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어긴 선지자 (왕상13:20-34)
본문
고대 이스라엘은 솔로몬 시대 이후에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남쪽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이 통치를 계속하고 북쪽은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이 왕이 되어서 통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북쪽 사마리아의 여로보암왕의 이야기입니다. 정권을 잡은 여로보암은 한가지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그동안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곤 했는데 이 예루살렘 성전이 남쪽에 있기 때문에 북쪽 의 자기 백성들이 혹 절기와 예배를 드리려고 남쪽으로 갔다가 영영 돌아오면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근심거리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북쪽의 임금 여로보암은 북쪽 땅에도 성전을 세워 놓으면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금송아 지 두 개를 만들고는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이라는 곳에 두어서 이곳이 성전이라고 백성 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이제 남쪽 예루살렘에 예배드리러 갈 필요가 전혀 없다. 꼭 어렵게 그 먼데 예루살렘까지 가서 예배를 드릴 필요가 뭐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전에 그렇게 명하셨다지만 사실 아무데서나 예배를 드리면 어떤가 또 두 번째로 금송아지 앞에다 제사를 드려라. 사실 보이지도 않는 여호와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금 덩어리가 최고 아니냐 사실 돈이 최고로 좋은 것이 아닌가 아무거나 인간에게 최고의 것을 섬 기면 되는 거지 꼭 내려가서 지성소 앞에 법궤 앞에서 섬길 필요는 없다. 또 세 번째로 꼭 레위 지파 자손 중에서만 제사장 해야 되나 아무나 해도 특별히 뭐 나쁠 것은 없다 그래서 그는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다고 했습니다. 왕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넷째로 예배드리는 절기도 자기 마음대로 정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 스라엘 사람들에게 지키라고 말씀하신 절기를 왕이 아무때나 정해서 지키도록 했습니다. 다 자기 마음대로 해 버렸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여로보암의 이 네 가지 죄악이 오늘 본문 바로 전장인 12장 25절로 33절에 그대 로 나와 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여로보암의 큰 죄입니다. 이처럼 여로보암은 한마디로 하나님이 말씀으로 하신 모든 것을 저버리고 이제자기가 마음대 로 정해 놓고 편의대로 하면 된다고 백성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정해 주신 것을 중 요하게 생각지 않고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고치고 자기의 말로 명령을 내렸습니다. 현대인들도 그러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내 생각에 괜찮다 생각되면 그렇게 해도 상관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 서 큰 죄입니다. 죄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이것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여로보암왕에게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선지자를 보내어서 경고하고 예언하십니다. 왕이 마침 자기가 세운 벧엘의 단에 분향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보냄을 받은 선지자는 외쳤습니다.
열왕기상 13장 2절입니다.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 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이와 동시에 그 하나님 말씀의 예조로 단이 갈라지며 그 위 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했습니다. 과연 그 단이 갈라지며 재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바로 그 때에 여로보암왕은 화가 나서 그 선지자를 잡으라고 손으로 가리키며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편 손이 말라서 거두지를 못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왕은 풀이 죽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선지자여 나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내 손으로 다시 성할 수 있도록 해 달 라 그러자 방금 말씀을 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왕의 손이 다시 회복 이 되어서 손을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한 번 깜짝 놀란 왕은 그 선지자에게 집에 가서 좀 쉬고 떡과 물과 예물을 주겠다고 제의 를 합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항상 먼길을 가야 하는 손님들에게는 음식을 대접해서 보내는 좋은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거절하면서 말을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하여 이 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열상1 3:9) 그리고는 그 선지자는 돌아갔습니다. 왕의 손을 고쳐 주었는데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가서 호의를 받고 떡과 물좀 먹 으면 안됩니까 그러나 그 선지자는 단호히 거절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말씀하 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 말씀을 버려 버린 여로보암왕과는 너무나도 대 조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제정하신 것을 가볍게 여기고 자기 마음대로 고치고 행해 버린 여로보암왕은 이제 이러한 선지자의 행동을 보고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왕 에게 깨달으라고 이 선지자를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 예조를 보았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계속됩니다.
