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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왕성-(2 (행19:8-20)

본문

사도 바울의 에베소 복음 사역은 참으로 빛나고 찬란하였습니다. 엄청난 격전의 장소였습니다. 그야말로 사투, 혈투의 장소였습니다. 선교 역사상 참으로 멋진 한판 승부의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멋진 승리로 끝난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에베소는 유명한 사역의 발걸음으로 이어져 갔습니다. 바울의 3년 목회, 그 뒤에 그를 이은 디모데, 나중에는 사도 요한 그리고 그의 제자 폴리갑, 이레니우스로 이어져 갔습니다. 우리에게 오늘 주어진 본문은 에베소 회당에서(행 19:8)의 3개월간, 두란노 서원에서 2년간 사역(행 19:9-10)한 내용들입니다. 그가 에베소에서 3년간 목회했다는 사실(행 20:31)을 볼 때 또 다른 길에서의 사역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에베소 사역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 승리는 말씀의 왕성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20절에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고 하였습니다. 말씀의 왕성은,
I. 사도를 붙들어 줌에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5절에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 오매 바울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바울의 고린도 사역을 나타내는 부분입니다. 고린도와 에베소 사역은 꼭 마찬가지 역사(役事)였습니다. 참으로 중대한 표현입니다. 바울이 말씀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말씀이 바울을 붙잡았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바울을 붙잡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성령님께서 바울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른 성경에는 바울이 ‘성령님이 매여서’ 또 바울이 ‘성령님이 이끌리어’하는 계시 표현들을 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은 전도자의 생명입니다. 말씀이 힘이 있어서, 그 힘으로 전도자를 붙잡아 주고, 이끌어 주고, 말하게 하고, 행동하게 하였습니다.
Ⅱ. 에베소 복음 사역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에베소 사역은,
1. 회당 설교에서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19장 8절에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회당에서 ‘담대히 . 강론하며 권면했다.’고 하였습니다. 소신껏 설교하며, 설득력 있는 호소를 하였습니다. 3개월 동안 쉬지 않고 이 일을 연속했다고 하였습니다. 담대히 강론하고 권했던 내용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 안에 드러난 구원의 성취와 성령님의 강림, 복음의 전파, 예수의 재림 그리고 새 하늘 새 땅의 출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선포하신 첫 메시지의 주제였습니다(막1:15). 예수께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막 1:14). 구원의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 만민에게 천국의 복음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의 선교의 주제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것은 세상의 나라와 대조되는 것입니다. 그의 설교는 강론과 권면이었습니다. ‘강론’은 하나님 나라 본질을 자세히 풀어 가르치는 선언적 일면입니다. ‘권면’은 그 말씀을 듣는 청취자들로 하여금 받아들이도록 하는 호소력 있는 설득을 말합니다. 그 설교의 정신은 담대함이었습니다. 확신에 넘치는 뜨거움이었습니다. 반신반의하거나, 기연미연(其然未然)함이나, 불확실함이 아니었습니다. 결코 바울의 설교는 당시 헬라의 철학자들처럼 지껄이는 말쟁이들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하고 확실한 주제였습니다.
2. 두란노 서원에서의 설교였습니다(행 19:9-20). 회당에서의 바울의 설교는 악심을 품은 불신자들의 선동에 의하여 비방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행 19:9). 그러나 바울은 물러서지 않고 두란노 서원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복음이 나팔을 계속해서 불었습니다. 여기 ‘서원’이란 ‘학교’를 뜻합니다. 본래의 어원은 ‘여가’를 뜻하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헬라 사회에서는 학교가 ‘여가를 즐기는 장소’로 이해되었습니다. 이곳은 당시 헬라 철인(소피스트)들의 철학 강연 장소였습니다. 사도는 이곳으로 장소를 옮기고 여기서 무려 2년간이나 ‘날마다 강론’했습니다(행 19:9b). 이 어간에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은 막론하고 모두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설교하던 2년여 어간에 정말 ‘말씀의 왕성’이 일어났습니다.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 되었습니다(행 19:20). 이 어간에
(1) 세력 있는 말씀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행 19:9-10). 1 날마다 강론했다고 하였습니다(행 19:9)
2 2년 동안이나 계속된 강론이었습니다(행 19:10). 정말 장거리 경주와 같은 긴 전투였습니다. 3 두란노 서원에서 설교했다고 하였습니다(행 19:9). 이방 철학, 이른바 이 세상 초등 학문의 장소가 고상한 지식, 곧 복음의 광장으로 선용되었습니다.
4 그 말씀의 사역은 전 소아시아 지역에 큰 영향력을 주었다고 하였습니다(행 19:10). 에베소 지역 뿐 아니라 전 소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이 다 그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어간에 에베소교회가 설립되었을 뿐 아니라, 소아시아 여러 지대에 복음이 전파되어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예컨대 골로새교회(골 1:2), 라오디게아교회와 히에라볼리교회(골 4:13), 소아시아 일곱 교회(계 1:4) 등이 이 어간에 바울의 설교를 듣고, 은혜 받은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당시 에베소는 교통과 무역, 문화의 대중심지로서, 소아시아 여러 지역은 이곳을 중심으로 왕래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2년간이나 두란노 서원에 자리를 잡고 ‘하나님의 나라’를 강론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명백합니다. 그의 담대한 설교는 메마른 헬라 철학에 굶주린 수많은 영들에게 마른땅에 내리는 단비 같고 이슬 같았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가리켜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힘있는 군대가 그 세력을 떨치면서 그의 정복자의 판도를 넓히는 것과 같았습니다.
