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성도의 삶 (벧전3:8-12)
본문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과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과 소리를 듣는데 말을 못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답답할 것인가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다. 누가 가장 답답할까 물론 나름대로 다 답답하겠지만, 저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가장 답답할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말에 ‘벙어리 냉가슴 앓는듯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냉가슴을 앓는다는 말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 때 유일하게 쓰는 말인데 말 못하는 사람이 제일 답답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유일한 특권이며, 은혜 이 특권을 상실한 사람의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다 보면 “차라리 입을 다물어야지! 침묵하면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왜 입을 다물지 못하였던가” 라고 차라리 벙어리 되지 못함을 후회 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생각해 보면, 꼭 필요한 말을 적절하게 할 수 있고, 불필요할 때는 입을 다물고 침묵할 수 있는 언어생활의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요즈음에 저는 침묵하는 훈련을 합니다. 천주교 신부들이 훈련을 받을 때 수도원에 들어가서 몇일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지내는 훈련을 합니다. 말을 하는 것은 인간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고귀한 은혜이지만 이 말 때문에 사람들이 실수를 하고, 이 말 때문에 경건의 샒을 잃어버리고, 이 말 때문에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훈련이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벧전3:9-10을 보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쫓으라.”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복을 유업으로 받고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는 원하는 사람은 좋은 언어생활을 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좋은 언어생활이 복과 생명과 미래의 좋은 날, 즉 미래의 복에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봅니다. 우선 자기가 한 말은 자기 생명과 관련이 깊습니다. 즉 자신이 한 말은 자신에게 가장 먼저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좋은 언어생활을 해야 합니다. 남에게 하는 말이라도 가장 먼저 듣는 것이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말하면서도 그것이 나에게 말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한 말을 할 때는 자신의 마음이 선해집니다. 진실된 말을 하면 자신이 진실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악한 말을 할 때는 내 마음이 악해지고, 격한 말을 할 때는 스스로가 격해집니다. 더러운 말을 내뱉으면 듣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이 더러워집니다. 인격이 추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폭력적인 말을 쓰는 사람은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파괴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경험한 바에 의하면 내가 화를 내어 격한 말을 하게 되면 내 자신이 더 흥분하게 되고, 나중에는 꼭 후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만든 기계가 거짓말 탐지기 입니다.
사람이 양심을 속이고 거짓을 말하면 심장의 박동과 맥박이 달라지게 됩니다. 흥분ㅌ하게 됩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사람이 거짓말을 하나 않나 밣혀내는 기계가 것짓말 탐지기 입니다. 마음이 있어서 말하기도 하지만, 말을 하면서 마음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말을 하면서 자꾸만 꾸며서 말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절제되게 말하다가도 자신의 말에 자신이 흥분되는 사람을 많이 고게 되고, 말이 마음에 엑센트를 주고, 마음의 형태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은 그 말에 마음이 지배를 받게 되니, 마음의 형태가 그 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말은 다른 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사랑할 수도 있고, 말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드럽고 안위하는 말이 솜이불처럼 상대를 감싸고 평안하게 할 수 있지만, 잔인하고 아픈 말들이 상대를 가시덤불 가운데 몰아 넣어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위주로 평범하게 한 말이 상대의 가슴 속에는 폭탄이 되어 터지면서 크게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그대로 생명을 사랑하는 혀를 금하고, 악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계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어느 며느리가 상담한 것을 보면 시어머니가 늘 자기를 미워하고 어느 곳에 가든지 자신을 흉을 본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에 가서도 자신의 친구들에게 며느리를 수 없이 흉을 보기 때문에 매일 함께 사는 시어머니가 미워서 얼굴도 보기 싫으며, 또한 시어머니를 마주 대하면 자신의 손이 떨려서 멀쩡한 그릇을 떨어트려서 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교회에 나가고 싶지도 않고 이 시어머니 때문에 부부 사이도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 시어머니는 그 짧은 혀로 젊은 며느리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를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잠17: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하셨습니다. 며느리가 죽을 죄지은 것도 아니고, 조금 잘못을 하였다고 해도 그 허물을 덥어주고 사랑으로 잘 가르켜 주어야 할 시어머니가 그 허물을 자꾸만 흉을 보고 다니니 그 며느리는 사는 것이 참으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어리석은 시어머니 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시어머니 처럼 살아서는 완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말 한마디가 내 가족에 상처를 입히고 내 교회의 성도 이웃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말을 삼가고 조심해야 합니다.
