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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대를 준공하라 (눅14:25-33)

본문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 었지만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예수께서 로마 제국을 둘러 엎고 영광스럽 게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러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들의 잘못 된 생각을 익히 잘 알고 계신 예수께서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 자기의 부모와 처 자,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할 각오와 십자가의 고난도 마다하지 아니하는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의 제자가 되는데 드는 엄청난 대가와 비용을 헤아려 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농부가 농사기구와 곡식을 보 관하고 도둑으로부터 자기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망대가 필요했습니다. 이 농부는 망대를 세움으로 얻어지는 여러 가지 유익함만을 생각하고 망대 건축에 드는 재료와 비용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공 사를 시작해서 기초 공사를 마치었습니다.
그런데 망대의 골조가 올라가 기도 전에 공사비가 다 떨어져서 공사 자체를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되었 습니다. 짓다만 망대는 보기 흉할 뿐만 아니라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돈만 날리고 동네에서도 신망을 잃고 말았습니다. 비웃음거리만 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예수를 믿는데 철저하게 각오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다가 도중에 그만두게 되면 짓다만 망대처럼 보기 흉할 뿐만 아니라 비웃음거리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문제가 참 으로 중대한 것이어서 또 다른 비슷한 예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군사 1 만을 거느린 어떤 임금이 2만 군사를 거느린 이웃 나라와 전쟁이 하게 되었습니다. 현명한 임금이라면 과연 1만의 군사로 2만의 군사와 싸워 이 길 수 있겠는가를 먼저 심사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 서게 되면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신속히 사신을 보내 평화협상을 벌이든지 아니면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항복할 준비를 해야 할 것 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 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 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이와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 하면 능히 내 제가가 되지 못하리라."
1. 예수 믿는 여러분, 이왕 믿으려면 철저히 믿으시고 참 제자가 되시 기 바랍니다.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심지어 이렇게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마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 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10: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 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 당치 아니하고" 여기 검(칼,劍)은 분명 폭력의 도구입니다. 때로는 예수 믿는 것이 물질 이나 인간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는 고통과 아픔을 주는 검이 되어질 수 도 있다는 것을 각오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가족,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 야 하는 고통과 아픔을 각오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 믿는데는 애정의 단절이라는 대가도 치룰 각오가 되어있 어야 합니다. 삶에 있어 가족간의 애정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보다도 가정을 창조하신 분이며 가정을 사랑하시고 축복하 시는 분이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결코 원하시는 바 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한 거룩한 사랑으로 이룩한 부부야 말로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관계가 아무 리 훌륭하고 아름다워 보여도 결국 예수 믿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관계, 가족 관계가 깨어 진다 하더라도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인간 관계가, 가족 관계가 인간의 생명을 궁극적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들은 또한 영원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가족관계, 남편과 아내, 부모 자식의 관계는 이 세상에서 살고 있을 때만 존재하는 것이지 천국에서는 가족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의 관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관 계보다 우선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는 영원 한 것이고 인간관계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때문에 영원을 위해서는 일시 적인 것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 청 년들은 결혼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는 것이 자 신들과 후손들을 위해 보다 더 현명한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 하면 후에 하나님이냐, 가족이냐를 선택해야하는 값비싼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경우가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이왕에 예수 믿기로 작정했으면 전심전력을 다 하여 믿으라는 것입니다. 신학자 마틴 마티는 116년 된 성야고보 교회가 86년 교인수 불과 3명에 이르자 교회문을 닫는 마지막 예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박장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고 밤을 새워가며 온 정신과 있는 돈을 다 털어놓듯이 사람들이 자신의 귀중한 영혼과 영 원한 생명을 위하여 정성을 기울인다면 이 교회는 문을 닫을 것이 아니 라 차고 넘쳤을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철저히 하나님을 사랑하시므로 여러분의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하나님의 사랑이 충 만한 행복한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 다음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마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질병, 사업의 문제, 남편 아내의 문제, 자녀 문제 등 이런 것이 십자가인가 이러한 것들은 십자가 가 아니라 "짐"들입니다. 때때로 짐은 벗어 던져 버릴 수 있으나 십자가는 짐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장소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기 전에 먼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눅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무엇을 부인한다는 것인가 그것은 자기의 것(my-self things)을 부인하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my-self)을 부인 하라는 말입니다. 