(2) 기적의 역사가 말씀 선포에 수반되었습니다(행 19:11-12). 사도행전 19장 12절에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손수건은 그가 장막업의 일을 할 때 흐르는 땀을 흡수하기 위하여 머리에 두른 수건이었습니다. 그의 앞치마 역시 일할 때 두르는 천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병든 자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가고 악귀도 도망쳤습니다. 이것은 결코 그 바울의 수건이나 앞치마에 병고치는 어떤 효능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의 옷자락을 만질 때 12년 동안의 혈루증이 떠난 것이나(막 5:28), 베드로의 그림자가 덮인 사람이 나은 사건과 비슷한 역사입니다(행 5:15). 세력 있는 바울의 메시지를 사모하고 확신하는 저들의 믿음의 고백에 이런 수단들이 동원된 것뿐입니다. 또한 세력 있는 영능의 말씀이 역사하는 곳에는 그 말씀을 신종케 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적의 역사까지 수반하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3) 미신과 사탄의 역사를 끝장내 버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 19:13-16).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와 그 일곱 아들들은 모두 마술사였습니다. 바울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악귀들을 축출하자 당시 마술사들과 이 부자(父子)들도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악귀를 추방하려 하였습니다. 그때 악귀들은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행 19:15)라고 하면서 달려들었습니다. 그러자 저들은 겁이 나서 벗은 몸으로 그 자리에서 도망치는 촌극도 일어났습니다(행 19:16). 세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강하게 전파되는 곳에는 참된 기적이 일어나고, 거짓된 사탄의 정체도 폭로가 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멋있는 한판 승부의 장면입니다.
(4) 그 결과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이 더 왕성하고 세력을 잡게 되었습니다(행 19:17-20). 이 승리는 1 공개적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17절에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라고 하였습니다. 말씀과 기적의 역사, 거짓된 마술사의 참패는 만인공지의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한편 구석에서 된 일이 아닙니다.
2 다 두려워했다고 하였습니다(행 19:17).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인식은 경외의 두려움으로 나타납니다. 3 주 예수의 이름을 높였다고 하였습니다(행 19:17). 이는 그가 세상의 구주요, 만왕의 왕이시요, 믿음의 주이신 증거입니다.
4 믿는 자들이 주께 모여들었다고 하였습니다(행 19:18). 5 그리고 저들의 죄를 자복했다고 하였습니다(행 19:18). 바로 이것이 구원 종교의 특색입니다. 많은 마술사들이 집단적으로 그들의 마술책을 모아 사람들 앞에서 불태워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 책값이 은 5만이나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약 1만 달러 상당의 값이 됩니다(행 19:19). 이것은 바로 저들이 회개하였다는 회개의 참된 열매가 됩니다. 말씀의 왕성!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은 결과입니다. 거대한 부와 미신의 도시 에베소! 온갖 세속의 첨단을 향하던 에베소! 바로 여기에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한 것입니다. 두란노 서원을 기지로 삼고 전 소아시아 지역을 향하여 복음의 포문을 열어 젖힌 것입니다. 그 결과는 승리였습니다. 말씀의 승리! 복음의 승리! 아니 주 예수의 승리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국 어느 대학의 강의 시간에 한 교수가 “모든 사람은 이 땅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집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한 가난한 학생이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그것은 말뿐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합니다. 어떤 사람은 백만장자의 아들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서 자라났는 데도 모든 사람이 평등하단 말입니까” 또 어떤 검둥이 학생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멸시받는 검둥이로 태어나지만 어떤 사람은 자유로운 백인으로 태어나니 이것이 어찌 평등입니까” 그리고 여기 저기에서 학생들은 제 나름대로의 주장들을 내세웠습니다. 이때 교수는 한참 동안 저들의 소리를 듣고 있다가 자기의 호주머니에서 1센트 짜리 동전을 한줌 끄집어내어 교탁 위에 흩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생들, 여기를 보십시오. 반짝이는 것, 광택이 없는 것, 찌그러진 것, 모두 가지각색이지만, 모두 1센트라고 하고 동일한 가치를 지니며, 동일한 왕의 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1센트 짜리 동전의 빛깔이 다르고 좀 찌그러졌다고 돈의 가치가 틀려집니까 그 가치는 동일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동일한 구원의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1센트의 동전이 아닙니다. 바로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민의 구세주로 보냈습니다. 유대인에게도, 헬라인에게도, 종에게도, 자주자에게도,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부자에게도, 빈자에게도,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흑인에게도, 백인에게도, 강자에게도, 약자에게도 예외없이 동일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인류가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인된 인류에게 똑같이 구원의 복음을 보냈습니다. 바로 세상 중의 2000년 기독교 역사는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복음 곧 주의 말씀을 받은 사람에게는 그 말씀이 살아 있어, 왕성하여 가고 있다는 기록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복음을 받은 사람은 그 인생이 영생의 영광으로 흥왕하여 갔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의 세력권 내에서 살았던 개인이나, 가정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예외없이 역사 속에서 왕성하였습니다. 부를 누리고, 빛을 뿌리고, 축복을 나누어 주고 살았습니다. 그 큰 이유는 그 말씀이 바로 예수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원한 기업의 보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 20:32)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개인의 삶 속에, 가정에, 교회와 민족과 국가 위에 날마다 말씀이 흥왕하여 왕성하는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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