셋째로 말은 항상 하나님이 들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미래에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공간에 큰 귀를 놓으시고 모든 말들을 다 들으신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말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만 우리들이 모든 말은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으시니 그것은 곧 기도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에서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원망할 때 하나님이 다 들으셨습니다. 민14장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대표로 한사람씩 선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40일간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10명은 절망적인 보고를 합니다. 이 때 백성들이 모세에게 원망을 하는데 “우리가 차라리 애굽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으며 더 좋았을 뻔하였다.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한 장관을 세워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26절 이하를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 앞에서 원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 앞에서 원망한 것이 곧 하나님께 원망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냐면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운 종이고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곳까지 인도한 것은 모세의 사사로운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광야로 인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입술로 원망하던 모든 사람은 광야에서 죽게 되었고, 광야에서 40년이 지난 후에 20세 이하의 어린아이들과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원망과 불평을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사람에게 하는 원망과 불평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들에게 주셨던 복을 거두어 가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는 물을 달라고 원망하는 백성들 앞에서 화를 냈습니다. 절제함으로 말하지 못하고 흥분하여 말을 잘못 하였습니다. 시106:33에서 보면 “이는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백성들이 모세를 거역하고 원망할 때 모세의 입술에서 망령된 말을 하게 됨으로 그도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민20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말의 실수는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특히 지도자들은 말을 조심하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어느 여자집사님 연년생 남자아이들만 키우다 보니까, 너무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의 입에서는 “지겨워 죽겠다 둘다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한 구덩이에 묻어 버렸으면 좋겠다” 라는 무서운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처럼 어느 날 하루 간격으로 죽어서 한 무덤에 묻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대로 되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망할 놈이라고 욕하면 자식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 따라서 우리가 복을 받을 수도 있고 저주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로 절제된 언어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을 절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혀를 금하는 생활을 야고보서에서는 말을 순종케 하려고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배의 조종실은 아주 작은 것이 전체를 커다란 배의 방향을 잡아 주듯이 혀는 우리 몸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만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혀는 자동차의 운전대와 같습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가장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것은 운전대입니다. 아무리 엔진이 좋고 자동차가 새 것이라고 하여도 운전대를 놓치게 되면 사고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 제가 중고차를 사서 끌고 다닐 때 운전대에서 자동차 앞바퀴로 연결되는 볼트 하나가 풀려서 운전대를 돌려도 앞바퀴의 좌우 방향이 바꾸지 않아서 사고를 당할 뻔 한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 사건과 사고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도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롬10:10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입의 고백은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고, 우리의 말 한마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며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우리 입술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형제를 미워하고 험담하고 공격하고 찌르게 됨다면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입은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음식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들어오는 것도 조심해야 하지만 대부분은 우리들은 음식을 조심해서 먹고 맛있는 것을 골라 먹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것이나 먹어도 소화가 됩니다. 임성남 집사님께서 가져오신 토끼도 보니까 아무리 싱싱한 풀을 뜯어다 주어도 자기가 먹지 않는 풀을 냄새를 맡아보고 먹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것이구나 생각하였습니다.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대로 먹을 것만 먹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입에서 나가는 말은 조심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가는 말에 파수꾼을 세워야 합니다. 시141:3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하셨습니다. 아라비아의 속담에 “말을 많이 하면 말에 지배를 받게 되지만 말을 적게 하는 자는 말을 지배하는 자가 된다.” 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시인은 말하기를 “1년을 생각하여 곡식을 심고, 10년을 생각하여 나무를 심고, 100년을 생각하여 사람을 심고, 영원을 생각하며 말씀을 심으라.” 고 하였습니다. 말을 절제 하고, 침묵하며 사는 훈련을 해야 하겠습니다.
