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르던 곳을 떠난 사람들 (히11:8-11)
본문
비닐 하우스에서 자라나던 어린 묘목들은 얼마 만큼 자라면 비닐 하우스 밖의 낮설은 땅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어린 묘목들은 이 낮설고 새로운 토양에서 뿌리를 내려 정착하느라고 무진 고생과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그 묘목들은 굳세고 강하게 자라나게 되고, 그 땅에서 자란 어떤 것보다 더 훌륭하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중에는 이북에서 월남하여 사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함경도, 황해도, 평안도, 등에서 살던 그분들은 이남에 내려와서 무척이나 많은 고생을 하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이남의 어떤 고장 사람보다도 생활력이 강하고 성공한 사람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대도시에는 지방에서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 역시 그 대도시의 어떤 토박이들 보다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머물고 있던 곳을 떠나서 새롭게 살게 되면 더욱 성장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꼭 고향을 떠나야만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고향을 떠나지 않고서도 발전적인 삶을 살아간 사람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자기가 머무르던 곳이나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더 발전적인 생활을 지향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이 살던 곳, 그 장소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안이하게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주저 앉아버려서는 안된다는 것 입니다.
사람들은 평안한 곳을 좋아 합니다.
모험하기를 두려워 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생활과 질서, 그 안정에서 떠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머무르던 곳에서 떠나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모험을 해야 하고, 어떤 위험이 따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 처음 비행기-3일씩 얼마나 무서운지-잠이 안오더니-다음에는
이렇게 그 머무르던 곳을 떠나지 않으면, 언제나 그곳에 있을수 밖에 없고,다람쥐 채바퀴 돌듯하는 그 생활에서 꿈도, 젊음도, 희미하게 잊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이 편안한 곳에 안주하는 곳에서 자리를 박차고 떠난 사람들입니다.
야곱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으며 다니엘도, 본문에 나오는 믿음에 조상 아브라함도, 모두 자기가 머무르고 있던 편안한 곳에서 떠나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믿음으로 험한 가시밭 길을 헤치고 성공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A.링컨도, 통나무집에서 자라난 어미 없는 자식이, 한꺼번에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노동자도 되었다가, 공무원도 되었다가, 변호사도 되었다가, 상원의원도 되었다가 대통령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생스럽고 어려운 고빗길에서, 그때마다 편안한곳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전진하는 삶을 살았기에, 보람있고 성공하는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위대한 성자 리빙스턴도, 슈바이쳐도, 그들이 편안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그 험한 아프리카로, 그 위험속으로 뛰어들었을때, 아브람함처럼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을때, 위대한 성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 이라고 하는 것은 개척되어진 환경에서 물려 받은 유산이나 가지고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 개척지로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개척자를 말하는 것이요, 후방의 안주지에서 무사평안만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최일선의 개척지로 나아가는 사람인것입니다.
본문 히브리서 11장은 흔히 믿음 장이라고 부릅니다.
이 믿음을 전해주는 히브리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어떻게 말해주고 있습니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안정의 상태 정착의 상태가 아니라 전진의 상태, 진군하며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두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안으로 향하는 방향이고, 또다른 하나는 밖으로 향하는 방향 입니다.
안으로 향하는 믿음이란, 이 어지럽고 험한 세상에서 고요한 주님의 품안으로 들어와서 평안을 누리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여성적인 측면으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마11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
리라
또 성 어거스틴의 고백 주여 내가 당신 품에 거하기까지는 내마음에 평안이 없고 쉼이 없나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를 주님을 위해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라는 말씀은 모두 믿음의 여성적인 측면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에는 밖으로의 방향, 즉 주님안에서 평안만 찾고 여기가 좋다고 주저 앉는 것이 아니라, 주와 함께 험한 바깥 세상으로 전진하여 나가는 보다 강한 남성적인 믿음의 측면이 있습니다.
평안이 아니라 평안을 깨뜨리고 나가는 신앙, 안일하게 거주하고 있는 안주가 아니라, 안주를 깨뜨리고 나가는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생명의 말씀이 샘솟는 예수님곁에 언제나 머룰러서 평안한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인정사정없이 엄하게 둘씩 짝을 지어 예수님이 없는 곳으로 내어보내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훈련을 시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계실때 세가지 명령 동사를 사용 하셨습니다.
