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운동의 흥왕 (행12:1-25)
본문
본문은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다가 나오는 장면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유대인들은 실수를 해도 연속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굉장히 창피하게 만드는 책이 사도행전입니다. 복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종교인들이 실수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실수하게 되는 원인이 몇가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왜 거부하는가 율법을 공부해 보았다면 예수님이 바로 구약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인 줄을 알아야 할텐데 왜 거부하였을까요
1. 유대인들이 실패한 이유
1) 기준을 모세와 엘리야와 다윗에게 두어서 그렇습니다. 기준을 모세에게 두었으므로 말 구유에 태어난 사람은 아니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목수집에서 태어난 자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한 다윗에게 기준을 두었는데, “다윗의 자손으로 메시야가 오실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다윗 왕가에서 올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왕궁이 아닌 목수의 가정에서 온 자가 메시야일 수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불의 선지자 엘리야와 같이 강력한 선지자로 나타나지, 무슨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과 같이 다니는 저 나약해 보이는 사람이 메시야가 될 수 있겠는가고 여겼던 것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지 못한 첫번째 이유입니다. 유대인들이 마음이 굉장히 교만한데 있었기에 잘 못깨달았습니다. 마음이 교만한데 있으면 절대적으로 진리를 못깨닫습니다. 유대인들이 마음이 교만한데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중요한 것을 보아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망하는 길이 됩니다. 책을 한 권 읽어도 겸손한 마음으로 읽어야 은혜를 받지, 교만하게 읽으면 도저히 그 책을 못깨닫습니다. 특히, 성경이 그렇습니다. 교만한 유대인들은 눈이 다 막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유대인들이 실수를 연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그것이 겸손입니다. 어깨에 힘을 빼고 눈에 힘을 빼는 것이 겸손이 아니고, 사실대로 잘 보는 것이 겸손입니다. 유대인들이 교만하다가 계속 손해보만 보았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교만하다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게 된 것입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지 않아서 유대인들이 실패했습니다. 두번째로 유대인들이 망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붙잡고 있지 않아서입니다. 유대인들은 무엇을 붙잡고 있었느냐 전통을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망하게 된 두번째 이유입니다. 겉으로는 유대인들이 말씀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의 핑계였습니다. 율법대로 하자, 말씀대로 하자는 것은 유대인들의 핑게이지,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탈무드를 위시해서 전통을 굉장히 중요시하였습니다. 이 전통에 안맞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자기들의 전통에 비추어서 이단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을 이단에게 넘어갔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전통에 딱 맞아야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바른 가르침 보다도 사람의 유전을 더 중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보다, 그 말씀을 적당히 이용하여 인본주의와 전통으로 흐리게한 랍비들의 가르침을 더 크게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때문에 유대가 완전히 망하게 되었고, 나라를 잃고 국제적인 거지로 전락하여 돌아다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3) 유대인들이 이권을 따지다가 그리스도를 모르고 실패했습니다. 세번째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몰랐던 원인은 바리새인들이 ‘지금까지 우리가 바리새 교육을 시켜 놓았는데 이제와서 새롭게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느냐 우리가 어떻게 엉터리 취급받아서 되겠느냐’ 이렇게 눈 앞에것만 바라보고 나중에 죽는 줄을 몰랐습니다. 자존심과 이권을 내세워서 유대인들이 완전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가 와서 주후 70년경 디도 장군에 의해 유대 나라를 불태우고 멸망시켰는데, 1900년 가까이 나라없는 비참한 민족으로 굴러다니다가 마침내 1948년에 나라가 회복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1900 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을 온 세계에서 수백만명의 유대인이 학살 당하고, 이리저리 유리방황하고, 그러면서 그 민족이 안죽고 살아 남았던 것입니다.
