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망대건축,전쟁하는 임금 (눅14:25-33)

본문

본문에서 망대건축하는자가 먼저 비용을 셈해야 하는것을 말한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시작할 때는 반드시 거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계산하여야 한다.
참된신앙은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열심과 땀과 눈물과 주의라는 비용이다.
그것은 십자가로도 표현되는데, 십자가는 손해를 의미한다. 수치와 비난을 감수해야함을 말한다. 수치와 십자가는 서로 결합되어 있다.[히12:2] 고통과 고뇌를 의미한다.
그리고 십자가는 죽음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기꺼이 져야 한다.
신앙생활에는 참으로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천국문을 두드리는데는 열심이 있어야하고, 험난한 길을 가기 위해서는 땀을 흘려야 한다. 편안한 정자에서 쉬다가 자신의 명부를 잃어 버렸을 때는, 자신을 되찾기 위한 눈물이라는 비용이 필요하다.
겸손의 계곡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대단한 주의가 필요하다. 무저갱의 사자 아불루온과[계9:11] 싸울 때는, 죽을 힘을 다하는 비용이 든다.
이러한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우리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세상의 어떤 다른 것 보다 그리스도를 사랑해야 한다. 자신의 독선을 버려야 한다.
죄인된 그는 자신의 영혼이 구원받게 됨이 인간의 공로와 공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죄를 버려야 한다.
편협된 자아를 버리고, 주님과의 화합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버려야 한다. 주님을 슬프게할 그 무엇도 부인해야 한다.
육체의 애정과 쾌락도 억제해야 한다.
편안함을 좋아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경건치 못한 일에서 관심을 돌리고 주님의 길을 따라야 한다. 모든것을 복종해야 한다.
이러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그는 실패할 것이다. 그 실패 뒤에는 조롱과 비웃음이 따른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을 위해서라면 어떤 비용이라도 지불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비용을 계산하지 않으면 결심을 실행할 수가 없다.
이러한 비용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진실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손익을 계산하고 비교해 보라.
칭찬과 비난을 계산해 보라.
우리는 사람들에 의해서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러한 비난으로 인해 하나님과 예수님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친구와 적을 생각해 볼때 사단과 악한자들과의 반목이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친근하심이 있다. 의심할 바 없이 현재의 삶이 편안하지 않으나, 도래할 삶을 계산해 보면 잠시잠간일 뿐이다. 죄를 짓는 쾌락과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비교해 보라.
예수님은 이러한 냉철한 계산없이 무조건 고백하는 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성의하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훨씬 더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는 그 무엇이 나타나면 그들은 복음을 포기하고 만다. 그들은 계산을 바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동속에서 자극받아 신앙생활하는 이가 있다.
군중심리에 의해 신앙을 갖는 이도 있다. 그들은 무리속에 있을 때는 신앙을 가진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격리 되었을 때는 신앙을 버린다.
단순한 환경의 신앙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교제하고, 사랑하는 이의 신앙을 따라간다.
전통적인 관습에 젖어 신앙생활하는 이가 있다.
외관상으로는 옷이 있으나 그 내부에는 생명이 없다. 감상의 신앙이라고 불리울 만한 것도 있다. 사색하고 지적인 신앙이 아니라 화가와 시인의 신앙이다.
위선된 신앙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형식의 종교이다.
이들은 외면적인 양상만을 주목하고, 내면적인 빛이나, 진리는 주목하지 않는다.
지성의 종교가 있다.
그들은 기독교의 의식이나 형식에 대한 찬미를 통하여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이러한 신앙은 오래가지 못한다.
양심의 종교라는 신앙이 있다.
양심이 신앙적으로 되는 것은 가능한 것이지만, 경험에 의거하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될 수 없다. 때때로 우리는 양심의 괴로움에 의하여 회개하고, 깨닫기도하지만, 양심이 아름답고 선하다고 해서 예수님에 대한 행복한 신앙을 소유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한 섬김은 맹종이고, 또 양심의 의무란 고된 일이며, 그런 신앙은 끊임없는 고행이며, 성령 안에서의 진정한 공의와 평화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백은 영적인 것이다.
이 고백을 시작하면 그는 지속적이고, 엄청난 싸움에 참여하는 것이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고,많은 적들을 이겨내야 하는 열정적인 싸움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와같이 비용을 계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비용을 계산하면 조롱과 수치감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비용을 지출하게 될 때 그 비용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사단은 승리할 많은 기회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정진한다는 것은 망대를 세우는 일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건물을 받쳐주는 초석이 있어야 한다. 수고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점차적인 작업과 참을성 있는 선행의 연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천사들이 우리의 신앙을 주시하고 있다.
이것은 지속적인 작업이다. 이 작업은 많은 주의와 신중함을 요한다.
그리스도인은 전쟁에 나선 군사이다.
그리스도를 섬기려 하는 이는 우선 감당해야 할 일에 대하여 신중히 생각하고,용기를 갖고 어떤 적도 두려워 말고, 단호하고 훌륭하게 선한계획을 추구해야 한다.
군사로 나선이는 전쟁의 책임을 고려해야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지 못한자는 싸움터에서 패하게 될 것이다.
전쟁이 지속될 기간을 고려해야 한다. 전쟁을 지속시켜야 하는 책임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산과 보물은 고갈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전쟁터로 나가는데 입어야 할 갑옷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엡6:14-17]
그리고 사단의 세력과 정책과 분노와 잔인성을 고려해야 한다. 자신의 나약함을 감지해야 하고,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인함과 힘을 고려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리스도의 능력이 어떻게 임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영예와 대장의 영예를 그들의 생명 보다 좋아해야 한다.
그리고 싸운 후에 얻게될 면류관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이 비유가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되는가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사역이 쉬운것이 아니고,오히려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뿐만아니라 평화롭고 자유로운 때는 열정적으로 보이던 많은 이들이 좌절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또한 본문은 우리가 잘 무장해야 할 필요성과 또 항상 경계하며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해 준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39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