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절의 의미를 아는가? (신16:9-12)
본문
칠칠절을 지키라고 했는데 이 칠칠절은 바로 맥추절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봄에 농사를 지어서 보리 수확을 한다. 그 수확된 보리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에서 찬양을 드리고 곡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가 바로 맥추절, 또는 칠칠절, 오순절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 맥추절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것은 비 성경적이다. 성경에는 분명하게 "맥추절을 지키라" 명령하고 있다 구약 적인 방법으로 , 율법으로 지키지 않지만 구약의모든 것이 예수로 성취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 안에서 우리가 신령한 예배로 지켜야 한다. 토요일 안식일이 예수로 말미암아 성취되었기에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하나님께 드리듯이 맥추절도 구약 적인 방법은 패했지만 예수로 말미암은 감사가 드려져야 하는 절기 인 것이다. 칠칠절은 초실절 이후부터 (곡식을 낫을 대는 첫날) 7주를 지난 50일째 되는 날에 소제를 드리기 위하여 한곳에 모이는 경축일이다 날짜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오순절이기도 하다 구약의 오순절은 첫 곡식을 거두는 절기이고 신약 시대에는 성령님 강림절을 뜻한다 교회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우리의 믿음을 측정할 때 성경에서는 두 가지를 사용한다 한가지는 환난과 시험이다 환난과 시험 속에서 자기 백성이 어떻게 믿음을 표시하는가 하나님은 중요하게 본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환난과 시험 속에 던져져 그들의 믿음을 하나님 앞에 입증 시켰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의인 노아 120년동안 말할 수 없는 환난과 시험을 견디었다. 아브라함 , 이삭도, (결박되어서 온전히 순종) 야곱, 요셉, 모세, 욥 , 다윗, 이스라엘 백성들, 예수님 제자들, 바울, 초대 교회 성도들. 모두 환난 속에서 그들의 믿음을 입증 받았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시험 환난이 없이 율법 안에서 안정을 누리고 살았으나 예수를 만나는 순간부터 그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랐던 것을 우리는 본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그들을 광야에 던져 불 뱀과 많은 역경으로 믿음을 보셨다. 또한가지 믿음을 측정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감사한 마음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 것으로 측정한다 감사하는 양은 믿음의 양과 비례한다 생활을 한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것이고 믿음이 있다는 것은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 그래서 믿음의 선조들을 보면 그들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은 것을 본다. 노아가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았고.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감사해서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았다 사도 바울도 로마로 사형 당하러 가는 절박한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했다.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혀서도 하나님께 찬양으로 감사의 단을 쌓았고 예수님도 떡을 떼실 때 하나님께 감사을 드렸다. 오늘날 아직 까지도 미국이 풍요로운 나라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 작은 배를 타고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너서 미지의 대륙에 도착해서 그들은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1년후 농사를 지어서 추수한 것으로 떡을 만들어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 미국의 힘은 하나님의 힘을 깨닫고 감사하는 그 모습에서부터 나타나가 시작 한 것이다. 오늘날도 전통적인 청교도 신앙을 물려받은 미국가정들은 일년에 한 번은 그 맛없는 떡을 만들어 자녀들에게 먹으라고 한다 우리가 일년 내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지만 맥추절이 7월에 있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 추수 감사절이 일년 동안을 감사하는 절기라면 맥추절은 6개월 동안의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깨닫고 이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남은 6개월도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잊지 않고 살아가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이 맥추절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맥추절 속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3가지로 생각해 보자!