2. 복음 운동의 흥왕 유대인이 굉장히 창피를 당하고 실수를 연속하는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보란 듯이 역사를 일으키기 시작하는데, 하나님께서 똑같은 시간에 헤롯 성전에서는 아무 일이 없는데, 욜 2장의 약속된 성령님 강림이 마가 다락방에 임해버린 것입니다. 이때부터 문제가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대 헤롯 성전에 거기 예배드릴때 거기에 성령님이 임해야 되는데, 욜2장의 마지막때 임해야 할 성령님이 초라한 마가 다락방 거기에 역사가 일어나버렸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계속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성전 미문 앞에 있던 앉은뱅이를 거기를 날마다 지나 다니던 제사장도 못고치고, 바리새인들도 못고치고 아무도 못고쳤는데, 베드로가 들어가면서 예수 이름으로 명령했는데 일어 서버렸습니다. 이런이 일어나자 계속적으로 유대인들은 복음을 향하여 몰리기 시작합니다. 이에 시기가 난 바리새인들은 베드로를 불러 놓고서는 ‘왜 어떻게 이 사람을 일으켜 세웠느냐’고 하니까,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니, 일어났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앉은뱅이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그 앉은뱅이도 ‘이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하기에 내가 40년 동안 쓰지 못하던 다리가 펴지고 일어났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할 말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가 말할때의 촛점이, 앉은뱅이가 다리 펴진것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무서운 종교 재판을 하는 법정 앞에 서서, 베드로가 중대한 구약 성경을 쭈욱 인용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불멸의 유명한 말씀을 남겼습니다. (행4:12)“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이렇게 되자, 바리새인들이 ‘저 사람이 원래 무힉한 어부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쩌면 저렇게도 유창하게 말을 잘 하느냐’ 하면서 반문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성령님충만해서 말한 줄을 모르고 눈이 어두워서 어떻게 할 줄을 몰랐습니다. 이때 베드로를 불러서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내 보냅니다. 그때부터 이 마가 다락방이 어떻게 합니까 행4:31절에 보면, 다시 기도하여 성령님충만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한, 일곱 집사로 인하여 역사가 일어납니다. 스데반 집사가 말할때 하늘 문이 열리고, 전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을 꿰뚫는 메세지가 스데반을 통해서 행6장에 나타납니다. 아브라함부터 훑어서 전 이스라엘을 뒤흔드는 메세지가 스데반을 통해서 나갔습니다. 행8장에 보니까, 또 빌립 집사가 나가서 멧세지를 전하는데, 사마리아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드디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행 9장에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나갔던 사울이 눈이 벌겋게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갔다가 다메섹에서 무릎을 꿇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러자, 지금 유대인들은 혼돈이 왔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보낸 사울이 회개하고 돌아다니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면서 사울을 죽이기 위한 결사대 40명을 조직했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자꾸만 실수합니다. 이 이후로 바울이 자꾸 도망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가는 곳마다, 바울이 밟는 땅마다 막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다가 11장에까지 왔습니다. 11장에는 헤롯이 유대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왕권을 발동하여 예수믿는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베드로를 잡은 것입니다. 베드로를 재차 체포한 것입니다. 처음 체포시 다시 예수 이름으로 말하면 처형하겠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재판할 필요도 없이 처형시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마가 다락방에 모여가지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사건이 오늘 본문에 벌어집니다. (행12:1)“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2)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헤롯왕의 동기를 보세요! 야고보 사도를 죽이자, 유대인들이 막 기뻐하는 것을 보고 힘을 내어서 베드로를 또 잡아 죽이려 하는 것입니다. 지금 헤롯도 종교인입니다. 유대 종교인입니다. 정말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느냐 이것을 보아야 하는데, 그것은 보지 않고,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거기에 넘어가 버린것입니다. 신앙에 성공할 사람은 여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냐 사람을 기쁘시게 할 것이냐 여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것인가 여기에 정신차려야 합니다. 이것이 잘 구분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실패합니다. 헤롯이 누구입니까 그 아버지는 로마 황제 가이사가 길을 지나갈때, 큰 상을 차려놓고 절을 했던 인물입니다. 그때 가이사 황제가 그 광경에 길을 가다가 내려서 물었더니 이 헤롯왕의 아버지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가이사 당신은 사람이 아니고, 신입니다. 신이 지나가는데, 어찌 사람인 내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이사가 헤롯을 보고, ‘내가 자네를 보니 참으로 똑똑하게 보이는데, 뭐 나에게 부탁할 일이라도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뭐 할게 있겠습니까 제게 이 나라를 맡겨 주시면, 황님의 뜻을따라 제가 이 나라를 똑바로 통치할테니까, 제게 맡겨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요구하자 그 자리에서 유대의 왕으로 임명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헤롯은 누구 후손이냐 하면 에돔 후손입니다. 