죄이유입니다. 일제는 한국침략 36년 동안 인권유린 창씨개명 신사참배강요 종군위안부 등 최소 10개이상의 용서받을 수 없는 민족적 죄악을 한국민족에게 지었으며 그같은 죄악은 평생 사죄하더라도 용서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게 그의 지론입니다. "당 시 일제는 악마였다."며 거침없이 말하는 혼다 목사는 한국인들이 과거 역사에 대해 분노와 슬픔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일본은 전국민 이 마음 깊숙이 사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한국민들이 큰 사랑 으로 일본 민족을 용서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죄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온 인류의 죄악을 대신했던 것처럼 한국 크리스천들 이 십자가의 무한한 사랑으로 죄악된 일본인들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혼다목사는 자신의 생명이 남아있는 한 사죄는 계속할 것이라면서 일본 내에도 자신과 같이 마음으로부터 사죄하는 크리스천들이 많이 있 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최근 일본의 우익화경향은 우려할만 하다면서 일본이 진정한 크리스천 국가가 되는 것이 아시아와 세계평화를 위해 절 실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본기독교는 전인구비례 신자수 1%의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것은 순교자가 없어섭니다. 일본 크리스천들은 고난과 핍박이 왔을때 순교하지 않고 도망갔어요. 복음의 선진들이 무수한 순교의 피를 흘린 한국의 기독교가 부흥하고 피 를 흘리지 않은 일본 기독교가 부흥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나는 내 생의 전부를 일본교회의 리바이바르를 위해 바쳤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1%의 벽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건너와 서 우리를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그는 복음으로 거듭난 한민족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일본을 용서하고 일본의 복음화를 위해서 힘써줄 것을 부 탁했습니다. 인류 역사에 엄청난 죄악을 짓고도 아직까지 사죄할 줄 모르고 여전히 군국제국주의를 꿈꾸며 뻔뻔스런 태도를 버리지 않고 일본, 그리고 경제 대국답게 우상도 800만개나 섬기는 일본은 겉으로 세계 경제 대국일 지는 몰라도 영적으로 볼 때, 기독교인 1%를 아직도 깨지 못하고 있는 영적 빈곤한 나라입니다.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나라이나 실상은 아무 것도 없는 가련한 나라요, 자신의 벌거벗은 수치를 모르는 파렴치한 나라 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1883년 전북 김제군 용진면에서 출생한 박연세목사는3.1독립만세운동 으로 투옥당하고 신사참배에 반대하다 옥중에서 순교한 호남의 대표적인 목회자입니다. 그는 전위렴 선교사로부터 전도받고 개종한 아버지(박자 형)를 따라 어릴 때 부터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전위렴 목사가 교장으로 군산 영명학교에 입학해 공부한 뒤 이 학교교사로 있으면서3.1만세운동 을 주도하다가 대구형무소에서 2년6개월간 보냈습니다.그뒤 박목사는 평 양신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하고 목포양동 교회에서 목회를 했으며 4 번이나 전남노회장을 지내고 총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박목사는 1937년 장 로교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어쩔수 없이 동조했으나 나중에 잘못 을 깨닫고 일왕(日王)을 신격화한 신사참배에 반대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는 강단에서 일왕의 절대적 위치를 그리스도로 대체하는 발언을 계속하 다 1942년 11월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1944년 2월15 일 감옥에서 동사했습니다. 진리를 사수하다 순교당한 것입니다. 이 땅에 복음을 위해 순교의 피를 뿌리신 분이 어찌 이 한 분 뿐이겠습니까 박목사가 소천한 뒤 유일한 혈육이었던 박지영집사는 유품들을 정리, 숨어 지내며 굶기를 밥먹듯이 했습니다. 교인들이 도와줘 몸을 피할 곳은 있었습니다. 그의 후손들은 박목사가 순교당한 뒤 수많은 핍박을 당했습니다. 일경들의 감시를 피해 도망다녀야 했고 먹고 자는 것을 제대로 해 결하기 어려웠습니다.그러나 박목사님의 신앙과 독립정신이 바로 이 나라 민족을 부요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순교의 피가 4천 2백만 남한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1,200만의 기독교 신자를 보유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수천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실로 이 나라 민족은 많은 고난을 받아 "(고후6:9)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 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6:10).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 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아니 할 수 없는 영적 부강한 나라 민족임을 확신합니다. 50년 전, 미국에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있었습니다. 폴 비트겐슈타인입니다.
