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사신다 (사52:7-10,히1:1-4,요1:1-14)
본문
어느 추운 겨울, 함박눈이 몹시 내리는 성탄절 날이었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남편 따라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의 아내는 예수 탄생에 대한 의문을 계속 던 졌습니다.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실 수가 있지요 난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을 수가 없어요!" 남편은 아내에게 여러 가지 예를 들어 계속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집 문 앞에 이르렀을 때에, 좀 안타까운 광경을 보게 되었 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있는 까닭에, 참새들이 먹이를 얻지 못하고 비실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재빨리 집에 들어 가서 먹이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참새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나, 참새들은 남편이 던져준 먹이를 쳐다보지도 않 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남편은 실망해서 "새들아! 난 너희를 해치려 한 것이 아니다. 이걸 먹지 않으면 너희는 굶어 죽게 될 거야!" 하고 외쳤 습니다. 하지만, 새들이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날아가는 새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내 뜻을 너희에게 어떻게 전하면 좋겠니 내가 새가 되기 전에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로구나!"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내는, 순간적으로 진리를 깨닫게 되 었습니다. '그렇지! 주께서는 인간에게 계속 사랑을 배풀었지 만, 인간들은 그 품을 떠났던 것이다. 인간이 주의 사랑을 깨 달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께서 인간으로 오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십자가로 표현하셨던 것이다.' 아내는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사셨으니,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했다(요1:14)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세 가지 내용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말씀 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 그분이 우리와 함께 사셨다는 것, 그 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했다는 것입니다. 1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는 말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을 지니 신 예수님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왜 오셨습니까 무슨 목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되셨 습니까 그것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깨 닫게 하시려고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많은 사랑을 인간들에게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하시고,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2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셨습니다. 우리와 마찬 가지로, 인간이 겪어야 할 모든 과정을 다 겪으셨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서 우리를 호령하며 통치하신 것이 아닙니다. 밑바닥으로 내려오셔서,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으시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셨습니다. 그 당시, 가장 천한 여자였던 막달라 마리아까지, 가까이 두고 사귀셨습니다. 3그러나, 그의 성품과 인격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 큼 고귀해서,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알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예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진리였고, 또한 그의 삶은 진실 그 자체였 습니다. 거짓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진리와 사랑의 화신(化 身)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은 이 어둡고 캄캄한 세상에 위대한 빛이 되셔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셨습니다. 요한복음 기 자는 말하기를,우리는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혜를 입 었으며, 한없는 복을 받았다(1:16)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 예수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는 동안, 우리 인간에게 많은 진리와 은총을 베푸심으로써, 그 크신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1.이 진리의 빛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그분이 오셨을 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분이 자기 땅에 오셨으나, 백성들은 그분 을 영접하지 않았다(요1:11)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비극입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신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하건만, 백성들은 그 뜻 을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치 새들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듯이, 사람들은 주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되어 오셔서, 인간의 말로 진리를 전파했습니다. 그냥 말씀만 전한 것이 아니라, 여러 기적을 보이시고 사랑을 실천하심으로써, 당신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얼마나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오늘날에도, 대다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멀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인간의 소망이나 기쁨이 될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평화와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1그 어둔 세상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달러 값이
2,000원이 넘어섰습니다. 더 이상 오르 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니, 달러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달러 값이 올라가면 기름 값도 뛸 것이 고, 이어서 대중 교통비와 물가가 덩달아 올라갈 것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사건이나 사고가 없는 날이 없 고, 환난이나 시련은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도 그렇고, 가정이나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합니다. 죄와 고난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떠나기를 원치 않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바벨론에서 빨리 떠나라(사 52:11)"고 외쳤습니다. 바벨론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 바벨 론이 곧 멸망할 것이니,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다 버리고 속 히 떠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영적 해방을 뜻합니다. 어둡고 더러운 죄에서 벗어나, 빛이 되시는 주님 안에 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멸망당하지 않고 영원히 살 게 되는 것입니다.