예조를 보고서 깨닫는 한 사람의 경우가 대조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한 늙은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이 선지자는 여로보암왕처럼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조를 깨닫고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킵니다. 여로보 암과는 대조가 됩니다. 여로보암왕이 벧엘에 산당과 단들을 만들어 놓았다고 했는데 그 사마리아 벧엘에 어떤 늙은 선 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 사건의 소식을 듣고 얼른 뒤쫓아가서 그 유다에서 온 선지자를 만났습니다. 선지자여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읍시다. 한마디로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 러자 그 유다의 선지자는 또 다시 거절을 합니다. 그러자 그 늙은 선지자는 설득을 합니다. 열왕 기상 13장 17절부터 보겠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네가 오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 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하나님 말씀이니까 절대로 떡과 물을 먹지 않겠다고 고집 피우는 그 선지자의 기를 꺾으려고 거짓말로 꾀어서 데리고 갔습니다. 이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유다의 선지자는 늙은 선지자의 속임에 빠져서 그만 집으로 가서 먹지 말 라고 한 떡과 물을 먹어 버렸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그 다음부터 오늘 본문이 시작됩니다. 둘이 상앞에 앉아서 먹고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그 늙은 선지자에게 직접 임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제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 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왕상 13:21-22)
한마디로 이제 금방 이 곳에서 죽어서 고향 유다땅에 돌아가 묻히지 못할 것이라는 겁니다. 이 말씀을 들은 그때까지도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 습니다. 뭐 떡과 물좀 먹었다고 해서 그럴 리가 있겠는가 설마 정말로 죽을까 이렇게 생각한 늙은 선지자는 그 유다 선지자에게 나귀까지 태워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어긴 선지자는 과연 하나님 말씀대로 나귀를 타고 길을 가다가 금방 사자를 만나서 죽었습니다. 떡과 물을 먹었다는 이유로 다시 말하면 하나님 말씀을 어겼다는 이유로 죽 임을 당했습니다. 한편 자기가 대접한 떡과 물을 먹은 그 선지자가 길을 가다가 과연 금방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그 늙은 사마리아 선지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는 여호와 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를 사자 에게 붙이시매 사자가 그를 찢어 죽였도다 (왕상13:26) 한마디로 기가 막힌 것입니다. 현장에 가 보니까 사자와 나귀가 그대로 서 있습니다. 나귀도 잡아먹지 않고 나귀 위에 탔던 그 선지자만 물려서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왜 나귀는 그대로 있는데 나귀 위의 선지자만 물어 죽였을까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자에 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신 것입니다. 이 늙은 선지자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생각지 않았는데 그가 지금까지 생각해 온 모든 관념과 타성적인 생각 들이 일순간에 완전히 허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늙은 선지자는 죽은 그 젊은 선지자의 시체를 나귀에 태워서 돌아오면서 하염 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묘실에다가 죽은 선지자를 장사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 은 미리서 자기 묘지를 다 만들어 놓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을 불러다가 한가지 이상한 부탁을 합니다. 31절입니다.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참 이상한 부탁입니다. 나중에 합 장을 해 달라는 것입니다. 부부도 아닌데 말입니다. 여기서 이 사마리아 선지자가 왜 이러한 부탁을 자기 아들에게 하였습니까 그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그 선지자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렇게 하였습니까 그럴 법도 합니다만은 정답은 아닙니다. 미안하다고 자기 뼈를 그 사람 곁에 묻는 경우는 그 당시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그 선지자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그 당시 존경의 표시를 그런 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그런 부탁을 하였습니까 먼저 자기 아들들에게 자기의 뼈를 부탁한 직후에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고백을 보십시다. 3 2절입니다.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여기서 그는 죽은 선지자입니다. 그 죽은 선지자가 왕앞에 와서 외쳐 말한 것, 나중에 유다나라에 요시야라는 사람이 등장해서 북쪽에 와서 이 단들을 다 훼파시키고 여기 세워졌던 못된 제사장들의 죽은 뼈들도 다 추려서 이 단위에 불살라 모욕을 당하게 만들것이라고 외친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룰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나란히 두면 이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선지자이기는 했으나 그러나 유다에서온 진짜 레위사람이요, 하나님이 보내셔서 하나님이 말씀을 전하러 온 진 짜 선지자이므로 나중에 요시야왕이 이 북쪽 나라 사마리아 지역에 모든 제사장들의 뼈까지 불살 라서 모욕을 줄 때에 이 선지자의 뼈는 불사름을 입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도 불살음을 입지 않기 위해서 뼈를 그 선지자의 뼈 옆에 두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았습니다. 간단하게 떡과 물을 먹는 이 선지 자가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말과 달라서 정말 이루어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목사의 논리가 아닙니다. 성경의 증거를 한 번 보십 시다. 본문을 접어 두고 열왕기하 23장 15절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세월은 지나서 과연 나중에 요시 야 왕이 등장해서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 에 세운 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묘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묘실에서 해골을 취하여 다가 단 위에 불살라 그 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성읍 사람들이 고하 되 왕께서 벧엘의 단에 향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 이다 가로되 그대로 두고 그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1. 그 뼈와