2. 불신앙적인 말보다는 신앙적인 말을 해야 한다. 악을 그치고 궤율을 말하지 말고, 신앙적인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셨고, 또한 엡5:4에서는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하셨습니다. 더러운 말, 어리석은 말, 아첨하는 말, 망령되고 허탄한 말, 저주하는 말, 비방하는 말, 자랑하는 말다툼과 시기를 버려야 합니다. 이는 불신앙의 말이고 악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덕을 세우는 말, 남에게 용기를 주고, 칭찬을 하는 말, 소망을 주고 믿음을 심어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름다움 성도의 참된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 보면 두 가지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는 남을 비방하고 조롱하고 험담하는 말을 합니다. 이 사람은 늘 부정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는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지 이해하려 하지 않고 비판을 먼저 하려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사회 생활에서 낙오자가 될 것입니다. 저도 목회를 10년 이상을 하다보니 수 많은 사람을 겪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깨달은 것은 목사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덕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회를 한지 3년째 되는 전도사 때 새로운 교회를 부임하게 되여 이사짐을 내려 놓고 대충정리하고 저녁을 먹고 있으려니까 그 교회 허석난 집사라는 분이 찾아와서 먼저 목사의 잘못한 일을 다 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먼저 목사가 목회를 참 잘못했구나 나는 먼저 목사보다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 집사가 제일로 제 속을 썩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먼저 목사님도 목회를 잘하시는 분이었는데 그가 와서 험담을 하고 비판을 한 것입니다. 그 허집사라는 분은 서산 시장에 다녀오려면 주택 앞으로 자나가야 하는데 동태 한 마리 사오지 않는 인색한 사람인데 목사가 뭐를 잘못하네!. 사모가 뭐 잘못하네!. 이런말을 가장 많이 하는 허집사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많은 괴로움을 껵은 적이 있었고 그 뒤부터는 남을 비방하고 자기는 잘하는 척하는 사람은 다시보게 되고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남의 허물을 가지고 험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을 험담하면 그 말이 돌고 돌아서 알사람 다 알게 되고 되려 말한 사람만 나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남의 허물을 가려 주고, 용기를 주는 말을 하고, 칭찬을 하는 말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일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남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항상 많은 친구가 생길 것이고 그는 사회에서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 중요한 것입니다. 형제에게 위로와 사랑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겸손으로 형제를 대하고 복을 빌어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화평의 말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고 본문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혀를 금하고 악한 말을 그치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입술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허물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듯이 훌륭한 성도는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선하고 은혜 끼치는 말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쫓으라.”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복을 유업으로 받고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는 원하는 사람은 좋은 언어생활을 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좋은 언어생활이 복과 생명과 미래의 좋은 날, 즉 미래의 복에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봅니다. 우선 자기가 한 말은 자기 생명과 관련이 깊습니다. 즉 자신이 한 말은 자신에게 가장 먼저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좋은 언어생활을 해야 합니다. 남에게 하는 말이라도 가장 먼저 듣는 것이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말하면서도 그것이 나에게 말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한 말을 할 때는 자신의 마음이 선해집니다. 진실된 말을 하면 자신이 진실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악한 말을 할 때는 내 마음이 악해지고, 격한 말을 할 때는 스스로가 격해집니다. 더러운 말을 내뱉으면 듣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이 더러워집니다. 인격이 추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폭력적인 말을 쓰는 사람은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파괴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경험한 바에 의하면 내가 화를 내어 격한 말을 하게 되면 내 자신이 더 흥분하게 되고, 나중에는 꼭 후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만든 기계가 거짓말 탐지기 입니다.
