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대한 바른 자세 (약1:19-25)
본문
사람에게는 빨리 잊어 버려야 좋을 것이 있고 또한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교회의 반역자요 핍박자였던 사도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다 잊어 버리고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것' 그 한가지만 분명히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것을 다 떨쳐 버리고 앞만 보고 달려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 기억속에 괴로웠던 것, 대인관계에서 좋지 않았던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고전 13)이라고 하였습니다.
1.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않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철인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하였는데 성도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내 사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려면 거울을 보면 됩니다. 우리가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반성하고 또한 나이먹고 늙어 가는 것과 나의 남은 날을 계수하는 지혜를 얻기도 합니다. 거울이란 것은 나를 항상 정확하게 비춰주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나의 외모만이 아니라 나의 중심과 나의 영혼을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는데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누구이며, 내 할 일이 무엇인지를 가장 확실하게 가르쳐 주는 인생의 거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거울 앞에 나를 비춰보면 나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앞에 비추인 나를 보고도 그곳을 떠나면 곧 잊어 버리니 이것이 참으로 딱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일시적으로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곧 잊어 버리듯이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인 자기 자신을 보고도 그 앞을 떠나면 곧 잊어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나를 보게 하고 나를 알려 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항상 지킨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입니까
첫째로,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을 항상 생각하고 잊지 맙시다. 나는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죄 석방된 죄수와도 같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자신의 신분과 위치를 항상 알고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이것을 보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보고 알았으면서도 일단 떠나면 곧 잊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마치 내가 아직 구원도 받지 못한 사람인 것처럼 구원의 뜻도 모르고 그 기쁨과 감사를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지나 않았습니까 사도 바울선생님은 자신이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으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사도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딤전1:13) 그리고 그가 사도가 된 이후에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빚으로 알고 그 빚을 갚아야 되겠다는 심정으로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사도가 되게 하여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일평생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헬라인에게나 야만인에게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빚진 자(롬 1:14)라고 하였고 이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는데,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칠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자세가 구원받은 자기자신을 아는 자세일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몰랐다면 어떻게 되였을까요 내가 신자가 아니였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중에서 야고보 선생은 '거울 앞에 서서 자기 모양을 보고도 떠나면 곧 잊어 버린다'고 하였는데 '보고도'라고 한 것은 깨닫고 은혜받고 체험을 한 것을 가르킵니다. 그러나 '떠나면'이라고 한 것은 환경과 상황의 변화입니다. 즉 환경때문에,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곧 잊어 버립니다. 그러면 아무리 보았어도, 아무리 훌륭한 체험을 했어도 그 본 것을 곧 잊어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교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의 기쁨속에 살더니 복음을 마치 헌신짝 벗어 던지듯이 쉽게 버리고 다른 복음을 따라 갔다고 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그 교회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면서 '다른 복음은 없다'고 하면서 '만일 하늘로부터 내려 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고야 만다'고(갈 1:1-2)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한 것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고 망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라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들을 깨우쳤습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았으나 떠나면 곧 잊어 버립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그릇된 본성입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복음을, 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맡기신 그의 몸되신 교회를 버리면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내 몸의 피가 다 식어도 내가 잊을 수 없는 곳은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버리면 가장 슬퍼하실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환경이 바뀌고 상황이 달라지고 혹 심기가 불편하다고 해서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거울을 보고 자기가 누군지 알았으면서도 곧 잊어 버리고 만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말씀의 거울은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거울에 나를 비춰보면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였는지 내 신분과 위치와 과오와 허물을 자세히 알려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죄인중에 괴수'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것이 거울속에서 본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부르짖고 땅에 엎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이렇게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게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 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삼하 7:7-8)”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이름없는 목동이 이스라엘 백성의 주권자가 되었고 대적자들이 그 앞에 모두 무릎을 꿇고 그 이름이 세상에서 존귀한 자가 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는 보잘 것없는 인간을 이렇게 훌륭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믿고 더 나빠질 사람이 없고 예수믿고 더 천해졌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 나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지금 그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또 내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못한다'고 하듯이 오늘 우리는 '내가 나 된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으로 인정받고 또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과 권리를 얻었습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않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을 보고 '소도 자기 주인을 알고 나귀도 자기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은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사 1:3)라고 탄식하였습니다. 현재의 나를 있게 하신 하나님 그리고 먼 장래에도 나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시고 인도하여 주실 그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볼 때 들을 때 만 아니고 '나를 나되게' 하신 하나님을 잊지말고 감사하면서 삽시다.