2그러나 끝까지, 빛이 되시는 예수를 거부하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하 나는, 빛이 되시는 예수를 영접하면, 자기 죄가 드러나기 때 문입니다. 어둔 가운데 있으면, 무슨 죄를 짓든지, 그 허물이 감추어지기 때문에,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이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께서 그 죄악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 그 죄인도 함께 멸망한다는 사실입니다. 빛을 거부하는 다른 하나는, 예수를 영접하면 고통이 따르 기 때문입니다. 아기 갖는 일은 기쁜 일이지만, 그 아기를 품 고 있는 10개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하고, 그 아기를 낳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빛이 되시는 예수를 영접하면, 그러한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빛되신 영접하면 고통을 겪는 것은 사실이나, 그 이후에는 한없는 영광이 있습니다. 물론, 주를 영접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영광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빛되신 예수를 바로 영접하여, 이 영광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예수는 어둔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빛으로 오신 예수에 대하여 말하기를,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그 안에는 영생이 있고, 그 생 명은 모든 인류에게 빛을 주신다(1:3-5)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1창조주가 되시고, 진리와 영생이 되시는 분입니다. 예수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의 생 성 원리와 인간의 모든 비밀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이 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알고 계 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 된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2그 예수께서, 이 어둔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지금까지 어둡다고 표현한 그 어둠은, 죄를 의미하고 고난 과 시련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어둠의 끝은 멸망입니다. 이 처럼, 온 인류는 그 지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는, 세상 어둠 속에서 헤매는 영혼들을 구원하시려고,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 로써, 그 죄에서 벗어나 새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예수는 오 셨습니다. 비록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은 죄로 말미암아 고난 당하고 있지만, 예수는 오셔서 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새 인 생 길을 가르쳐 주시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믿음의 길을 온전히 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을,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예수를, 어찌 영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아직도 예수를 잘 몰라서, 바로 영접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믿는 자를 3자녀 삼으셔서 늘 동행하여 주십니다.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내가 기쁜 맘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 라. 성령님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찬송가 427장 3 절>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셨다'는 말을 성육신(成肉身)이 라고 하는데, 그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 서, 집을 짓고 우리와 함께 사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지엄하신 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이웃이 되어 우리와 함께 살아가시는 분입니다.그래서, 예수를 영접하고 믿음따라 살려는 사람들을, 적 극 도와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어찌 모른 체 한단 말입니까 이 제 우리는, 우리 이웃이 되어서 우리와 함께 사시려고 이 땅 에 오신 예수님을, 정말 기쁜 마음으로 맞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3.그 예수를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지금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친한 친구 가 무척 실망되는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친구를 계속 가까이 할 것이냐, 아니면 멀리 할 것이냐 그것이 고 민입니다. 물론, 친구가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고쳐 행한다면, 그 친 구를 용서하고 옛날처럼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구를 만나서, 지혜롭게 충고해 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친구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다면, 그 친구를 멀리하도록 해 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도 그 친구를 닮아갈 염려가 많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잘못 사귀면, 정말 위험합니다. 물론, 내가 먼저, 좋 은 친구감이 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교인들을 비난하기 전에, 내가 먼저 좋은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시려고,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려두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1이 예수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예수를 아무리 가까이 한다고 해도, 전혀 손해볼 일이 없 습니다. 오히려 가까이 하면 할수록, 배울 점이 많고 소득이 많습니다. 예수를 늘 가까이 모시고 산다면, 우리의 모습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진심으로 예수를 마음에 모셔들여야 합니다. 어쩌다 한 번씩 전화하는 것으로 끝나는 그런 친구가 아 니라, 매일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아주 친한 친구로 삼아야 합니다. 반면에,
