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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절의 의미 (출23:16)

본문

맥추절은 보통 7월첫째 주일에 드린다. 더러는둘째 주일에 드리기도 한다. 사정에 따라 올 해는 우리 교회도 오늘 맥추 감사절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맥추 감사절은 보리와 밀을 수확하고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감사의 예배를 드린 절기로 유대인의 3대 명절 중의 하나이다. 유대인의 3대 명절은 유월절(무교절), 맥추절(칠칠절), 수장절(초막절)이다(신16:16) 이들 3대 명절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맥추절은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초실절, 칠칠절, 오순절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초실절, 칠칠절, 오순절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명절을 주시어 남자 어른은 1년에 3차례 반드시 하나님의 성전에 찾아 나아오게 하셨다. 또 빈손으로 나아오지 못하게 하셨다. 감사의 예물을 준비케 하셨다. 이처럼 명절을 지키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고, 또 그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또 그 하나님의 은혜로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자신임을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찬양하게 하신 것이다. 맥추 감사절은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이다. 농촌에서도 보리와 밀 재배가 사라져 가고 있다. 특별한 몇몇 지역에서만 재배되고 있는 실정이다. 옛 것을 찾고,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찾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우리 밀” 재배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나 호응도가 낮다. 농촌의 사정이 이러한데 도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몇몇 도시 교회들은, 맥추 감사절은 그 의미가 없다면서 지키지 않는다. 점점 사라져 가는 맥추절이 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절기인데 사라져 가야 하리만큼 그 의미가 없는 절기인가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이름으로 살펴본 맥추절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져 한다.
1.초실절 출애굽기 34:22절에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 고”라 했다. 출애굽기 23:1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고 했다. 초실절은 맥추절의 다른 이름으로 봄에 밭에 곡식을 심고 수고하여 가꾸어서 거둔 첫 열매를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로 드리는 절기이다. 다시 말해서 농사하여 첫 열매는 하나님께 드리고 그 다음의 열매를 먹게 하셨다. 첫 열매, 곧 “처음 익은” 곡식이나 과일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일까 왜 하나님께서는 “첫 열매”는 바치라 하셨을까 “첫 열매”가 지니는 의미가 바로 초실절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첫 열매는 처음 달린 열매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순수해야 하고, 완숙해야 하고, 극상품이어야 한다. 그래서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고 했다(출23:19)
⑴.순수해야 예레미야 2:21절에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라고 했다. 요한복음 12:3절에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고 했다. 순수하다는 말은 다른 이물질이 섞이지 않은 것을 말한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순전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곧 순수한 “첫 열매”는 그 과일의 특성을 그대로 지닌 본래의 모습을 말한다. 그래서 “순전한 참 종자의 포도나무”라고 했다. 이런 순전한 것이 가치가 있고 귀한 것이다. 그래서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이라고 했다. 여기에 이물질이 섞이면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없는, 오히려 탄식하시는 과일이 되고 만다. 고린도전서 5:8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라고 했다. 명절을 지키는 자, 곧 절기를 지키는 자는 자신의 “순전함”을 예물로 드리라는 뜻이다. “순전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 “순전함”으로 감사의 예물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그 “순전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라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2절에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우리 성도가 드려야 할 예물 “순전함”은 “순전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곧 “순전한 참 종자의 포도나무”에서 “순전한 포도”를 딸 수 있다는 말이다. “순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고 자라야 한다. 그러기에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했다. “순전한 참 종자의 포도나무”를 심었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된다. 그 가지에는 “이방의 악한 포도”가 열매 맺칠뿐이다. “순전한 포도를 거둘 수 없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에게는 이 맥추절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순전한 열매”가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자.