셋째, 하나님의 구원은 죽음에서 나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실 때의 비참하게 문둥병으로 죽어가는 사람 열명을 깨끗이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고쳐달라고 애원할 때와 정작 고침을 받은 후에는 그들의 태도가 아주 달랐습니다. 열사람 중 하나는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는데 나머지 아홉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한사람, 그것도 사마리아 사람 하나 밖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러 온 사람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으로부터 고침을 받았으면서도 감사와 찬양을 잊어 버리기가 쉽습니다. 열사람의 문둥병자는 누구입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은혜로,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죄로부터 구원을 받은 우리 자신들 입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일에 무관심하거나 회피하거나 망각해 버리는 것이 우리들의 본성입니다. 우리는 현대와 같이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 갈 때에 언제 어떤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서울시내에 교통사고가 하루에도 100건 200건, 그 중에 죽는 사람이 매일 몇명씩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그 은혜를 까맣게 잊고 삽니다. 우리를 살게 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거울을 보고도 떠나면 곧 잊어 버리기 때문' 입니다.
시편 103편 2절에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며 인자와 긍휼로써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할 이유는 그가 우리 죄를 사하시고, 그가 나의 병을 고쳐 주시고, 그가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환경과 상황이 어떠해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그 큰 사랑을 잊어서는 않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은혜와 그 사랑을 잊고 살았습니다. 거울로 내 얼굴을 볼 때 뿐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잊었고 오랫동안 망각속에 살았습니다. 신명기 6:12에는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하나님 여호화를 경외하며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은혜와 그 계명들을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하여 그것을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고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문설주와 대문에 기록하였습니다(신 6:7). 그러나 그래도 잊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하면서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결국 잊고 살았습니다.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볼 때 뿐이요 떠나면 그것을 목에 걸고 손에 매달고 미간에 붙이고 다녀도 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그 자녀들에게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 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켜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 3:1-2) 누누히 그렇게 훈계하고 가르쳤지만 그 자녀들은 금방 잊어 버렸습니다. 인간은 지독한 망각의 동물입니다. 그렇게 귀아프게 듣고도 잊어 버립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도 그곳을 떠나면 곧 잊어 버립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았는데도 금방 잊어 버립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은혜와 그 큰 사랑을 잊지 않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입니다. 그 길 밖에 다른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시 103)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았습니다. 혹 어려운 일이 있었어도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거울로 내 얼굴을 볼 때'만이 아니고 거울을 떠나도 잊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은택을 잊지 않고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잊지 맙시다. 그 은혜를 기억하고 찬양합시다. 이러한 풍성한 은혜가 항상 있기를 바랍니다.