첫째:칠 주를 계수 하라 9절 "칠 주를 계수 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 하여 "
칠 주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온다. 레23:15-16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일 을 계수 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칠 주를 계수 하면 바로 오순절이 된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약속하신 날이기도 하다. 약속한 그 성령님을 맥추절 때 바로 오순절 때 마가 다락방에 내려 주셨다는 사실임이다 그래서 맥추절의 감사는 그냥 막연한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주신, 우리 기독교 신앙의 결정적인 중심부인 성령님을 받은 날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이스라엘에는 3대 절기가 있다. 신16:16 = 세 절기가 나온다. 무교절과 칠칠절, 초막절,
1. 무교절 즉 유교절은 =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천국의 길을, 속죄의 길을 열어 주시는 중요한 절기이다. 유월절이 없으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으면 우리는 영원히 버림받을 존재인데 왠말인지, 왠 은혜인지 유월절의 절기의 사건으로 바로 예수의 피로 우리가 속죄함 받고 하나님과의 담이 허물어지게 된 것이다
2. 칠칠절 (맥추절 ) 이 칠칠절이 왜 중요 하는가 십자가 사건은 언약이고 구원의 약속이고 보증이다. 피로서 보증을 말해준다. 이 약속을 성취시킨 것이 바로 성령님이라는 것이다 성령님이 안 계시면 우리 속에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도 없고 성령님이 아니면 주님의 십자가 약속을 성취 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마가 다락방에 맥추절의 성령님이 오시지 아니했다면 십자가의 피가 아무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이다. 약속하신 그대로 이 칠칠절, 맥추절날에 성령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성취시키셨다. 3 초막절 우리 속에 성령님이 들어와 계시면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천국의 모습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초막절 때 부모님과 자식들이 모두 초막 안에서 함께 삽니다.
그러므로 이 초막절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천국의 모형이다. 유월절에서 약속 하셨고 맥추절에서 성취 시켜 주셨고 초막절에서 천국에 거할 수 있도록 열어 주셨다. 이 3대 절기 속에 이런 깊은 의미가 들어있다. < 적용 > 우리는 모든 감사 중에서도 이 맥추절 감사를 가장 뜻깊게 생각해야 한다. 성령님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 속에는 아직도 부패된 옛모습으로 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이방인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바꿔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가 바로 이 맥추절이다 레23:17에는 맥추절에 제물을 드리는 방법이 있다. 레23장 17절:=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누룩을 넣어서 구운 떡을 하나님께 드렸다 보통 때는 누룩은 죄를 상징하기 때문에 누룩을 넣지 아니한다. 무교절에는 누룩을 넣어서는 안된다. 의 떡은 예수의 몸을 상징하는데 주님의 몸은 죄가 하나도 없으므로 무교절에는 누룩을 절대로 넣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맥추절에는 누룩을 넣으라고 했다. 이 누룩은 번지는 영적 의미를 보여준다. 누룩이 들어가면 모든 것이 퍼지는 영향이 있듯이 예수의 복음이 성령님이 임할 때 온 세계에 퍼진다는 것임. 마가 다락방에 성령님이 임하므로 복음이 유럽을 거쳐 아시아까지 번졌다. 이렇게 번지는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의 뜨거움이, 사랑이. 기도가 서로 전달된다. 이것은 우리 육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육에서 성령님 하나님께서 누룩의 힘의 역할을 해주셨기 때문에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다음에 또한가지 맥추절 때 드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떡 두 개를 흔들라고 했다. 맥추절이 있기 전에는 떡 한 개만 하나님께 드렸다 이것은 유대인만의 선민의식을 상징한다 그러나 성령님이 이 땅에 임하시므로 떡 두 개, 즉 유대인과 이방인이, 다 함께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구워서 드려야 한다. 굽는 다는 것은 우리가 연단을 받음으로 익은 곡식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옛 습관이 죽고, 육이 죽고, 비바람 풍파를 잘 견디고 이겨서 잘 익은 열매가 되는 것을 말함 우리는 연약하다. 왜 연약한가 육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상이 너무 악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본성이 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 구원의 은총이 약속 되어있지마는 우리는 육이 연역하여 이루어 질 수 없다. 불가능하다. 오히려 십자가와 멀어질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님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그 약속이 바로 이 맥추절 의미 속에 약속되어진 것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롬8:26 =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요16:13 =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마 24장 마지막때에는 큰 환난이 있겠다고 예수님이 말씀. 창세 이후로 이런 환난이 없겠다고 …. 그 기한을 감해주지 아니하면 한 사람이라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했다. 사실 목사인 자도 이 환난을 생각하면 약해질 때가 있다. 과연 이 환난을 이길 것인가 짐승 통치에서 승리 할 것인가 내가 이 땅에 있는 동안 환난이 온다면 내 믿음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그러나 한가지 우리에게 꺾이지 아니할 힘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진리의 성령님이 오셔서 나와 함께 하여 주시면 성령님의 강력한 힘으로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맥추절이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의 절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절기를 무시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성령님의 사로잡힘 받아 이 어려운 때를 잘 이겨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네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 10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
신 16:12 =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예물을 드리는 것이 규례라고 했다. 그들은 보리 추수와 과일을 드렸다. 많은 절기 가운데 맥추절 때 가장 큰 예물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드렸다. 우리는 예물을 물질로만 알고 있다.
