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더디, 듣기는 속히 (약1:19)
본문
저의 간절한 기도제목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설교를 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비해서 설교를 잘하여 많은 성도들을 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시내로 인도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직장에서나 사회생활 속에 말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돈 많은 사위보다도 말 잘하는 사위를 얻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다른 것은 다 형편없어도 말만 잘하면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다른 것도 좋아야 하지만 특히 돈 많은 것과 말 잘하는 것을 비교한다면 말 잘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한 마디의 가치와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말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대단한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말을 많이 하면 설득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상식입니다. 말을 많이 한다고 설득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말을 많이 하면 존경받을까요? 저는 깊은 생각 없이 말을 했다가 원수 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제가 인천에서 살 때 수술을 네 번이나 받고 요양 중에 있는 집사님 댁을 심방하게 되었는데 함께 동행 했던 권사님이 예배를 잘 드리고난 후에 그만 실언을 한 것입니다.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한번 받기도 힘든 수술을 네 번이나 받았을까? 집사님 회개해요!”하니 집사님이 화가 나서 되 받아쳤습니다. “권사님은 무슨 죄가 많아서 자식을 못 낳고 남의 집 자식을 입양을 해서 키울까? 권사님이나 회개하세요!”하고 대꾸하자 이때부터 두 사람이 서로 말하지 않고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목회할 때였는데 화해시키느라고 몇 달이 걸렸습니다.
정말 말을 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말을 잘하는 사람은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은 하나, 귀는 둘씩 주신 까닭은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절반만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더구나 한 입으로 먹어야 하며, 말해야 하기에 말하는 것이 듣는 것보다 1/3이나 적게 해아 하는 것입니다.
일언삼사(一言三思)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마디 말하기 전에 세 번은 생각하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내 뱉은 말은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지나간 시간’과, ‘쏟아진 물’, 그리고 ‘한번 내 뱉은 말’입니다. 잘 생각하고 말을 해야지 생각 없이 한번 말해 버리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구역임원님들께 부탁을 드립니다. 매주 금요일 구역지도자 성경공부 모임 때 구역예배를 위한 말씀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말씀준비만 할 것이 아니라 예배를 마친 후에 다과회 때 나눌 말을 함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차 한 잔 나누면서 나눌 주제를 준비해 가지고 가야 합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고 다과회 때 은혜를 다 쏟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두고 후회가 되는 말이 있습니다. 짜증스럽고 힘든 환경에서도 평안함과 온화함을 잃지 않는 유태인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늘 따뜻한 사랑의 말로 주위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곤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찾아가서 할머니는 어떻게 늘 사랑과 위로와 격려의 말을 남들에게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본래는 쌀쌀맞고, 매정하며, 남의 잘못을 늘 지적하는 사람이었습니다.”하면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독일 나치가 이스라엘을 점령했을 때 부모님은 독일군에 끌려가서 죽임을 당했고 당시 7세였던 남동생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 한 방에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남동생이 장난감 권총을 바닥에 떨어뜨리자 “이 바보 등신아! 너는 물건도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니?”하고 꾸지람을 하였답니다. 그러자 독일군이 와서 동생을 다른 방으로 격리 수용하게 되었고, 얼마 후에 동생은 가스실에 끌려가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동생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평생토록 후회가 되어 이때부터 할머니는 누구에게 말하든지 이것이 최후의 말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에겐 일평생을 두고 들어야 할 세 가지 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는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6절에는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이 말은 사람은 영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부터 양심을 주셨는데 임마누엘 칸트는 “양심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재판관이다”고 했고, 실존주의 양심철학자 하이덱카는 “사람은 양을 따라 살아야 올바른 사람이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가장 먼저 양심에서 가슴을 채찍질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양심에서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조금만 조용한 시간을 가지면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속담에 “좋은 양심은 부드러운 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양심으로 행동한 사람은 밤에 잠을 편안히 잘 수 있는데, 악한 양심으로 행동한 사람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4장 16절에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대할 때 양심에 거리낌 없어야 합니다. 디도서 1장 15절에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고 했습니다. 양심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화인 맞은 양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양심이 화인을 맞으면 의와 불의를 구분할줄 모르며, 선과 악을, 거룩과 더러움을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깨끗한 양심으로 선과 악을 잘 구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깨끗한 양심은 하나님과 늘 교통할 때 유지됩니다. 양심은 인생의 나침반과도 같습니다.