첫째는 믿으라
둘째는 받아라 세째는 나가라는 명령입니다.
그러기에 선택받은 백성의 삶은 미래지향적인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진하고 희망에찬 삶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르심을 받은자들은 자기가 머물러 있었던 안이하고 게으른 삶에서 탈피하고 발전적인 생활을 향해서 떠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진다고 하는 것을 어떤 사상속에 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속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십자가에 대해서 가르치신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행동을 가르치고, 사랑의 개념만 가르치신것이 아니라, 사랑의 행동을 가르치셨습니다.
신앙인의 생활은 그자리에 머무르는것이 아니라 그곳을 떠나서 개척하며 전진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지금까지 너무 여성적인 내용으로 평안만을 원하고 그것만이 축복이라고 하는 상태에서 잘못이 대한 적은 없습니까
신앙은 안정이 아니라 불안한 상태로 나가는것, 몽롱한 상태로 부터 각성의 세계로 나가는것, 문제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문제의식이 있는 상태로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이 약했을때 베드로는 문을 걸어 잠그고 방안에 있었지만, 신앙이 강했을때 베드로는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서 주의 복음을 힘있게 전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의 안주하는 행복만을 원하지 말고 내일에 이룩해야 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전진해야 될 줄로 분명히 믿습니다.
예화)
한국 어린이들의 동화는 항상 정착된 삶에서 끝이 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길동이는 아버지의 원수를 다 값고 부자 방망이를 얻어다가 고향에 돌아와서 기와집 짓고 부모님 뫼시고 순이와 결혼을 하여 아들 딸 낳고 천년만년 잘 살았단다. 그렇게 끝이 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어린이들의 동화는 떠나는 것으로 끝이 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프레더는 그 마을에 악당들을 다 처치하고 그 마을에 평화가 왔을 때 그 마을에서 제일가는 착하고 예쁜 미녀가 옷소매를 잡고 부디 우리 마을에 남아서 보안관이 되시고 나와 결혼하여 살아가지고 간곡히 부탁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프레더는 말을 타고 저 넓은 들판길 해지는 석양을 향하여 뚜벅뚜벅 떠나 갔단다. 이렇게 하고야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민족은 예로부터 많은 숱한 굶주림 가난과 고난과 역경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어린이들의 이야기나 동화속에서도 평안한것, 잘먹고 잘사는 것이 소원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은 그런 소극적인 것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안이하고 게으른 생각을 깨뜨리고 썩어져가는 구습과 얽메이기 쉬운 죄에서 벗어나서 전진하고 발전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것 입니다.
4000년전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던 하나님께서 오늘 지금 이 시간 우리들에게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너희 본토친적 아비집을 떠나라, 너희가 편안하게 쉴곳만 찾는 안이함과 게으름에서 떠나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네가 머루르는 곳 잘못된 그곳을 떠나라,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는 불신에서 떠나고 어리석인 게에다 소망을 두는 어리석음에서 떠나라.
소극적인 생각에서 떠나고 보다 적극적인 생활속에 살아가라 고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
때로 어려움도 있을 것 입니다.
생각지 않던 괴로움도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떫었던 감일수록 가을에 더 단맛을 내는 법입니다.
비바람 찬서리에 자라난 나무가 더 단단한 법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꽃을 아름답게 피게하기 위해서는 그처럼 천둥도 치는날이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3:13이하에 그는 나이 많아 이제 순교할 날이 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젊은이 같이 소망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이미 다 잡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과거에 이룬것을 다 잊어버리고 앞엣 것을 잡으려고 푯대목표를 향햐여 지금도 쫓아간다 고 그의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우리들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걸었던 불굴의 신앙의 행진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신앙의 행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받았던 축복을 모두다 차지하시는 우리 온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주님꼐서 인도하시는 축복의길을, 은혜의길을, 주님을 더욱더 믿는 믿음과 용기와 소망을 가지고 계속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다 불태우고 가야 할 하나의 불덩어리 입니다.
