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은총 (눅10:30-37)
본문
사람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현실입니다. 인간의 운명이란 필연이든 우연이든 모두 다 만남이라는 사건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읍러다, 오늘날 이 땅에 성공한 사람들, 그리고 행복하게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다 만남이 잘된 사람들입니다. 줄은 배우자를 만나 벙복 한 가정 생활을 하는 사람. 그리고 좋은 스승을 만나서 위대한진리 를 배우고, 땅에서 지혜롭게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 이 땅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출세의 줄달음 길로 전진해가는 사람들, 모두가 다 만 남이 잘된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블행한 사람들을 봅시다. 그리고 실패한 많 은 사람들을 봅시다. 그들은 거의가 다 사람을 잘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길을 가는 동안 사람을 잘 만나기를 원하지만 뜻 대로 되지 않습니다. 배우자를 잘못 만나서 날마다 탄식과 한숨으 로 밤을 지새워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만나서는안될사람을 만나 치명적인 손해를 입게 됩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술집 에 팔려가는 딸이며, 종업원을 잘못 만나 실패하는 사업가며, 주인 을 잘못 만나 착취만 당하는 고용인이며, 위정자를 잘못 만나 도탄 에 허덕이는 민중이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기에 인 생은 잘 만나면 행복이요, 잘못 만나면 불행입니다. 독일의 의사요, 작가였던 한스 카로사는 ,인생은 만남,.이라는 의 미깊은 정의를 내렸습니다. 우리는 길가에서, 차 속에서. 또는 직장 에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남녀가 만납니다. 사제간에 만납니다. 형제간에 만납니다, 이 꼬든 만남을 [행복한 만남J [불행한 만남] 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괴롭히고 륨게 하는 만남은 불 행한 만남이요, 서로를 좋게하는 것은 행복한 만남입니다. 좋은 부모를 만나는 기쁨, 성실한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과, 훌륭 한 스승과 믿음직한 제자를 만나는 보람, 진실한 애인을 만나는 희 열, 좋은 남편 착한 아내를 만나는 행복, 참되고 의로운 인간을 만 나는 기쁨 모두 아름다운 만남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우리 성도들에게 좋은 만남 속에서 남은 생애를 복되게 살기를 바라며 짬은 인생 나그네 길에서 서로 좋은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서 로의 만남이 우리 남은 생애에 연속되어야 하며 주 안에서 만나서 이루어진 신앙 생활도 날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생활로 형성되어 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 으슥한골목길 에서 잔인 무도한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의 가진 모든 것 을 빼앗고 옷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상처를 입혔고 피투성이가된 채 신음하며 거의 죽게 된 그 사람을 그곳에 버리고 갔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지나갔지만 그는 거룩한 사람이라 강도만난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을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곳을 여행하는 중에 강도만난 사람을 보았습니다. 원래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서로 상종하지 않 으며 멸시하지만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이 유대인인 줄 알면서도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 매어 자신의 나귀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는 데나리온 둘을 주막주인에게 주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주시 요.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오' 하면서 부탁하 고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마치시고, '내 이웃이 누 구오니이까'하는 율법사에게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좋은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보면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서는 안될 사람이 있는데 강도입니다. 강도는 안 만나야 합니다. 만나나 마나 한 사람들이 있는데 제사장이나 레위인입니다. 유익도 손해도 없는 평범한 만남입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데, 이는 선한 사마 리아인입니다. 인생가는 길 험하여도 이런 분 만날 수 있다면 참으 로 행복하고 즐거운 만남으로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강도 만난사람이 선한 사마리아인을 만나서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강도를 만나서 재산을 뒈앗기고, 생명을 잃기도 하며 탄식하며 울고 있습니다. 인간은여러가지 면에 서 강도를 만나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또는 선한 양심이 도적을 맞기도 하며, 행복한 가정이 강도를 만나서 울기도 합니다. 사업에 강도를 만나며, 또한 건강하고 평안한 심령이 강도를 만나 근심 가운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인생 행로에서 강도를 만 날 위험성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먼저, 강도를 만나는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믈 만났음니다. 예루살렘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 있어서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요, 말씀이 있는 곳이며 은혜받은 곳인데 이 사람이 거기를 떠나다가불행 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무엇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여리 고로 내려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려갔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내려가다가 불행하게 된 사건이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흉년이드니까 애굽 에 살려고 내려갔습니다. 아브람은 두려운 생각이 들어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 하였으며, 바로왕이 사래를 누구냐고 물었을 때 자기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였고, 이방 바로왕 앞에서 거짓말이 탄 로되어 망신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신앙심과 체면이다 강 도 만난 것입니다. 