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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다할 수 없는 선물 (신8:7-18,고후9:6-15)

본문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유명한 말씀을 했습니다:"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시오."(살전 5:16-18)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 끝에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서 여러분이 해야 할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것, '감사하는것'은 '하나님의뜻'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독교신앙과 기독교인의 삶에 있어서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를 강조하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기서 무엇을, 왜 늘 감사하는 생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데 대하여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항 상 감사하라는 권면은 처세나 삶의 지혜나 윤리적인 면에서 당연하고 또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건강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왜, 무엇 을 감사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해명 없이는 이 권면은 설득력이 약 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언제나 감사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실 생활에 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감사한다는 느낌을 가지거나 말을 하거 나 할 때 흔히 보이는 것, 물질적인 것, 자연적인 것, 등에 국한하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우리의 생에서 감사는 커녕 불평과 불만을 느끼 고 말하지 않을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감사하다고 느끼고 말해야 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제대로 느끼 거나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정작 감사해야 될 것에 대하여 정당한 감사의 느낌과 생각, 말과 행동 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공짜로 마시는 공기, 물, 햇빛 등에 대하여 우리는 과연 감사하 고 있습니까 이것들이 없으면 우리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데도 우리는 이것들에 대하여 감사의 정을 느낄 때가 드물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 감사헌금의 종류가 많은데, 그 종류가 20가지, 또는 그 이상이라고 하는 말을 어떤 사람으로부터 들은 기억이 납니다.그 리 많은 감사헌금의 종류 가운데, 저는 아직 공기 감사헌금, 물 감사헌금, 민족에 대한 감사헌금 등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물론 이런 말로서 새로운 감사헌금의 항목을 늘려서 감사헌금을 해 야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이 사실은 제가 말하지않아 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정작 더 중요한것, 진짜 중요하게 감사하여야 할 것에 대하여 우리가 감사를 느 끼거나 깨닫지 못하고 있고, 또 그러니까 표현하지 않고 있지 않느냐는 것을 말하려는 것 뿐입니다. 우리의 감사 생활에 있어서 부조리라던가 잘못된 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 하려는 것 뿐 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무엇을 감사해야 되느냐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구약본문인 신명기에 보면, 자연적인 축복이 있고 역사적 축복이 있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 안 땅에 들어가면 그 땅이 비옥하고 풍성한 추수를 할 것 이라고 말하 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자연적 풍성한 축복을 받을 때 역사적 감사를 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강조하 시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풍성한 자연적 축복 을 누릴때 하나님이 역사적으로 그들 민족을 위하여 하신 일에 대하여 망각하지 말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에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던 상태에서 해방해 내신 하나님의 해방사건, 광야에서 방랑하는 동안 수 많은 위기와 위험에서 하나님이 구원 해 주신 사건 들, 이런 사건들을 망각 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감사절에 하나님의 자연적 축복 만이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역사적 축복 에 대하여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 받고 있다고 봅니다. 오늘 고린도후서 본문에서도 감사의 옳바른 태도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사랑의 구제헌금을 위한 바울 의 호소의 말의 일부인데,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 하 느님께 대한 신앙의 자세에 대하여 중대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감사해야 할 이유를 설명할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기 때문에 감사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감사의 이유를 적절히 설명 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표현을 그대로 좀 소개하면 다음 과 같습니다.
