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따라 삽시다 (삼하6:1-15)
본문
우리는 그 동안 몇 시간에 걸쳐 이스라엘 민족의 성응으로 추앙받는 다윗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다윗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사울 왕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민족의 초대 왕이면서 다윗 개인에게 있어서는 장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기대가 사울보다 다윗에게 쏠리면서 사울 왕의 사위인 다윗에 대한 감정은 시기심으로 변하게 되고, 더 나아가 적대 감까지 가지게 되어 원수시해서 다윗을 거세하려고 근위병을 이끌고 다니며 다윗의 목숨을 노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울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 을 전한 사람은 아말렉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가 아니라 이 스라엘과 싸우던 아말렉 사람을 통해서 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용인즉 전쟁에서 사울 왕이 중상을 입어 목숨만 붙어 있고 너무 고통이 심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처지여서 아말렉 군사더러 나를 차라리 죽여 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엎드리는 것을 보고 이제는 살 수 없는 줄 알아 그를 죽이고 그 머리에 쓰고 있던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 리를 벗겨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 보고를 하면서 이 아말렉 군사는 다윗에게 상당한 보상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는지도 모릅니다. 오랜 세월 쫓아다니며 끈질기게 다 윗을 괴롭히던 사울 왕의 죽음을 보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시 점에서 다윗이 취한 태도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잘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그렇게도 괴롭히던 사울 왕이지만 여전히 한 나라의 왕이었던 사울이 죽은 사실에 대해서 다윗은 비감해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진정 으로 슬피 울었습니다. 그는 금식을 하며 가슴아파 했습니다. 저는 이 행동이 다윗의 변장된 연극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사무엘하 1장 14-15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척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 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소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저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민심을 얻었습니다.그를 괴롭힌 것은 사실이었 지만 사울은 여전히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을 치는 것이 죄없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윗은 만백성 앞에 선포하는 아주 인상적인 행동을 취했습니다. 사울 왕이 죽은 후에 유다의 정세는 갑작스럽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엘하 2장 1절에 보면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 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 가리이까'라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사 울이 죽었기 때문에 다윗은 당연히 왕이 될 수 있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때를 위해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셨구나 하고 확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서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전에 읽은 사무엘하 2장 1절 말씀은 너무 인상적입니다.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의 인도를 물었습니다. 어디를 가야하며, 무엇을 빼야 할는지를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다윗의 왕위를 보장해 주고 있었던 이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경거망동하지 않았습니다. 정세는 결정적으로 다윗에게 유리 했지만 주어진 상황과 환경 속에서 주님의 뜻을 묻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시해되자 '기회는 지금이다' 놓칠세라 하여 국토방위의 사명을 헌신짝 던지듯이 던져 버리고 일선을 펑하게 뚫린 채 놔두고 청와대로 내려온 사람하고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간절한 미음으로 하나님의 길을 찾으며, 성경을 읽으며, 엎드려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 하는 삶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여러분. 하니닙이 다윗을 들어 쓰신 것은 절대로 우연한 일이 아니 라고 믿습니다. 사무엘하 2장
1절 말씀을 다시 읽을 때 자세히 들어보세요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 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 이까 가라사대 혜브론으로 갈지니라' 다윗은 구체적인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혜브론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거기가서도 다윗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지금부터 8년 전에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통하여 저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이것은 제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공개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하니님께서는 저를 이 나라의 왕으로 삼 으시려고 작정하셨습니다:여러분, 이제사울 왕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의 왕위는 당연히 제가 물려받게 되었습니다.'이렇게도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이런 식으로 상황 앞 에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백성들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다윗에게 찾아왔 습니다. 그들이 먼저 찾아와서 '당신이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편에서 일방적으로 그리고 주도적으로 정권을 쟁취 하기 위해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 랐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따라서 발길을 옮기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정세가 결정적으로 자기에 게 유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말 한 마디면 정권을 인수 있는 이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정중히 주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행동하려고 한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었습니다. 사울의 뒤를 이어 소년 목동을 왕으로 삼기로 직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그가 기름 부음을 받고,베들레에서 왕의 부르심을 받은 그 이후부터 이 순간까지 8년 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도 사울 왕에게 8년 동 안이나 쫓기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하니님의 절대적인 주권 앞에 자기의 삶을 온전허 의탁하고 그때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다윗이 이 시점에서 팔레스틴 땅 전체의 왕은 아니었습니다. 남쪽에서만 왕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까지 전체 왕국의 왕으로서 세움을 받기까지는 다윗은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남쪽 유다에서는 다윗을 왕으로 세웠는데 북쪽 이스라엘 에서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왕으로 세움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하 2장 11절에 보면 '다윗이 혜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 이 된 날 수는 일곱해 여섯달이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남쪽 유다에서 왕으로 세움을 받고서도 7년 반을 더 기다려야 만 했습니다. 