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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은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4:1-5)

본문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우리에게 당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충성 헌신 하라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제일되는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그를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롬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고후 5: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나는 희생될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희생이 크면 클수록 내가 힘쓰는 봉사는 크게 결실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살고, 내 마음대로 욕심부리고 싸우고 이해 타산에 빠지면 헌신한다는 그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구약성경 사무엘하 15장1절에서 18장33절까지에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놈이 아버지를 반역하다가 마침내 패전 당하여 죽고 마는 기사가 있습니다. 부자간에 싸움이 버러져 승패를 저울질 하였으나 아버지 된 다윗은 늘"나를 위하여 압살놈을 관대히 용서하라"고 부하들에게 명했습니다. 천하의 역적이었으나 아버지 다윗에게는 여전히 귀여운 아들 압살놈으로 보였습니다. 전세는 기우러져 압살놈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다윗은 마음이 아파 문루에 올라가 소리를 높여 " 내 아들 압살놈아, 내 아들 내 아들아"하고 통곡했습니다. 그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자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으면, 압살놈, 내 아들아!" 애곡하는 아버지의 슬픔!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헌신, 희생적 심정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그 백성이 몹시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내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서 말살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 백성의 죄를 용소하여 주옵소서"라고 빌었습니다. 바울선생은 자기의 몸이 희생이 된다 할 지라도 형제와 골육 친척의 구원을 지극히 갈망 했습니다. 롬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님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늘의 생명 책에서 자기의 이름이 누락되어도 자기 백성이 살았으면 하는 이 마음! 친구의 생명을! 남편의 생명을! 부모의 생명을! 대신하여 죽는 사랑의 실천! 이것이야말로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속죄의 희생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정형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생 이었지만 주를 따라 살 수 있는 이런 속죄의 헌신을 우리에게 허락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헌신의 주님에게 감사하면서 그 은혜의 빛을 갚기 위해서 충성스러운 생활을 계속 하기로 합시다.
1.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봉사합시다. 충성 이라는 말은 1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2 헬라어로 '피스토스' 영어로는 trustworthy. 인데 이는 믿을만한, 신실한, 신뢰하는, 확신하는, 진실한, 의 뜻을 지니고 있다. 민수기 12: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고린도전서 4장 2절에 보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오, 하나님의 오묘한 도를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또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로 하나님의 오묘한 도를 맡은 자입니다. 맡은 자로서 할 일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계2:10 “죽도록 충성한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계십니다. 신하가 국왕에게 충성하고, 종이 주인에게 충성하듯 왕이신 예수님에게, 주인되신 예수님에게 종과 같은 심정으로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을 오히려 자부했습니다.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갈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자세는 이래야 합니다. 바울이 말 한 것처럼 종과 같이, 아니 종으로서 충성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자신을 주 앞에 희생 하는 길이 됩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 입니다. 어떤 상전이 자기의 종인 흑인 한사람을 때리고, 차고, 치고, 하다가 나중에는 칼로서 죽일려고 했습니다. 그 때 마침 한 목사님이 이 광경을 보고 달려들어 말리다가 그 칼에 맞아 피를 흘리게 되었습니다. 악한 상전은 목사님의 피흘림에도 불구하고 분을 못이겨 다시 칼로서 종을 치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다시 가로 막아 자기 생명을 개의치 아니하면서 하는 말이 "왜 이러십니까 이 종은 주의 종이니 이러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후 재판문제가 일어나 목사님이 승소 했습니다. 간신히 생명을 건진 흑인 종은 그 은혜, 그 상처, 그 피의 고귀함을 무시할 수 없어 주의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 20절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게신 성령님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6장 15절은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자로 하여금 자기의 몸을 위하여 살지 않고 다만 대신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생명을 구원 받은 종이 주인에게 불충하는 것 만큼 의를 짓밟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2. 