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한 생애 (행1:8)
본문
가장 만족한 생애는 무엇일까 생을 마치면서 "됐다. 이제 만족하 다"하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는 내 생애를 다시 시작해도 역시 이렇게 해야 하겠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도록 하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 분명하게 그 길을 말해 주겠다. 그 대답은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 발견된다. 그는 장래될 일을 본 사람이었다. 그는 인간의 근원과 마지막을 훤히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특별한 계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최선의 최상의 삶을 살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후회와 두려움 속에 죽어갔다. 무서워했던 것은 왕도 대통령도 재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바울은 뭐라고 했던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 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 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 얼마나 당당한 고백인가! 이것이 우리 고백이어야 한다. 그가 어떻게 살았기에 이처럼 자신있는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는 본문의 말씀대로 그대로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령님을 받았다. 그래서 권능도 함께 받았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려면 반드시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받고 다음에는 그 권능을 누려야 한다. 그래야만 증인 노릇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기도를 많이 하면 어떤 계기를 통해서 권능 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달라고 외치고 환상이나 꿈을 통해서 아니면 느낌을 통해서 주어졌다는 확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그런 느낌이 와야 믿지 성경 그대로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 이런 신앙은 근본이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변하는 느낌을 믿는 것이니 얼마나 불완전한가! 그럼에 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신자들은 이러한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앙이 느낌 위에 서서는 않된다. 아무 느낌이 없어도 그 말씀에 내 마음을 일치시켜야 한다. 이렇게 믿어야 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성령님을 받은 것은 신자들 대부분 믿는다. 그러나 권능을 받은 것은 믿지 않는다. 그것도 믿어야 한다. 권능이 느껴져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상이나 음성이나 특별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내것으로 삼아 그대로 생각하고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권능은 너무도 자연스런 것이 된다. "나는 성령님을 받았다. 그러므로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성령님의 모든 권능은 내게 주어졌다.
이제는 새로운 존재로서 산다." 그래서 전 의 사고방식과 사는 방법을 하나씩 벗어 버린다. 그렇게 함으로서 권능의 삶은 나의 것으로 경험되기 시작한다. 억지로 참고 노력해서 이 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었으니 그 힘으로 참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증 인은 말로만 하지 않는다. 억지로 끌고 나오고 감언이설로 꼬인다고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 받은 것을 주어야만 가능하다. 그리스도가 바로 받은 것이다. 그가 나를 통해서 발휘되도록 살라. 그리하면 저절 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 사람들은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본다. 나는 우선 주위에 영향을 미친다.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그리스도인 노릇할 수 없다. 남편이나 아내에게 자식들에게 비난받으며 신자가 될 수 없다. 부하직원이나 동료가 깔보는 신자는 실패하고 있는 신자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나는 하나님처럼 되어야 한다. 그렇게 살아보라. 그럴 능력이 주어졌으니까. 그렇게 증거하라. 그러면서 거기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와 먼 곳에 있는 이들에게 도 영향을 나누어야 한다. 나와 상관 없는 사람들도 돕고 그들을 구원 하는데 내 삶을 나누어야 한다. 시간과 재산을 내어서 고통받는 이웃 들을 돕는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나눈다. 그래서 그들이 성령님을 받 도록 돕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나는 더욱 증인이 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활동이 땅끝까지 미치게 된다. 그렇다. 우리의 활동이 예루살렘에만 머물게 해서는 않된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 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의 눈을 넓혀야 한다. 내 가족만 보는 것이 아니다. 내 고향 친구, 내 동포만 보는 것이 아니다. 원수도 보고 타국 사람들도 구원해야 한다. 바울은 평생을 이방인의 사도로 지냈다. 소아시아에 헬라에 로마 에 스페인에 셀 수 없이 많은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 교회들은 주위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먼먼 다른 나라에도 선교사를 파송하 였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이룬 것이다. 땅 끌까지 증인이 되지 않으면 불완전한 복종으로 그치는 것이다.