⑵.완숙해야 신명기 18:13절에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고 했다. 마태복음 5:48절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했다. 완숙하다는 말은 “다 익은 것”을 말한다. 곧 설익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 익어야만 제대로의 맛을 낼 수 있다. 감을 놓고 이야기를 하면 홍시(연시)가 되어야 완숙한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떫어서 먹지를 못한다. 또 완숙하다는 말은 “완전하다”는 것이다. 곧 일그러짐이나 찌그러짐이 없다는 말이다. 터지거나 깨어짐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말하면 잘 생긴 “미남”, 미스 코리아 같은 “미녀”를 말한다. 또 완숙하다는 것은 “온전하다”는 것이다. 감을 놓고 보면 전체가 아닌 부분적으로 익은 것이 있음을 보게 된다. 이것 역시 완숙한 열매가 되지 못한다. 온전히, 전체가 다 익어야 한다. 바로 온전한 상태이다. 시편 119:103절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했다. 완숙한 열매가 지니는 특성이 바로 맛이다. 완숙한 상태에서 최고의 맛을 낸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되고, 기쁨을 주게 되고, 또한 즐거움을 주게 된다. 신앙하는 우리의 삶 속에 이런 “완숙의 열매”가 있는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맛을 느끼게 해 드릴 수 있는 그런 “완숙의 열매”가 내 삶 속에서 맺혀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버려지게 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했다(마5:13). 레위기 22:21절에 “무릇 서원한 것을 갚으려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든지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열납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라고 했다. 말라기 3:10절에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했다. 오늘 맥추절을 맞이하는 우리 성도들은 “완전하고”, “온전하고”, “잘 익은” 곧 “완숙한 열매”로 감사의 예물을 드리라는 것이다. 이런 예물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무엘상15:22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했다.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완숙의 열매”는 순종으로 이루어진다.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을 보면 순종의 사람들이었다. 여호와의 말씀을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순종하며 쫓아간 사람들이다.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우는 아브라함이 그러했고(창26:5),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을 밟은 두 사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그러했고(민32:12), 하나님의 마음에 속 들었던 다윗 왕이 그러했고(왕상9:4), 종교개혁을 이룩한 요시야 왕이 그러했다(왕하23:25).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그를 푯대로 하여 힘써 달려가자(빌3:14). 그래서 온전을 이루고, 완전을 이루고, 성숙을 이루고, “완숙”을 이루자.
⑶.극상품이어야 이사야 5:2절에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고 했다. 첫 열매는 또한 “
첫째 가는 열매”이다. 곧 “극상품”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극상품을 원하신다. 그래서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은 “극상품”이 아닌 “들 포도”를 맺었다. 이를 지켜보신 여호와 하나님의 탄식이 여기에 있다. “들 포도나무”에서 “극상품 포도”를 딸 수는 없는 법이다. 아무리 좋아도 “들 포도”일 뿐이다. “극상품 포도나무”에서 “극상품 포도”를 따게 된다. 문제는 “극상품 포도나무”에는 무조건 “극상품 포도”가 맺히는 게 아니라는데 있다. “극상품 포도나무”에도 “들 포도”가 맺힌다는 사실이다. 과수 농사를 해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리라 여겨진다. 배 밭에서 농사를 잘 못 지으면, 배가 돌배가 된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돌배보다 못한 것도 나오게 된다. 돌배를 아무리 잘 가꾸어도 “극상품 배”를 딸 수 없지만 배 농사가 잘 못 되면 돌배가 달리게 된다. 마태복음 22:3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다.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는 것이 우선 과제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잘 가꾸는 것도 중요하다. “얼마만큼의 정성을 솟느냐”에 따라 품질이 결정된다. “최선”을 다할 때 “극상품”이 나온다. 우리 성도가 자신의 삶 속에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서 얻은 “첫 열매”, 곧 “
첫째 가는 열매”, “극상품 열매”를 드릴 때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오늘 맥추절을 맞으며 이런 “극상품 열매”로 드릴 감사의 예물이 준비되어 있는가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 초실절은 이렇게 순수하고, 완숙하고, 극상품인 “첫 열매”를 감사의 예물로 하나님께 그리는 절기이다. 가장 귀하고 값진 것이다. 소중한 것이다. 어쩌면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잠언 3:9-10절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했다. 성도들의 감사 예물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것이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라고 했다(고후9:7). 그리하면 창고가 차고 넘치도록 복을 더하신다는 약속이다.
2.칠칠절 출애굽기 34:22절에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고 했다. 신명기 16:9-10절에 “칠주를 계속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라 했다. 칠칠절은 맥추절의 또 따른 이름이다. 이는 칠일간 칠주를 계산해서 지키는 절기이다. 곧 7×7= 49일로, 첫 수확한 보리 한 단을 하나님께 요제로 드린 날부터 계산하여 49일이 지난 후 곧 50일이 되는 날에 지키는 절기이다. 그래서 오순절이라고도 한다. 칠칠절, 칠
(7)은 유대인들은 완전수로 생각하고 있다. 7×7, 곧 완전의 완전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래서 희년도 일곱 안식년이 지난 후 곧 제50년에 전국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는 것이다. 팔린 땅도 각자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간다. 마태복음 18:22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했다. 베드로가 형제의 죄를 “일곱 번까지 용서하오리까” 하는 질문에 주님이 주신 대답이다. 70×7=490이다. 완전히 용서하라는 말이다. 100% 용서하라는 말이다. 아무리 악하고 독해도 하루에 내게 490번 잘못하는 형제가 있을까 결국 완전히 용서하라는 말이다. 이처럼 칠칠절은 완전의 완전을 의미하는 것 같다. 곧 완전한 감사를 드리라는 말이다. 미완성의 감사가 아니라 완성의 감사를 드리라는 것이다. 그 완전의 감사를 어떻게 드리라 했는가
⑴.자원하는 마음으로 신명기 16:10절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라 했다.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예물의 기본 정신이다. 예물은 받은 은혜에 대한 대답이다. 감사할 수밖에 없고, 찬양할 수밖에 없다. 곧 인색함이나 억지가 되지 않고 즐겨 드리는(고후9:7) 자원하는 마음의 예물이다.