2. 사마리아에서 온 선 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유다에서 온 뼈와 사마리아에서 살던 그 늙은 선지자의 뼈까지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 두사람 의 뼈는 불살음을 입지 않았습니다. 벌써 수십년전에 그 늙은 선지자가 이것을 깨닫고 자기 뼈를 유다 선지자뼈옆에 묻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 늙은 선지자는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삶이 다하기 전에 그는 돌이킨 것입니다. 깨닫고 행동을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 여로보암왕은 어떻게 했습니까 본문 열왕기상 13장 33절로 마지막 두절입니다.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보통 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 에 죄가 되어 그 집이 지면에서 끊어져 멸망케 되니라 그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왔지만 여로보암왕은 예조를 보고도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계속해서 살았습니다. 레위사람들만 제사장 으로 세우라는 하나님 말씀을 경히 여기고 계속해서 자기 마음대로 레위사람 아닌 사람들로 제사 장을 세워 버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말과는 전혀 질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 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 이 마음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겨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좀 이상하게 들려도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인간이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여로보암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금송아지에게 경배합니다. 하나님도 중요하지만 먹고살려면 돈도 중요하다고 하나님 대신 자 기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경배합니다. 예루살렘이 아닌 벧엘로 갑니다. 꼭 바쁜데 교회까지 가서 예배드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바 쁘면 잡시 집에서 그냥 기도만 해도 된다고 합니다. 절기를 마음대로 정합니다. 주일날이면 모처럼 휴일인데 꼭 주일날 예배드려야 합니까 때론 주일 안 지켜도 바쁠 땐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요즘 사람들도 여로보암처럼 하나님 의 말씀을 이렇게 뒤집어 버립니다. 제사장도 마음대로 세웁니다. 우리 시대에 참 대제사장은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유일하신 중보자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하나님과 우리가 화해할 수가 없고 예수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로 건너갈 수 없다고 했는데 사람들 은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예수 안 믿어도 착하게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믿어도 착한 일하고 공자 믿어도 다 천국 간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자기 생각 대로 하는 것입니다. 신본 주의로 살아야 하는데 인본주의로 흐르는 것입니다.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 충만을 받으라 고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변명합니까 현대 사회에서 직장 생활하고 사업하다 보면 접대할 일도 있고 뭐 술좌석 빠질 수 있나 가끔은 괜찮아 적당히 만 먹으면 되는 거야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 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술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술 취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죄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자기가 기준을 정하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모두 다 여로보암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여로보암집을 본받았다. 또는 여로보암 집처럼 되었다 라는 말씀들이 수 도 없이 나옵니다. 북 이스라엘 왕들이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의 죄는 모두 다 여로보암왕의 죄를 본받은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왕이 되니까 다 하나님처럼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편의에 따라서 다 바꿉니다. 여로보암의 죄는 오고 오는 세대의 대표적인 멸망 받을 큰 죄 인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가 말씀을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명령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자기가 곧 하나님인 사람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산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복종하면서 나는 그 밑에 서 순종하면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 복음에 보면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말씀 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왜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합니다. 주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바로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주인 은 명령을 내리는 자입니다. 