1. "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모든 은혜를 풍성하게 하셔서 모든 일에 언 제나 여러분을 충족하게 하시며 온갖 선한 일을 넘치도록 행할수 있게 하실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8절)
2. "그가(하나님이) 가나한 자들에게 아낌없이 뿌려주셨으니 그의 의 로우심이 영원토록 있도다."(9절)
3. "씨뿌리는 자에게 뿌릴 씨와 먹을 식량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10절)
4. "하나님이 여러분에게서도 씨를 마련해 주시고 번식하게 하시고 여러분의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해주실 것입니다."(10절)
5. "여러분은 모든 일에 부요하게 되어 아낌없이 도울수 있게 될 것 이요"(11절) 6.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14절) 7. "말로 다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15절) 오늘의 설교 제목이 마지막 귀절에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마지막 귀절이 감사의 이유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 언제나, 어떤 처지에서나,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할 이유는 하 느님이 우리에게 "말로 다 할수 없는 선물을 주시기" 때문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여러분들이 이 말에 동의 합니까 슬픔 을 당한 사람, 사업에 실패한 사람, 사사건건 일이 뒤틀리고 실패만 보는 사람이 과연 하나님의 말로 다할수 없는 선물을 인정하고 이러한 하 느님께 언제나 감사할수 있을가요 이런 질문을 할 사람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오늘 좀 생각 해 보려고 합니다. 바울이 "말로 다할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는데 우선 이 말 이 특별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일부의 사람들 만에게 적용되는 말입 니까 아니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입니까 저는 모든 사람들에 게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 합니다.비록 불행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라도 이 말씀은 맞는 말이라고 믿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수 있습니 까 그것은 바울이 말하는 "말로 다할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을 의미 하느냐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말하는 "말로 다할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 합니까 우리가 아는 대로 바울은 당대에 대표적인 '말쟁이'이고 문필가, 또는 문장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의 글이 우리의 신약성서 의 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훌륭한 신학적 논문 같은 글을 썹는가 하면 매우 아름다운 문학적이고 시적인 글도 썹었씁니다. 그런 언변가이고 문장가인 바울이 "말로 다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저의 경험을 한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얼마되지 않았을때에 교수의 부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상 처한 그 교수에게 어떻게 조의를 표할지 도저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좀 친한 교수에게 '무슨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문화도 다르고 풍속도 다르며, 거기다가 영어도 잘 모르니 그런 경우에 어떻게 말하여야 할지 알지 못하여 도움을 받기 위하여 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의의로 '그렇게 말하렴' 이라는 짧은 대꾸였습니다. 그제야 저는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이 정말 가장 적절한 조의의 표현이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과 상처를 당한 사람에게 무슨 신학적인 말로, 또는 설교로 위로 할 수 있다는 생각 또한 어리석은 것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로도 위로가 불가능함은 물론이고 또 그런 슬픔을 당한 사람의 아픔에 동참하는 사람은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슬픔의 경우만이 아니라 감사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것 같습니다. 바울이 그것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바울은 비록 그가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사람이었지만 그 자신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생각할때 너무나 마음이 압도되고 벅차 고 뭐라고 필설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느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선물" 이라고 표현했다고 믿습니다. 바울이 "말로 다할수 없는 선물"이라고 할 때 그는 무엇을 염두에 두 고 있었을까요 그는 분명히 하나님이 그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을까를 생각하여 그렇게 말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위하여, 또 우리 모두를 위하여 하신 일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일일 것입니다. 바울 의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이제 여러분은 죄 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 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 느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롬 6:17-23) 우리가 영생을 선물로 받은것은 우리 편에서 보면, 공짜이고 그저 받 은 것이고