다시말해서 에서의 후손입니다. 이스라엘의 전통에 의하면 에서 후손은 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헤롯이 왕이 된 이후에 나라 곳곳에서 데모가 계속 일어났던 것입니다. 헤롯이 보니 큰일 났거든요. 그 데모를 진정시킬 방도를 골몰히 연구하다가 이스라엘 민족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성전인데, 성전 짖게하여 데모를 진정시켰던 것입니다. 그는 이 일을 46년 동안이나 계속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길게길게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해 주어야 유대 백성들을 달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행 12장에 나오는 헤롯은 바로 이 사람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그 피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역시 백성들의 기분 맞추는데 급급한 것입니다. 이 헤롯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할것인데, 사람 기분을 맞추는 그 기질이 그대로 드러나서 백성들 기분 맞추어서 베드로를 즉각 처형시키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때 초대 교회는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행12:3)“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다시말해서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절기가 끼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를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을 죽일려고 요셉의 형들이 웅덩이에 빠뜨렸는데, 하필이면 물없는 웅덩이에 빠뜨린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일려고 굴 속으로 들어갈려고 하는데, 신하가 하는 말이 ‘이 굴은 아닙니다! 여기 거미줄이 있는 것을 보니까, 여기는 다윗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여서 다윗이 살게 됩니다. 다윗이 굴 속으로 들어가고난 뒤에 거미가 급하게 나와서 거미줄을 쳤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여러가지입니다. 이 헤롯이 베드로를 죽일려고 하던 밤이 바로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이스라엘 최고의 찬치날이라, 무교절이 지나고난뒤에 죽이자! 이렇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발걸음을 모두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이 복음 전파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두고두고 여러분의 자손을 두고, 앞으로 교회의 역사를 두고 답이 나올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전파를 하면서 적당히 그냥 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이 가만히 계신다고 해서 하나님이 모르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돌아오도록 끝까지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헤롯이 추진하는 일을 하나님이 모르겠습니까 그날 밤에 베드로가 죽지 않도록 하나님은 작업을 하신 것입니다. 헤롯은 지금 날만 바뀌면 베드로를 죽일려고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너무 기뻐하니까, 그 일을 추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요, 은혜되는 일로 여겼던 것입니다. 참 은혜받는 일도 여러 질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비상사역을 일으켰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도 이루시지만 비상사역을 통하여서 그 뜻을 이루시기도 합니다. 아주 중요한 일일 경우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동원하사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날 밤에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베드로가 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건드립니다. 눈을 떠보니, 나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착고가 풀리고 옥문도 열립니다. 어디까지 따라 나갔느냐 바깥 길가까지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베드로가 몰랐다고 되어 있습니다. 간수가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인가 감옥소를 옮기는 것인가 이렇게 해서 나오는데, 길거리 밖에 나와서야 비로소 천사가 구출해 주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행12:7)“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기도하면 성령님이 역사하고, 성령님이 역사하면 반드시 주의 사자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이자리에서 여러분이 정말로 믿음으로 고백할때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보내사 일을 이루십니다. 이 믿음으로 기도하시면, 전도의 어마어마한 문이 열릴 것이고, 응답의 큰 문이 열릴 것입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밑에 누웠을때 천사가 왔습니다. 엘리사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는데, 엘리사 집 주변에는 천사가 군대로 보호하였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갔을때, 다니엘이 가기 전에 하나님의 천사를 먼저 보내셨던 것입니다. 눈에 안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역사합니다. 성경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히스기야가 밤에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누구를 보냅니까 주의 천사를 보내사 18만 5천명의 앗수루 군대를 쳐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계8:3-5절을 보시면, 여러분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천사를 동원하셔서 답을 분명히 내십니다. (행12:20-23)“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전혀 우리는 사람의 염려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6장에 보면, 사람 앞에서 보이기 위하여 기도하거나 구제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일체 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미 그 상을 받아버렸다고 말씀합니다. 