우리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 가셨다. 마지막에는 목숨까지 바치는 자리에까지 내려 가셨다. 육체에 남은 물한방울, 피 한 방울까지 다 쏟으셨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롬7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님을 더 사랑하지 못한 갈등 가운데 소리 쳤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의 옛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받아 주지 아니한다 구습은 절대로 받아 주지 아니한다. 성령님으로 거듭날 때 , 새 소제가 될 때, 비로소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시간이요, 재능이요, 나의 몸이요, 내 삶이요, 나에 물질을 받아 주시는 것이다. 자원하는 예물이 무엇입니까 스스로 기뻐서 드리라는 것이다. 직분이 아니고 체면이 아니고 조건부가 아닌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는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주셨기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행해 주실 것이며 , 십자가의 약속을 내게 성취시킬 것이며. 맥추절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깨닫고 너무 감사해서 은혜로 나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사실 드릴 수 있다는 이 자체가 너무나 귀한 감사인 것이다. 억지로 한 행위를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재물을 억지로 드리다가 생명을 빼앗겼다. 롯의 처가 억지로 소알 성을 가다가 뒤돌아보므로 멸망 받았다 가롯 유다가 억지로 예수님의 제자 노릇 하다가 오히려 예수을 죽이는 자가 되고 말았다. 억지로 하는 일은 분위기를 깨뜨리고 나쁜 결과를 초래하고 성령님이 하는 일을 방해하고 만다. 그러나 자원해서 하는 일은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자원하는 이 행위에는 하나님의 칭찬이 있다. 하나님 께서 영광을 받은다. 과부의 옆전 두닢이 자원하는 헌금이었다 바나바가 초대교회에 자신의 재물을 낸 것은 자원하는 마음이었다 예수님 제자들이 성령님을 받고 자신의 생명을 드렸던 것은 자원하는 행위였다 오늘 97년도 맥추절을 보내면서 하나님께서 새 소제가 되어서 내 시간을, 내 재능을, 내 지식을, 내 생명을, 내 사랑을, 내 가정을, 내 물질을, 나에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자원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7종류의 사람들이 지켜야 한다. 11절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
누구든지 맥추절을 다 드려야 한다, 그러나 아무나 드리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7 부류의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 만이 맥추절을 드릴 수 있는 것이다.
