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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1:14)

본문

오늘 분문인 요한복음 1장 14절을 다시 읽어보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20세기의 탁월한 신학자라고 하면 칼바르트를 들 수 있다. 칼 바르트의 신학을 말씀의 신학이라고 한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는 교회교의 학(Church Dogmatics) 인데, 그는 이 책에서 말씀을 세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기록된 말씀으로서 성서, 다음은 계시된 말씀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세 번째는 선포되어지는 말씀으로서 설교가 그것들이다. 이 세가지의 중심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말씀의 신학인 칼 바르트의 신학은 그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오늘 본문은 칼바르트 신학의 근거이다. 즉 칼바르트의 말씀의 신 학은 오늘 본문인 요1:14을 확대 해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본문 요1:14의 핵심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선언이다. 말씀은 이미 우리가 살펴보았다. 말씀은 모든 존재의 근거이다. 말씀이 없이는 시간도, 세계 도, 역사와 문명과 문화도 있을 수 없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모두 말씀으로 말미암아 존재했고, 말씀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고 발전한다. 인간의 행복도, 인간의 생명도, 인간 행위의 가치도 말씀으로 말미암아 완성 되고, 그 능력과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요1:1-3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 라. 이 말씀이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 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 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 말씀은 생명으로, 빛으로 이 세계에 이미 오셨지만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했 고, 또 받아들이지도 못했고, 믿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사람이 죄를 짓고 타락 한 이후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죄로 말미암아 영적인 세 계에 눈이 어두어진 사람은 이제 오관(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이라는 감각 기관을 통하여 경험하는 세계 이외에는 볼 수 없게 되었다. 현미경으로 보아도 감각기관의 한계 안에 있는 것이요, 망원경으로 보아도 감각기관 안에 있을 것 일 뿐이다. 더 나아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존재의 근거요, 성장과 발전의 능력이요, 역사와 성장의 목표인 말씀을 알지도 못했고, 또 말씀을 믿으려 하지도 않았고, 받아들이려 하 지도 않았다.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말씀, 느끼지 못하나 모든 존재의 운행과 성장과 발전 을 간섭하는 말씀, 인간과 세계와 역사의 궁극적 목표인 말씀, 이 말씀과 비슷 한 개념을 가진 헬라철학의 용어가 있었는데, 이것이 로고스 라는 말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모든 존재의 근거이시요, 창조의 능력이시 며, 세계와 역사의 운행자이신 말씀, 곧 하나님을 헬라철학에서 사용하고 있던 로고스 라는 철학적 용어를 빌어 표현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요한복음을 읽는 사람들은 헬라의 철학적 분위기에서 살았고, 동시에 로고스 라는 개념과 용어를 거의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이 말씀, 곧 로고스가 육신이 되었다고 선언한다. 로고스는 보이지 않은 존재요, 육신은 보이는 존재이다. 로고스는 감각의 한계 밖에 있는 존재요, 육신은 감각의 한계 안에 있는 존재이다. 로고스는 천상의 존재라면 육신은 지상의 존재이다. 로고 스는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면 육신은 더럽고 부끄럽고 무가치한 존재이다. 그런데 이 로고스가 육신이 되었다고 선안한 것이다. 여기에는 두가지의 큰 진리 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는 복음은 말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전도는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설명해도 잘 모른다. 그래서 복음은 말로 전하기는 하지만 말로 만 전하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앙이 전해지는 것은 눈에 보이는 구체적 실체를 통해서 전해진다. 그래서 어느 누구나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어 느 누구나 기독교 신앙을 설명할 수 있다. 나는 비록 더럽고 무가치하고 부끄러움 투성이지만, 내 안에 계신 말씀을 보십 시오. 내 안에 있는 기독교 신앙을 보십시오. 내 안에 복음이 들어온 변화된 나 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십시오. 나는 비록 보잘 것 없지만 말씀으로 말미암아 변 화된 나의 모습, 나의 생활, 나의 인생관과 가치관 세계관을 보십시오.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 고, 그 때에 복음으로 말미암아 나에게 넘치는 은혜와 진리가 나를 바라보는 자 를 적시고, 나를 바라보는 자에게 진리를 알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 증거 요, 전도이다. 이런 이유로 한 사람의 불신자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차고 넘치는 은헤와 진리를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러분, 신앙을 말로만 설명할려고 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말씀이 있 게 하십시오, 나에게 말씀으로 말미암은 은헤가 있게 하십시오. 나에게 말씀으 로 말미암은 진리가 충만하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역사하는 능력이 될 것이다. 우리가 전하는 신앙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우리가 전하는 진리의 말씀은 어두움에 갇혀있는 자들을 밝은 생명의 빛으로 나 오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왜 보이는 사람이 되셨는가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설명해도 알 수도 없고, 깨닫지도 못하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하고, 저들을 향한 하나님의 복된 약속을 확인해 주었는 가 그러나 저들은 알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고, 보지 못했다. 그래서 빛은 비추 이되 빛을 거부하고, 그 빛을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약 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빛을 영접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 이유는 저들 이 영적인 세계,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오직 육 적인 감각기관을 통해서만 알고 느끼고, 이렇게 되는 것만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되셨다. 그것도 저들이 아무 장애없이 보고 느끼고 들을 수 있는 육신이 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복음과 기독교 신앙을 말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으 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고 하지만, 이 것을 착각하면 안된다. 