2. 그러면 먼저 우리가 속히 해야할 일과 더디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본문 19-20절 말씀을 읽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본문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속히 해야 할 일은 바로듣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말이나 터무니 없는 소문을 듣는데 속히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속히 하라는 권면입니다. 여기서 듣기를 속히 하라는 말씀은 모든일을 제쳐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열심을내라는 말씀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속히해야 합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믿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속히 하고 이 일에 열심을 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속히하고 이 일에 열심을 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주일 낮예배 뿐만 아니라 밤예배, 수요기도회까지나오셔서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할 수만 있으면 매일 새벽마다 나오셔서 말씀도 들으시고 하나님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축복받는 비결이요 건강의 비결이요 승리하는 비결임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더디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본문 말씀에 의하면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말이 문제입니다. 잠언 성경에는 이 말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을 아끼는 자가지식이 있다.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철학자 제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두 개의 귀를 가지고 있으나 입은 오직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가 많이 듣고 적게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말을 적게 하고 또한 가려서 해야 합니다. 말이 많으면 교만해지기 쉽고, 또한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또한 말이 많다 보면 불완전한 인간인지라 자주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하는 것을 더디 해야 합니다. 이 말이 꼭 필요한 말인가 상대방에게 유익을 주고 기쁨을 주는 말인가 아니면 상처를 주는 말인가 다시한번 생각하고 말한다면 우리의 언어 생활이 한층더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은 성내기를 더디하라고 말합니다. 물론 사람의 성격과 성품은 천성적으로 타고난다고 하지만, 믿는 성도들은 성령님의 은혜로 성격과 성품까지도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옛성품은 과감하게 버려야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인격을 그리스도의 성숙한 인격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여기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성내는 것입니다. 사실 아무리 온순한 사람이라 할찌라도 인간인 이상 누구나 성깔이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참아야하고 순간적으로 폭발할 것이 아니라 더욱 자제하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이성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하기도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세번째로 우리가 버려야 할 것과 받아야 할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본문 21절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먼저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입니다. 어쩌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먼저 버리는 생활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너는 너의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12:1)고 명령합니다. 그 때 아브람은 그것들을과감하게 버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도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하리라 (마4:19)고 말씀하셨고, 이에 그들은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배와 그물을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버려야 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참된 말씀의 실천을 강조하는 야고보 사도는 본문에서 무엇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합니까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라 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더러운 것이라고 번역된 원문의 뜻은 본래 옷이나 몸이 흙탕물로 더러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더러움이나 육체적인 정욕 뿐만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버려야 합니다. 또한 여기에서 넘치는 악이란 마음 속에 품었던 악한생각이 점점 불어나서 겉으로 흘러 넘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은 개인의 생활에서나 공동체안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의 삶에 있어서 장애가 되는 것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 보면서 호리라도 우리 속에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이 있다면 과감하게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벗어버리는 결단이 있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모든 더러운 것과넘치는 악을 버린 후에는 무엇을 받아야 합니까 21절 하반절에 보면,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마치 식물을 옥토에 심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받아들여 굳게 심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결과 그것이 심령 깊숙이 새기어 진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는다는 말씀은 그저 말씀을 단순히 귀로 듣고 흘러 보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베뢰아 지방의 성도들 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것입니다(행17:11). 또한 말씀을 듣고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야고보 사도는 말하기를 그런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자요, 마치 거울을 보고 자기의 얼굴에 얼룩이 묻어 있음을 발견하고도 그것을 지우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한마디로 그 사람의 경건은 헛된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하나님 앞에 복이 있는 사람은 말씀을 들을 뿐만아니라. 그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고 행하는 자임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속히하고 열심을 품는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그것 보다더 중요한 것을 들은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만약 듣기만 하고 행치 않는다면 오히려 듣지 않은 것만 못할 것입니다. 말씀을 듣기에 열심을 품을 뿐만아니라 말씀을 실천하는 일에도 열심을 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전에 먼저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려야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심령 깊숙한 곳에 새기어 집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한 어린아이가 오래되어 부패된 우유가 반쯤 담긴 잔을 들고 엄마에게 다가가 떼를 씁니다. 엄마, 이 잔에다가 우유를 가득채워주세요 그렇다고 하여 그 잔에다가 우유를 가득채워 줄 어머니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유가 없어서 채워주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담긴 우유가 부패했기 때문에, 가득채워 봐야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엄마는 그 아이에게 말할 것입니다. 얘야! 먼저 그 잔에 있는 부패한 우유를 몽땅 버려라. 그러면 엄마가 너에게 새우유로 가득채워 주마.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합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려라. 그런 다음에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려 기도합니다. 하나님 성령님 충만을 주옵소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능력을 덧입혀 주옵소서. 건강과 물질의 축복을 주옵소서. 