1. 하나님은 모세에게 계명을 주시면서 하나님에게 맥추절을 드리라고 명령 하셨다. 모세는 누구를 의미합니까 물론 예수그리스도의 표상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고 했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사명을 받은 주의 종들이 드려야 되는 것을 의미한다
2. 네 자녀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를 상징한다. 아직도 죄의 자녀인 세상에 속한 자는 맥추절을 드릴 수 없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만이 맥추절을 드리는 것이다
3. 노비가 맥추절을 지냅니다. 노비는 무엇을 말합니까 종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종의 신분인 것을 의미한다 예수도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다. 우리는 전부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의 종이 되지 아니한자는 맥추절에 동참 할수 없다는 것을 여기서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종은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순종하지 아니하면 종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순종하는 자만이 맥추절을 드릴 수 있다
4.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에게 허락 하셨다 레위인이 누구인가 이 세상의 일을 하는 자가 아니다. 열한 지파는 이 세상의 일을 감당 하지만 레위 지파는 성전에서 일하는 업무을 담당했다. 레위인이 맥추절을 지킨다는 것은 성전을 향하여 일하는 자만이 맥추절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지 아니하고 맥추절을 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5. 객도 맥추절을 지킬 수 있었다. 객은 나그네을 말한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은 이 땅이 목적지가 아니다. 저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이 목적지라고 생각하고 살고있다.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이 세상이 정거장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이 세상은 잠시 거쳐가는 정거장 일뿐이다. 나그네가 잠시 거쳐가는 주막일 뿐이다. 주님 재림으로 다시 이루어질 영원한 세계가 있다. 이 땅이 정거장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맥추절을 지킬 수 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 인생을 살았다. 보이지 않은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고 살았다. 그래서 갈바를 알지 못하고 떠난다고 믿음의 고백을 했다. 야곱이 나그네 인생을 살았다. 야곱은 일생을 고향 찾아 살아간 사람이다. 육의 고향이 아니라 , 영원한 고향, 내가 가야할 고향,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고 살았기에 애굽왕 바로 앞에서 바로 왕이 네가 연세가 얼마냐 야곱은 " 나그네길의 세월이 130 이나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냈었노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도 나그네 인생을 살았다. 가나안 땅을 그리며 사모하면서 마지막 느보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그 순간까지 가나안 땅을 그리며 광야의 세월을 지냈던 것을 우리는 보았다. 이 세상은 우리가 천국 가기 위해서 잠시 거쳐가는 곳이다 우리가 가야할 영원한 나라, 비밀의 나라, 믿음의 조상들이 들어간 그 나라를 사모하면서 기뻐하는 자만이 맥추절을 드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다. 6. 고아가 맥추절을 드릴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 때문에 고아가 된 것이다. 고아는 의지할 부모가 없다. 이 세상의 물질이나 지식이나 과학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육의 것을 의지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다. 신랑 예수 하나 소망 삼고 하나 바라보고 사는 자이다 이런 자가 맥추절을 드릴 수 있다. 7. 과부가 맥추절을 드릴 수 있다 이 과부는 예수 때문에 과부가 된 것이다. 예수께서 "너희 중에 고아나 과부가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 예수님 때문에 육의 남편, 다시 말하면 세상의 좋아 하던것을 끓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여러분 예수님 때문에 고아가 되셨습니까 과부가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셨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감사는 하나님의 자녀만이 드리는 것이다. 효도는 친자식만이 할 수 있듯이 감사는 하나님께 효도하는 것이다. 맥추절은 아무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천국 백성들의 자녀들이. 노비, 레위인, 객, 고아 , 과부, 이러한 자격을 가진 자들만이 이 절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란다. < 결론 > 12절에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애굽에서의 종은 예수를 모르고 살던 우리의 불신의 모습이다.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 우리의 모습이었습니까 그 길은 바로 멸망의 길이요. 유황 불 못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소망이 없는 길이요. 구원이 없는 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애굽의 죄악 세상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내어 주시고 맥추절을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고 저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게 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받고도 왜 감사가 없고 불평과 원망만 있는 것일까요 이 맥추절의 의미를 몰라서 그런 것이다. 왜 우리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못하고 자꾸 세상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눈을 뺏기고 살게 되는 것입니까 맥추절의 의미를 너무 모르기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오늘 알았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계신 성령님을 믿으십니까 이 성령님이 정확히 구약 속에 정해준 하나님의 절기중 하나인 맥추절에 왔다는 이 비밀 앞에 우리는 무릎을 끓고 내 자신을 굴복하고 내 자신을 드려야 할 것이다 이 비밀을 아는 자는 나에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르는 자는 방황 할 것이다. 구약의 절기 하나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진 이 비밀 앞에 어느 누가 무릎을 끓지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98년도 맥추절을 보내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98년도 남은 6개월 동안 하나님 앞에 더 많은 감사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98년 추수 감사절 때는 더 큰 감사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째:칠 주를 계수 하라 9절 "칠 주를 계수 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 하여 "