여러분, 복음과 기독교 신앙은 말로만 설명되어지는 것 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육신이 되셔야만 하지 않으셨나 육신이 되 지 않으시고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보게 하실 수 없었고, 육신이 되지 않으시 고는 당신의 은혜를 끼칠 수 없었고, 육신이 되지 않으시고는 신령한 참된 진리 를 설명하실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육신이 되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가 감히 말로만 복음을 설명하고, 말로만 신앙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요, 불신앙이다. 기독교를 잘 모르는 것이요, 하나님을 잘 모르는 것이다. 복음의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복음과 신앙을 설명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 이유는 말씀이 불신자들이 볼 수 있는 내 생활 속에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불신자들이 볼 수 있는 내 행동 속에 있기 때문이다. 불신자이든지 신자이든지 나를 보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고, 어느 누구든지 나를 보는 자는 차고 넘치는 은혜와 진리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들이 나로 말미암아 은혜를 알게 되고, 신령한 진리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아무리 더러운 것이라도 말씀이 임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육신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사르크스 이다. 이 말은 몸이 아니다. 몸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소마 라는 말이다. 사람은 더욱 아니다. 사람이라는 말은 헬 라어로 안트로포스 이다. 그러면 육신이라고 번역된 사르크스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 이는 살 을 말한다. 즉 고기 를 말한다. 고기는 물질이다. 헬라철학은 물질은 가장 더럽고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헬라철학의 영향 을 받아 만들어진 영지주의라는 초대교회의 이단이 있었다. 이들은 물질을 얼마 나 부끄럽게 생각했던지, 성경을 정할 때 구약성경과 구약성경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마태복음을 성경이 아니라고 말하고, 이들을 성경으로 받아들이기를 거절 했다. 그 이유는 구약의 하나님은 물질의 세계를 만들었기 때문에 악한 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헬라철학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던 영지주의 이단들은 여호와 하나님도 거부하고, 구약성경도 거부하고, 구약을 많이 인용한 마태복음도 거부하고, 누가복음은 받아들이되 구약의 인용구절은 삭제한 자기 나름대로의 복음서와 바울 서신만을 성경이라고 억지를 부렸던 것이다. 그 이유는 물질이 부끄럽고 물질이 더럽기 때문이다. 이렇게 헬라철학은 물질을 부끄럽고 무가치 하고 더러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서를 기록하면서 가 장 거룩하고 신성한 로고스(말씀)가 가장 더럽고 무가치하고 부끄러운 육신(고 기, 물질)이 되었고, 이 분이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했다.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볼 수 없었던 신성하고 거룩한 말씀이 비록 더럽고 무가치하고 부끄러운 물질이지만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머무르게 되자, 볼 수 없었던 말씀을 사람이 볼 수 있게 되었고, 더럽고 무가치하고 부끄러운 물질 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었고, 그를 바라보는 자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게 되고, 결국 거기에서 은혜와 진리가 넘쳐나와 성도들을 적시고, 그를 바라보는 성도들은 은혜와 진리가 차고 넘치는 축복을 누 리게 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행복한 일인가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여러분, 나는 배우지 못했다고 자신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했다고 자신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건강하지 못 하다고 자신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이 있는가 심지어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자신을 부끄러워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러나 낙심하 거나 부끄러워 하지 말자. 지금 내 모습이 아무리 부끄럽다고 하더라도 내 안에 말씀이 계시면, 내 안에 신앙이 있으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나는 가장 자랑스럽고 영광스럼 존재가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자가 되며, 넘치는 은혜와 진리로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자가 된다. 가장 더럽고 무가치하고 부끄러운 물질 속에 말씀이 들어오실 때 그 물질은 더 이상 더러운 물질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독생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과 사단의 아들은 겉모양이 달라서 가 아니다. 그 안에 말씀이 있느냐, 그 안에 신앙이 있느냐, 그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가, 그 안에 성령님이 역사하시는가에 따라 구별되는 것이다. 그 안에 말씀이 있으면 그는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세상을 향기로 가득채우는 그리스도이 향기가 되는 것이다. 1985년 5월15일.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50세의 시각장애인이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인 전재경씨였다. 7살 때 안질에 걸려 맹인이 된 그는 좌절하지 않 고 "암흑세계"를 극복하고 영광스런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국 유학시 절, 철학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맹인전용 도서관에 가기 위해 매일 세번 지하철 을 갈아타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20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에게 늘 힘이 되었 고, 그에게 용기를 주었던 말씀은 에베소서 2장 10절이었다. "우리는 그의 만드 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는 말씀 이었다. 정상인도 도전하기 어려운 위대한 일을 그는 맹인이라는 결정적인 장애 를 이기고 승리하게 한 것은 그 안에 믿음이 있었고, 그 안에 말씀이 있었기 때 문이다. 이렇게 한없이 부족한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 신앙과 말씀이 있으면,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넘 치는 은혜를 누리고,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도 내 안에 말씀이 채워지기를 기도하자. 그리고 헌신하자. 신앙이 내 생활을 인도하게 하고, 말씀이 나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성령님께 기도하며 도움을 구하자.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 을 보여주며, 나를 바라보는 자에게 넘치는 은혜로 적셔주고, 진리를 깨달아 아는 자리로 나아오게 하는 기쁨을 주자. 지금 상황이 어렵다고 낙심하지 말자. 이 보다 더 어려운 처지와 형편에 처했어도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의 능력과 신 앙의 담대함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했고,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 주었으며, 장차 임하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추어 주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활을 채우는데 더 열심을 품고, 그 능력으로 승리하자. 주의 은혜와 진리가 여러분의 삶과 심령에 차고 넘치는 충만함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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