둘째는, 타인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해서 들어야 합니다. 이 말은 줏대 없이 끌려 다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할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 장애자의 99%가 청각 장애자입니다. 현대인의 결핍은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 것입니다. 특히 일류 대학출신들은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버드나 예일이나 옥스퍼드 같은 아이비 스쿨(이런 학교들은 역사가 오래되어 넝쿨담장이 벽을 덮어 그렇게 부름)출신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가지고 현장에 나와서 일하기에 1 엘리트의식
2 독선적이기에 융동성이 없고, 3 남의 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의 최고 성공한 경영자들이 오히려 적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중에 최고의 경영을 하고 있는 노스트롬 백화점이 있습니다. 이 백화점의 경영방법은 말단 사원의 의견도 최고의 경영자에서 건의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애정을 가진 청취자가 되십시오. 남의 말을 듣고 즉석 재판관이 되지 마십시오. 요즈음은 대심방 계절인데 A급 심방대원과 B급 심장대원이 있습니다. A급 심방 대원은 심방 가서 그 집 이야기를 잘 청취하고 기도해주는 사람입니다. B급 심방대원은 가서 듣지는 않고 내 말만 늘어놓는 사람입니다. 먼저 말하기 전에는 묻지 마십시오. 무슨 사정이 있어서 이사를 왔는지 교회를 옮긴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 법이 있습니다. 1 “아! 그렇군요.” 하고 장단을 맞추는 것입니다.
2 고개를 끄덕이는 것입니다. 3 말하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특히 눈을 바라보십시오
4 얼굴에는 약간 미소를 띠우는 것입니다. 5 경청의 자세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귀라도 기울여주십시오.
셋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일평생 들어야 할 말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말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할 생명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무식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가난한 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고, 요한계시록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고 했습니다. 구약에는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고, 신약에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의 쉐마는 “들으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21절에는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찬송가 366장에는 아일랜드의 여류작가 세실프랜시스 알렉산더가 가사를 쓰고, 미국의 스티븐 젠크스가 작곡한 찬송이 있습니다. 이 찬송은 성경 말씀을 읽는 중에 '나를 따라오라'는 음성을 세 번이나 듣고 만든 찬송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양심의 소리’와 ‘다른 사람의 소리’,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대단한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말을 많이 하면 설득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상식입니다. 말을 많이 한다고 설득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말을 많이 하면 존경받을까요? 저는 깊은 생각 없이 말을 했다가 원수 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제가 인천에서 살 때 수술을 네 번이나 받고 요양 중에 있는 집사님 댁을 심방하게 되었는데 함께 동행 했던 권사님이 예배를 잘 드리고난 후에 그만 실언을 한 것입니다.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한번 받기도 힘든 수술을 네 번이나 받았을까? 집사님 회개해요!”하니 집사님이 화가 나서 되 받아쳤습니다. “권사님은 무슨 죄가 많아서 자식을 못 낳고 남의 집 자식을 입양을 해서 키울까? 권사님이나 회개하세요!”하고 대꾸하자 이때부터 두 사람이 서로 말하지 않고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목회할 때였는데 화해시키느라고 몇 달이 걸렸습니다.
정말 말을 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말을 잘하는 사람은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은 하나, 귀는 둘씩 주신 까닭은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절반만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더구나 한 입으로 먹어야 하며, 말해야 하기에 말하는 것이 듣는 것보다 1/3이나 적게 해아 하는 것입니다.