우리의 남은 삶이 그리고 힘이 마지막 한덩어리 불이되고, 한방울의 땀이 되어 우리 주님께서 바쳐지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고난을 견디며 저높은 곳을 향해서 나아가는 우리들의 신앙의 행진은 끝내 하나님의 나라에 도착될 것이며, 우리들의 신앙의 삶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으로 꼭 찾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신앙의 행진에 끝내 성공하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아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린 묘목들은 이 낮설고 새로운 토양에서 뿌리를 내려 정착하느라고 무진 고생과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그 묘목들은 굳세고 강하게 자라나게 되고, 그 땅에서 자란 어떤 것보다 더 훌륭하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중에는 이북에서 월남하여 사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함경도, 황해도, 평안도, 등에서 살던 그분들은 이남에 내려와서 무척이나 많은 고생을 하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이남의 어떤 고장 사람보다도 생활력이 강하고 성공한 사람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대도시에는 지방에서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 역시 그 대도시의 어떤 토박이들 보다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머물고 있던 곳을 떠나서 새롭게 살게 되면 더욱 성장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꼭 고향을 떠나야만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고향을 떠나지 않고서도 발전적인 삶을 살아간 사람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자기가 머무르던 곳이나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더 발전적인 생활을 지향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이 살던 곳, 그 장소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안이하게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주저 앉아버려서는 안된다는 것 입니다.
사람들은 평안한 곳을 좋아 합니다.
모험하기를 두려워 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생활과 질서, 그 안정에서 떠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머무르던 곳에서 떠나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모험을 해야 하고, 어떤 위험이 따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 처음 비행기-3일씩 얼마나 무서운지-잠이 안오더니-다음에는
이렇게 그 머무르던 곳을 떠나지 않으면, 언제나 그곳에 있을수 밖에 없고,다람쥐 채바퀴 돌듯하는 그 생활에서 꿈도, 젊음도, 희미하게 잊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이 편안한 곳에 안주하는 곳에서 자리를 박차고 떠난 사람들입니다.
야곱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으며 다니엘도, 본문에 나오는 믿음에 조상 아브라함도, 모두 자기가 머무르고 있던 편안한 곳에서 떠나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믿음으로 험한 가시밭 길을 헤치고 성공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A.링컨도, 통나무집에서 자라난 어미 없는 자식이, 한꺼번에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노동자도 되었다가, 공무원도 되었다가, 변호사도 되었다가, 상원의원도 되었다가 대통령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생스럽고 어려운 고빗길에서, 그때마다 편안한곳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전진하는 삶을 살았기에, 보람있고 성공하는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위대한 성자 리빙스턴도, 슈바이쳐도, 그들이 편안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그 험한 아프리카로, 그 위험속으로 뛰어들었을때, 아브람함처럼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을때, 위대한 성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 이라고 하는 것은 개척되어진 환경에서 물려 받은 유산이나 가지고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 개척지로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개척자를 말하는 것이요, 후방의 안주지에서 무사평안만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최일선의 개척지로 나아가는 사람인것입니다.
본문 히브리서 11장은 흔히 믿음 장이라고 부릅니다.
이 믿음을 전해주는 히브리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어떻게 말해주고 있습니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안정의 상태 정착의 상태가 아니라 전진의 상태, 진군하며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두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안으로 향하는 방향이고, 또다른 하나는 밖으로 향하는 방향 입니다.
안으로 향하는 믿음이란, 이 어지럽고 험한 세상에서 고요한 주님의 품안으로 들어와서 평안을 누리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여성적인 측면으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마11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
리라
또 성 어거스틴의 고백 주여 내가 당신 품에 거하기까지는 내마음에 평안이 없고 쉼이 없나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를 주님을 위해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라는 말씀은 모두 믿음의 여성적인 측면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에는 밖으로의 방향, 즉 주님안에서 평안만 찾고 여기가 좋다고 주저 앉는 것이 아니라, 주와 함께 험한 바깥 세상으로 전진하여 나가는 보다 강한 남성적인 믿음의 측면이 있습니다.
평안이 아니라 평안을 깨뜨리고 나가는 신앙, 안일하게 거주하고 있는 안주가 아니라, 안주를 깨뜨리고 나가는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생명의 말씀이 샘솟는 예수님곁에 언제나 머룰러서 평안한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인정사정없이 엄하게 둘씩 짝을 지어 예수님이 없는 곳으로 내어보내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훈련을 시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계실때 세가지 명령 동사를 사용 하셨습니다.
첫째는 믿으라
둘째는 받아라 세째는 나가라는 명령입니다.