자녀들의 앞길을 형통케 하옵소서.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내아들아! 먼저 네 속에 있는 모든 악들을 내버리거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가득 채워주마. 여러분! 이 진리를 확실히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1.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않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철인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하였는데 성도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내 사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려면 거울을 보면 됩니다. 우리가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반성하고 또한 나이먹고 늙어 가는 것과 나의 남은 날을 계수하는 지혜를 얻기도 합니다. 거울이란 것은 나를 항상 정확하게 비춰주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나의 외모만이 아니라 나의 중심과 나의 영혼을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는데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누구이며, 내 할 일이 무엇인지를 가장 확실하게 가르쳐 주는 인생의 거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거울 앞에 나를 비춰보면 나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앞에 비추인 나를 보고도 그곳을 떠나면 곧 잊어 버리니 이것이 참으로 딱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일시적으로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곧 잊어 버리듯이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인 자기 자신을 보고도 그 앞을 떠나면 곧 잊어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나를 보게 하고 나를 알려 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항상 지킨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입니까
첫째로,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을 항상 생각하고 잊지 맙시다. 나는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죄 석방된 죄수와도 같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자신의 신분과 위치를 항상 알고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이것을 보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보고 알았으면서도 일단 떠나면 곧 잊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마치 내가 아직 구원도 받지 못한 사람인 것처럼 구원의 뜻도 모르고 그 기쁨과 감사를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지나 않았습니까 사도 바울선생님은 자신이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으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사도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딤전1:13) 그리고 그가 사도가 된 이후에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빚으로 알고 그 빚을 갚아야 되겠다는 심정으로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사도가 되게 하여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일평생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헬라인에게나 야만인에게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빚진 자(롬 1:14)라고 하였고 이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는데,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칠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자세가 구원받은 자기자신을 아는 자세일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몰랐다면 어떻게 되였을까요 내가 신자가 아니였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중에서 야고보 선생은 '거울 앞에 서서 자기 모양을 보고도 떠나면 곧 잊어 버린다'고 하였는데 '보고도'라고 한 것은 깨닫고 은혜받고 체험을 한 것을 가르킵니다. 그러나 '떠나면'이라고 한 것은 환경과 상황의 변화입니다. 즉 환경때문에,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곧 잊어 버립니다. 그러면 아무리 보았어도, 아무리 훌륭한 체험을 했어도 그 본 것을 곧 잊어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교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의 기쁨속에 살더니 복음을 마치 헌신짝 벗어 던지듯이 쉽게 버리고 다른 복음을 따라 갔다고 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그 교회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면서 '다른 복음은 없다'고 하면서 '만일 하늘로부터 내려 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고야 만다'고(갈 1:1-2)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한 것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고 망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라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들을 깨우쳤습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았으나 떠나면 곧 잊어 버립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그릇된 본성입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복음을, 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맡기신 그의 몸되신 교회를 버리면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내 몸의 피가 다 식어도 내가 잊을 수 없는 곳은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버리면 가장 슬퍼하실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환경이 바뀌고 상황이 달라지고 혹 심기가 불편하다고 해서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거울을 보고 자기가 누군지 알았으면서도 곧 잊어 버리고 만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말씀의 거울은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거울에 나를 비춰보면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였는지 내 신분과 위치와 과오와 허물을 자세히 알려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죄인중에 괴수'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것이 거울속에서 본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부르짖고 땅에 엎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이렇게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게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 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삼하 7:7-8)”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이름없는 목동이 이스라엘 백성의 주권자가 되었고 대적자들이 그 앞에 모두 무릎을 꿇고 그 이름이 세상에서 존귀한 자가 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는 보잘 것없는 인간을 이렇게 훌륭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믿고 더 나빠질 사람이 없고 예수믿고 더 천해졌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 나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지금 그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또 내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못한다'고 하듯이 오늘 우리는 '내가 나 된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으로 인정받고 또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과 권리를 얻었습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않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을 보고 '소도 자기 주인을 알고 나귀도 자기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은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사 1:3)라고 탄식하였습니다. 현재의 나를 있게 하신 하나님 그리고 먼 장래에도 나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시고 인도하여 주실 그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볼 때 들을 때 만 아니고 '나를 나되게' 하신 하나님을 잊지말고 감사하면서 삽시다.