그러므로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서는 큰 댓가를, 희생을 치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속량의 은혜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것을 경제적인 개념으로 표현하여 말했습니다. 오늘 고린도후서 본문 바로 앞장인 8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르르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가 난하게 되심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롬 8:9) 우리는 모두 영적으로 희망없는 사람들이고 죄와 죽음의 세력 아래 눌려서 신음하고 삶아닌 죽음을 살고 있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것 을 바울은 "가난한" 상태로 표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이 해 해방되어 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스러운 신분 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우리 세상에 보내시어서 우리에게 해방을 복음을 주시고 구원의 길을 가리쳐 주시어서 우리가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해방받아 의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 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영원한 생을 바라보고 진정한 삶을 누 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부요한" 상태라고 표현 했습니다. "말로 다할수 없는 선물"을 받아 사는 우리 우리들의 삶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기전에는 희망이 없는 존재지만, 이제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 구원과 영생에 대한 희망, 부활의 희망, 이 희 망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사실을 빈곤과 부요함이란 개념으로 설명 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야말로 "말로 다할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할 이유가 여기 에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여러분들은 얼마나 인정하고 감사하고 있습 니까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여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나는 왜 어느 배우처럼 미 인, 미남자가 아닌가 나는 왜 누구처럼 머리가 좋지 않은가, 재주가 없는가, 부자가 아닌가, 내 아애가, 또는 내 남편이 자식이 어느 집 처 럼 못한가 등등의 문제로 고민하고 이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하자면 '자기 이메이지' (Self-image)가 낮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른 사람이 아닌 나로 창조해 주신데 대하여 하나님 께 진정한 감사를 드리지 못한다면 우리들의 신앙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아릅답고, 훌륭하고, 어느 누구와 바꿀수 없는 나,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나는 나로 태어나고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원치 않는다는 그런 자기 긍정과 자존심이 없이는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한 상태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물론 문제가 있는 나의 성격, 인격적 결함, 불합리성 등을 정당화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우리의 신앙하는 바를 철저하게 의식하고 있다면 역사적 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축복하셔서 오늘의 내가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 의 은혜를 인정하고 이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을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가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했다면, 얼마나 비참하고 불행한 존재 일 것이냐는 것을 생각할때 우리는 정말 고마운 마음이 솟아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내가 예수를 몰랐다면 지금 내가 어떻게 되었 을가 어떤 인간이 되었겠는가 만일 내가 신앙의 아버지가 나의 아버 지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아들이었다면 얼마나 불행한 존재가 되어있겠는가 등을 생각하면 정말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면 얼마나 불행한 존재가 되어있겠는가' 등을 생각하면 정말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을 받고 영생을 보장받고 부활을 약속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바울은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습니다:"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서 멀리 떠나 있었 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의 은 혜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게 되었습니다.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세 워 그의 피로 속죄의 제물을 삼으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길을 통 하여 죄사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소위 '신앙의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신 앙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루터교인들은 이것을 곡 "은혜를 통하여 믿음에 의하여 의롭게 인정함을 받는다"라고 하여 믿음과 함께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는것 이 좋을것 같습니다. 신앙인의 교리를 믿는 사람은 감사하지 않을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이 은혜, 이 선물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감사하고 있습니까 만일 예수님에 의해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없 다면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에 있던지, 얼마나 재산이 있던지, 그 사람 은 행복한 사람도, 축복받은 생을 누리는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한 신앙인의 신앙고백적 감사의 심정을 읊은 시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그의 시는 매우 감동적입니다.:"피흘리는 (어린)양 당신께 저는 모든 것을 힘입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것, 제가 오늘의 제가 된 이 모든 것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모든것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것은 이제 더 이상 저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오늘의 저는 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 저는 당신의 것 입니다. 주님, 제가 어찌 황금 시간을 당신에게 바치지 않고 유보 할수 있겠 습니까 모아 놓은 황금 또는 어떤 권력인들 당신에게 바치지 않고 유보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당신의 소중한 자신을 저를 위하여 주셨을때 어찌 제가 당신으로부터 귀중한 것을 한가진들 빼돌릴수 있겠습니 까"(주
