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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1: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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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을 보는 관점에 따라 성탄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명 절로 보는 사람은 신나게 놀 생각으로 성탄절을 보고, 산타클로스 가 선물을 주는 절기로 보는 사람은 선물을 주고 받는 것에 신경 을 쓸것이고, 구주 예수님의 강림절로 보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오 심을 축하하려고 할 것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다른 각 도에서 기록했습니다. 마태복음은(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 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님으로 잉태된 것 이 나타났다는 말로 성탄절을 설명했고, 누가복음은 (눅 2: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눅 2: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 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성탄절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요한 복음은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 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는 말로 성탄절을 설명합니다. 오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겸손한 자리로 내려가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이신 예수님이 육체를 입음으로 낮은 자리로 내려 오셨습니다
1. 주님의 본래의 신분은 하나님과 같은 높은 자리였습니다. 말씀이란 말이 주님의 신분을 설명해 줍니다. 구약시대 예수님의 이름은 메시아에 곧 그리스도이고, 이 땅 에 탄생하신 후에 얻은 주님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란 태초에 가진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 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 나타난 태초는 하나님의 시간의 태초입니다. 반면에 창세기 1:1의 "태초"는 천지 창조의 시작입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시간의 태초에 '말씀' 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을 헬라어 로는 로고스(oJ lovgo") 라고 합니다. . 주석가 중에 어떤 이는 로고스는 헬라 철학에 나오는 "이디아"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예수님을 설명하는데는 맞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대변자입니다. 사람들은 말을 통해서 의사를 전달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수님 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만 물을 창조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 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2 육신이 되셨다는 의미는 비천과 고난의 자리로 내려가신 것 을 의미합니다. (창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 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사람인 저가 육신이 ㄷ다는 말은 타락 했다는 말이 됩니다.(창6:3) 예수님이 육신을 입었다는 것은 겸손을 의미합니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 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은 가난한 가정에 태어 났으며, 탄생한 곳은 여관집 마구 칸이며, 구유를 요람처럼 사용하셨습니다. (눅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 니라 하더니 거룩하신 주님이 이런 천한 몸을 입으셨다는 것은 상상을 초 월한 일이기 때문에 초대교회 시대에 도케비안 파라는 이단이 일 어나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천한 사람이 되실 수 없다"고 말하면서 몸을 입고 오신 것이 아니라 허깨비처럼 보였을 뿐이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요일 4: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일 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우리는 육체를 입은 주님을 섬길 때 더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이유를 더 깊이 알고, 감사 드려야 하고, 몸 을 입고 땅에 오신 주님께 무릎 꿀어 경배 드려야 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은 우리가운데 거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운데 천막을 치셨다는 의미입니다. 주민등록을 하늘에서 땅으 로 옮긴 것을 의미합니다. 성탄절은 겸손히 우리가운데 거하시는 주님께 감사 드리는 절기가 되게 합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은
둘째, 하나님을 보여주는 새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나타내신 방법이 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1. 구약 시대는 하나님 자신이 직접 영광과 위엄으로 나타나셨 습니다. 하나님께서 와 이스라엘 민족에게 나타나실 때 (출 19:16)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 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출 19: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 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섰더니 (출 19: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 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 게 진동하며 (출 19: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이것은 위엄과 권위로 나타나심으로 백성들이 가까이 하지 못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2. 말씀이 육신이 되심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친근감을 갖 고 가까이 나아가게 했습니다. (요 1:14)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 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 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예수님을 보는 것은 곧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요 14: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요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 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 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3. 지금은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보게 하시므로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육체를 입은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사시면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새방법 이였습니다. 우리는 그 만큼 축복을 받은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새 포장 법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안팎을 보면, 안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밖에는 육체 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포장술입니다.
1. 예수님의 포장의 내부는 신성입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영광과 은혜와 진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말씀이신 주님이 인간의 몸으로 포장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은 예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요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더라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2. 예수님의 포장의 외부는 육신입니다. 육신이 예수님의 외부포장입니다. 유대 사람들은 예수님의 외부만 보고 평가를 했습니다. (마 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 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막 6: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십니다. 사람들은 내부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외부만 꾸미려고 합니다. 여자들은 화장과 옷으로 꾸미려고 하고, 남자들은 위세와 허풍으로 꾸밉니다. 사람 안에는 거짓과 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외모를 꾸밀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비행기 여행때도 정장을 하지만 미 국 사람은 귀빈들도 허술한 복장에 넥타이도 매지 않고 입국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들은 비행기 여행에 편리한 복장으로 여행 을 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문화라 할 수 있지만 미국 사람의 배후 에는 미국이라는 큰 나라가 배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외부를 꾸미려고 하지 말고 내부를 꾸며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복음의 외부를 허술하게 포장했습니다. 사람의 포장방법은 내용이 안 좋아도 외부를 좋게 만들면 성공 하지만 내용이 좋아도 겉을 좋지 않게 하는 것은 실패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밖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 은 외부를 허술하게 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 들은 스스로의 꾀에 빠지게 만듭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 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요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 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 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은 지식 때문에 예수님을 거부했 습니다. (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외 형을 보고 삼을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꾀 때문에 축복을 놓 쳐 버렸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 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그들은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은혜 위에 은혜를 받습니다. (요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탄을 통해 많은 은혜를 얻었습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 리석게 보인 복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더 많이 전하여 낙담 중 에 있는 우리 민족에게 성탄이 소망이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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