릇기 1장에 보면, 나오미는 베들레 땅에 흉년이 드니까 모압지 방으로 내려 갔습니다. 모압 지방은 롯이 취중에 자기 큰 딸과 상간 하여 낳은 부]러운 족속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살려고 남편과 두 아들을 거느리고 갔으나 그 곳에서 사랑하는 남편 또, 두 아들도 잃어 버렸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가정에 세 과부만 남게 되었습니다. 두 자부는 자녀 하나 낳지못한 채 홀로 되었으니 그의 괴로움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내 이름을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괴로움라 칭하라' 하였습니다. 베들레을 떠난 나오미, 가나안을 떠나는 아브람, 이유가 있었 으퍼 그 곳에 흉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은 성도들의 천국 땅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어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요,말씀과은 혜가 있는 곳입니다. 베들레은 떡집입니다. 여기에 흉년이들었다는 말은 성도의 심령에 은혜 기근이 왔다는 것입니다. 다흉년이들 어도 신령한 떡집인 교회가 흉년 들어서는 안됩니다. 사업에 볼황이 휘몰아오고 부도가 나도 심령에 기근이 없기를 바라며 신앙에 부도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인간의 가장 무서운 흉년은 세상의 흉년이 아니라 말씀과 은혜가 우리의 심령 속에 흉년이 들 때입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어 흉년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없어 기갈이라는 이 말씀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에 흉년이 들면 세상 길로 내려 갑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외치라 할 때 니느웨 로 가지 않고 반대 장소인 욥바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다시스로 가려고 배를 탔으나 풍랑을 만나 물 속으로 내려가고 고래 뱃 속까 지 내려갔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풍랑이었고 요나 자신 뿐만 아니라, 자기와 함께 있었던 사람 전체에게 괴로움을 준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내려갔다는 말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성도는 신앙이 내려가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어떤 분은 열심히 내려가 J, 감사의 생활이 쌔려가고, 기도의 생활이 내려가고. 감사와 첫 사랑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인생은 두 길이 있습니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예루살렘에서 여 리고로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 두길 중에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난 인생들, 이것이 오늘의 사회 요 우리 신앙인들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강도를 만났습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동산에 강도가 들어와 하나님께서 입혀준 영광스러운 웃을 벗겨가게 되었습니다.(롬s:2s) 사탄은 에덴의 행복을 도적질 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교만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는 순종의 마음이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난 것입니다. 에덴에서부터 강도를 만나기 시작한 인간들, 배인적으로나 사회적 으로나 가정,교회 국가, 모두 이런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이 나라 이 사회의 모든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이 백성들 가슴 속에 양심이 강도 만나는 사실입니다. 이 나라에 국민 경제가 높아가고 과학적인 지능 개발이 세계 수준에 오른다 해도 국민 양심 이 내려간다면 조국을 지키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국민 양심이 강도 만나고 도덕과 윤리가 내려가면 위험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와 민족 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위하여, 양심이 내려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는 길입니다. 있 훅시 이 가운데 내 신앙이 내려가다가 강도 만났다고 습니까 외로이 흔자 다니다가 강도를 만났음니다. 강도를 만나는 길은 골목길입니다. 외로운 길입니다. 밤길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강도를 만납니다. 흘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지 못하고 흘로 가다 가 강도를 만나게 됩니다. 심령이 어두운 밤길을 걷게 되면 강도를 만납니다. 큰 길에는 강도가 없습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강도를 만 납니다. 신앙의 정문인 교회를 찾지 아니하고 이 제단, 저 가정 제단, 신 앙의 골목길로 걷다가 이단이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들 이 많이 있습니다. 교인들 가운데 신앙의 골목길을 찾아다니는 분 들은 빨리 발걸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납니까 몸에 비싼 귀중품을 망이 지니면 강도를 만나기 쉽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떤 부인이 남편의 일생 동 안 고생하여 받은 퇴직금 이천만원을 은행에서 받아 버스타고 오다 가 쓰리맞았다고 통곡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천만원의 거금 이면 조심하여야 합니다. 세상의 썩어질 세상 보화도 조심하거늘 영 적 보화를 간직한 성도는 더욱 조심하여야 합니다. 또 하늘의 값진 보화를 지닌 성도는 아무데나 가는 것 아닙니다. 안됩니다. 마땅히 예루살렘을 위하여 써야 할텐데 여리고라는 세상을 위하여 쓰려고 내려가다가 강도름 만난 것입니다. 본문에 있는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갔습니까 성도는 하늘나라 새 예루살렘을 위하여 물질, 재능, 시간, 건강, 정력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을 위하여 쓰려고 하다가 강도 만 나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재능과 시간과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지 못한 채 잃어버려 하늘 나라에 보물을 쌓 지 못하고 탄식하고 우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의 모든 것을 예루살렘에서 쓰십시 오. 하늘 나라에 투자하십시오 헌신하십시오 여기에 참 평화가 있고 영원히 후회함 없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살 길이 있다면 사마리아인을 만나야 하는 것 입니다 강도 만난 인생, 여리고 도상에서 죽게된 자가 사마리아인을 만 나서 살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을 만나도 소용 없습니다. 