일언삼사(一言三思)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마디 말하기 전에 세 번은 생각하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내 뱉은 말은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지나간 시간’과, ‘쏟아진 물’, 그리고 ‘한번 내 뱉은 말’입니다. 잘 생각하고 말을 해야지 생각 없이 한번 말해 버리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구역임원님들께 부탁을 드립니다. 매주 금요일 구역지도자 성경공부 모임 때 구역예배를 위한 말씀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말씀준비만 할 것이 아니라 예배를 마친 후에 다과회 때 나눌 말을 함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차 한 잔 나누면서 나눌 주제를 준비해 가지고 가야 합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고 다과회 때 은혜를 다 쏟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두고 후회가 되는 말이 있습니다. 짜증스럽고 힘든 환경에서도 평안함과 온화함을 잃지 않는 유태인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늘 따뜻한 사랑의 말로 주위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곤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찾아가서 할머니는 어떻게 늘 사랑과 위로와 격려의 말을 남들에게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본래는 쌀쌀맞고, 매정하며, 남의 잘못을 늘 지적하는 사람이었습니다.”하면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독일 나치가 이스라엘을 점령했을 때 부모님은 독일군에 끌려가서 죽임을 당했고 당시 7세였던 남동생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 한 방에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남동생이 장난감 권총을 바닥에 떨어뜨리자 “이 바보 등신아! 너는 물건도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니?”하고 꾸지람을 하였답니다. 그러자 독일군이 와서 동생을 다른 방으로 격리 수용하게 되었고, 얼마 후에 동생은 가스실에 끌려가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동생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평생토록 후회가 되어 이때부터 할머니는 누구에게 말하든지 이것이 최후의 말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에겐 일평생을 두고 들어야 할 세 가지 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는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6절에는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이 말은 사람은 영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부터 양심을 주셨는데 임마누엘 칸트는 “양심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재판관이다”고 했고, 실존주의 양심철학자 하이덱카는 “사람은 양을 따라 살아야 올바른 사람이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가장 먼저 양심에서 가슴을 채찍질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양심에서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조금만 조용한 시간을 가지면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속담에 “좋은 양심은 부드러운 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양심으로 행동한 사람은 밤에 잠을 편안히 잘 수 있는데, 악한 양심으로 행동한 사람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4장 16절에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대할 때 양심에 거리낌 없어야 합니다. 디도서 1장 15절에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고 했습니다. 양심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화인 맞은 양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양심이 화인을 맞으면 의와 불의를 구분할줄 모르며, 선과 악을, 거룩과 더러움을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깨끗한 양심으로 선과 악을 잘 구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깨끗한 양심은 하나님과 늘 교통할 때 유지됩니다. 양심은 인생의 나침반과도 같습니다.
둘째는, 타인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해서 들어야 합니다. 이 말은 줏대 없이 끌려 다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할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 장애자의 99%가 청각 장애자입니다. 현대인의 결핍은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 것입니다. 특히 일류 대학출신들은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버드나 예일이나 옥스퍼드 같은 아이비 스쿨(이런 학교들은 역사가 오래되어 넝쿨담장이 벽을 덮어 그렇게 부름)출신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가지고 현장에 나와서 일하기에 1 엘리트의식
2 독선적이기에 융동성이 없고, 3 남의 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의 최고 성공한 경영자들이 오히려 적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중에 최고의 경영을 하고 있는 노스트롬 백화점이 있습니다. 이 백화점의 경영방법은 말단 사원의 의견도 최고의 경영자에서 건의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애정을 가진 청취자가 되십시오. 남의 말을 듣고 즉석 재판관이 되지 마십시오. 요즈음은 대심방 계절인데 A급 심방대원과 B급 심장대원이 있습니다. A급 심방 대원은 심방 가서 그 집 이야기를 잘 청취하고 기도해주는 사람입니다. B급 심방대원은 가서 듣지는 않고 내 말만 늘어놓는 사람입니다. 먼저 말하기 전에는 묻지 마십시오. 무슨 사정이 있어서 이사를 왔는지 교회를 옮긴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 법이 있습니다. 1 “아! 그렇군요.” 하고 장단을 맞추는 것입니다.
2 고개를 끄덕이는 것입니다. 3 말하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특히 눈을 바라보십시오
4 얼굴에는 약간 미소를 띠우는 것입니다. 5 경청의 자세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귀라도 기울여주십시오.
셋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일평생 들어야 할 말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말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할 생명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무식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가난한 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고, 요한계시록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고 했습니다. 구약에는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고, 신약에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의 쉐마는 “들으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21절에는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찬송가 366장에는 아일랜드의 여류작가 세실프랜시스 알렉산더가 가사를 쓰고, 미국의 스티븐 젠크스가 작곡한 찬송이 있습니다. 이 찬송은 성경 말씀을 읽는 중에 '나를 따라오라'는 음성을 세 번이나 듣고 만든 찬송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양심의 소리’와 ‘다른 사람의 소리’,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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