사람 앞에서 보이기 위해 헌금하고 착한 일을 하고, 봉사하였다면 그것이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보아 주었으면 되었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기도할려면 하나님 앞에서 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 응답이 이런 원리로 되어집니다. 정말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기도 응답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초대 교회에서 헤롯이 성도들을 욕하고 치고 죽이고 온갖 짖을 다하고 있는데, 성도들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비결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손을 보십니다. 23절에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보니까 간단합니다. 만약에 성도들이 일어나서, 헤롯 왕에게 항의하고 데모하고 그랬다면 하나님께서 손볼 일도 없을텐데, 성도들이 가만히 놔두고 기도만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주의 사자를 보내사 치니 죽었습니다. 그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는 임금 헤롯에게 자객하나 안보냈는데, 깨끗이 불러가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의 사자로 치니 충이 먹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궁도 뒤바꾸십니다. (행12:24)“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흥황하여 나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운동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잘못해 왔다는 답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행12:25)“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이제 어떤 결과가 오는가 보십시다. 행13:1절을 보십시다. (행13:1-3)“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님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여기에 중요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3년 동안 초대교회가 말씀운동을 벌였는데,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 지금 중요한 요원을 내 보내야 되겠는데, (행13:1)“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오는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신,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이 전도하는 핵심요원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 파송되고 있는 순간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앞에 충이 먹어서 죽은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들을 철저하게 막는 대장이었던 사울이 복음의 핵심 요원으로 파송되어 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은 너무도 놀라운 사건입니다. 천하의 원수가 복음 들고 주의 종으로 나가고! 복음을 막던 대장 동생이 주의 일꾼으로 나가고! 예수님 십자가 지고 갈때 조롱하고 놀러왔던 자가 십자가 대신 지고 구원얻어서 사역자로 나갑니다. 이것이 말씀운동입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말씀운동 기도운동이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큰 일입니다. 승리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유대인들이 실패한 이유
1) 기준을 모세와 엘리야와 다윗에게 두어서 그렇습니다. 기준을 모세에게 두었으므로 말 구유에 태어난 사람은 아니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목수집에서 태어난 자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한 다윗에게 기준을 두었는데, “다윗의 자손으로 메시야가 오실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다윗 왕가에서 올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왕궁이 아닌 목수의 가정에서 온 자가 메시야일 수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불의 선지자 엘리야와 같이 강력한 선지자로 나타나지, 무슨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과 같이 다니는 저 나약해 보이는 사람이 메시야가 될 수 있겠는가고 여겼던 것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지 못한 첫번째 이유입니다. 유대인들이 마음이 굉장히 교만한데 있었기에 잘 못깨달았습니다. 마음이 교만한데 있으면 절대적으로 진리를 못깨닫습니다. 유대인들이 마음이 교만한데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중요한 것을 보아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망하는 길이 됩니다. 책을 한 권 읽어도 겸손한 마음으로 읽어야 은혜를 받지, 교만하게 읽으면 도저히 그 책을 못깨닫습니다. 특히, 성경이 그렇습니다. 교만한 유대인들은 눈이 다 막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유대인들이 실수를 연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그것이 겸손입니다. 어깨에 힘을 빼고 눈에 힘을 빼는 것이 겸손이 아니고, 사실대로 잘 보는 것이 겸손입니다. 유대인들이 교만하다가 계속 손해보만 보았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교만하다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게 된 것입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지 않아서 유대인들이 실패했습니다. 두번째로 유대인들이 망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붙잡고 있지 않아서입니다. 