그런데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오른팔을 잃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팔 하나를 잃었으니 절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비트 겐슈타인의 집에 악보 하나가 우송되어 왔습니다. 팔 잃은 피아니스트에 게 장난을 친 것일까 그의 마음을 더 괴롭히려는 것이었을까 이 곡은 당시 미국 최고의 작곡가였던 레이블이 비트겐슈타인을 위하여 특별히 작곡한 것으로서, 곡명은 "왼손을 위한 콘체르토 D"입니다. 이 곡은 두 손을 가지고도 다루기 어려운 곡이었으나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고통과 싸우며 연습하였고 놀라운 연주를 하여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 러자 많은 작곡가들이 그를 위하여 곡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곡을 써서 예수님에게 주셨습니다. 그 연주는 몹시 고통스러 운 것이었으며, 손에 못이 박히고, 피를 흘리며 죽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 그 피, 그 인내와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부요해지는 개선곡이었던 것입니다.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 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 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 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 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 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 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멸시받아 싫어 버린 바 되시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셨으며, 채찍에 맞고, 머리에는 가시면 류관으로, 허리에는 창으로 찔리셨으며, 급기야는 십자가에 죽으셨던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광과 기쁨과 축복, 그리고 모든 것을 가진 부요함을 베풀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처럼 사시므로 모든 인류를 부요케 하는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은 재미있는 결혼 풍습이 있습니다. 결혼식 때 신부가 접시 한 개를 밟아 깨뜨리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의 경험을 통하여 더 큰 기쁨을 맛보는 예식이라고 합니다. 기쁨을 고통으로 표현하는 의식 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그 시점에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 작된다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고통이 다가올 때 자신이 깨져 버려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는 슬기를 지녀야 합니다. 그것을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새 출발의 희망을 안고 낡은 접시를 깨는 신부처럼 파괴와 혼돈 속에서도 희망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히 부요한 예수님의 아름다운 신부가 되시 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나라 민족을 더욱 더 부강하게 만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부 요한 자가 되시며, 모든 사람을 부요케 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감옥에는 전노 씨의 군사통치에 항거했거나 이들의 잘못된 정치로 말미암아 생긴 상당 수 양심수들이 갇혀 있습니다. 광주비극의 상흔이 채 아물지도 않았습니다. 김구 선생은 마음 속에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에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위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 겠다.고 당장 손해볼 줄 알면서도 험난한 `역사의 정도(正道)'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김구 선생은 현실정치와 타협하고 어울리지 아니함으로 역 사의 장에서 퇴장했을지라도 그의 타협하지 아니하는 불굴의 정신은 혼 탁한 오늘의 현실정치 사회에서 사표(師表)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은 하나의 본성입니다. 돼지는 돼지의 본성을 가졌 기 때문에 흙 구덩이에서 다른 돼지들과 함께 어울립니다. 또한 양은 양 의 본성을 가졌기에 목장에서 다른 양들과 함께 풀을 뜯습니다. 그리스도 인은 신의 성품을 지녔기에, 주님의 삶의 모습을 닮은 생활을 하며 성도 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본문의 말씀은 다음 성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신22:9)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 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이 빼앗김이 될까 하노라 (신22:10)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신22:11)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소는 유대인에게는 깨끗한 짐승이었으나, 나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짐승들에게 나란히 멍에를 씌운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두 짐승은 서로 반대되는 본성을 가졌기에 도무지 함께 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을 한 멍에로 묶는다는 것은 잔인한 일 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멍에를 멘다는 것은 극히 위험한 것입니다. "(고후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본문의 말씀은 성도로써 신앙과 성결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불신자와 타협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바 로 성도는 여호와 여호와 하나님의 성민(聖民)으로 택함 받아 하나님 기업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의식주의 모든 생활에 있어서 구별되 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14: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신14:2)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 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 (신14:3) 너는 가증한 물건은 무엇이든 지 먹지 말라 (신14:4) 너희의 먹을 만한 짐승은 이러하니 곧 소와 양과 염소와 (신14:5) 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럼한 사슴과 산 염소와 볼기 흰 노 루와 뿔 긴 사슴과 산양들 (신14:6) 무릇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 (신14:7) 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 곧 약 대와 토끼와 사반, 그것들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너희에게 부정하고 (신14:8)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 뿐만 아니라 '불신자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으라'는 것입니다. "(고후6: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이 본문은 이사야서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사52: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 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거기서 나와 떠나라'는 것은 반드시 장소적으로 분리(分離)하라는 것 이 아닙니다. 성도로서 성결 보존하기 위해 이 지방에서 저 지방으로 이 사를 다녀야 한다는 것은 신약 성경에 없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세상에 대해 도덕적 영적으로 구별되게 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런 명 령으로 종종 그 백성을 인도해낸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아브라함을 불러 낸 일이라든가, 롯을 소돔 고모라에서 불러내 구원하신 일이라든가, 이스 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일이라든가 하는 것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성결을 위협하는 죄악에서 서슴지 말고 즉각 떠나라는 것입니다. 성결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하신 뜻입니다. 성령님의 모든 열매들은 모두 성결을 바탕으로 맺히는 거룩한 열매들 입니다.