셋째, 하나님의 구원은 죽음에서 나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실 때의 비참하게 문둥병으로 죽어가는 사람 열명을 깨끗이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고쳐달라고 애원할 때와 정작 고침을 받은 후에는 그들의 태도가 아주 달랐습니다. 열사람 중 하나는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는데 나머지 아홉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한사람, 그것도 사마리아 사람 하나 밖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러 온 사람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으로부터 고침을 받았으면서도 감사와 찬양을 잊어 버리기가 쉽습니다. 열사람의 문둥병자는 누구입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은혜로,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죄로부터 구원을 받은 우리 자신들 입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일에 무관심하거나 회피하거나 망각해 버리는 것이 우리들의 본성입니다. 우리는 현대와 같이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 갈 때에 언제 어떤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서울시내에 교통사고가 하루에도 100건 200건, 그 중에 죽는 사람이 매일 몇명씩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그 은혜를 까맣게 잊고 삽니다. 우리를 살게 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거울을 보고도 떠나면 곧 잊어 버리기 때문' 입니다.
시편 103편 2절에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며 인자와 긍휼로써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할 이유는 그가 우리 죄를 사하시고, 그가 나의 병을 고쳐 주시고, 그가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환경과 상황이 어떠해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그 큰 사랑을 잊어서는 않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은혜와 그 사랑을 잊고 살았습니다. 거울로 내 얼굴을 볼 때 뿐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잊었고 오랫동안 망각속에 살았습니다. 신명기 6:12에는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하나님 여호화를 경외하며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은혜와 그 계명들을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하여 그것을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고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문설주와 대문에 기록하였습니다(신 6:7). 그러나 그래도 잊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하면서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결국 잊고 살았습니다.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볼 때 뿐이요 떠나면 그것을 목에 걸고 손에 매달고 미간에 붙이고 다녀도 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그 자녀들에게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 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켜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 3:1-2) 누누히 그렇게 훈계하고 가르쳤지만 그 자녀들은 금방 잊어 버렸습니다. 인간은 지독한 망각의 동물입니다. 그렇게 귀아프게 듣고도 잊어 버립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도 그곳을 떠나면 곧 잊어 버립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았는데도 금방 잊어 버립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은혜와 그 큰 사랑을 잊지 않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입니다. 그 길 밖에 다른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시 103)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았습니다. 혹 어려운 일이 있었어도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거울로 내 얼굴을 볼 때'만이 아니고 거울을 떠나도 잊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은택을 잊지 않고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잊지 맙시다. 그 은혜를 기억하고 찬양합시다. 이러한 풍성한 은혜가 항상 있기를 바랍니다.