유대인들은 무엇을 붙잡고 있었느냐 전통을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망하게 된 두번째 이유입니다. 겉으로는 유대인들이 말씀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의 핑계였습니다. 율법대로 하자, 말씀대로 하자는 것은 유대인들의 핑게이지,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탈무드를 위시해서 전통을 굉장히 중요시하였습니다. 이 전통에 안맞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자기들의 전통에 비추어서 이단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을 이단에게 넘어갔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전통에 딱 맞아야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바른 가르침 보다도 사람의 유전을 더 중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보다, 그 말씀을 적당히 이용하여 인본주의와 전통으로 흐리게한 랍비들의 가르침을 더 크게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때문에 유대가 완전히 망하게 되었고, 나라를 잃고 국제적인 거지로 전락하여 돌아다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3) 유대인들이 이권을 따지다가 그리스도를 모르고 실패했습니다. 세번째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몰랐던 원인은 바리새인들이 ‘지금까지 우리가 바리새 교육을 시켜 놓았는데 이제와서 새롭게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느냐 우리가 어떻게 엉터리 취급받아서 되겠느냐’ 이렇게 눈 앞에것만 바라보고 나중에 죽는 줄을 몰랐습니다. 자존심과 이권을 내세워서 유대인들이 완전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가 와서 주후 70년경 디도 장군에 의해 유대 나라를 불태우고 멸망시켰는데, 1900년 가까이 나라없는 비참한 민족으로 굴러다니다가 마침내 1948년에 나라가 회복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1900 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을 온 세계에서 수백만명의 유대인이 학살 당하고, 이리저리 유리방황하고, 그러면서 그 민족이 안죽고 살아 남았던 것입니다.
2. 복음 운동의 흥왕 유대인이 굉장히 창피를 당하고 실수를 연속하는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보란 듯이 역사를 일으키기 시작하는데, 하나님께서 똑같은 시간에 헤롯 성전에서는 아무 일이 없는데, 욜 2장의 약속된 성령님 강림이 마가 다락방에 임해버린 것입니다. 이때부터 문제가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대 헤롯 성전에 거기 예배드릴때 거기에 성령님이 임해야 되는데, 욜2장의 마지막때 임해야 할 성령님이 초라한 마가 다락방 거기에 역사가 일어나버렸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계속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성전 미문 앞에 있던 앉은뱅이를 거기를 날마다 지나 다니던 제사장도 못고치고, 바리새인들도 못고치고 아무도 못고쳤는데, 베드로가 들어가면서 예수 이름으로 명령했는데 일어 서버렸습니다. 이런이 일어나자 계속적으로 유대인들은 복음을 향하여 몰리기 시작합니다. 이에 시기가 난 바리새인들은 베드로를 불러 놓고서는 ‘왜 어떻게 이 사람을 일으켜 세웠느냐’고 하니까,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니, 일어났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앉은뱅이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그 앉은뱅이도 ‘이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하기에 내가 40년 동안 쓰지 못하던 다리가 펴지고 일어났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할 말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가 말할때의 촛점이, 앉은뱅이가 다리 펴진것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무서운 종교 재판을 하는 법정 앞에 서서, 베드로가 중대한 구약 성경을 쭈욱 인용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불멸의 유명한 말씀을 남겼습니다. (행4:12)“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이렇게 되자, 바리새인들이 ‘저 사람이 원래 무힉한 어부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쩌면 저렇게도 유창하게 말을 잘 하느냐’ 하면서 반문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성령님충만해서 말한 줄을 모르고 눈이 어두워서 어떻게 할 줄을 몰랐습니다. 이때 베드로를 불러서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내 보냅니다. 그때부터 이 마가 다락방이 어떻게 합니까 행4:31절에 보면, 다시 기도하여 성령님충만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한, 일곱 집사로 인하여 역사가 일어납니다. 스데반 집사가 말할때 하늘 문이 열리고, 전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을 꿰뚫는 메세지가 스데반을 통해서 행6장에 나타납니다. 아브라함부터 훑어서 전 이스라엘을 뒤흔드는 메세지가 스데반을 통해서 나갔습니다. 행8장에 보니까, 또 빌립 집사가 나가서 멧세지를 전하는데, 사마리아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드디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행 9장에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나갔던 사울이 눈이 벌겋게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갔다가 다메섹에서 무릎을 꿇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러자, 지금 유대인들은 혼돈이 왔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보낸 사울이 회개하고 돌아다니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면서 사울을 죽이기 위한 결사대 40명을 조직했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자꾸만 실수합니다. 이 이후로 바울이 자꾸 도망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가는 곳마다, 바울이 밟는 땅마다 막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다가 11장에까지 왔습니다. 11장에는 헤롯이 유대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왕권을 발동하여 예수믿는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베드로를 잡은 것입니다. 