2어둔 세상에서 빨리 떠나야 합니다. 가까이 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버려야 합니다. 물론, 사람을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가까이 해서 도움이 되지 않거나 죄를 짓게 될 경우, 그 모든 것을 과감히 청산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우리가 먼저, 주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죄에서 깨끗하게 되어, 철두철미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더러운 물건을 다 버리고 바벨론에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세상 죄를 그대로 지닌 채 신앙 생활을 하게 되면, 도무지 예수님을 가까이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어느 집사님이 담임 목사님께 따져 물 었습니다. "목사님, 성경에는 담배 피우지 말라는 구절은 없 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목사님은 "맞습니다. 그러니, 집사 님께서도 주저하지 말고 담배를 피우도록 하십시오. 단, 예수님께 감사 기도를 하고 피셔야 합니다." 그후, 그 집사님은 주저없이 담배를 끊었다고 하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주께서 원치 않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끊어버려야 합니다. 3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자녀된 본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말씀에 의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를 영접하 고 그 뜻을 따르고자 할 때, 이미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부여받게 됩니다. 그런고로,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본분을 다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서는,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세상은 멀리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서 주의 영광을 바라보도록 해야 합니다. 빛이 되시는 주를 따를 때에는, 고난도 함께 겪어야 한다 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 뒤에는 무한한 영광이 있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 곁에 계신 주 예수를 더욱 가까이 함으로써, 빛된 삶을 열심 히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셨습니다. 우리와 마찬 가지로, 인간이 겪어야 할 모든 과정을 다 겪으셨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서 우리를 호령하며 통치하신 것이 아닙니다. 밑바닥으로 내려오셔서,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으시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셨습니다. 그 당시, 가장 천한 여자였던 막달라 마리아까지, 가까이 두고 사귀셨습니다. 3그러나, 그의 성품과 인격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 큼 고귀해서,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알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예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진리였고, 또한 그의 삶은 진실 그 자체였 습니다. 거짓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진리와 사랑의 화신(化 身)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은 이 어둡고 캄캄한 세상에 위대한 빛이 되셔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셨습니다. 요한복음 기 자는 말하기를,우리는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혜를 입 었으며, 한없는 복을 받았다(1:16)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 예수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는 동안, 우리 인간에게 많은 진리와 은총을 베푸심으로써, 그 크신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1.이 진리의 빛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그분이 오셨을 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분이 자기 땅에 오셨으나, 백성들은 그분 을 영접하지 않았다(요1:11)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비극입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신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하건만, 백성들은 그 뜻 을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치 새들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듯이, 사람들은 주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되어 오셔서, 인간의 말로 진리를 전파했습니다. 그냥 말씀만 전한 것이 아니라, 여러 기적을 보이시고 사랑을 실천하심으로써, 당신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얼마나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오늘날에도, 대다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멀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인간의 소망이나 기쁨이 될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평화와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1그 어둔 세상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달러 값이
2,000원이 넘어섰습니다. 더 이상 오르 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니, 달러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달러 값이 올라가면 기름 값도 뛸 것이 고, 이어서 대중 교통비와 물가가 덩달아 올라갈 것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사건이나 사고가 없는 날이 없 고, 환난이나 시련은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도 그렇고, 가정이나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합니다. 죄와 고난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떠나기를 원치 않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바벨론에서 빨리 떠나라(사 52:11)"고 외쳤습니다. 바벨론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 바벨 론이 곧 멸망할 것이니,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다 버리고 속 히 떠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영적 해방을 뜻합니다. 어둡고 더러운 죄에서 벗어나, 빛이 되시는 주님 안에 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멸망당하지 않고 영원히 살 게 되는 것입니다.