말씀권자, 명령권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은 예수님은 이 땅의 인간들에게 말씀을 내리는 말씀권자. 명령권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이 자기의 말씀권자 즉 주인이 되고 자기는 종으로 그 말씀을 따르는 자 들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곧 자기 생각과 말이 아 니라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서도 내가 판단하고 내 마음대로 삽니다. 이게 어디 예수믿는 사람입니까 지금까지는 늙은 선지자처럼 마음대로 행하고 마음대로 살았더라도 이제부터는 여로보암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이 주인이시오, 예수님이 주인이시오, 그 말씀권자의 말씀대로 복종하면서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전도서 11장 9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 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자기 마음대로 좋을 대로 사는 사람은 결국 나중에 하나님 앞에 심판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말씀이신 주님을 모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자들은 약속된 축복을 받는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 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 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내 마음을 주님께 복종시켜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주님 앞에 복종시키지 않는 자들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다 벌하시려고 예비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직 나의 복종이 주님 앞에 온전치 못하지만 날마다 주의 말씀으로 나를 눌러서 주의 말씀으로 나를 복종시키며 그 말씀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도님 여러분. 우리들은 성경에 나오는 여로보암처럼 되지 말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그 아래 복 종하시고 사셔서 나중에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다 받으시는 참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예배드리는 절기도 자기 마음대로 정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 스라엘 사람들에게 지키라고 말씀하신 절기를 왕이 아무때나 정해서 지키도록 했습니다. 다 자기 마음대로 해 버렸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여로보암의 이 네 가지 죄악이 오늘 본문 바로 전장인 12장 25절로 33절에 그대 로 나와 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여로보암의 큰 죄입니다. 이처럼 여로보암은 한마디로 하나님이 말씀으로 하신 모든 것을 저버리고 이제자기가 마음대 로 정해 놓고 편의대로 하면 된다고 백성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정해 주신 것을 중 요하게 생각지 않고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고치고 자기의 말로 명령을 내렸습니다. 현대인들도 그러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내 생각에 괜찮다 생각되면 그렇게 해도 상관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 서 큰 죄입니다. 죄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이것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여로보암왕에게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선지자를 보내어서 경고하고 예언하십니다. 왕이 마침 자기가 세운 벧엘의 단에 분향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보냄을 받은 선지자는 외쳤습니다.
열왕기상 13장 2절입니다.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 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이와 동시에 그 하나님 말씀의 예조로 단이 갈라지며 그 위 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했습니다. 과연 그 단이 갈라지며 재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바로 그 때에 여로보암왕은 화가 나서 그 선지자를 잡으라고 손으로 가리키며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편 손이 말라서 거두지를 못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왕은 풀이 죽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선지자여 나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내 손으로 다시 성할 수 있도록 해 달 라 그러자 방금 말씀을 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왕의 손이 다시 회복 이 되어서 손을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한 번 깜짝 놀란 왕은 그 선지자에게 집에 가서 좀 쉬고 떡과 물과 예물을 주겠다고 제의 를 합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항상 먼길을 가야 하는 손님들에게는 음식을 대접해서 보내는 좋은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거절하면서 말을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하여 이 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열상1 3:9) 그리고는 그 선지자는 돌아갔습니다. 왕의 손을 고쳐 주었는데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가서 호의를 받고 떡과 물좀 먹 으면 안됩니까 그러나 그 선지자는 단호히 거절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말씀하 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 말씀을 버려 버린 여로보암왕과는 너무나도 대 조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제정하신 것을 가볍게 여기고 자기 마음대로 고치고 행해 버린 여로보암왕은 이제 이러한 선지자의 행동을 보고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왕 에게 깨달으라고 이 선지자를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 예조를 보았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계속됩니다.