1885년 4월. 두 사람의 선교사가 인천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이 땅에서 평생을 보낸다. 아펜젤러 목사는 이듬해 물에 빠진 소년을 구 하다 죽는다. 1907년 그러니까 이십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뒤에 조선 에 부흥이 일어난다. 조선은 개화되어갔고 기독교는 독립을 주도하며 민족의 앞길을 지도한다. 결국에는 우리도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 민수기에 보면 족장의 이름 밑에 그가 낳은 자손들의 이름이 기록 된다. 이렇게 각 지파가 이루어진 것이다. 자식을 많이 낳은 이들은 강한 지파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그림자일뿐이다. 영적인 자식을 많이 낳은 사람들은 거대한 하늘 지파를 이룰 것이다. 그의 이름 밑에 그를 통해서 구원받은 이름들이 기록될 것이다. 구원의 방법도 기록될 것이다. 직접 전도로 구원받은 이, 간접적 으로 전도자와 선교사를 지원해서 구원받은 이, 교회를 건축하고 물질 을 지원해서 그 일을 통해 구원받은 이, 기도로 인도된 이, 그 모든 조목은 하나님께서 보시고 하나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는 아무 이름이 없을지라도 하늘 민수기에 기록되는 위대한 이름. 우리가 교회를 이룩한지 일년, 비교적 많은 일을 하였다. 남들이 놀랄 큰 규모로 구제하고 전도하였다. 또한 여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것이 완전해 지려면 땅끝까지 증인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나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우리도 위대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는 우리를 향해서 손짓하고 있다. 우리의 선교사들은 이미 10여년을 네팔이나 방글라데시 같은 최빈 국에서 지내고 있다.
이성호 선교사는 6번이나 유치장에 들어갔다. 정 재화 선교사는 수없이 추방을 당하고 추적을 당했다. 땅 한평 집 한채 자기 것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 동족과 현지인들 사이에 오해를 사고 억울함을 당하고 가족들이 고통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이 거룩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모르면서 우리는 잘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나라에는 친구나 친척은 물론 동포도 볼 수 없다. 문화 시설 도 없다. 먹는 것도 지내는 것도 모두다 형편 없다. 차라리 우리 나라 의 낙도는 훌륭한 환경이다. 어찌 우리가 최전방에서 외롭게 싸우는 사람들을 돌보지 않겠는가! 고국에서나마 따듯하게 대해야 한다. 우리도 선교지를 방문해 볼 마음을 가져야 한다. 농촌에 봉사를 가듯 시간을 만들어 낙후된 나라에 가서 함께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 워야 한다. 한 달에 만원이라도 열 사람이 모으면 훌륭한 선교헌금이 된다. 그것으로 현지인들에게 신학을 가르치고 일하는 수고비를 주어 영혼을 구원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위대한 일은 진행되어간다. 내가 가르친 네팔의 학생은 교단의 지도자요 열정적인 목사였다. 400명이 넘는 교인들은 마루 바닥을 좁히면서 계속 밀려들었다. 그들 은 소리치는 것 같았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리라. 하나님을 예배하 리라." 교회당은 좁았다. 이미 창문 마다 사람들로 채워졌지만 들어가 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천만원이면 이 교회를 두배로 확장할텐데. 무엇이 만족한 생애인가 여기 이 놀라운 말씀대로 성령님을 받고 권능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것이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것도 땅끝까지. 그래서 영적인 자녀들을 한없이 만드는 것이다. 이 일을 위 해 큰 비젼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곧 우리 생애는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설 것이다. 모든 목적을 영혼 구원에 집중해야 한다. 가까운 주위에서 시작해서 땅끝까지.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기도를 많이 하면 어떤 계기를 통해서 권능 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달라고 외치고 환상이나 꿈을 통해서 아니면 느낌을 통해서 주어졌다는 확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그런 느낌이 와야 믿지 성경 그대로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 이런 신앙은 근본이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변하는 느낌을 믿는 것이니 얼마나 불완전한가! 그럼에 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신자들은 이러한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앙이 느낌 위에 서서는 않된다. 아무 느낌이 없어도 그 말씀에 내 마음을 일치시켜야 한다. 이렇게 믿어야 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성령님을 받은 것은 신자들 대부분 믿는다. 그러나 권능을 받은 것은 믿지 않는다. 그것도 믿어야 한다. 권능이 느껴져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상이나 음성이나 특별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내것으로 삼아 그대로 생각하고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권능은 너무도 자연스런 것이 된다. "나는 성령님을 받았다. 그러므로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성령님의 모든 권능은 내게 주어졌다.