2그러나 끝까지, 빛이 되시는 예수를 거부하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하 나는, 빛이 되시는 예수를 영접하면, 자기 죄가 드러나기 때 문입니다. 어둔 가운데 있으면, 무슨 죄를 짓든지, 그 허물이 감추어지기 때문에,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이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께서 그 죄악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 그 죄인도 함께 멸망한다는 사실입니다. 빛을 거부하는 다른 하나는, 예수를 영접하면 고통이 따르 기 때문입니다. 아기 갖는 일은 기쁜 일이지만, 그 아기를 품 고 있는 10개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하고, 그 아기를 낳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빛이 되시는 예수를 영접하면, 그러한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빛되신 영접하면 고통을 겪는 것은 사실이나, 그 이후에는 한없는 영광이 있습니다. 물론, 주를 영접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영광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빛되신 예수를 바로 영접하여, 이 영광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예수는 어둔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빛으로 오신 예수에 대하여 말하기를,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그 안에는 영생이 있고, 그 생 명은 모든 인류에게 빛을 주신다(1:3-5)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1창조주가 되시고, 진리와 영생이 되시는 분입니다. 예수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의 생 성 원리와 인간의 모든 비밀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이 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알고 계 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 된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2그 예수께서, 이 어둔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지금까지 어둡다고 표현한 그 어둠은, 죄를 의미하고 고난 과 시련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어둠의 끝은 멸망입니다. 이 처럼, 온 인류는 그 지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는, 세상 어둠 속에서 헤매는 영혼들을 구원하시려고,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 로써, 그 죄에서 벗어나 새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예수는 오 셨습니다. 비록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은 죄로 말미암아 고난 당하고 있지만, 예수는 오셔서 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새 인 생 길을 가르쳐 주시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믿음의 길을 온전히 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을,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예수를, 어찌 영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아직도 예수를 잘 몰라서, 바로 영접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믿는 자를 3자녀 삼으셔서 늘 동행하여 주십니다.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내가 기쁜 맘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 라. 성령님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찬송가 427장 3 절>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셨다'는 말을 성육신(成肉身)이 라고 하는데, 그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 서, 집을 짓고 우리와 함께 사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지엄하신 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이웃이 되어 우리와 함께 살아가시는 분입니다.그래서, 예수를 영접하고 믿음따라 살려는 사람들을, 적 극 도와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어찌 모른 체 한단 말입니까 이 제 우리는, 우리 이웃이 되어서 우리와 함께 사시려고 이 땅 에 오신 예수님을, 정말 기쁜 마음으로 맞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3.그 예수를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지금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친한 친구 가 무척 실망되는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친구를 계속 가까이 할 것이냐, 아니면 멀리 할 것이냐 그것이 고 민입니다. 물론, 친구가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고쳐 행한다면, 그 친 구를 용서하고 옛날처럼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구를 만나서, 지혜롭게 충고해 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친구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다면, 그 친구를 멀리하도록 해 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도 그 친구를 닮아갈 염려가 많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잘못 사귀면, 정말 위험합니다. 물론, 내가 먼저, 좋 은 친구감이 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교인들을 비난하기 전에, 내가 먼저 좋은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시려고,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려두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1이 예수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예수를 아무리 가까이 한다고 해도, 전혀 손해볼 일이 없 습니다. 오히려 가까이 하면 할수록, 배울 점이 많고 소득이 많습니다. 예수를 늘 가까이 모시고 산다면, 우리의 모습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진심으로 예수를 마음에 모셔들여야 합니다. 어쩌다 한 번씩 전화하는 것으로 끝나는 그런 친구가 아 니라, 매일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아주 친한 친구로 삼아야 합니다. 반면에,
2어둔 세상에서 빨리 떠나야 합니다. 가까이 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버려야 합니다. 물론, 사람을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가까이 해서 도움이 되지 않거나 죄를 짓게 될 경우, 그 모든 것을 과감히 청산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우리가 먼저, 주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죄에서 깨끗하게 되어, 철두철미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더러운 물건을 다 버리고 바벨론에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세상 죄를 그대로 지닌 채 신앙 생활을 하게 되면, 도무지 예수님을 가까이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어느 집사님이 담임 목사님께 따져 물 었습니다. "목사님, 성경에는 담배 피우지 말라는 구절은 없 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목사님은 "맞습니다. 그러니, 집사 님께서도 주저하지 말고 담배를 피우도록 하십시오. 단, 예수님께 감사 기도를 하고 피셔야 합니다." 그후, 그 집사님은 주저없이 담배를 끊었다고 하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주께서 원치 않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끊어버려야 합니다. 3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자녀된 본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말씀에 의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를 영접하 고 그 뜻을 따르고자 할 때, 이미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부여받게 됩니다. 그런고로,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본분을 다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서는,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세상은 멀리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서 주의 영광을 바라보도록 해야 합니다. 빛이 되시는 주를 따를 때에는, 고난도 함께 겪어야 한다 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 뒤에는 무한한 영광이 있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 곁에 계신 주 예수를 더욱 가까이 함으로써, 빛된 삶을 열심 히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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