그러므로 성결을 바탕으로 한 성령님의 열매들을 맺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시19: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예수님께서도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 요." 야고보는 말하기를, "(약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여기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도 하나님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있어야 성결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만큼 성결에 이르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을 모르 면 모를수록 그만큼 영육간에 더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 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시며 제사를 원치 아니 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사도 바울도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 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성도의 성결 보존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결을 단련하기 위한 도장(道場)인 것입니다.
사무엘 루사포드씨는 "악마란 성도들의 신앙과 인내를 연마하는 숫돌 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알기는 사탄이란 언제나 새로운 예루살렘 건축을 위하여 도을 닦는 연장이 되기 위하여 찾아오는 줄 안다."고 했습니다. 밀톤의 시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악이 하나님이나 사람의 마음 속에 드나들 수 있지만, 받지않고 물리 치면 아무 자국이나 허물도 남지 않으리."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죄의 유혹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리고 거룩한 성령님의 지배 가운데 살게 되면 얼마든지 죄의 자국이나 흔적이 아니라 그리스도 의 거룩한 흔적이 남아 성결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영어에서 건강하다는 낱말과 거룩하다는 말과는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건강한 상태는 병이 없다는 증거이며, 거룩함은 영혼이 죄가 없다는 증거 입니다. 기독교인의 성결은 원죄를 깨끗이 하는 것이며 다른 것은 아직 청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영혼에 건강을 회복한 상태이지만 그것으로는 아직 병에 자신을 갖지 못합니다. 가령 아이가 지금 건강하다고 해서 어 른이 되어서도 결코 병에는 자신이 있다고는 못하는것과 같습니다. 온전 히 깨끗해진 자도 영아기와 청년기와 장년기가 있습니다. 깨끗하여 짐은 영혼에서 죄를 밖으로 몰아내는 것을 말하며 결실은 그때부터 힘과 아름 다움으로 자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죄의 유혹을 받아 잠시 어려움이 있지만 곧 면역체계가 세워져 건강한 삶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선민(選民)이며, 세상과 분 리되어 성결 보존해야 하는 성민(聖民)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현세 에 몸담은 채 살고 있으며 세상 자체가 자신들의 삶의 토양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세상과 안 믿는 사람들과 완전히 관계를 끊어버리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불신자와 분리 내지는 구별될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불신자들과 교제함으로 신앙생활, 성결보존의 생활에 손상을 입을 것을 우려해서 한 말씀이지 결코 그 들과 일체의 교제를 끊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고전5:9)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 거니와 (고전5: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장차 구원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 이 세상의 오염에 조금이라도 개입함 으로써 자신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올 때까지, 세상을 최후로 심판하실 그때까지, 추수 때까지는 알곡 과 가라지가 함께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가라지가 맹위를 떨친다 할지라 도 끝까지 알곡으로 남아 있어야만 거룩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성도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항상 함께 거하시는 지성소라는 것입니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듯이 우리도 언제나 음행과 호색, 우 상숭배, 술취함, 방탕 등과 같은 인간적인 더러운 것들이 우리 안에 머무 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의 심령 속에 하나님 의 거룩한 말씀과 성령님이 항상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파하며, 진리를 따라 살게 될 때, 많은 고난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다시말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매일 죽음의 위험과 환난을 겪고 있는 바울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자 요 그들이 누리는 세상의 기쁨과 쾌락을 깨뜨리는 우울하고 침울한 자요 궁핍한 때가 더 많은 가난한 자로 비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 이 끝났다고 외치는 순간에 바울은 다시 소생했으며, 죽음의 순간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냈으며, 마음 속에 항상 샘솟듯 솟아오르는 기쁨을 느 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기쁨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 를 증거함으로써 그들에게 영적 부요를 누리게 하며 하나님 나라를 유업 으로 받게 했습니다. 참으로 바울은 "(고전3:22).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 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다."