⑵.네게 복 주신대로 신명기 16:10절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라 했다. 우리의 예물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것이라 했다. 누구에게나 받은 은혜가 나름대로 있다. 내 생명도, 내 시간도, 내 재물도, 내 젊음도, 따지고 보면 내 것이라는 그 어느 하나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이 아닌 게 없다. 곧 내 것은 없다는 말이다. “내게 복 주신대로” 드리려면 실상은 내 가진 것 다 드려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욕심스러워 제 손에 있다고 제 것으로 알고 내어놓으려 않는다. 하나님께 감사하려 들지 않는다. 감사한다고 하나 실상은 억지가 될 때가 많고, 인색할 때가 많다.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큰데도 감사할 줄 모른다. 당연시하고, 오히려 남들과 비교하여 작다며 원망하고 있다. 그래서 모으는 손가락은 자신을 향하여 작게 오그라들기만 하고, 흩어 뿌리는 손가락은 타인을 향하여 넓게 펴지게 된다. 지혜자 솔로몬은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했다(잠11:24).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신대로 감사하자. 내가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하자. 하나님은 큰 것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무리하게 요구치 않으신다. 억지가 되게 하시지 않는다. 인색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자.
⑶.네 힘을 헤아려 신명기 16:10절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라 했다. “내게 복 주신대로” 감사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제 힘을 헤아려” 하지 못하는 감사도 문제이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사람들이 가끔 있다. 남들에게 뒤지기 싫어서 무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헌금을 드리는 일도 공수표로 부도를 낸다. 몇 년간 교회 장부에 “미납자”로 남기도 한다. 그로 인해 아예 교회를 옮겨 버리고 영원히 하나님 앞에 부도처리 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 “네 힘을 헤아려”, 만용을 부리지 말라는 말씀이다. 만용은 결코 믿음이 아니다. 모험도 아니다. 모험에는 자신의 몸을 던지는 삶이 뒤따른다. 만용은 그렇지 못하다. 남과의 비교에서 나오고, 들어낼 것 없는 자신을 애써 들어내고자 함에서 만용이 온다. 칠칠절이 추구하는 완전의 완전을 기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다.
3.오순절 사도행전 2:1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라고 했다. 오순절은 맥추절의 또 다른 이름이다. 봄에 씨 뿌려 재배한 보리의 첫 단을 요제(레23:15)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로 드린 후 50일만에 지키는 절기이다. 곧 오순절이다. 보리 단의 요제는 무교절의 시작에 드려졌고, 무교절의 시작은 유월절을 포함하고 있었다. 결국 유월절 후 50일이 되기도 한다. 유월절 후 50일, 이날은 유대 랍비들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출발하여 시내산에 도착한 날이다. 시내산 언약을 의미한다. 그래서 1세기 말엽부터, 곧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난 후부터는 오순절은 시내산 언약의 기념일로 지켜지기도 한다. 오순절은 무엇보다도 사도행전 2장에서 보듯, 성령님 강림의 날이다. 성령님은 주님이 살아 계실 때의 약속대로(요14:16, 26), 승천하시기 직전의 약속대로(행1:4, 8) 강림하셨다. 사도행전 2:2-4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했다. 성령님이 임하자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교회 운동이 시작되어졌고, 영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하루에
3,000명씩, 5,000명씩 구원받는 영혼들이 늘어갔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시고,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은 예루살렘 교회의 제자들은 성령님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복음 전파의 세계화가 시작된 것이다. 땅끝까지 전파의 시작이다. 오순절의 의미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 얻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성령님을 받아 그의 도우심으로 승리의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성령님의 임하심은,
1.우리를 위한 하나님(God for Us)→ 전능의 하나님
2.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God with Us)→ 임마누엘의 하나님
3.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God in Us)→ (ν Χριστ) 내주하시는 하나님으로 각인의 심령 속에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시다. 맥추절은 이렇게 그 불리우는 이름처럼 의미가 많고도 깊다. 결코 사라져 가야 할 절기가 아님을 명심하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은 우리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들, 그 하나님의 은혜로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우리들, 그 은혜에 감사를 드리자. 찬양을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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