다윗이 북방 이스라엘에서까지 명실공히 통일된 왕국의 왕이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이 기다림은 다윗 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도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실행될 것을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시편 37편을 보세요 이 시편 앞에는 '다윗의 시'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시편을 읽어보면 다윗의 기다림이 얼마나 그의 믿음에서 부터 우러난 행동인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은 단순히 다윗의 입술을 통해서 쓴 관념적인 고백이 아닙니다. 이 시편은 다윗 이 깊은 인생의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그의 생과 의식의 한복판에서부터 우러나온 체험적인 고백인 것입니다. 시꾄 37편 1절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사람을 인하 여 투기하지 말지어다' 했습니다, 사실 다윗이 바로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 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및갈이 나타내 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및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 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했습니다. 다윗은 이 기다림을 통해 서 하나님 의 놀라우신 섭리 가운데 사는 믿음의 삶의 교훈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한 나라 의 왕이 되었습니다.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를 통괄하는 통일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을 보면 다윗이 한 나라의 왕이 된 후에 제일 먼저 행한 일은 하나님의 법궤를 옮긴 것입니다. 다윗은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를 통합해서 하나의 왕국을 이룬다음 수도를 예루살으로 정하 게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심장부에 한 나라를 통괄할 수 있는 정치적인 수도를 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수도를 옮겼다는 것으로만 한 나라를 바로 통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윗 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의 나라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잘 되기 위해서는 온 국 민의 영성을 통일 할 수 있는 정신적인 공통분모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 나라 뿐 아니라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한 가정이 잘 되기 위해서도 그 가정을 하나 되게 할 수 있는 영적인 공통분모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가정의 식구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영적인 공통분모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 까 그것은 신앙입니다. 우리 가족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고, 한 방향을 바라볼 수 있고, 그들의 삶을정리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그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으로 수도를 정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수도에 하나님의 법궤를 꼭 옮겨오 기를 원했습니다. 왜 그볐습니까 하나멈의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언제 나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할 때는 하나님의 법궤를 행 렬 맨 앞에 두었습니다. 그들 이 행진을 멈췄을 때는 하나님의 법궤를 백성들 가운데 모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 다는 싱징 이었기 때문입니다. 옛날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가서 제사를 드릴 때 그들은 성소를 거쳐서 휘장을 열고 지성소 앞에 나와서 항상 이 법궤 앞에 섰습니다. 이 법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법궤를 통해 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을 만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궤는 이 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 니님의 임 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행진을 할 때 꼭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웠 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했습니까 하나님을 앞세우고 걸어가며 삶을 살아간다는, 말하자면 신앙 의 고백인 것입니다 앞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 이 것이 그들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다윗이 그 나라의 왕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법궤는 예루 살이 아닌 다론 곳에 머물 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비아답의 집에 있었던 법궤를 옮겨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법궤 를 옮기는 데 무려 S만명의 인원이 필요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만 보아 도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려는 열정과 관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이 법궤를 옮기는데 사건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는 도증에 소들이 뛰니까 법궤가 떨어지지 않 게 하려고 웃사라는 사람이 법궤를 붙잡자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이해가 잘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성물을 만지지 말라고 하면서 만지면 죽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사는 이를 범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신 것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하니닙의 일 을 하실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 시대의 철학은 '좋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사 용해도 좋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목적이 좋으면 수단도 좋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니닙이 원하 시는 방법 대로 하나닙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 다윗은 법궤를 기는 과정에서 흔들리는 법궤를 염려해서 법궤를 붙들었다가 즉사하는 사건에 큰 층격을 받았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7절에서는 웃사의 잘못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8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웃사를 층돌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니닙 의 말씀을 범하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충 돌하십니다. 하나닙은 역사를 통해서 층돌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층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9절에 보니까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척 '라고 말씀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 궤를 무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 면서 다윗은 이 법궤가 어떻게 자기에게 올 수 있겠는가 하면 서 예루 살으로 법궤를 옮기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법궤가 어디로 갑니까 l0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로 메어가기를 즐겨하지 아니 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간지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다윗 자신은 두려워서 그 법궤 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는 것을 꺼려했지만 이 법궤가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의 집에 오자마자 하나님이 그 집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하니님 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 은 축복입니다. 이 축복의 장면을 보고 있던 다윗은 또다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법궤를 오 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으 로 옮겨오기까지 S개월간의 시일이 걸렸는데 아마 다윗은 그동안 성경을 공부했을 것 입니다.