사랑의 정신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갈라디아 5장 13절은 "형제들아 너희를 자유하게 하시려고 부르셨나니 그러나 그 자유로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라 온 율법은 일언이 폐지하고 내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셨으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하리니 삼가 조심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생각없이 기분에 쏠려서 우왕좌왕 하다가 일을 끝이는 때가 많습니다. 서로 물고 먹다가 멸망 할 경우가 있습니다. 갈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갈 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우리가 교회에서 주의 일을 할 때에 오직 사랑으로 한 유기체를 이루어 맡은 위치에서 일하면 됩니다. 교우들의 실수를 덮어 주고 후배의 무능을 북돋우어 주고 게으른 자, 나태한 자를 격려해 주고 낙심한 자를 위로해 주고,. 한 사람이라도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서로 기도하면서, 상대의 결점을 나의 결점으로 알고, 상대의 실수를 나의 실수로 삼고, 상대의 과오를 나의 과오로 알고 서로 기도하면서 한 지체를 이룰 때에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물고 먹으면 지치고 시달려 피차 망하고 말 것입니다. 어느 곳에 두 형제 아이가 동네 아이 하나와 같이 셋이서 길을 걸어 가는데 갑자기 동네 아이가 곤드라저 죽어 버렸습니다. 형제 두 아이는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살인 누명은 두형제에게 씌워졌습니다. 이 두 형제는 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정에서 두 형제는 서로 살인의 누명을 자기가 지려고 고집했습니다. 재판장은 흑백을 가릴 수가 없어서 그 어머니를 불러 물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대답하기를 저 작은 아이(동생)가 죽인듯 하다고 했습니다. 재판장이 그 이유를 물은즉, 저 큰 아이(형)은 전처의 아이로서 이 살인조의 누명을 쓰고 죽으면 후손이 끊기겠으나 작은 아이는 내가 낳은 아이로서 다시 낳을 수 있으니 죽어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현명한 재판장은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 살인 할 만한 사람이 있을 까닭이 없다"고 단정하고 두 형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사랑은 허다한 죄를 가리우고 죽을 곳에서도 살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은 "제일 요긴한 것은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가리우나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타인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사랑으로 종노릇하고 또 종노릇하고 또 종노릇하여 사랑의 마음으로 충성 헌신 봉사를 계속합시다.
3. 실천적인 충성을 합시다. 로마서 12장 1절은 "그런고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이는 거룩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니 너희의 당연한 예법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봉사적 생활, 희생적 생활은 이론보다 실제로 행동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회생활, 가정생활,.을 하는데 비해서 교회생활은 그 얼마나 부족합니까 몸소 시간을 바치고, 금전을 바치고, 노력을 바치고, 지혜, 기술을 바치고, 그 전부를 바쳐서 친히 내라는 존재가 희생되어지는 곳에 봉사가 있어지는 것입니다. 내 몸 고기 덩어리를 베어 바쳐도 모자라 하는 산 제사의 희생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는 신앙인 이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신앙을 소유한 분 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의 제물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제물로 받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그의 마음을 보시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오늘 우리도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헌신의 모습을 본 받아 우리들의 실제 실제 생활 속에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 어떤 환경의 장애물도 뛰어 넘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 입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 입니까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제일의 덕목이 무엇 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 이라면 이를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 수년 전 한 아가씨가 스코틀랜드 주일학교에서 장난꾸러기 소년만 모인 반의 담임을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그중에서도 보비라는 소년은 다룰 수 없는 골칫거리 아이 였습니다. 주일학교에서는 이 여선생님에게 새 옷 한 벌을 가지고 보비의 집을 방문하여 계속 출석을 잘하도록 했습니다. 여 선생님이 보비의 집을 방문했을 때 보비는 씻지 않아 땟물이 흐르는 얼굴에 머리는 빗질을 하지 않아 헝클어져 있었고,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진흙에 뒹굴어 거의 걸레가 되어 있었습니다. 여선생님은 보비에게 새 옷을 갈아입히고 교회에 잘 나오도록 부드럽게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보비는 또 더러워졌고 교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선생님은 다시 보비를 방문했습니다. 이미 새 옷은 다 망쳐지고 걸레가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벌의 새 옷을 선물하고 잘 타일렀습니다. 그러난 여전히 보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선생님은 힘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주일학교 부장을 찾아가 이제 더이상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일학교 부장은 "용기를 잃지 말고 계속해 보십시오"하고 격려했습니다. 그 여선생님의 계속적인 노력으로 고삐 풀어진 망아지 같은 이 소년은 나중에 훌륭하게 성장하여 중국에 선교사로 갔습니다. 그가 바로 로버트 스미슨 목사 입니다. 그는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수백만의 영혼을 주께로 나오게 했습니다. 우리모두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 합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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