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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삶을 비추는 거울 (시19:3-4)

본문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구석 구석 울려 퍼지고 온 세상 땅 끝까지 번져 갑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두고 말의 잔치가 벌어진 듯하다, 말의 홍수이다 라고 비유합니다. 이러한 비유는 아마도 장마철 홍수때 사방천지가 물이지만 가장 귀한 것이 물 인것처럼, 지천에 깔려있는 말 속에 우리가 묻혀 있기는 하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가치있고 힘을 공급하는 영양분 있는 말 을 찾아보기가 쉽지않은 현실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에서 달려나왔다고 해서 모 두 말의 온전한 자기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말(言)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교량역할을 하고, 만남의 의미를 채우며 그 깊이를 이루어가는 계기 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람의 입을 통하여 나오는 모든 말이 언제나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때로는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 칼이 되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끝모를 좌절에 빠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여기 저기에서 많은 말이 오고 가지만 남는 것은 허허로운 마음이요 안타까움일 뿐인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말을 말아야, 말을 접 어두어야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차라리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듣지 않는 것이 나을뻔한 말이 많은 세상은 그 자체로 안타까움입니다. 말의 고향은 침묵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침묵 에서 건져낸 말은 그 속에 책임성을 간직합니다. 삶의 온갖 체험은 다름 아닌 침묵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진실된 말이 사람의 입에서 나오기까지 흘린 땀과 눈물, 그리고 진실을 위한 싸움, 이 모든 것이 침묵의 밭 입니다. 이 밭에서 진실되고 정의로운 말을 수확하게 됩니다. 실로 침묵은 말에 힘과 풍부한 삶의 결실을 가져다 줍니다. 침묵 속에서 삶으로 영글기도 전에 쉽사리 풋 과일을 따내듯이 말을 내뱉는 다면 모두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못합니다. 말은 삶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삶을 제외하면 말이라고 하는 것은 겁데기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치열하게 싸우며 땀을 흘 릴 의지가 없는 말은 애초 빈약한 소리나 잡음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말을 한다는 것은 막 연하게 소리를 내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진지한 생각이라는, 책임있는 삶의 태도라는, 기꺼 이 흘리는 땀과 온갖 노력이라는 자양분이 없으면 말은 힘을 갖지 못합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사실 은 말이 단순하고 측흥적인 감정을 그때 그때 마다 분출하는 도구에 불과하지는 않다는 것 입니다. 말은 삶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말을 통하여 그 사람의 삶을 바라볼 수 있고, 삶의 내용을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과 무관한 말은 공허할 뿐입니다. 많은 경우 자신의 삶과는 상관없 이, 애초 자신의 삶의 영역으로 가져올 생각없이 말을 무책임하게 내던집니다. 매번 그것이 모두에게 아픔이되고 오히려 서로에게 나아가는데 장애가 되는데도 이러한 무책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 우를 목격합니다. 용기가 없어서 일까요 땀을 흘릴 용기,기꺼이 싸우며 책임지는 용기를 내지 못해 서 일까요 모든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책임을 지지않는 말의 홍수 속에서 가장 가슴아픈 일이 벌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시편 본문은 야훼의 말 을 소개하면서, 말이라는 것이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니 라는 사실 을 명백하게 나타내 줍니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구석 구 석 울려 퍼지고 온 세상 땅 끝까지 번져 갑니다. 이 글을쓴 저자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해방을 이루시는 야훼의 움직임을 읽었고, 바로 그것이 다름아닌 야훼의 말 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야훼의 말 은 그의 진실하고 정의로운 움직임과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입니다. 달리말해 야훼의 말 이 곧 그의 움직임이며, 해방의 역사를 이루시는 일련의 움직임이 곧 그의 말인 것입니다. 야훼 여호와 하나님의 말이 들리는 것 같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의 땅에서 숨으신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지만, 끝내 온 세상 땅끝까지 구석 구석 울려 퍼지는 것은 바로 야훼 하나님의 말인 것입니다. 야훼의 정의로운 역 사는 끝내 밝혀지고 맙니다. 히브리 민중들은 좌절하기도 하고, 모멸감에 허덕이기도 하였지만 결국 그들은 야훼의 정의로운 움직임을 목격했고, 그 움직임 속에서 울려퍼지는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 던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의 말이 힘이 있는 것은 바로 그 말이 위치하는 곳이 구체적인 역사의 마 당 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말이 즉흥적인 감정의 발산이나, 가벼운 콧노래 가 아니라, 그의 책 임있는 움직임 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야훼 하나님은 우리의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말하십니다. 우리의 귀는 열려있어야 하고, 역사 속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신문을 읽으면서, 또한 이 어그러진 세상을 바라보 면서, 그 속에서 우리를 향한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을 세우기 위해 움 직일 때, 그 움직임 속에 야훼의 말이 있습니다. 야훼의 말은 다름아닌 우리의 정의로운 삶 속에 자 리잡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이 역사를 통하여 움직이시는 야훼의 정의로움이 곧 그의 말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살아있는 야훼의 말을 담아내야 합니다. 다시말해 우리의 움직임 속에 야훼의 움 직임을 담아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말에는 삶을 담지 않으면 않되고, 우리의 삶은 야훼 하나님의 정의로운 움직임을 그 내용으로 삼아야 합니다. 야훼를 역사 저편에서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역사 속에서 만나며, 그의 말을 우리의 역사 구석 구석에서,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땅에서 읽어낼 때, 그것이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신앙고백 하 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경험 속에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 속 에 우리를 불러내시며, 우리의 정의로운 움직임 속에 야훼 하나님의 움직임을 담으신다는 고백! 말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금 깊이 있게 고민하며 생각해야 할 것은 말이라는 것이 곧 책임있는 삶 을 의미한다는 것과 우리의 삶 속에서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내야 한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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