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림 때문에 생긴 죄 (창34:1)
본문
야곱은 가나안에 들어가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왔고 형 에서와의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고 숙곳에서 머뭇거렸습니다. 33장 말미에 보면 야곱이 세겜 성 앞에 장막을 치고 머물면서 세겜 성 사람들과 장사를 하고 살았습니다. 벧엘로 안돌아가고 거기서 은 백개로 땅을 사고 거기다 하나님의 제단을 세우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제단의 이름도 붙이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그렇게 한 것이 신앙이 있어 보이지만 그것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자기를 속이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지금 세겜 성 사람들과 장사를 하고 거기 안주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산 것이 아닙니다. 외면적으로야 하나님의 제단을 쌓았으니까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자기 욕심을 따라 살고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야곱은 숙곳에서 8년에서 10년 정도 머물렀을 것입니다. 왜 야곱이 바로 헤브론에 들어가지 않고 숙곳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지체하였는지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지체한 것이 야곱에게 큰 화근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영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곳은 세상이 아니라 주님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주 만을 푯대로 삼고 자기의 달려갈 길을 힘써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뒤를 돌아다 보고 자꾸 머뭇거릴 때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엄습할 것입니다. 롯의 아내도 소돔을 탈출할 때 머뭇거리며 뒤를 돌아다 보다 그만 소금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야곱이 숙곳에 여러 해 머물렀는데 딸 디나가 아마도 열 대여섯 살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디나가 세겜 성 성주의 아들에게 큰 봉변을 당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숙곳에 머무르는 동안 그들은 세겜 성 사람들과 친근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어느날 디나는 세겜의 소녀들과 사귀기 위해서 혼자 세겜에 갔습니다.
그런데 세겜 성주 하몰의 아들인 젊은 세겜이 음욕을 품고 디나를 강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젊은 세겜은 디나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야곱의 동의를 얻어 합법적인 아내로 맞이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젊은 세겜은 자기 아버지 하몰과 함께 디나와의 결혼을 승낙 받으러 야곱에게 왔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디나의 실수입니다. 디나는 헛된 호기심을 가지고 세겜 성에 들어간 것입니다. 디나는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지만 그 땅의 남자들을 보려는 생각도 함께 가지고 갔을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이방인과 혼합되는 위험에 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가정을 돌아보셨습니다. 야곱을 이방과 분리시키기 위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부터 분리시키시고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장막으로 가도록 하셨는데 이제 야곱의(숙곳에서의) 머뭇거림으로 이와 같은 중대한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야곱에게 이 엄청난 소식이 전해졌을 때 야곱은 아무 말도 없이 잠잠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 아들들이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혼자 있었고
그러므로 아무도 야곱을 위하여 힘이 되며 위로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야곱은 홀로 큰 슬픔에 잠겨 있었던 것입니다. 디나가 더렵혀졌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의 아들들은 몹시 분개했는데 그것은 정조관념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 가문의 명예가 더럽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로 인한 수치스러움에는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죄 그 자체에 대해서는 결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자기 가문의 명예를 생각하고 디나의 수치에 대하여 복수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하몰은 야곱과 직접 이 일을 타결하기 위해 왔지만 야곱은 그를 직접 상대하지 않고 아들들과 해결하도록 아들들에게 보냈습니다. 여기에서 하몰은 혼담을 위해 아주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몰과 세겜은 혼인을 하여 서로 통상할 수 있게 하자고 정중하게 제의하였습니다. 하몰의 아들 세겜은 디나를 몹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디나와 결혼하기를 원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하몰과 세겜의 요청에 대하여 속여서 대답하기를 자기들은 디나를 위한 어떠한 예물도 원치 않으나 한가지 세겜 성의 모든 사람들이 할례를 받아서 자기들과 같이 하나님의 언약을 섬긴다면 허락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러한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상징인 할례예식을 통하여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 사람들에게 복수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야곱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표상을 이용하여 인간적인 사람한 복수를 계획하였던 것입니다. 하몰과 세겜은 사랑에 눈이 어두워져서 야곱의 아들들의 악한 계획에 대하여 아무 생각없이 동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겜 사람들을 설득하여 모두 그 제안에 따르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아들들이 부지런하여 번영을 누리고 있었고 도 자기들과 동맹을 맺으면 자신들 뿐 아니라 세겜 성에도 유익이 될 것이라고 설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야곱 집안과 세겜 사람들이 동맹을 맺으면 서로 장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기술을 나눠가짐으로 서로에게 유익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 때문에 결혼을 한다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또한 이런 이유 때문에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더 큰 잘못입니다. 