2. 그러면 먼저 우리가 속히 해야할 일과 더디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본문 19-20절 말씀을 읽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본문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속히 해야 할 일은 바로듣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말이나 터무니 없는 소문을 듣는데 속히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속히 하라는 권면입니다. 여기서 듣기를 속히 하라는 말씀은 모든일을 제쳐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열심을내라는 말씀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속히해야 합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믿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속히 하고 이 일에 열심을 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속히하고 이 일에 열심을 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주일 낮예배 뿐만 아니라 밤예배, 수요기도회까지나오셔서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할 수만 있으면 매일 새벽마다 나오셔서 말씀도 들으시고 하나님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축복받는 비결이요 건강의 비결이요 승리하는 비결임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더디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본문 말씀에 의하면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말이 문제입니다. 잠언 성경에는 이 말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을 아끼는 자가지식이 있다.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철학자 제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두 개의 귀를 가지고 있으나 입은 오직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가 많이 듣고 적게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말을 적게 하고 또한 가려서 해야 합니다. 말이 많으면 교만해지기 쉽고, 또한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또한 말이 많다 보면 불완전한 인간인지라 자주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하는 것을 더디 해야 합니다. 이 말이 꼭 필요한 말인가 상대방에게 유익을 주고 기쁨을 주는 말인가 아니면 상처를 주는 말인가 다시한번 생각하고 말한다면 우리의 언어 생활이 한층더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은 성내기를 더디하라고 말합니다. 물론 사람의 성격과 성품은 천성적으로 타고난다고 하지만, 믿는 성도들은 성령님의 은혜로 성격과 성품까지도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옛성품은 과감하게 버려야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인격을 그리스도의 성숙한 인격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여기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성내는 것입니다. 사실 아무리 온순한 사람이라 할찌라도 인간인 이상 누구나 성깔이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참아야하고 순간적으로 폭발할 것이 아니라 더욱 자제하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이성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하기도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세번째로 우리가 버려야 할 것과 받아야 할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본문 21절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먼저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입니다. 어쩌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먼저 버리는 생활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너는 너의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12:1)고 명령합니다. 그 때 아브람은 그것들을과감하게 버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도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하리라 (마4:19)고 말씀하셨고, 이에 그들은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배와 그물을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버려야 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참된 말씀의 실천을 강조하는 야고보 사도는 본문에서 무엇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합니까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라 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더러운 것이라고 번역된 원문의 뜻은 본래 옷이나 몸이 흙탕물로 더러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더러움이나 육체적인 정욕 뿐만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버려야 합니다. 또한 여기에서 넘치는 악이란 마음 속에 품었던 악한생각이 점점 불어나서 겉으로 흘러 넘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은 개인의 생활에서나 공동체안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의 삶에 있어서 장애가 되는 것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 보면서 호리라도 우리 속에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이 있다면 과감하게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벗어버리는 결단이 있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모든 더러운 것과넘치는 악을 버린 후에는 무엇을 받아야 합니까 21절 하반절에 보면,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마치 식물을 옥토에 심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받아들여 굳게 심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결과 그것이 심령 깊숙이 새기어 진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는다는 말씀은 그저 말씀을 단순히 귀로 듣고 흘러 보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베뢰아 지방의 성도들 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것입니다(행17:11). 또한 말씀을 듣고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야고보 사도는 말하기를 그런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자요, 마치 거울을 보고 자기의 얼굴에 얼룩이 묻어 있음을 발견하고도 그것을 지우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한마디로 그 사람의 경건은 헛된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하나님 앞에 복이 있는 사람은 말씀을 들을 뿐만아니라. 그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고 행하는 자임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속히하고 열심을 품는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그것 보다더 중요한 것을 들은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만약 듣기만 하고 행치 않는다면 오히려 듣지 않은 것만 못할 것입니다. 말씀을 듣기에 열심을 품을 뿐만아니라 말씀을 실천하는 일에도 열심을 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전에 먼저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려야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심령 깊숙한 곳에 새기어 집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한 어린아이가 오래되어 부패된 우유가 반쯤 담긴 잔을 들고 엄마에게 다가가 떼를 씁니다. 엄마, 이 잔에다가 우유를 가득채워주세요 그렇다고 하여 그 잔에다가 우유를 가득채워 줄 어머니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유가 없어서 채워주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담긴 우유가 부패했기 때문에, 가득채워 봐야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엄마는 그 아이에게 말할 것입니다. 얘야! 먼저 그 잔에 있는 부패한 우유를 몽땅 버려라. 그러면 엄마가 너에게 새우유로 가득채워 주마.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합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려라. 그런 다음에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려 기도합니다. 하나님 성령님 충만을 주옵소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능력을 덧입혀 주옵소서. 건강과 물질의 축복을 주옵소서. 자녀들의 앞길을 형통케 하옵소서.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내아들아! 먼저 네 속에 있는 모든 악들을 내버리거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가득 채워주마. 여러분! 이 진리를 확실히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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