칠 주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온다. 레23:15-16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일 을 계수 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칠 주를 계수 하면 바로 오순절이 된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약속하신 날이기도 하다. 약속한 그 성령님을 맥추절 때 바로 오순절 때 마가 다락방에 내려 주셨다는 사실임이다 그래서 맥추절의 감사는 그냥 막연한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주신, 우리 기독교 신앙의 결정적인 중심부인 성령님을 받은 날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이스라엘에는 3대 절기가 있다. 신16:16 = 세 절기가 나온다. 무교절과 칠칠절, 초막절,
1. 무교절 즉 유교절은 =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천국의 길을, 속죄의 길을 열어 주시는 중요한 절기이다. 유월절이 없으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으면 우리는 영원히 버림받을 존재인데 왠말인지, 왠 은혜인지 유월절의 절기의 사건으로 바로 예수의 피로 우리가 속죄함 받고 하나님과의 담이 허물어지게 된 것이다
2. 칠칠절 (맥추절 ) 이 칠칠절이 왜 중요 하는가 십자가 사건은 언약이고 구원의 약속이고 보증이다. 피로서 보증을 말해준다. 이 약속을 성취시킨 것이 바로 성령님이라는 것이다 성령님이 안 계시면 우리 속에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도 없고 성령님이 아니면 주님의 십자가 약속을 성취 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마가 다락방에 맥추절의 성령님이 오시지 아니했다면 십자가의 피가 아무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이다. 약속하신 그대로 이 칠칠절, 맥추절날에 성령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성취시키셨다. 3 초막절 우리 속에 성령님이 들어와 계시면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천국의 모습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초막절 때 부모님과 자식들이 모두 초막 안에서 함께 삽니다.
그러므로 이 초막절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천국의 모형이다. 유월절에서 약속 하셨고 맥추절에서 성취 시켜 주셨고 초막절에서 천국에 거할 수 있도록 열어 주셨다. 이 3대 절기 속에 이런 깊은 의미가 들어있다. < 적용 > 우리는 모든 감사 중에서도 이 맥추절 감사를 가장 뜻깊게 생각해야 한다. 성령님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 속에는 아직도 부패된 옛모습으로 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이방인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바꿔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가 바로 이 맥추절이다 레23:17에는 맥추절에 제물을 드리는 방법이 있다. 레23장 17절:=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누룩을 넣어서 구운 떡을 하나님께 드렸다 보통 때는 누룩은 죄를 상징하기 때문에 누룩을 넣지 아니한다. 무교절에는 누룩을 넣어서는 안된다. 의 떡은 예수의 몸을 상징하는데 주님의 몸은 죄가 하나도 없으므로 무교절에는 누룩을 절대로 넣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맥추절에는 누룩을 넣으라고 했다. 이 누룩은 번지는 영적 의미를 보여준다. 누룩이 들어가면 모든 것이 퍼지는 영향이 있듯이 예수의 복음이 성령님이 임할 때 온 세계에 퍼진다는 것임. 마가 다락방에 성령님이 임하므로 복음이 유럽을 거쳐 아시아까지 번졌다. 이렇게 번지는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의 뜨거움이, 사랑이. 기도가 서로 전달된다. 이것은 우리 육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육에서 성령님 하나님께서 누룩의 힘의 역할을 해주셨기 때문에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다음에 또한가지 맥추절 때 드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떡 두 개를 흔들라고 했다. 맥추절이 있기 전에는 떡 한 개만 하나님께 드렸다 이것은 유대인만의 선민의식을 상징한다 그러나 성령님이 이 땅에 임하시므로 떡 두 개, 즉 유대인과 이방인이, 다 함께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구워서 드려야 한다. 굽는 다는 것은 우리가 연단을 받음으로 익은 곡식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옛 습관이 죽고, 육이 죽고, 비바람 풍파를 잘 견디고 이겨서 잘 익은 열매가 되는 것을 말함 우리는 연약하다. 왜 연약한가 육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상이 너무 악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본성이 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 구원의 은총이 약속 되어있지마는 우리는 육이 연역하여 이루어 질 수 없다. 불가능하다. 오히려 십자가와 멀어질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님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그 약속이 바로 이 맥추절 의미 속에 약속되어진 것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롬8:26 =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요16:13 =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마 24장 마지막때에는 큰 환난이 있겠다고 예수님이 말씀. 창세 이후로 이런 환난이 없겠다고 …. 그 기한을 감해주지 아니하면 한 사람이라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했다. 사실 목사인 자도 이 환난을 생각하면 약해질 때가 있다. 과연 이 환난을 이길 것인가 짐승 통치에서 승리 할 것인가 내가 이 땅에 있는 동안 환난이 온다면 내 믿음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그러나 한가지 우리에게 꺾이지 아니할 힘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진리의 성령님이 오셔서 나와 함께 하여 주시면 성령님의 강력한 힘으로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맥추절이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의 절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절기를 무시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성령님의 사로잡힘 받아 이 어려운 때를 잘 이겨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네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 10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
신 16:12 =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예물을 드리는 것이 규례라고 했다. 그들은 보리 추수와 과일을 드렸다. 많은 절기 가운데 맥추절 때 가장 큰 예물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드렸다. 우리는 예물을 물질로만 알고 있다.