그러기에 선택받은 백성의 삶은 미래지향적인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진하고 희망에찬 삶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르심을 받은자들은 자기가 머물러 있었던 안이하고 게으른 삶에서 탈피하고 발전적인 생활을 향해서 떠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진다고 하는 것을 어떤 사상속에 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속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십자가에 대해서 가르치신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행동을 가르치고, 사랑의 개념만 가르치신것이 아니라, 사랑의 행동을 가르치셨습니다.
신앙인의 생활은 그자리에 머무르는것이 아니라 그곳을 떠나서 개척하며 전진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지금까지 너무 여성적인 내용으로 평안만을 원하고 그것만이 축복이라고 하는 상태에서 잘못이 대한 적은 없습니까
신앙은 안정이 아니라 불안한 상태로 나가는것, 몽롱한 상태로 부터 각성의 세계로 나가는것, 문제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문제의식이 있는 상태로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이 약했을때 베드로는 문을 걸어 잠그고 방안에 있었지만, 신앙이 강했을때 베드로는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서 주의 복음을 힘있게 전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의 안주하는 행복만을 원하지 말고 내일에 이룩해야 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전진해야 될 줄로 분명히 믿습니다.
예화)
한국 어린이들의 동화는 항상 정착된 삶에서 끝이 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길동이는 아버지의 원수를 다 값고 부자 방망이를 얻어다가 고향에 돌아와서 기와집 짓고 부모님 뫼시고 순이와 결혼을 하여 아들 딸 낳고 천년만년 잘 살았단다. 그렇게 끝이 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어린이들의 동화는 떠나는 것으로 끝이 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프레더는 그 마을에 악당들을 다 처치하고 그 마을에 평화가 왔을 때 그 마을에서 제일가는 착하고 예쁜 미녀가 옷소매를 잡고 부디 우리 마을에 남아서 보안관이 되시고 나와 결혼하여 살아가지고 간곡히 부탁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프레더는 말을 타고 저 넓은 들판길 해지는 석양을 향하여 뚜벅뚜벅 떠나 갔단다. 이렇게 하고야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민족은 예로부터 많은 숱한 굶주림 가난과 고난과 역경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어린이들의 이야기나 동화속에서도 평안한것, 잘먹고 잘사는 것이 소원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은 그런 소극적인 것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안이하고 게으른 생각을 깨뜨리고 썩어져가는 구습과 얽메이기 쉬운 죄에서 벗어나서 전진하고 발전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것 입니다.
4000년전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던 하나님께서 오늘 지금 이 시간 우리들에게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너희 본토친적 아비집을 떠나라, 너희가 편안하게 쉴곳만 찾는 안이함과 게으름에서 떠나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네가 머루르는 곳 잘못된 그곳을 떠나라,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는 불신에서 떠나고 어리석인 게에다 소망을 두는 어리석음에서 떠나라.
소극적인 생각에서 떠나고 보다 적극적인 생활속에 살아가라 고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
때로 어려움도 있을 것 입니다.
생각지 않던 괴로움도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떫었던 감일수록 가을에 더 단맛을 내는 법입니다.
비바람 찬서리에 자라난 나무가 더 단단한 법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꽃을 아름답게 피게하기 위해서는 그처럼 천둥도 치는날이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3:13이하에 그는 나이 많아 이제 순교할 날이 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젊은이 같이 소망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이미 다 잡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과거에 이룬것을 다 잊어버리고 앞엣 것을 잡으려고 푯대목표를 향햐여 지금도 쫓아간다 고 그의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우리들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걸었던 불굴의 신앙의 행진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신앙의 행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받았던 축복을 모두다 차지하시는 우리 온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주님꼐서 인도하시는 축복의길을, 은혜의길을, 주님을 더욱더 믿는 믿음과 용기와 소망을 가지고 계속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다 불태우고 가야 할 하나의 불덩어리 입니다.
우리의 남은 삶이 그리고 힘이 마지막 한덩어리 불이되고, 한방울의 땀이 되어 우리 주님께서 바쳐지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고난을 견디며 저높은 곳을 향해서 나아가는 우리들의 신앙의 행진은 끝내 하나님의 나라에 도착될 것이며, 우리들의 신앙의 삶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으로 꼭 찾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신앙의 행진에 끝내 성공하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아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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