소유한 자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바울 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기꺼이 그리스도께서 당한 모든 고난을 함께 받겠다고 고백하면서 모든 성도들에게 이 세상에서 어떤 경 우에도 타협하지 말고 성결 보존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 이니라."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진정한 부요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얼마나 영적 으로 부요했던 사람이었습니까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 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 라봄이라." 사도 바울도 영적으로 부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빌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 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이 말씀의 뜻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의(義)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 버려도 좋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많은 사람을 부요 하게 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육적으로 가난하여 남긴 재산은 한 푼 도 없었으나 영적으로 부요하여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한 생활에 부요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 으로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소유케 함으로 많은 사람을 진정한 부요한 자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자신과 더불어 모든 인류가 영적 부요한 자가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며 산다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물 한 방울 찍어 마실 수 없는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 민족이 부강해지는 것이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모든 나라 민족이 영원히 사는 하늘나라에서 부요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눅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85세 고령의 일본최고의 전도자, 혼다 고지 목사가 무릎을 꿇어 큰 절 을 하며 자기 민족이 지은 죄악을 사죄했습니다.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 일 저녁 명성교회에서 열린 97성회에서 <일본의 빌리그레이엄>으로 불리 며 일본크리스천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있는 그는 지금까지 30여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한국민족 앞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일제가 <조센징> 으로 폄하했던 한국민들에게 큰 절을 하며 사죄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그 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한국민들에게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으면 괴로 워 견딜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사죄이유입니다. 일제는 한국침략 36년 동안 인권유린 창씨개명 신사참배강요 종군위안부 등 최소 10개이상의 용서받을 수 없는 민족적 죄악을 한국민족에게 지었으며 그같은 죄악은 평생 사죄하더라도 용서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게 그의 지론입니다. "당 시 일제는 악마였다."며 거침없이 말하는 혼다 목사는 한국인들이 과거 역사에 대해 분노와 슬픔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일본은 전국민 이 마음 깊숙이 사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한국민들이 큰 사랑 으로 일본 민족을 용서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죄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온 인류의 죄악을 대신했던 것처럼 한국 크리스천들 이 십자가의 무한한 사랑으로 죄악된 일본인들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혼다목사는 자신의 생명이 남아있는 한 사죄는 계속할 것이라면서 일본 내에도 자신과 같이 마음으로부터 사죄하는 크리스천들이 많이 있 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최근 일본의 우익화경향은 우려할만 하다면서 일본이 진정한 크리스천 국가가 되는 것이 아시아와 세계평화를 위해 절 실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본기독교는 전인구비례 신자수 1%의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것은 순교자가 없어섭니다. 일본 크리스천들은 고난과 핍박이 왔을때 순교하지 않고 도망갔어요. 복음의 선진들이 무수한 순교의 피를 흘린 한국의 기독교가 부흥하고 피 를 흘리지 않은 일본 기독교가 부흥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나는 내 생의 전부를 일본교회의 리바이바르를 위해 바쳤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1%의 벽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건너와 서 우리를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그는 복음으로 거듭난 한민족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일본을 용서하고 일본의 복음화를 위해서 힘써줄 것을 부 탁했습니다. 인류 역사에 엄청난 죄악을 짓고도 아직까지 사죄할 줄 모르고 여전히 군국제국주의를 꿈꾸며 뻔뻔스런 태도를 버리지 않고 일본, 그리고 경제 대국답게 우상도 800만개나 섬기는 일본은 겉으로 세계 경제 대국일 지는 몰라도 영적으로 볼 때, 기독교인 1%를 아직도 깨지 못하고 있는 영적 빈곤한 나라입니다.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나라이나 실상은 아무 것도 없는 가련한 나라요, 자신의 벌거벗은 수치를 모르는 파렴치한 나라 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1883년 전북 김제군 용진면에서 출생한 박연세목사는3.1독립만세운동 으로 투옥당하고 신사참배에 반대하다 옥중에서 순교한 호남의 대표적인 목회자입니다. 