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맥추절의 감사 (시100:1-5)

본문

바울은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감사와 기쁨의 생활을 가끔씩 기분 나는데로 할 것이아니라 샘물처럼 솟아나고 우리 몸에 피가 돌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거의 무의식적으로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5:18에서도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라고하신 후에 곧 이어 그 결과를 말씀하셨는데 “(엡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감사하며 (엡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그리스도인들의 “기쁨과 감사와 기도는” 마치 삼각형의 세변과 세각처럼 하나로 묶여있으며 거기에 한가지를 더 합한다면 “찬송”이 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항상 감사, 기도, 기쁨이 있으며 찬송이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항상 감사와 기도와 기쁨이 있는 사람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감사는 약방의 감초와 같아서 따로 떨어져 생각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닙니다. 기도에도 감사가 들어가야하고, 찬송에도 감사가 들어 가야하며, 모든 봉사와 사랑에도 감사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된 사랑이 되고,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항상 감사하고 언제나 감사하고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하지만 오늘은 몇가지 본문에 나타난 감사할 일들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믈로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사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짐승도 주인을 아는데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함을 개탄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10명의 문둥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이 예수님에게 와서 감사를 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은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아홉을 찾으셨는데 이 말씀에는 인간의 부퍄와 배은망덕에 대한 개탄이 숨어 있습니다.
인간이 부패하여 쓸 곳이 없게 된 증거 가운데 한가지가 배은망덕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롬1: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탄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셔서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려는데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 마음이 어두어져 우상을 하나님으로 바꾸어 섬기고 하나님을 욕하고 있으니 어떻게 그런 자들을 구원하실 수 있겠습니까
먼 나라에 아프리카에서 사는 원승이 일단이 비록 백화점이 무너지기는 하지만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거대한 한국의 수도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여기 저기 놀랍고 신기한 시설들과 많은 자동차, 그리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바뿌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500년 1000년되는 역사적 사적지도 다 돌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서을 곳곳을 돌아 보면서 감탄과 탄식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녀 온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후손들에게 가르쳐 주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책으로 이 사실들을 기록하려고 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그 서울이라는 도시가 만들어 진 것이냐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냐를 결정짓는 것이 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더 논의할 여지가 없었지만 뜻밖에 그들 가운데 많은 대표들이 우리의 상식과 기술로 생각할 때 그런 도시를 사람이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라고 주장를 했습니다. 어떤 원숭이는우리들이 가 보고, 듣고, 만지고, 경험을 했는데 그것을 우연이라고 말하면 되느냐라고 강변을 했지만 다수의 의견에 의견에 의해 그런 상상을 추월하는 세게는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며, 우연이 되는 것이라고 결정을 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서울은 우연히 만들어진 도시다라고 교과서에 기록를 해서 지금까지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후손은 지금까지도 서울과 같은 도시를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나무가지 틈에서 꾁꾁 거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서울은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교육을 했다면 서울과 같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수 백년간 노력을 했을 것이요, 적어도 아파트 한동정도는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그 뒤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새로운 도시를 개발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것도 신비와 아름다움과 편리함과 영원히 유지되고 보수할 수 없는 완전한 세상을 만드시고 천국을 만드셨습니다. 천국에서 오신 여러분들-예수님, 바울 기타의 사람들이-천국을 말해도 그것을 부인해 버린 사람들, 자연의 신비와 조화와 광활함과 정교함을 우연으로 돌리는 사람들에 대하여 이사야는 “(사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이렇게 인간이 무지 몽매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총 속에 온갖 낙을 누리며 살아 가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며 이기심과 탐욕으로 사는 인간을 볼 때 어찌 개탄스럽지 아니할 수 있을 것입니까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고, 하나님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없었을 때도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으면 하늘을 향해 기우제를 드리고, 추수 때가 되면 감사제를 드렸는데 지금은 이런 상화에서도 하나님을 무시해 버리고 저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무시해 버리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되여 버렸습니다.
우리들의 삶이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는 삶인 것입니다. 평화의 시대라 해도 하루에 사람이 30만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즉 우리들의 삶은 1/30만의 기적적인 삶인 것입니다. 나이가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남편이 퇴근할 지음 맛있고 반찬으로 저녁 밥상을 풍성히 차리려 백화점 수퍼에 털이를 사려 갔다고 죽어 나오는 불쌍한 주부를 우리가 보고 살아 가면서 우리의 삶에 대한 감사가 없다는 것은 배은 망덕입니다.
지금도 병원에 입원해 있고 감옥에 갇혀 있고 강제 수용소에 억류되여 있는 사람이 1억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1/1억의 자유와 건강의 기적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태양이 단 10쎈티만 우리들에게 더 닥아 오던지, 물어 가던지 해도 죽음을 당하고, 우리가 마시는 공기의 기압이 단 몇 미리바만 넘어 가도 숨을 헐떡입니다. 우리 몸의 125,000키로 미터의 형관이 한군대만 막혀도 우리의 생명을 그냥 끈어지고 맙니다.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사는 지구에 강도
7.5도의 지진이 3초간 흔들리는 한 도시가 쓱대 밭이 되고 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강도 8짜리의 지진이 10만 계속이 되여도 이 지구는 산산 조각이 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안전하고 평화롭고 풍요하게 살아 가는 삶의 절대적인 조건들은 하나님의 손에 지배되고 있는데, 그런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면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들이 세상을 만들어 사는 것처럼 감사할 줄을 모른다니 말이 되는 일입니까 우리는 만에 하나 천에 하나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알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를 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넘치는 감사를 할 줄 알고 항상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범사에 감사할줄 알야야 합니다.