베드로를 재차 체포한 것입니다. 처음 체포시 다시 예수 이름으로 말하면 처형하겠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재판할 필요도 없이 처형시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마가 다락방에 모여가지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사건이 오늘 본문에 벌어집니다. (행12:1)“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2)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헤롯왕의 동기를 보세요! 야고보 사도를 죽이자, 유대인들이 막 기뻐하는 것을 보고 힘을 내어서 베드로를 또 잡아 죽이려 하는 것입니다. 지금 헤롯도 종교인입니다. 유대 종교인입니다. 정말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느냐 이것을 보아야 하는데, 그것은 보지 않고,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거기에 넘어가 버린것입니다. 신앙에 성공할 사람은 여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냐 사람을 기쁘시게 할 것이냐 여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것인가 여기에 정신차려야 합니다. 이것이 잘 구분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실패합니다. 헤롯이 누구입니까 그 아버지는 로마 황제 가이사가 길을 지나갈때, 큰 상을 차려놓고 절을 했던 인물입니다. 그때 가이사 황제가 그 광경에 길을 가다가 내려서 물었더니 이 헤롯왕의 아버지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가이사 당신은 사람이 아니고, 신입니다. 신이 지나가는데, 어찌 사람인 내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이사가 헤롯을 보고, ‘내가 자네를 보니 참으로 똑똑하게 보이는데, 뭐 나에게 부탁할 일이라도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뭐 할게 있겠습니까 제게 이 나라를 맡겨 주시면, 황님의 뜻을따라 제가 이 나라를 똑바로 통치할테니까, 제게 맡겨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요구하자 그 자리에서 유대의 왕으로 임명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헤롯은 누구 후손이냐 하면 에돔 후손입니다. 다시말해서 에서의 후손입니다. 이스라엘의 전통에 의하면 에서 후손은 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헤롯이 왕이 된 이후에 나라 곳곳에서 데모가 계속 일어났던 것입니다. 헤롯이 보니 큰일 났거든요. 그 데모를 진정시킬 방도를 골몰히 연구하다가 이스라엘 민족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성전인데, 성전 짖게하여 데모를 진정시켰던 것입니다. 그는 이 일을 46년 동안이나 계속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길게길게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해 주어야 유대 백성들을 달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행 12장에 나오는 헤롯은 바로 이 사람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그 피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역시 백성들의 기분 맞추는데 급급한 것입니다. 이 헤롯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할것인데, 사람 기분을 맞추는 그 기질이 그대로 드러나서 백성들 기분 맞추어서 베드로를 즉각 처형시키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때 초대 교회는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행12:3)“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다시말해서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절기가 끼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를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을 죽일려고 요셉의 형들이 웅덩이에 빠뜨렸는데, 하필이면 물없는 웅덩이에 빠뜨린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일려고 굴 속으로 들어갈려고 하는데, 신하가 하는 말이 ‘이 굴은 아닙니다! 여기 거미줄이 있는 것을 보니까, 여기는 다윗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여서 다윗이 살게 됩니다. 다윗이 굴 속으로 들어가고난 뒤에 거미가 급하게 나와서 거미줄을 쳤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여러가지입니다. 이 헤롯이 베드로를 죽일려고 하던 밤이 바로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이스라엘 최고의 찬치날이라, 무교절이 지나고난뒤에 죽이자! 이렇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발걸음을 모두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이 복음 전파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두고두고 여러분의 자손을 두고, 앞으로 교회의 역사를 두고 답이 나올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전파를 하면서 적당히 그냥 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이 가만히 계신다고 해서 하나님이 모르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돌아오도록 끝까지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헤롯이 추진하는 일을 하나님이 모르겠습니까 그날 밤에 베드로가 죽지 않도록 하나님은 작업을 하신 것입니다. 헤롯은 지금 날만 바뀌면 베드로를 죽일려고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너무 기뻐하니까, 그 일을 추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요, 은혜되는 일로 여겼던 것입니다. 참 은혜받는 일도 여러 질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비상사역을 일으켰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도 이루시지만 비상사역을 통하여서 그 뜻을 이루시기도 합니다. 아주 중요한 일일 경우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동원하사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날 밤에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베드로가 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건드립니다. 