우리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 가셨다. 마지막에는 목숨까지 바치는 자리에까지 내려 가셨다. 육체에 남은 물한방울, 피 한 방울까지 다 쏟으셨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롬7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님을 더 사랑하지 못한 갈등 가운데 소리 쳤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의 옛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받아 주지 아니한다 구습은 절대로 받아 주지 아니한다. 성령님으로 거듭날 때 , 새 소제가 될 때, 비로소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시간이요, 재능이요, 나의 몸이요, 내 삶이요, 나에 물질을 받아 주시는 것이다. 자원하는 예물이 무엇입니까 스스로 기뻐서 드리라는 것이다. 직분이 아니고 체면이 아니고 조건부가 아닌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는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주셨기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행해 주실 것이며 , 십자가의 약속을 내게 성취시킬 것이며. 맥추절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깨닫고 너무 감사해서 은혜로 나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사실 드릴 수 있다는 이 자체가 너무나 귀한 감사인 것이다. 억지로 한 행위를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재물을 억지로 드리다가 생명을 빼앗겼다. 롯의 처가 억지로 소알 성을 가다가 뒤돌아보므로 멸망 받았다 가롯 유다가 억지로 예수님의 제자 노릇 하다가 오히려 예수을 죽이는 자가 되고 말았다. 억지로 하는 일은 분위기를 깨뜨리고 나쁜 결과를 초래하고 성령님이 하는 일을 방해하고 만다. 그러나 자원해서 하는 일은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자원하는 이 행위에는 하나님의 칭찬이 있다. 하나님 께서 영광을 받은다. 과부의 옆전 두닢이 자원하는 헌금이었다 바나바가 초대교회에 자신의 재물을 낸 것은 자원하는 마음이었다 예수님 제자들이 성령님을 받고 자신의 생명을 드렸던 것은 자원하는 행위였다 오늘 97년도 맥추절을 보내면서 하나님께서 새 소제가 되어서 내 시간을, 내 재능을, 내 지식을, 내 생명을, 내 사랑을, 내 가정을, 내 물질을, 나에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자원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7종류의 사람들이 지켜야 한다. 11절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
누구든지 맥추절을 다 드려야 한다, 그러나 아무나 드리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7 부류의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 만이 맥추절을 드릴 수 있는 것이다.