예기치 않은 일 에 층격을 받은 다윗은 '내가 왜 법궤를 기는 일에 실패했나 웃사 가 왜 죽었을 까' 이유를 알기 위해 성경을 공부하다가 마침내 그 대 답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하니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닙은 그의 백성 들에게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라.' 고 새로운 방법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방법을 성경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다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우리 개인의 신앙생활을 말씀따라 살아야만 합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가 운영되는 것도 말씀따라 운영되어야 합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것처럼 교회를 운영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말씀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이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힘 써야 합니다. 왜 요 우리의 삶의 유일한 규칙과 규범이 오직 성경에 제시되고 있기 때 문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말씀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말씀을통해서 행동의 양식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삶의 형태를 결 정하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십니다. 다 윗은 오직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다윗은 오직 말씀따라 살았습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닙의 영광을 위 해 살았습니다. 그래서 먼훗날 다윗이 그의 삶을 회고한 장면이 역대상 15장 1절 이하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다윗이 예루살렘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궐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 하여 장막 을 치고 가로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회를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저를 섬기게 하 셨음이니라' 했습니다. 다윗은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 교훈을 얻기까지는 뼈아픈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시편 기자도 말했습니다. '내가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룻 행하였더 니 고난 당한 후에야 하나님 의 을 깨닫게 되었나이다.' 그런 의미에 서 고난은 우리 삶에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매를 맞고 고 치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매맞기 전에 고치면 더욱 복된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지금 우리 앞에 펼쳐 있는 귀하고 복 된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 배우 셔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성경은 읽지 않고,배우지 않는 분을 보면 안타캅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사실 그것은 신앙생활의 의미가 없 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수요 기도회 때 직장에서 직접 교회로 오시는 분, 혹은 어 디에 가셨다가 집에 들릴 시간 없이 교회로 오시는 분을 위해서 예배 당 출입문에 성경 찬송을 수백권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댁에서 교회로 오시는 분을 위해서 준비한 것은 아닙니다. 댁에서 교회로 오실 때는 꼭 성경 찬송을 가지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간절 한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말씀 드럽니다. 성경을 배우세요 성경 공부 안하고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나이 더 드시기 전에, 아직 하나님이 건강을 주신 이 시점 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세요 그리고 이 복된 말씀을 통해서 주님 이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배우세요 다윗은 젊은 날에 있었던 뼈아픈 경험, 웃사라는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배운 것이 컸습니다. 하니닙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말씀대로 복종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말씀따라 살아 가는 것, 말 따라 일하는 것, 말씀따라 봉사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 생각은 이런데 . . . .' 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때 저런 경우에 하나닙의 말씀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말씀을 읽으십시오 내 모든 행 동의 결정에서 하니의 말씀이 명하는 대로 하세요 성가대원이 찬양으로 봉사하실 때도 말씀이 명하는대로 하세요 교회 학교 교사들이 학생을 가르칠 때도 말씀이 명하는대로 하세요 교회에서 봉사하 시는 모든 분들이 말씀이 명하는 대로 하세 요 말씀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실패가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말씀따라 살므로 우리의 믿음이 더욱 든든히 뿌리를 내리 고. 말씀 위에 세워진 영스러운 믿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사울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 을 전한 사람은 아말렉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가 아니라 이 스라엘과 싸우던 아말렉 사람을 통해서 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용인즉 전쟁에서 사울 왕이 중상을 입어 목숨만 붙어 있고 너무 고통이 심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처지여서 아말렉 군사더러 나를 차라리 죽여 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엎드리는 것을 보고 이제는 살 수 없는 줄 알아 그를 죽이고 그 머리에 쓰고 있던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 리를 벗겨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 보고를 하면서 이 아말렉 군사는 다윗에게 상당한 보상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는지도 모릅니다. 오랜 세월 쫓아다니며 끈질기게 다 윗을 괴롭히던 사울 왕의 죽음을 보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시 점에서 다윗이 취한 태도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잘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그렇게도 괴롭히던 사울 왕이지만 여전히 한 나라의 왕이었던 사울이 죽은 사실에 대해서 다윗은 비감해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진정 으로 슬피 울었습니다. 그는 금식을 하며 가슴아파 했습니다. 저는 이 행동이 다윗의 변장된 연극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사무엘하 1장 14-15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척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 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소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저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민심을 얻었습니다.