눈을 떠보니, 나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착고가 풀리고 옥문도 열립니다. 어디까지 따라 나갔느냐 바깥 길가까지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베드로가 몰랐다고 되어 있습니다. 간수가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인가 감옥소를 옮기는 것인가 이렇게 해서 나오는데, 길거리 밖에 나와서야 비로소 천사가 구출해 주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행12:7)“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기도하면 성령님이 역사하고, 성령님이 역사하면 반드시 주의 사자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이자리에서 여러분이 정말로 믿음으로 고백할때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보내사 일을 이루십니다. 이 믿음으로 기도하시면, 전도의 어마어마한 문이 열릴 것이고, 응답의 큰 문이 열릴 것입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밑에 누웠을때 천사가 왔습니다. 엘리사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는데, 엘리사 집 주변에는 천사가 군대로 보호하였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갔을때, 다니엘이 가기 전에 하나님의 천사를 먼저 보내셨던 것입니다. 눈에 안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역사합니다. 성경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히스기야가 밤에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누구를 보냅니까 주의 천사를 보내사 18만 5천명의 앗수루 군대를 쳐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계8:3-5절을 보시면, 여러분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천사를 동원하셔서 답을 분명히 내십니다. (행12:20-23)“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전혀 우리는 사람의 염려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6장에 보면, 사람 앞에서 보이기 위하여 기도하거나 구제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일체 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미 그 상을 받아버렸다고 말씀합니다. 사람 앞에서 보이기 위해 헌금하고 착한 일을 하고, 봉사하였다면 그것이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보아 주었으면 되었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기도할려면 하나님 앞에서 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 응답이 이런 원리로 되어집니다. 정말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기도 응답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초대 교회에서 헤롯이 성도들을 욕하고 치고 죽이고 온갖 짖을 다하고 있는데, 성도들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비결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손을 보십니다. 23절에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보니까 간단합니다. 만약에 성도들이 일어나서, 헤롯 왕에게 항의하고 데모하고 그랬다면 하나님께서 손볼 일도 없을텐데, 성도들이 가만히 놔두고 기도만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주의 사자를 보내사 치니 죽었습니다. 그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는 임금 헤롯에게 자객하나 안보냈는데, 깨끗이 불러가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의 사자로 치니 충이 먹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궁도 뒤바꾸십니다. (행12:24)“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흥황하여 나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운동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잘못해 왔다는 답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행12:25)“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이제 어떤 결과가 오는가 보십시다. 행13:1절을 보십시다. (행13:1-3)“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님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여기에 중요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3년 동안 초대교회가 말씀운동을 벌였는데,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 지금 중요한 요원을 내 보내야 되겠는데, (행13:1)“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오는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신,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이 전도하는 핵심요원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 파송되고 있는 순간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앞에 충이 먹어서 죽은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들을 철저하게 막는 대장이었던 사울이 복음의 핵심 요원으로 파송되어 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은 너무도 놀라운 사건입니다. 천하의 원수가 복음 들고 주의 종으로 나가고! 복음을 막던 대장 동생이 주의 일꾼으로 나가고! 예수님 십자가 지고 갈때 조롱하고 놀러왔던 자가 십자가 대신 지고 구원얻어서 사역자로 나갑니다. 이것이 말씀운동입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말씀운동 기도운동이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큰 일입니다. 승리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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