사람이 양심을 속이고 거짓을 말하면 심장의 박동과 맥박이 달라지게 됩니다. 흥분ㅌ하게 됩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사람이 거짓말을 하나 않나 밣혀내는 기계가 것짓말 탐지기 입니다. 마음이 있어서 말하기도 하지만, 말을 하면서 마음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말을 하면서 자꾸만 꾸며서 말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절제되게 말하다가도 자신의 말에 자신이 흥분되는 사람을 많이 고게 되고, 말이 마음에 엑센트를 주고, 마음의 형태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은 그 말에 마음이 지배를 받게 되니, 마음의 형태가 그 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말은 다른 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사랑할 수도 있고, 말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드럽고 안위하는 말이 솜이불처럼 상대를 감싸고 평안하게 할 수 있지만, 잔인하고 아픈 말들이 상대를 가시덤불 가운데 몰아 넣어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위주로 평범하게 한 말이 상대의 가슴 속에는 폭탄이 되어 터지면서 크게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그대로 생명을 사랑하는 혀를 금하고, 악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계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어느 며느리가 상담한 것을 보면 시어머니가 늘 자기를 미워하고 어느 곳에 가든지 자신을 흉을 본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에 가서도 자신의 친구들에게 며느리를 수 없이 흉을 보기 때문에 매일 함께 사는 시어머니가 미워서 얼굴도 보기 싫으며, 또한 시어머니를 마주 대하면 자신의 손이 떨려서 멀쩡한 그릇을 떨어트려서 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교회에 나가고 싶지도 않고 이 시어머니 때문에 부부 사이도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 시어머니는 그 짧은 혀로 젊은 며느리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를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잠17: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하셨습니다. 며느리가 죽을 죄지은 것도 아니고, 조금 잘못을 하였다고 해도 그 허물을 덥어주고 사랑으로 잘 가르켜 주어야 할 시어머니가 그 허물을 자꾸만 흉을 보고 다니니 그 며느리는 사는 것이 참으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어리석은 시어머니 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시어머니 처럼 살아서는 완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말 한마디가 내 가족에 상처를 입히고 내 교회의 성도 이웃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말을 삼가고 조심해야 합니다.
셋째로 말은 항상 하나님이 들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미래에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공간에 큰 귀를 놓으시고 모든 말들을 다 들으신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말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만 우리들이 모든 말은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으시니 그것은 곧 기도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에서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원망할 때 하나님이 다 들으셨습니다. 민14장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대표로 한사람씩 선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40일간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10명은 절망적인 보고를 합니다. 이 때 백성들이 모세에게 원망을 하는데 “우리가 차라리 애굽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으며 더 좋았을 뻔하였다.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한 장관을 세워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26절 이하를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 앞에서 원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 앞에서 원망한 것이 곧 하나님께 원망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냐면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운 종이고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곳까지 인도한 것은 모세의 사사로운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광야로 인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입술로 원망하던 모든 사람은 광야에서 죽게 되었고, 광야에서 40년이 지난 후에 20세 이하의 어린아이들과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원망과 불평을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사람에게 하는 원망과 불평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들에게 주셨던 복을 거두어 가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는 물을 달라고 원망하는 백성들 앞에서 화를 냈습니다. 절제함으로 말하지 못하고 흥분하여 말을 잘못 하였습니다. 시106:33에서 보면 “이는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백성들이 모세를 거역하고 원망할 때 모세의 입술에서 망령된 말을 하게 됨으로 그도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민20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말의 실수는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특히 지도자들은 말을 조심하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어느 여자집사님 연년생 남자아이들만 키우다 보니까, 너무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의 입에서는 “지겨워 죽겠다 둘다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한 구덩이에 묻어 버렸으면 좋겠다” 라는 무서운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처럼 어느 날 하루 간격으로 죽어서 한 무덤에 묻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대로 되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망할 놈이라고 욕하면 자식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 따라서 우리가 복을 받을 수도 있고 저주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로 절제된 언어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을 절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혀를 금하는 생활을 야고보서에서는 말을 순종케 하려고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배의 조종실은 아주 작은 것이 전체를 커다란 배의 방향을 잡아 주듯이 혀는 우리 몸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만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혀는 자동차의 운전대와 같습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가장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것은 운전대입니다. 