그를 괴롭힌 것은 사실이었 지만 사울은 여전히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을 치는 것이 죄없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윗은 만백성 앞에 선포하는 아주 인상적인 행동을 취했습니다. 사울 왕이 죽은 후에 유다의 정세는 갑작스럽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엘하 2장 1절에 보면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 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 가리이까'라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사 울이 죽었기 때문에 다윗은 당연히 왕이 될 수 있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때를 위해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셨구나 하고 확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서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전에 읽은 사무엘하 2장 1절 말씀은 너무 인상적입니다.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의 인도를 물었습니다. 어디를 가야하며, 무엇을 빼야 할는지를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다윗의 왕위를 보장해 주고 있었던 이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경거망동하지 않았습니다. 정세는 결정적으로 다윗에게 유리 했지만 주어진 상황과 환경 속에서 주님의 뜻을 묻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시해되자 '기회는 지금이다' 놓칠세라 하여 국토방위의 사명을 헌신짝 던지듯이 던져 버리고 일선을 펑하게 뚫린 채 놔두고 청와대로 내려온 사람하고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간절한 미음으로 하나님의 길을 찾으며, 성경을 읽으며, 엎드려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 하는 삶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여러분. 하니닙이 다윗을 들어 쓰신 것은 절대로 우연한 일이 아니 라고 믿습니다. 사무엘하 2장
1절 말씀을 다시 읽을 때 자세히 들어보세요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 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 이까 가라사대 혜브론으로 갈지니라' 다윗은 구체적인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혜브론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거기가서도 다윗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지금부터 8년 전에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통하여 저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이것은 제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공개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하니님께서는 저를 이 나라의 왕으로 삼 으시려고 작정하셨습니다:여러분, 이제사울 왕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의 왕위는 당연히 제가 물려받게 되었습니다.'이렇게도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이런 식으로 상황 앞 에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백성들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다윗에게 찾아왔 습니다. 그들이 먼저 찾아와서 '당신이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편에서 일방적으로 그리고 주도적으로 정권을 쟁취 하기 위해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 랐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따라서 발길을 옮기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정세가 결정적으로 자기에 게 유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말 한 마디면 정권을 인수 있는 이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정중히 주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행동하려고 한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었습니다. 사울의 뒤를 이어 소년 목동을 왕으로 삼기로 직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그가 기름 부음을 받고,베들레에서 왕의 부르심을 받은 그 이후부터 이 순간까지 8년 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도 사울 왕에게 8년 동 안이나 쫓기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하니님의 절대적인 주권 앞에 자기의 삶을 온전허 의탁하고 그때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다윗이 이 시점에서 팔레스틴 땅 전체의 왕은 아니었습니다. 남쪽에서만 왕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까지 전체 왕국의 왕으로서 세움을 받기까지는 다윗은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남쪽 유다에서는 다윗을 왕으로 세웠는데 북쪽 이스라엘 에서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왕으로 세움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하 2장 11절에 보면 '다윗이 혜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 이 된 날 수는 일곱해 여섯달이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남쪽 유다에서 왕으로 세움을 받고서도 7년 반을 더 기다려야 만 했습니다. 다윗이 북방 이스라엘에서까지 명실공히 통일된 왕국의 왕이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이 기다림은 다윗 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도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실행될 것을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시편 37편을 보세요 이 시편 앞에는 '다윗의 시'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시편을 읽어보면 다윗의 기다림이 얼마나 그의 믿음에서 부터 우러난 행동인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은 단순히 다윗의 입술을 통해서 쓴 관념적인 고백이 아닙니다. 이 시편은 다윗 이 깊은 인생의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그의 생과 의식의 한복판에서부터 우러나온 체험적인 고백인 것입니다. 시꾄 37편 1절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사람을 인하 여 투기하지 말지어다' 했습니다, 사실 다윗이 바로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 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및갈이 나타내 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및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 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했습니다. 다윗은 이 기다림을 통해 서 하나님 의 놀라우신 섭리 가운데 사는 믿음의 삶의 교훈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한 나라 의 왕이 되었습니다.