세상에는 종교적인 원칙보다 세속적인 이해 관계에 더 매여서 신앙를 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즉 참된 신앙의 문제인 개인의 구원이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에 대한 생각으로 교회에 가입하는 것 보다는 질병이나 사업상의 이유로 혹은 친구를 사귀는 사교상의 목적으로나 아니면 가족의 권고에 의해서 신앙생활을 하게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여기 하몰의 아들 세겜의 경우에는 정욕에 눈이 어두워져서 디나를 소유하고자 하는 열심 때문에 자기 뿐 아니라 자기 백성들 까지도 설득하여 알지도 못하는 종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된 신앙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겜 사람들은 모든 남자들이 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할례를 행한지 3일째 되던 날 누구보다 화가 나있던 시므온과 레위(그들은 디나와 같은 어머니의 자식들)가 사람들을 모아(아마도 야곱의 모든 아들들이 함께 하였을 것이다) 세겜 사람들을 불시에 공격하여 그 남자들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세겜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닥치는 대로 사로잡고 노략질 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야곱이 49장에서 그의 아들들을 축복할 때 시므온과 레위에 대하여 말하기를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살인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증표인 할례를 이용하여 복수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표식을 받은 자들을 죽였으므로 그들은 살인자가 되고 있습니다. 정당한 복수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을 텐데 하나님의 언약을 빙자해서 살인의 복수를 하였으니 그것은 하나님 앞에 중한 범죄였습니다. 야곱은 자식들의 이러한 행위를 듣고 매우 불안해졌습니다. 야곱은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했습니다. 야곱은 자식들의 불의한 복수에 대하여 모든 가나안 사람들이 대적하여 치러올 것에 대하여 걱정했습니다. 야곱은 자기 자식들의 하나님께 대한 죄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기 자신의 위험 만을 염려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에게로 돌아가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큰 시험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아들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아들들이 행한 죄악을 통하여 야곱이 그곳을 떠나도록 하셨습니다. 야곱은 큰 두려움으로 그곳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야곱은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삼가 조심하여 속히 하나님의 언약이 머무르는, 아버지 이삭의 장막에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숙곳에서 머뭇거렸고 그러는 중에 큰 시련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어지됐든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이방 사람들과 혼합되는 위험, 언약이 파괴되는 위험으로 부터 보호하시고 이방과 분리시켰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언약백성의 거룩(분리)를 보존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하나님 자신의 거룩성(죄로부터 격리되며 죄를 미워하시는)을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큰 두려움을 가지고 아들들을 나무랄 때 그들은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이 행한 일을 정당화시키며 항변합니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가하니이까” 그러나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아무리 불신자들이 큰 해를 우리에게 입혔다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가 복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죄에 대한 보응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인간을 심판하는 권세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권세를 위임맡은 세속정부에서 최소한의 공의를 세워 심판하도록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우리의 힘으로 복수하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해 받았을 때 우리가 해야하는 태도는 정당한 절차를 따라 심판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살펴야 하는 것은 야곱의 머뭇거리는 태도 때문에 발생한 범죄입니다. 야곱은 속히 언약의 범주 안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세상에 눈을 돌리고 있는한 우리는 언제나 이런 위험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위험으로 부터 항상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영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곳은 세상이 아니라 주님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주 만을 푯대로 삼고 자기의 달려갈 길을 힘써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뒤를 돌아다 보고 자꾸 머뭇거릴 때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엄습할 것입니다. 롯의 아내도 소돔을 탈출할 때 머뭇거리며 뒤를 돌아다 보다 그만 소금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야곱이 숙곳에 여러 해 머물렀는데 딸 디나가 아마도 열 대여섯 살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디나가 세겜 성 성주의 아들에게 큰 봉변을 당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숙곳에 머무르는 동안 그들은 세겜 성 사람들과 친근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어느날 디나는 세겜의 소녀들과 사귀기 위해서 혼자 세겜에 갔습니다.