레위인을 만나도 소용 없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비유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강도 만나 피흘려 죽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빼앗기고 온 몸이 피투성이 된 채 죽 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석가가 지나갔습니다. 석가는 피흘려 죽 어가는 사람에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고 지나갔습니다.조 금 있다가 공자가 지나갔습니다. 공자는 '군자는 대로행인데 조심 해야지' 하면서 지나갔습니다.다음에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오셔서 골목길로 가서는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하려고 함이 라'고 말씀하시고 자기의 피를 쏟아 강도 만난 자를 살리고 자기는 죽었다고 비유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잘 묘 사한 아름다운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잘못 만나 불행할 수록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 만나도 예수를 만나지 못하면 그 만남은 허무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유명한 신학자 말틴 부버는 참된 삶은 만남이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너와 나]라는 만남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고독한 존재입니다. 한번 참된 만남에 참여하고난 뒤에는 죽어도 한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만남은 I and Thou나와 너라는 만남이 아니고 I anJ It나와 그것이라는 관계로 만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남이 나와 너와의 만남이 아니라, 나와 그것과의 만남이 될 때에 불행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인 존재로 여기십니다. 온통 세상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대로 이용하고 그리고 내버럼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처나고 쓸모 없이 된 인간들을 찾아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최상의 만남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만남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던 어부 베드로는 예수를 만나 자기의 모 든 것을 버림으로 교회의 반석이 되었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 기까지 충성하끄로 그는 영원한 생명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관 에 앉아 있던 마태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세관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록하는 제자 마태가 되었습니다. 여리고성의 바디메 오는 예수를 만남으로 눈을 떴고 눈을 뜬 이후에는 그 눈 전체를 주 님을 위해 바쳤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부정한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외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과거의 토색하던 삶을 버리고 자기의 소유 절반을 하나님을 위해 바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주십니다.
셋째, 여리고도상의 사마리아인은 곧 우리의 예수님이십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겨서 기름과 포도주 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리 고 도상에서 죄악에 쓰러지고 인생고에 쓰러진 인간들에게 보혈을 홀려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피흘려 주신 것 이상의 큰 선물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는데 십자가 없이 만날 수 없습니다. 에덴 동산 에 선악과를 따먹고 거의 죽게 된 인생들에게 그가 피흘려 우리를 살려 주신 것입니다. 신령한 의미로 그가 가져온 것은 포도주와 기 름인데 포도주는 보혈이요, 기름은 성령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피홀려 주셨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나 위하여 지 한 방울 홀린 일이 없습니다. 로마서 s장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 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하셨고, 히브리서 lO장19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하셨으며, 요한 복음 s장5s절에,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히 인자의 피를 마지 지 아니하면 너회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 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라고 말하셨읍니다. 강도 만난 인생은 죽게되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생명 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 생명을 살리려고 그리스도는 피흘려 주신 것입니다. 레위기 17장11절에, '모든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 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 였느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_s_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들을 교회로 인도 하십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자기 나귀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 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피흘려 우리를 구원하셨고 죄로 말미암아 상처난 인간들에게 보혈의 능력으로 치료하여 주셨읍니다. 예수님은 이 땅씨 계시지 않고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은 이 땅에 몸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옛날에 길손들은 먼 길을 걷다가 지치고 피곤하면 주막 집에 들어가서 쉬어가곤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를 주막집으로 데려다가 치료 하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험악한 인생 나그네 길에서 지치고 피곤한 심령들이 쉬어갈 만한 안식처로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주막집은 또 먹을 것이 있고 술이 있습니다. 주린 심령들이 여기 와서 빵을 먹고 생수를 마시는 곳입니다. 또한 주막집은 술을 마시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피로하고 지칠 때 술을 마 시는 곳이 주막집입니다. 성도는 교회에 가서 새 술(성령님)씨 취하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새 술에 취하면 험악한 인생길에 피 곤치 않습니다. 성령님의 새 술에 취하면 담대해집니다.