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를 통괄하는 통일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을 보면 다윗이 한 나라의 왕이 된 후에 제일 먼저 행한 일은 하나님의 법궤를 옮긴 것입니다. 다윗은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를 통합해서 하나의 왕국을 이룬다음 수도를 예루살으로 정하 게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심장부에 한 나라를 통괄할 수 있는 정치적인 수도를 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수도를 옮겼다는 것으로만 한 나라를 바로 통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윗 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의 나라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잘 되기 위해서는 온 국 민의 영성을 통일 할 수 있는 정신적인 공통분모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 나라 뿐 아니라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한 가정이 잘 되기 위해서도 그 가정을 하나 되게 할 수 있는 영적인 공통분모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가정의 식구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영적인 공통분모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 까 그것은 신앙입니다. 우리 가족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고, 한 방향을 바라볼 수 있고, 그들의 삶을정리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그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으로 수도를 정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수도에 하나님의 법궤를 꼭 옮겨오 기를 원했습니다. 왜 그볐습니까 하나멈의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언제 나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할 때는 하나님의 법궤를 행 렬 맨 앞에 두었습니다. 그들 이 행진을 멈췄을 때는 하나님의 법궤를 백성들 가운데 모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 다는 싱징 이었기 때문입니다. 옛날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가서 제사를 드릴 때 그들은 성소를 거쳐서 휘장을 열고 지성소 앞에 나와서 항상 이 법궤 앞에 섰습니다. 이 법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법궤를 통해 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을 만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궤는 이 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 니님의 임 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행진을 할 때 꼭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웠 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했습니까 하나님을 앞세우고 걸어가며 삶을 살아간다는, 말하자면 신앙 의 고백인 것입니다 앞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 이 것이 그들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다윗이 그 나라의 왕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법궤는 예루 살이 아닌 다론 곳에 머물 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비아답의 집에 있었던 법궤를 옮겨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법궤 를 옮기는 데 무려 S만명의 인원이 필요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만 보아 도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려는 열정과 관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이 법궤를 옮기는데 사건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는 도증에 소들이 뛰니까 법궤가 떨어지지 않 게 하려고 웃사라는 사람이 법궤를 붙잡자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이해가 잘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성물을 만지지 말라고 하면서 만지면 죽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사는 이를 범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신 것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하니닙의 일 을 하실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 시대의 철학은 '좋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사 용해도 좋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목적이 좋으면 수단도 좋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니닙이 원하 시는 방법 대로 하나닙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 다윗은 법궤를 기는 과정에서 흔들리는 법궤를 염려해서 법궤를 붙들었다가 즉사하는 사건에 큰 층격을 받았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7절에서는 웃사의 잘못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8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웃사를 층돌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니닙 의 말씀을 범하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충 돌하십니다. 하나닙은 역사를 통해서 층돌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층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9절에 보니까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척 '라고 말씀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 궤를 무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 면서 다윗은 이 법궤가 어떻게 자기에게 올 수 있겠는가 하면 서 예루 살으로 법궤를 옮기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법궤가 어디로 갑니까 l0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로 메어가기를 즐겨하지 아니 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간지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다윗 자신은 두려워서 그 법궤 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는 것을 꺼려했지만 이 법궤가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의 집에 오자마자 하나님이 그 집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하니님 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 은 축복입니다. 이 축복의 장면을 보고 있던 다윗은 또다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법궤를 오 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으 로 옮겨오기까지 S개월간의 시일이 걸렸는데 아마 다윗은 그동안 성경을 공부했을 것 입니다.