자기의 것을 부인하는 것(self-denial)은 자기 중심적인 것이고, 자신을 부인하는 것(denial of self)은 그리스도 중심인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것은 죽음 외에는 다른 뜻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사형의 도구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육체적인 죽음의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처럼 언제든지 주님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사랑 하고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목숨을 바쳐 피흘릴 각오를 가지고 이 악 한 시대에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예수와 함께, 예수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완전한 헌신, 일사각오의 헌신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남김없는 철저한 복종을 뜻합니다. 자신의 생명, 의지, 욕망, 꿈, 소망 등 모든 것을 주님께 두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내 안에 살아 통치하실 수 있 도록 자신을 죽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살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인간 영혼의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것 으로서 근본적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 관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수가 있다면 이제자신의 생명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 님의 것입니다. 나의 생명은 나의 모든 것과 더불어 모두 주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내가 나의 생명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은 것으로 간주하기까지는 예수께서 나의 삶에 통치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삶에는 오직 하나 의 통치자 밖에 있을 수 없습니다. 즉, 자신이냐,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냐 입니다. 내가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죽을 때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수 있습니다. 값비싼 삶은 값비싼 희생을 요구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값 비싼 삶은 영원한 삶입니다. 영원한 죽음에 처한 인간을 영원한 삶으로 이끌기 위해 그래서 하나님은 값비싼 희생을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그것 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결코 값싼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값비싼 희생의 죽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값없이 받는 값비싼 은혜요, 대가없이 받은 고가(高價)의 선물이었 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따라가는 참 제자가 되시어 여러분의 삶이 가장 값있게 변화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 예수님을 따라간다고 해서 모두가 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없 습니다. 교회 안에도 예수와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따르는 자들이 많이 있어도 참된 제자,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린 참된 제자는 그다지 많 지 않습니다. 어느 사람이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고 대단한 결심을 밝 혔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9:58)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예수 믿는다고 방 한 칸, 쥐꼬리만한 권세 하나 보장해주기는커녕 있는 것 마저 몽땅 포기해야 되는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기꺼이 따를 수 있 겠습니까 어떤 부자 청년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 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부자 청년의 중심을 보시고 중대한 결단에 방해가 되는 모든 소유물을 처분하고 "나를 좇으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부자 청년이 가지고 있는 부(富)를 문제삼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데 있어 '장벽'을 제거하라는 뜻입니다. 그 장벽이 돈, 명예, 가족, 지식 등 무엇이든지간에 예수를 따라가기 위해 서는 과감히 벗어던지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람이 가난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거짓된 안전'에서 구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 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사람들은 부의 축적이 생명을 안전 보장하고 근심 걱정을 없애주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축적된 부를 잃을까 하는 염려만 더 할 뿐입니다. 가난 그 자체가 덕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예수를 따라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라면 가난도 불사하라는 것입니다. 부가 그러한 결단을 내리는데 있어 장애물이 된다면 그 부는 악한 것 입니다. 그 부자 청년은 자기 소유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소유를 다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 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된 사람의 아름다운 축복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빌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 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 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 결을 배웠노라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도 바울의 만족은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것에 있지 않고 바로 주님 께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축복들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이같은 경험들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앞선 그 부자 청년의 삶은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국에 대한 아는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 저 그의 삶은 소유한 돈으로 살 수 있었던 '먹고 마시는 것'으로 되어 있 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제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소유'였습니다. 그러나 만족이 없었고 또 만족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제삼는 것은 부가 아 니라 그 부에 대한 '사랑'입니다. "(마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6: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 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 라 (마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사람의 생명을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면 모든 것이 더하여지리라는 말씀입니다. 소유보다 존재를 더욱 더 귀하게 여기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시 기 바랍니다.