그는 전위렴 선교사로부터 전도받고 개종한 아버지(박자 형)를 따라 어릴 때 부터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전위렴 목사가 교장으로 군산 영명학교에 입학해 공부한 뒤 이 학교교사로 있으면서3.1만세운동 을 주도하다가 대구형무소에서 2년6개월간 보냈습니다.그뒤 박목사는 평 양신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하고 목포양동 교회에서 목회를 했으며 4 번이나 전남노회장을 지내고 총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박목사는 1937년 장 로교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어쩔수 없이 동조했으나 나중에 잘못 을 깨닫고 일왕(日王)을 신격화한 신사참배에 반대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는 강단에서 일왕의 절대적 위치를 그리스도로 대체하는 발언을 계속하 다 1942년 11월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1944년 2월15 일 감옥에서 동사했습니다. 진리를 사수하다 순교당한 것입니다. 이 땅에 복음을 위해 순교의 피를 뿌리신 분이 어찌 이 한 분 뿐이겠습니까 박목사가 소천한 뒤 유일한 혈육이었던 박지영집사는 유품들을 정리, 숨어 지내며 굶기를 밥먹듯이 했습니다. 교인들이 도와줘 몸을 피할 곳은 있었습니다. 그의 후손들은 박목사가 순교당한 뒤 수많은 핍박을 당했습니다. 일경들의 감시를 피해 도망다녀야 했고 먹고 자는 것을 제대로 해 결하기 어려웠습니다.그러나 박목사님의 신앙과 독립정신이 바로 이 나라 민족을 부요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순교의 피가 4천 2백만 남한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1,200만의 기독교 신자를 보유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수천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실로 이 나라 민족은 많은 고난을 받아 "(고후6:9)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 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6:10).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 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아니 할 수 없는 영적 부강한 나라 민족임을 확신합니다. 50년 전, 미국에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있었습니다. 폴 비트겐슈타인입니다.
그런데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오른팔을 잃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팔 하나를 잃었으니 절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비트 겐슈타인의 집에 악보 하나가 우송되어 왔습니다. 팔 잃은 피아니스트에 게 장난을 친 것일까 그의 마음을 더 괴롭히려는 것이었을까 이 곡은 당시 미국 최고의 작곡가였던 레이블이 비트겐슈타인을 위하여 특별히 작곡한 것으로서, 곡명은 "왼손을 위한 콘체르토 D"입니다. 이 곡은 두 손을 가지고도 다루기 어려운 곡이었으나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고통과 싸우며 연습하였고 놀라운 연주를 하여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 러자 많은 작곡가들이 그를 위하여 곡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곡을 써서 예수님에게 주셨습니다. 그 연주는 몹시 고통스러 운 것이었으며, 손에 못이 박히고, 피를 흘리며 죽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 그 피, 그 인내와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부요해지는 개선곡이었던 것입니다.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 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 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 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 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 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 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멸시받아 싫어 버린 바 되시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셨으며, 채찍에 맞고, 머리에는 가시면 류관으로, 허리에는 창으로 찔리셨으며, 급기야는 십자가에 죽으셨던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광과 기쁨과 축복, 그리고 모든 것을 가진 부요함을 베풀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처럼 사시므로 모든 인류를 부요케 하는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은 재미있는 결혼 풍습이 있습니다. 결혼식 때 신부가 접시 한 개를 밟아 깨뜨리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의 경험을 통하여 더 큰 기쁨을 맛보는 예식이라고 합니다. 기쁨을 고통으로 표현하는 의식 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그 시점에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 작된다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고통이 다가올 때 자신이 깨져 버려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는 슬기를 지녀야 합니다. 그것을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새 출발의 희망을 안고 낡은 접시를 깨는 신부처럼 파괴와 혼돈 속에서도 희망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히 부요한 예수님의 아름다운 신부가 되시 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나라 민족을 더욱 더 부강하게 만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부 요한 자가 되시며, 모든 사람을 부요케 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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