예조를 보고서 깨닫는 한 사람의 경우가 대조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한 늙은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이 선지자는 여로보암왕처럼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조를 깨닫고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킵니다. 여로보 암과는 대조가 됩니다. 여로보암왕이 벧엘에 산당과 단들을 만들어 놓았다고 했는데 그 사마리아 벧엘에 어떤 늙은 선 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 사건의 소식을 듣고 얼른 뒤쫓아가서 그 유다에서 온 선지자를 만났습니다. 선지자여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읍시다. 한마디로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 러자 그 유다의 선지자는 또 다시 거절을 합니다. 그러자 그 늙은 선지자는 설득을 합니다. 열왕 기상 13장 17절부터 보겠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네가 오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 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하나님 말씀이니까 절대로 떡과 물을 먹지 않겠다고 고집 피우는 그 선지자의 기를 꺾으려고 거짓말로 꾀어서 데리고 갔습니다. 이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유다의 선지자는 늙은 선지자의 속임에 빠져서 그만 집으로 가서 먹지 말 라고 한 떡과 물을 먹어 버렸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그 다음부터 오늘 본문이 시작됩니다. 둘이 상앞에 앉아서 먹고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그 늙은 선지자에게 직접 임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제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 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왕상 13:21-22)
한마디로 이제 금방 이 곳에서 죽어서 고향 유다땅에 돌아가 묻히지 못할 것이라는 겁니다. 이 말씀을 들은 그때까지도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 습니다. 뭐 떡과 물좀 먹었다고 해서 그럴 리가 있겠는가 설마 정말로 죽을까 이렇게 생각한 늙은 선지자는 그 유다 선지자에게 나귀까지 태워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어긴 선지자는 과연 하나님 말씀대로 나귀를 타고 길을 가다가 금방 사자를 만나서 죽었습니다. 떡과 물을 먹었다는 이유로 다시 말하면 하나님 말씀을 어겼다는 이유로 죽 임을 당했습니다. 한편 자기가 대접한 떡과 물을 먹은 그 선지자가 길을 가다가 과연 금방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그 늙은 사마리아 선지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는 여호와 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를 사자 에게 붙이시매 사자가 그를 찢어 죽였도다 (왕상13:26) 한마디로 기가 막힌 것입니다. 현장에 가 보니까 사자와 나귀가 그대로 서 있습니다. 나귀도 잡아먹지 않고 나귀 위에 탔던 그 선지자만 물려서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왜 나귀는 그대로 있는데 나귀 위의 선지자만 물어 죽였을까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자에 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신 것입니다. 이 늙은 선지자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생각지 않았는데 그가 지금까지 생각해 온 모든 관념과 타성적인 생각 들이 일순간에 완전히 허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늙은 선지자는 죽은 그 젊은 선지자의 시체를 나귀에 태워서 돌아오면서 하염 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묘실에다가 죽은 선지자를 장사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 은 미리서 자기 묘지를 다 만들어 놓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을 불러다가 한가지 이상한 부탁을 합니다. 31절입니다.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참 이상한 부탁입니다. 나중에 합 장을 해 달라는 것입니다. 부부도 아닌데 말입니다. 여기서 이 사마리아 선지자가 왜 이러한 부탁을 자기 아들에게 하였습니까 그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그 선지자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렇게 하였습니까 그럴 법도 합니다만은 정답은 아닙니다. 미안하다고 자기 뼈를 그 사람 곁에 묻는 경우는 그 당시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그 선지자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그 당시 존경의 표시를 그런 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그런 부탁을 하였습니까 먼저 자기 아들들에게 자기의 뼈를 부탁한 직후에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고백을 보십시다. 3 2절입니다.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여기서 그는 죽은 선지자입니다. 그 죽은 선지자가 왕앞에 와서 외쳐 말한 것, 나중에 유다나라에 요시야라는 사람이 등장해서 북쪽에 와서 이 단들을 다 훼파시키고 여기 세워졌던 못된 제사장들의 죽은 뼈들도 다 추려서 이 단위에 불살라 모욕을 당하게 만들것이라고 외친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룰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나란히 두면 이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선지자이기는 했으나 그러나 유다에서온 진짜 레위사람이요, 하나님이 보내셔서 하나님이 말씀을 전하러 온 진 짜 선지자이므로 나중에 요시야왕이 이 북쪽 나라 사마리아 지역에 모든 제사장들의 뼈까지 불살 라서 모욕을 줄 때에 이 선지자의 뼈는 불사름을 입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도 불살음을 입지 않기 위해서 뼈를 그 선지자의 뼈 옆에 두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았습니다. 간단하게 떡과 물을 먹는 이 선지 자가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말과 달라서 정말 이루어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목사의 논리가 아닙니다. 성경의 증거를 한 번 보십 시다. 본문을 접어 두고 열왕기하 23장 15절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세월은 지나서 과연 나중에 요시 야 왕이 등장해서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 에 세운 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묘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묘실에서 해골을 취하여 다가 단 위에 불살라 그 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성읍 사람들이 고하 되 왕께서 벧엘의 단에 향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 이다 가로되 그대로 두고 그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1. 그 뼈와