예기치 않은 일 에 층격을 받은 다윗은 '내가 왜 법궤를 기는 일에 실패했나 웃사 가 왜 죽었을 까' 이유를 알기 위해 성경을 공부하다가 마침내 그 대 답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하니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닙은 그의 백성 들에게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라.' 고 새로운 방법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방법을 성경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다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우리 개인의 신앙생활을 말씀따라 살아야만 합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가 운영되는 것도 말씀따라 운영되어야 합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것처럼 교회를 운영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말씀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이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힘 써야 합니다. 왜 요 우리의 삶의 유일한 규칙과 규범이 오직 성경에 제시되고 있기 때 문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말씀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말씀을통해서 행동의 양식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삶의 형태를 결 정하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십니다. 다 윗은 오직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다윗은 오직 말씀따라 살았습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닙의 영광을 위 해 살았습니다. 그래서 먼훗날 다윗이 그의 삶을 회고한 장면이 역대상 15장 1절 이하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다윗이 예루살렘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궐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 하여 장막 을 치고 가로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회를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저를 섬기게 하 셨음이니라' 했습니다. 다윗은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 교훈을 얻기까지는 뼈아픈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시편 기자도 말했습니다. '내가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룻 행하였더 니 고난 당한 후에야 하나님 의 을 깨닫게 되었나이다.' 그런 의미에 서 고난은 우리 삶에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매를 맞고 고 치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매맞기 전에 고치면 더욱 복된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지금 우리 앞에 펼쳐 있는 귀하고 복 된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 배우 셔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성경은 읽지 않고,배우지 않는 분을 보면 안타캅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사실 그것은 신앙생활의 의미가 없 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수요 기도회 때 직장에서 직접 교회로 오시는 분, 혹은 어 디에 가셨다가 집에 들릴 시간 없이 교회로 오시는 분을 위해서 예배 당 출입문에 성경 찬송을 수백권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댁에서 교회로 오시는 분을 위해서 준비한 것은 아닙니다. 댁에서 교회로 오실 때는 꼭 성경 찬송을 가지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간절 한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말씀 드럽니다. 성경을 배우세요 성경 공부 안하고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나이 더 드시기 전에, 아직 하나님이 건강을 주신 이 시점 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세요 그리고 이 복된 말씀을 통해서 주님 이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배우세요 다윗은 젊은 날에 있었던 뼈아픈 경험, 웃사라는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배운 것이 컸습니다. 하니닙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말씀대로 복종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말씀따라 살아 가는 것, 말 따라 일하는 것, 말씀따라 봉사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 생각은 이런데 . . . .' 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때 저런 경우에 하나닙의 말씀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말씀을 읽으십시오 내 모든 행 동의 결정에서 하니의 말씀이 명하는 대로 하세요 성가대원이 찬양으로 봉사하실 때도 말씀이 명하는대로 하세요 교회 학교 교사들이 학생을 가르칠 때도 말씀이 명하는대로 하세요 교회에서 봉사하 시는 모든 분들이 말씀이 명하는 대로 하세 요 말씀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실패가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말씀따라 살므로 우리의 믿음이 더욱 든든히 뿌리를 내리 고. 말씀 위에 세워진 영스러운 믿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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