2. 하나님의 기르시는 양으로 살고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예수님을 주라 부를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시고 천국에 가도록 은혜를 주신 거을 감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증오와 미움 속에 인간미를 상실하고 있는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배푸신 큰 사람으로 감동되여 살게 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할 수 있고 기도의 응답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 점을 감사해야 합니다. 죠지 물려처럼 5만번의 기도 응답을 받지는 못했을 망정 일년에도 수백번 수천번 기도를 응답해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아서 입니다.
그러므로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가 기도를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게하시고 전도의 열매를 맺게하시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것을 아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어지지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의 농도가 옅어지지 않습니다. 이와같은 모든 은혜가 하나의 공상이나 상상이 아니라 우리 몸에 피가 흐르고 있는 것과 같은 생명있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부인한다고 해도 부인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청이 우리에게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C C C의 사영리 책자에는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냥 우리들에 대한 어떤 계획을 가지신 것이 나리가 사랑하시므로 어떤 놀라운 계획을 가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어떤 피조물도 가질 수 없고 배풀 수 없는 절대 불변의 사랑입니다.
결혼하는 신랑 신부는 주례가 묻는 사랑의 맹세에 서슴없이 예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그 맹세가 공허한 약속이을 들어 내는 이혼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어떤 경우에서도 ‘아니라’함이 없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절망감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떤 경우에서도 우리을 버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십자가에 죽을 지언정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불변입니다. 이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일들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셔셨습니다.
성도의 시간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속삭임이고, 불신자의 시간은 죽음과의 시간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잘 다니다가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죽어 버리자 예수 믿음 것을 후회하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교회를 다닌 것만 해도 분하다고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들이 죽자 더 열심히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 생활을 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에 말한 사람은 주님과 사랑의 속삼임이 없는 사람이요, 뒤애 말한 사람은 주님과 사랑의 밀어를 즐기던 사람입니다.
사람은 세단계의 인생을 살아 가는 것입니다.
첫째 단계는 어머니 뱃속에 사는 10개월의 삶이요, 두번째 삶은 이 현실 세계에서 사는 것이요, 세번째 단계는 영원한 삶입니다. 현실 세계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어머니 뱃속에 살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시절이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내세적인 삶에 대해서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엄마의 뱃속에 살아 있는 아이가 ‘아-따뜻해서 좋구나. 가만히 있어도 먹을 것이 얼마든지 들어 오니 일을 하지 않아서 좋다. 아이구 추워라-. 사는 것이 재미가 없구나. 죽고 싶은 생각 밖에 없다.“이런 생각을 한다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까 즉 10개월 밖에 살지 못하는 태아가 세상살이의 喜怒哀樂에 지배되여 감정이 움직이고 엄마를 무시하고 아직 보지도 못한 세상을 부인한다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못지 않는 인간의 어처구니 없는 넌센스가 현실 생활에서도 빗어지고 있습니다.
10개월이나 100년이나 세월이 빠르기는 마찬가지고, 태아가 모르는 세상이나 우리가 잘 모르는 천국이나 인생의 무지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태아의 인생을 웃는 사람들이 현실의 인생에게는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품 안에서 천국을 가기 위한 세상살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아가 엄마를 부인할 수 없고, 장차 태여날 세상을 부인할 수 없는 것처럼 현세의 인생들도 하나님을 부인해서는 안되고 천국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시간은 영원을 생각할 수 없고, 피조물은 조물주를 알 수 없는 것이며, 유한은 무한을 측량할 수 없고, 인간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아는 세계입니다.
엄마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모두 같은 조건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에 태여나면 같은 조건이 아닙니다. 피부 색갈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르며, 환경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 다릅니다. 잘 사는 아이는 부자의 자식으로 자라고 사는 것이고 못사는 아이는 가난하고 헐벗어 피골이 상접한 그래서 굶어 죽은 아이가 되여 버립니다.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모두 비슷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나 이 세상 밖으로 나가면 천국과 지옥이 있어 새로운 삶에 현격한 차이가 생겨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고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의 훙칙한 죄인으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들에게 있어진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은 내세에 대한 말쑴입니다. 이와같은 영원한 소망을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를 해야 하비다.
4. 이런 사실을 깨닭고 사는 것을 감사 생활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사실을 여러분은 잘 아실 줄 믿습니다. 이런 사실을 깨닭고 사는 사람을 성도라 하고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죄인이라고 하고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닭은 사람은 감사를 하라고 하십니다. 열심히 감사를 하라고 하십니다. 감사하는 방법은 하나님게 바치는 생활입니다. 첫 열매를 거두웠을 때 그것을 하나님에게 바치고, 첫 아들을 낳았을 때 그것을 하나님에게 바치고, 11조를 하나님에게 바치고, 절기 때마다 예물을 하나님에게 바치고, 안식일 때도 예물을 하나님에게 바치고, 하나님에게 바치고, 하나님에게 바치고 하시면서 자꾸 바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순종하면 다 많은 축복을 주신다고합니다. 이것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맥추절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받은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첫 열매를 드린다는 것은 마지막 열매도 드린다는 약속이며, 그 첫 열매와 마지막 열매 사이에 하나님은 우리들을 잘 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중거가 됩니다. 그래서 첫 열매를 드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 속담에도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도 잘못 끼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첫번 감사가 잘못되면 마지막 감사도 잘 안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들은 하나님에게 소외된 배은망덕한 죄인이 되여 살아 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맥추절과 수장절을 함께 말씀하시기를 “(출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첫 감사를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첫 열매를 거둔 감사가 풍성한 열매를 거둔 감사의 씨가 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39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