1) 다음으로 하나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선물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민족, 우리 조상, 우리 금수강산, 우리말, 우리문화, 우리역사, 등 이런 것이 하나님의 말로 다할수 없는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유대인의 감사 기도 가운데 이방인(타 민족이나 인종)으로 창조하지 않고 유대인으로 창조해 주신데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이방밈족에게 선교사로 파송되어 그들을 위해 일생을 마쳤던 바울도 자기 민족에 대한 뜨거운 긍지와 감사와 애정을 가졌던 것을 우리는 압니다. 모세도 그러했고 예수님도 이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민족과 우리 조상들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 까 이것이 말로 다할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감사합니까 우리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를 한국인으로 태어나게 해 주 신데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많 은 사람이 우리 조상들로부터 물려 받은 삶의 터전인 이 토끼 모양의 조국 강산을 인하여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출판계에 화제가 되어있는 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박태혁이라는 사람의 추한 한국인이라는 책입니다. 이 저자가 일본인인데 한국인 이름으로 썹다는 주장등이 나오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습미다만, 이 책 에서 주장하는 바는 일본의 한국신민지 통치는 비난 받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롤 생각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놀랍고도 엄청난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이 저자는 일본은 한국을 근대화시켰기 때문에 한국은 일본 의 은혜를 입었는데도 일본을 원망하고 일본이 마치 죄를 지은듯이 사 과를 하라는 부당한 요구를 일삼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조 말기의 한국은 암흑의 세계였으나 일본이 그 어둠을 깨고 광명을 가져오게 했던 것이다", 또 "일본의 통치하에 들어간 것은 한국민에게는 행운이었다"(주
2)는 등의 터무니 없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이 저자-그가 일본인이든 한국 인이든-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저자의 터무 니 없는 주장에 대하여 불쾌함을 금할수 없지만, 차제에 우리 자신들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민족과 우리 조상에 대하여 얼 마나 감사하고 있으며,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화에 대하여 얼마만큼 긍정적으로 보며 감사하고 있느냐는 것을 반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 왔을때 예수를 믿었던 1세 한국 기독교인들을 생각해보는 것은 의미있을 것으 로 봅니다. 그들이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나라와 민족이 외세의 침략 을 받기 시작하였고 다른 발전된 문화와 접하면서 우리가 물질문명에서 도 뒤지고 의식면에서도 봉건적 사회로 뒤떨어진 문화라는 것을 인정했 고, 나라와 민족의 힘이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근대화와 민족자주운동을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 안에서 전 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평하거나 열등의식에 사로잡혀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물려 받은 땅을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고 부르며 감사했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는 일을 기독교회와 기독교인의 사명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신세타령이나 불 만불평이나 넋두리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할일이 많다고 생각했고 감사 할 뿐이었다는 것을 생각할때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당시에 한국 기독교인들이 애창했던 찬송가가 잇습니다. 제가 어릴때에 그 찬송을 많 이 불렀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찬송은 우리곡의 도니제띠(G.Doniztti) 의 것입니다만, 남궁 억 작시의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란 찬송이었 습니다. 이 찬송가는 지금도 우리의 찬송가에 들어 있습니다만 요즘은 별로 부르지 않고 있습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 동산에 할일 많아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일하러 가세 일 하러 가 삼천리 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강산에 일하러 가세" (찬송가371장)라는 가사에서 우리는 당시 1세 한국기독교인들의 조국에 를 엿볼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얼마나 조국애를 가지 고 있고 조국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또 무었을 두고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 니까 이 아름다운 창조세계에 말로 말할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미국 개신교회의 공동 기도문에 다음과 같은 감사기도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 보전, 그리고 이 생의 모든 축복을 인하여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보다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의 역사에 나타난 당신의 측량할 수 없는(inestimable) 사랑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은총의 수단(means)과 영광의 희망을 인 하여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주
3) 마지막으로 미국 본토민들인 모호크족(Mohawk)의 기도를 변형하여 만 든시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머니 지구에게 감사 할지어다, 밤 낮을 가리지 않고 항해하도다 그 흙에 감사하라, 풍요하고 귀하고 달콤하도다 우리의 마음도 그럴 지어다. 식물들에게 감사할지어다. (중략) 공기에게 감사할지어다. (중략) 야생 존재들에게 감사할지어다, 우리의 형제(자매)로다. 비밀, 자유, 길을 가르치고 그 젖을 우리와 나누도다 자아 완성, 용감하고 깨닫고 있도다 우리의 마음도 그럴 지어다. 물에게 감사할지어다 구름, 호수, 강, 빙하 멈추게도 하고 흘러보내기도 하며, 우리의 몸 소금기가 있는 바다를 온통 관통하도다 우리의 마음도 그럴 지어다 태양에게 감사할지어다, 나무 가지 사이로, 안개 사이로, 가리우며 맥박치는 빛 곰과 뱀이 동굴을 데우고-우리를 깨우는 이-우리의 마음도 그럴지어다 웅대한 창공에게 감사할지어다 수억조의 별들을 쥐고있는-그러면서도 그 넘어로-온 권력, 그리고 생각들 넘어로, 그러면서도 우리 안에 있도다 공간은 할아버지 마음(the Mind)은 그의 아내 그럴 지어다."(주 4) 제가 이 시에다가 항 귀절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이 모든 것을 내 신 창조주 하나님에게 감사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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