2. 사마리아에서 온 선 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유다에서 온 뼈와 사마리아에서 살던 그 늙은 선지자의 뼈까지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 두사람 의 뼈는 불살음을 입지 않았습니다. 벌써 수십년전에 그 늙은 선지자가 이것을 깨닫고 자기 뼈를 유다 선지자뼈옆에 묻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 늙은 선지자는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삶이 다하기 전에 그는 돌이킨 것입니다. 깨닫고 행동을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 여로보암왕은 어떻게 했습니까 본문 열왕기상 13장 33절로 마지막 두절입니다.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보통 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 에 죄가 되어 그 집이 지면에서 끊어져 멸망케 되니라 그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왔지만 여로보암왕은 예조를 보고도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계속해서 살았습니다. 레위사람들만 제사장 으로 세우라는 하나님 말씀을 경히 여기고 계속해서 자기 마음대로 레위사람 아닌 사람들로 제사 장을 세워 버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말과는 전혀 질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 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 이 마음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겨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좀 이상하게 들려도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인간이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여로보암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금송아지에게 경배합니다. 하나님도 중요하지만 먹고살려면 돈도 중요하다고 하나님 대신 자 기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경배합니다. 예루살렘이 아닌 벧엘로 갑니다. 꼭 바쁜데 교회까지 가서 예배드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바 쁘면 잡시 집에서 그냥 기도만 해도 된다고 합니다. 절기를 마음대로 정합니다. 주일날이면 모처럼 휴일인데 꼭 주일날 예배드려야 합니까 때론 주일 안 지켜도 바쁠 땐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요즘 사람들도 여로보암처럼 하나님 의 말씀을 이렇게 뒤집어 버립니다. 제사장도 마음대로 세웁니다. 우리 시대에 참 대제사장은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유일하신 중보자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하나님과 우리가 화해할 수가 없고 예수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로 건너갈 수 없다고 했는데 사람들 은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예수 안 믿어도 착하게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믿어도 착한 일하고 공자 믿어도 다 천국 간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자기 생각 대로 하는 것입니다. 신본 주의로 살아야 하는데 인본주의로 흐르는 것입니다.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 충만을 받으라 고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변명합니까 현대 사회에서 직장 생활하고 사업하다 보면 접대할 일도 있고 뭐 술좌석 빠질 수 있나 가끔은 괜찮아 적당히 만 먹으면 되는 거야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 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술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술 취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죄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자기가 기준을 정하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모두 다 여로보암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여로보암집을 본받았다. 또는 여로보암 집처럼 되었다 라는 말씀들이 수 도 없이 나옵니다. 북 이스라엘 왕들이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의 죄는 모두 다 여로보암왕의 죄를 본받은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왕이 되니까 다 하나님처럼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편의에 따라서 다 바꿉니다. 여로보암의 죄는 오고 오는 세대의 대표적인 멸망 받을 큰 죄 인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가 말씀을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명령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자기가 곧 하나님인 사람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산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복종하면서 나는 그 밑에 서 순종하면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 복음에 보면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말씀 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왜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합니다. 주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바로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주인 은 명령을 내리는 자입니다. 말씀권자, 명령권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은 예수님은 이 땅의 인간들에게 말씀을 내리는 말씀권자. 명령권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이 자기의 말씀권자 즉 주인이 되고 자기는 종으로 그 말씀을 따르는 자 들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곧 자기 생각과 말이 아 니라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서도 내가 판단하고 내 마음대로 삽니다. 이게 어디 예수믿는 사람입니까 지금까지는 늙은 선지자처럼 마음대로 행하고 마음대로 살았더라도 이제부터는 여로보암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이 주인이시오, 예수님이 주인이시오, 그 말씀권자의 말씀대로 복종하면서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전도서 11장 9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 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자기 마음대로 좋을 대로 사는 사람은 결국 나중에 하나님 앞에 심판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말씀이신 주님을 모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자들은 약속된 축복을 받는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 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 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내 마음을 주님께 복종시켜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주님 앞에 복종시키지 않는 자들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다 벌하시려고 예비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직 나의 복종이 주님 앞에 온전치 못하지만 날마다 주의 말씀으로 나를 눌러서 주의 말씀으로 나를 복종시키며 그 말씀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도님 여러분. 우리들은 성경에 나오는 여로보암처럼 되지 말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그 아래 복 종하시고 사셔서 나중에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다 받으시는 참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