그런데 세겜 성주 하몰의 아들인 젊은 세겜이 음욕을 품고 디나를 강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젊은 세겜은 디나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야곱의 동의를 얻어 합법적인 아내로 맞이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젊은 세겜은 자기 아버지 하몰과 함께 디나와의 결혼을 승낙 받으러 야곱에게 왔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디나의 실수입니다. 디나는 헛된 호기심을 가지고 세겜 성에 들어간 것입니다. 디나는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지만 그 땅의 남자들을 보려는 생각도 함께 가지고 갔을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이방인과 혼합되는 위험에 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가정을 돌아보셨습니다. 야곱을 이방과 분리시키기 위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부터 분리시키시고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장막으로 가도록 하셨는데 이제 야곱의(숙곳에서의) 머뭇거림으로 이와 같은 중대한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야곱에게 이 엄청난 소식이 전해졌을 때 야곱은 아무 말도 없이 잠잠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 아들들이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혼자 있었고
그러므로 아무도 야곱을 위하여 힘이 되며 위로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야곱은 홀로 큰 슬픔에 잠겨 있었던 것입니다. 디나가 더렵혀졌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의 아들들은 몹시 분개했는데 그것은 정조관념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 가문의 명예가 더럽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로 인한 수치스러움에는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죄 그 자체에 대해서는 결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자기 가문의 명예를 생각하고 디나의 수치에 대하여 복수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하몰은 야곱과 직접 이 일을 타결하기 위해 왔지만 야곱은 그를 직접 상대하지 않고 아들들과 해결하도록 아들들에게 보냈습니다. 여기에서 하몰은 혼담을 위해 아주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몰과 세겜은 혼인을 하여 서로 통상할 수 있게 하자고 정중하게 제의하였습니다. 하몰의 아들 세겜은 디나를 몹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디나와 결혼하기를 원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하몰과 세겜의 요청에 대하여 속여서 대답하기를 자기들은 디나를 위한 어떠한 예물도 원치 않으나 한가지 세겜 성의 모든 사람들이 할례를 받아서 자기들과 같이 하나님의 언약을 섬긴다면 허락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러한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상징인 할례예식을 통하여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 사람들에게 복수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야곱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표상을 이용하여 인간적인 사람한 복수를 계획하였던 것입니다. 하몰과 세겜은 사랑에 눈이 어두워져서 야곱의 아들들의 악한 계획에 대하여 아무 생각없이 동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겜 사람들을 설득하여 모두 그 제안에 따르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아들들이 부지런하여 번영을 누리고 있었고 도 자기들과 동맹을 맺으면 자신들 뿐 아니라 세겜 성에도 유익이 될 것이라고 설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야곱 집안과 세겜 사람들이 동맹을 맺으면 서로 장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기술을 나눠가짐으로 서로에게 유익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 때문에 결혼을 한다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또한 이런 이유 때문에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더 큰 잘못입니다. 세상에는 종교적인 원칙보다 세속적인 이해 관계에 더 매여서 신앙를 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즉 참된 신앙의 문제인 개인의 구원이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에 대한 생각으로 교회에 가입하는 것 보다는 질병이나 사업상의 이유로 혹은 친구를 사귀는 사교상의 목적으로나 아니면 가족의 권고에 의해서 신앙생활을 하게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여기 하몰의 아들 세겜의 경우에는 정욕에 눈이 어두워져서 디나를 소유하고자 하는 열심 때문에 자기 뿐 아니라 자기 백성들 까지도 설득하여 알지도 못하는 종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된 신앙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겜 사람들은 모든 남자들이 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할례를 행한지 3일째 되던 날 누구보다 화가 나있던 시므온과 레위(그들은 디나와 같은 어머니의 자식들)가 사람들을 모아(아마도 야곱의 모든 아들들이 함께 하였을 것이다) 세겜 사람들을 불시에 공격하여 그 남자들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세겜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닥치는 대로 사로잡고 노략질 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야곱이 49장에서 그의 아들들을 축복할 때 시므온과 레위에 대하여 말하기를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살인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증표인 할례를 이용하여 복수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표식을 받은 자들을 죽였으므로 그들은 살인자가 되고 있습니다. 정당한 복수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을 텐데 하나님의 언약을 빙자해서 살인의 복수를 하였으니 그것은 하나님 앞에 중한 범죄였습니다. 야곱은 자식들의 이러한 행위를 듣고 매우 불안해졌습니다. 야곱은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했습니다. 야곱은 자식들의 불의한 복수에 대하여 모든 가나안 사람들이 대적하여 치러올 것에 대하여 걱정했습니다. 야곱은 자기 자식들의 하나님께 대한 죄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기 자신의 위험 만을 염려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에게로 돌아가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큰 시험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아들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아들들이 행한 죄악을 통하여 야곱이 그곳을 떠나도록 하셨습니다. 야곱은 큰 두려움으로 그곳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야곱은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삼가 조심하여 속히 하나님의 언약이 머무르는, 아버지 이삭의 장막에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숙곳에서 머뭇거렸고 그러는 중에 큰 시련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어지됐든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이방 사람들과 혼합되는 위험, 언약이 파괴되는 위험으로 부터 보호하시고 이방과 분리시켰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언약백성의 거룩(분리)를 보존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하나님 자신의 거룩성(죄로부터 격리되며 죄를 미워하시는)을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큰 두려움을 가지고 아들들을 나무랄 때 그들은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이 행한 일을 정당화시키며 항변합니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가하니이까” 그러나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아무리 불신자들이 큰 해를 우리에게 입혔다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가 복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죄에 대한 보응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인간을 심판하는 권세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권세를 위임맡은 세속정부에서 최소한의 공의를 세워 심판하도록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우리의 힘으로 복수하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해 받았을 때 우리가 해야하는 태도는 정당한 절차를 따라 심판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살펴야 하는 것은 야곱의 머뭇거리는 태도 때문에 발생한 범죄입니다. 야곱은 속히 언약의 범주 안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세상에 눈을 돌리고 있는한 우리는 언제나 이런 위험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위험으로 부터 항상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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