4. 마지막으로 이왕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으면, 이왕에 예수님을 따르 기로 작정했으면,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눅9:62)고 했습니다. 결단을 내리려거든 지금 여기서 철저히 계산하고 단호하게 결심하시 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요구하고 계시기 때 문입니다. "(눅9: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눅9:60) 가라사대 죽은 자들 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 하라 하시고 (눅9:61)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눅9:62) 예수께서 이르시 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 하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보면, 예수 믿는데 주저하거나 뒤돌아보는 것을 결코 용 납치 않습니다. 단호하고, 돌이킬 수 없는, 그리고 명확한 결단을 요구하 고 있습니다. 혹한을 피해 남쪽으로 떠나려고 준비하는 오리떼들은 늦은 가을 밤에 모든 준비를 갖추고 파티를 마련했습니다. 큰 농장에 모여 곡식을 잔뜩 주워 배불리 먹으며 내일부터 펼쳐질 고통의 장도를 위해 힘을 축적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출발의 순간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때 큰 오리 한 마리가 주저하며 말했습니다. "이 곡식 알들은 참 먹기가 좋으니 나는 좀 더 남아 이것을 충분히 먹 고 떠나기로 했어." 다른 동료들이 떠나고난 뒤 맛있는 곡식을 마음껏 먹은 그 오리는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가 며칠이 지났습니다. 오리는 매일 습관처럼 "내 일 나는 남쪽을 향해 날아야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행은 계속 미 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세찬 겨울 바람이 천지를 뒤덮고 더 이상 거기에 머무를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오리는 그제서야 비로소 날 개를 펴고 농장 마당을 가로질러 날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리는 날 수가 없었습니다. 살이 너무 쪄서 하늘로 날아 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결단의 순간을 상실한 오리는 남쪽으로 향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것입니다. 후회하는 오리에게 매서운 북풍만이 불어닥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농장 주인의 밥상에 오리요리가 되었습니다. 예수 믿기를, 철저히 믿기를 주저하거나 하루 하루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없는 인생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이 시대에 백성들에게 질책하여 부르짖습니다. "(왕상18:21).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여호수아가 여러분에게 결단을 촉구합니다. "(수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2차대전 당시 동남아시아에서 영국군들이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 포로들이 계곡의 큰 다리를 건설하는데 투입되었습니다. 포로 중 가장 높은 계급을 가진 니콜슨 대령이 부하들에게 모든 정성과 기술을 다하여 멋진 다리를 만들자고 독려했습니다. 그것은 성취의 기쁨을 포로들에게 가지게 함으로써 포로생활의 좌절감을 극복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다리가 완성된 후 니콜순은 몹시 놀랐습니다. 동맹군인 미군이 이 다 리폭파를 위한 특공대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들 나름대로 포로 생활 중에 하나의 성취감을 만족시키는 작품으로 다리 건설을 가볍게 생각했고, 실의와 좌절감을 임시로 극복하는 방법으 로써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적군 일본의 군사 목적 을 성공시키는 이적행위를 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포로들에게 성취감을 안겨주었던 <콰이강의 다리>는 무참하게 폭파되고 맙니다. 니콜슨 대령 은 뒤늦게나마 깨닫고 절규합니다. "내가 뭘 했지" 일순간에 무너져내린 콰이강의 다리의 처참한 모습에 군의관이 비틀거리며 "미친 짓이야, 미친 짓이야"를 외치며 영화 <콰이강의 다리>는 막을 내립니다. 일생일대의 최선을 다해, 그리고 포로들의 생명을 희생해 가며 완공한 <콰이강의 다리>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이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다리를 완공했던 니콜슨 대령처럼 "내가 뭘 했지"라며 후회막급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일생을 통해 이루어놓은 일들이 <콰이강의 다리> 처럼 일순간에 무너져 버리고 마는 어리석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은 없 습니까 선택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예수 믿 고 예수의 참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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