1. 하나님은 모세에게 계명을 주시면서 하나님에게 맥추절을 드리라고 명령 하셨다. 모세는 누구를 의미합니까 물론 예수그리스도의 표상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고 했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사명을 받은 주의 종들이 드려야 되는 것을 의미한다
2. 네 자녀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를 상징한다. 아직도 죄의 자녀인 세상에 속한 자는 맥추절을 드릴 수 없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만이 맥추절을 드리는 것이다
3. 노비가 맥추절을 지냅니다. 노비는 무엇을 말합니까 종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종의 신분인 것을 의미한다 예수도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다. 우리는 전부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의 종이 되지 아니한자는 맥추절에 동참 할수 없다는 것을 여기서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종은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순종하지 아니하면 종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순종하는 자만이 맥추절을 드릴 수 있다
4.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에게 허락 하셨다 레위인이 누구인가 이 세상의 일을 하는 자가 아니다. 열한 지파는 이 세상의 일을 감당 하지만 레위 지파는 성전에서 일하는 업무을 담당했다. 레위인이 맥추절을 지킨다는 것은 성전을 향하여 일하는 자만이 맥추절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지 아니하고 맥추절을 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5. 객도 맥추절을 지킬 수 있었다. 객은 나그네을 말한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은 이 땅이 목적지가 아니다. 저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이 목적지라고 생각하고 살고있다.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이 세상이 정거장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이 세상은 잠시 거쳐가는 정거장 일뿐이다. 나그네가 잠시 거쳐가는 주막일 뿐이다. 주님 재림으로 다시 이루어질 영원한 세계가 있다. 이 땅이 정거장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맥추절을 지킬 수 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 인생을 살았다. 보이지 않은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고 살았다. 그래서 갈바를 알지 못하고 떠난다고 믿음의 고백을 했다. 야곱이 나그네 인생을 살았다. 야곱은 일생을 고향 찾아 살아간 사람이다. 육의 고향이 아니라 , 영원한 고향, 내가 가야할 고향,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고 살았기에 애굽왕 바로 앞에서 바로 왕이 네가 연세가 얼마냐 야곱은 " 나그네길의 세월이 130 이나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냈었노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도 나그네 인생을 살았다. 가나안 땅을 그리며 사모하면서 마지막 느보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그 순간까지 가나안 땅을 그리며 광야의 세월을 지냈던 것을 우리는 보았다. 이 세상은 우리가 천국 가기 위해서 잠시 거쳐가는 곳이다 우리가 가야할 영원한 나라, 비밀의 나라, 믿음의 조상들이 들어간 그 나라를 사모하면서 기뻐하는 자만이 맥추절을 드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다. 6. 고아가 맥추절을 드릴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 때문에 고아가 된 것이다. 고아는 의지할 부모가 없다. 이 세상의 물질이나 지식이나 과학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육의 것을 의지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다. 신랑 예수 하나 소망 삼고 하나 바라보고 사는 자이다 이런 자가 맥추절을 드릴 수 있다. 7. 과부가 맥추절을 드릴 수 있다 이 과부는 예수 때문에 과부가 된 것이다. 예수께서 "너희 중에 고아나 과부가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 예수님 때문에 육의 남편, 다시 말하면 세상의 좋아 하던것을 끓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여러분 예수님 때문에 고아가 되셨습니까 과부가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셨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감사는 하나님의 자녀만이 드리는 것이다. 효도는 친자식만이 할 수 있듯이 감사는 하나님께 효도하는 것이다. 맥추절은 아무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천국 백성들의 자녀들이. 노비, 레위인, 객, 고아 , 과부, 이러한 자격을 가진 자들만이 이 절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란다. < 결론 > 12절에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애굽에서의 종은 예수를 모르고 살던 우리의 불신의 모습이다.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 우리의 모습이었습니까 그 길은 바로 멸망의 길이요. 유황 불 못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소망이 없는 길이요. 구원이 없는 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애굽의 죄악 세상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내어 주시고 맥추절을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고 저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게 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받고도 왜 감사가 없고 불평과 원망만 있는 것일까요 이 맥추절의 의미를 몰라서 그런 것이다. 왜 우리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못하고 자꾸 세상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눈을 뺏기고 살게 되는 것입니까 맥추절의 의미를 너무 모르기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오늘 알았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계신 성령님을 믿으십니까 이 성령님이 정확히 구약 속에 정해준 하나님의 절기중 하나인 맥추절에 왔다는 이 비밀 앞에 우리는 무릎을 끓고 내 자신을 굴복하고 내 자신을 드려야 할 것이다 이 비밀을 아는 자는 나에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르는 자는 방황 할 것이다. 구약의 절기 하나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진 이 비밀 앞에 어느 누가 무릎을 끓지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98년도 맥추절을 보내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98년도 남은 6개월 동안 하나님 앞에 더 많은 감사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98년 추수 감사절 때는 더 큰 감사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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