아무리 엔진이 좋고 자동차가 새 것이라고 하여도 운전대를 놓치게 되면 사고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 제가 중고차를 사서 끌고 다닐 때 운전대에서 자동차 앞바퀴로 연결되는 볼트 하나가 풀려서 운전대를 돌려도 앞바퀴의 좌우 방향이 바꾸지 않아서 사고를 당할 뻔 한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 사건과 사고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도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롬10:10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입의 고백은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고, 우리의 말 한마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며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우리 입술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형제를 미워하고 험담하고 공격하고 찌르게 됨다면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입은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음식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들어오는 것도 조심해야 하지만 대부분은 우리들은 음식을 조심해서 먹고 맛있는 것을 골라 먹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것이나 먹어도 소화가 됩니다. 임성남 집사님께서 가져오신 토끼도 보니까 아무리 싱싱한 풀을 뜯어다 주어도 자기가 먹지 않는 풀을 냄새를 맡아보고 먹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것이구나 생각하였습니다.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대로 먹을 것만 먹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입에서 나가는 말은 조심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가는 말에 파수꾼을 세워야 합니다. 시141:3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하셨습니다. 아라비아의 속담에 “말을 많이 하면 말에 지배를 받게 되지만 말을 적게 하는 자는 말을 지배하는 자가 된다.” 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시인은 말하기를 “1년을 생각하여 곡식을 심고, 10년을 생각하여 나무를 심고, 100년을 생각하여 사람을 심고, 영원을 생각하며 말씀을 심으라.” 고 하였습니다. 말을 절제 하고, 침묵하며 사는 훈련을 해야 하겠습니다.
2. 불신앙적인 말보다는 신앙적인 말을 해야 한다. 악을 그치고 궤율을 말하지 말고, 신앙적인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셨고, 또한 엡5:4에서는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하셨습니다. 더러운 말, 어리석은 말, 아첨하는 말, 망령되고 허탄한 말, 저주하는 말, 비방하는 말, 자랑하는 말다툼과 시기를 버려야 합니다. 이는 불신앙의 말이고 악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덕을 세우는 말, 남에게 용기를 주고, 칭찬을 하는 말, 소망을 주고 믿음을 심어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름다움 성도의 참된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 보면 두 가지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는 남을 비방하고 조롱하고 험담하는 말을 합니다. 이 사람은 늘 부정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는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지 이해하려 하지 않고 비판을 먼저 하려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사회 생활에서 낙오자가 될 것입니다. 저도 목회를 10년 이상을 하다보니 수 많은 사람을 겪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깨달은 것은 목사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덕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회를 한지 3년째 되는 전도사 때 새로운 교회를 부임하게 되여 이사짐을 내려 놓고 대충정리하고 저녁을 먹고 있으려니까 그 교회 허석난 집사라는 분이 찾아와서 먼저 목사의 잘못한 일을 다 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먼저 목사가 목회를 참 잘못했구나 나는 먼저 목사보다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 집사가 제일로 제 속을 썩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먼저 목사님도 목회를 잘하시는 분이었는데 그가 와서 험담을 하고 비판을 한 것입니다. 그 허집사라는 분은 서산 시장에 다녀오려면 주택 앞으로 자나가야 하는데 동태 한 마리 사오지 않는 인색한 사람인데 목사가 뭐를 잘못하네!. 사모가 뭐 잘못하네!. 이런말을 가장 많이 하는 허집사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많은 괴로움을 껵은 적이 있었고 그 뒤부터는 남을 비방하고 자기는 잘하는 척하는 사람은 다시보게 되고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남의 허물을 가지고 험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을 험담하면 그 말이 돌고 돌아서 알사람 다 알게 되고 되려 말한 사람만 나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남의 허물을 가려 주고, 용기를 주는 말을 하고, 칭찬을 하는 말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일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남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항상 많은 친구가 생길 것이고 그는 사회에서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 중요한 것입니다. 형제에게 위로와 사랑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겸손으로 형제를 대하고 복을 빌어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화평의 말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고 본문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혀를 금하고 악한 말을 그치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입술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허물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듯이 훌륭한 성도는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선하고 은혜 끼치는 말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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