이제는 새로운 존재로서 산다." 그래서 전 의 사고방식과 사는 방법을 하나씩 벗어 버린다. 그렇게 함으로서 권능의 삶은 나의 것으로 경험되기 시작한다. 억지로 참고 노력해서 이 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었으니 그 힘으로 참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증 인은 말로만 하지 않는다. 억지로 끌고 나오고 감언이설로 꼬인다고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 받은 것을 주어야만 가능하다. 그리스도가 바로 받은 것이다. 그가 나를 통해서 발휘되도록 살라. 그리하면 저절 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 사람들은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본다. 나는 우선 주위에 영향을 미친다.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그리스도인 노릇할 수 없다. 남편이나 아내에게 자식들에게 비난받으며 신자가 될 수 없다. 부하직원이나 동료가 깔보는 신자는 실패하고 있는 신자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나는 하나님처럼 되어야 한다. 그렇게 살아보라. 그럴 능력이 주어졌으니까. 그렇게 증거하라. 그러면서 거기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와 먼 곳에 있는 이들에게 도 영향을 나누어야 한다. 나와 상관 없는 사람들도 돕고 그들을 구원 하는데 내 삶을 나누어야 한다. 시간과 재산을 내어서 고통받는 이웃 들을 돕는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나눈다. 그래서 그들이 성령님을 받 도록 돕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나는 더욱 증인이 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활동이 땅끝까지 미치게 된다. 그렇다. 우리의 활동이 예루살렘에만 머물게 해서는 않된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 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의 눈을 넓혀야 한다. 내 가족만 보는 것이 아니다. 내 고향 친구, 내 동포만 보는 것이 아니다. 원수도 보고 타국 사람들도 구원해야 한다. 바울은 평생을 이방인의 사도로 지냈다. 소아시아에 헬라에 로마 에 스페인에 셀 수 없이 많은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 교회들은 주위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먼먼 다른 나라에도 선교사를 파송하 였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이룬 것이다. 땅 끌까지 증인이 되지 않으면 불완전한 복종으로 그치는 것이다.
1885년 4월. 두 사람의 선교사가 인천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이 땅에서 평생을 보낸다. 아펜젤러 목사는 이듬해 물에 빠진 소년을 구 하다 죽는다. 1907년 그러니까 이십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뒤에 조선 에 부흥이 일어난다. 조선은 개화되어갔고 기독교는 독립을 주도하며 민족의 앞길을 지도한다. 결국에는 우리도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 민수기에 보면 족장의 이름 밑에 그가 낳은 자손들의 이름이 기록 된다. 이렇게 각 지파가 이루어진 것이다. 자식을 많이 낳은 이들은 강한 지파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그림자일뿐이다. 영적인 자식을 많이 낳은 사람들은 거대한 하늘 지파를 이룰 것이다. 그의 이름 밑에 그를 통해서 구원받은 이름들이 기록될 것이다. 구원의 방법도 기록될 것이다. 직접 전도로 구원받은 이, 간접적 으로 전도자와 선교사를 지원해서 구원받은 이, 교회를 건축하고 물질 을 지원해서 그 일을 통해 구원받은 이, 기도로 인도된 이, 그 모든 조목은 하나님께서 보시고 하나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는 아무 이름이 없을지라도 하늘 민수기에 기록되는 위대한 이름. 우리가 교회를 이룩한지 일년, 비교적 많은 일을 하였다. 남들이 놀랄 큰 규모로 구제하고 전도하였다. 또한 여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것이 완전해 지려면 땅끝까지 증인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나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우리도 위대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는 우리를 향해서 손짓하고 있다. 우리의 선교사들은 이미 10여년을 네팔이나 방글라데시 같은 최빈 국에서 지내고 있다.
이성호 선교사는 6번이나 유치장에 들어갔다. 정 재화 선교사는 수없이 추방을 당하고 추적을 당했다. 땅 한평 집 한채 자기 것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 동족과 현지인들 사이에 오해를 사고 억울함을 당하고 가족들이 고통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이 거룩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모르면서 우리는 잘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나라에는 친구나 친척은 물론 동포도 볼 수 없다. 문화 시설 도 없다. 먹는 것도 지내는 것도 모두다 형편 없다. 차라리 우리 나라 의 낙도는 훌륭한 환경이다. 어찌 우리가 최전방에서 외롭게 싸우는 사람들을 돌보지 않겠는가! 고국에서나마 따듯하게 대해야 한다. 우리도 선교지를 방문해 볼 마음을 가져야 한다. 농촌에 봉사를 가듯 시간을 만들어 낙후된 나라에 가서 함께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 워야 한다. 한 달에 만원이라도 열 사람이 모으면 훌륭한 선교헌금이 된다. 그것으로 현지인들에게 신학을 가르치고 일하는 수고비를 주어 영혼을 구원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위대한 일은 진행되어간다. 내가 가르친 네팔의 학생은 교단의 지도자요 열정적인 목사였다. 400명이 넘는 교인들은 마루 바닥을 좁히면서 계속 밀려들었다. 그들 은 소리치는 것 같았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리라. 하나님을 예배하 리라." 교회당은 좁았다. 이미 창문 마다 사람들로 채워졌지만 들어가 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천만원이면 이 교회를 두배로 확장할텐데. 무엇이 만족한 생애인가 여기 이 놀라운 말씀대로 성령님을 받고 권능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것이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것도 땅끝까지. 그래서 영적인 자녀들을 한없이 만드는 것이다. 이 일을 위 해 큰 비젼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곧 우리 생애는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설 것이다. 모든 목적을 영혼 구원에 집중해야 한다. 가까운 주위에서 시작해서 땅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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