새 술에 취한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으면서도 예수를 증언하며, 사 도들은 순교의 형틀에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성령님 충만한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담대하게 순교할 수 있는 힘은 성령님의`새 술에 취 한 사람들입니다. 끝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이런 만남의 은총을 입었다면 이제 우리는 은 만남을 이루는 은 이웃이 되어야 활 것입니다. 이토록 강도 만난 자들이 우리 주변에 수 없이 있으며, 지금도신 음 소리를 하고 있는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좋은 아내를 바라는 남자는 먼저 좋은 남편이 되어 주기를 힘쓸것 이며, 좋은 남편을 바라는 아내는 먼저 착한 아내가 되어야 하며, 좋은 종업원을 원하는 사업가는 자기 편에서 먼저 좋은 기업주가되 어 주기를 노력할 것이며, 먼저 좋은 종업원이 됩시다. 좋은 목자를 원하는 교인은 내가 먼저 좋은 교인이 되어 주기를 힘 써야 할 것입니다. 좋은 목자는 좋은 교인을 만나게 됩니다.은사람을 만나는 은총을 입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또한 나를 만남으 로 복 받았다는 사람이 많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들을 보혈로 씻 으시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싸매어 주십니다. 우리를 교회 안에서 쉬 게 하시며 우리들에게 성경을 유일한 자본으로 주셨습니다. 짧은 생애를 통하여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신 예수님을 만나십시 오. 그리고 모든 은혜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은혜를 베푸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 아침 우리 성도들에게 좋은 만남 속에서 남은 생애를 복되게 살기를 바라며 짬은 인생 나그네 길에서 서로 좋은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서 로의 만남이 우리 남은 생애에 연속되어야 하며 주 안에서 만나서 이루어진 신앙 생활도 날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생활로 형성되어 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 으슥한골목길 에서 잔인 무도한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의 가진 모든 것 을 빼앗고 옷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상처를 입혔고 피투성이가된 채 신음하며 거의 죽게 된 그 사람을 그곳에 버리고 갔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지나갔지만 그는 거룩한 사람이라 강도만난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을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곳을 여행하는 중에 강도만난 사람을 보았습니다. 원래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서로 상종하지 않 으며 멸시하지만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이 유대인인 줄 알면서도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 매어 자신의 나귀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는 데나리온 둘을 주막주인에게 주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주시 요.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오' 하면서 부탁하 고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마치시고, '내 이웃이 누 구오니이까'하는 율법사에게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좋은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보면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서는 안될 사람이 있는데 강도입니다. 강도는 안 만나야 합니다. 만나나 마나 한 사람들이 있는데 제사장이나 레위인입니다. 유익도 손해도 없는 평범한 만남입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데, 이는 선한 사마 리아인입니다. 인생가는 길 험하여도 이런 분 만날 수 있다면 참으 로 행복하고 즐거운 만남으로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강도 만난사람이 선한 사마리아인을 만나서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강도를 만나서 재산을 뒈앗기고, 생명을 잃기도 하며 탄식하며 울고 있습니다. 인간은여러가지 면에 서 강도를 만나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또는 선한 양심이 도적을 맞기도 하며, 행복한 가정이 강도를 만나서 울기도 합니다. 사업에 강도를 만나며, 또한 건강하고 평안한 심령이 강도를 만나 근심 가운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인생 행로에서 강도를 만 날 위험성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먼저, 강도를 만나는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믈 만났음니다. 예루살렘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 있어서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요, 말씀이 있는 곳이며 은혜받은 곳인데 이 사람이 거기를 떠나다가불행 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무엇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여리 고로 내려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려갔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내려가다가 불행하게 된 사건이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흉년이드니까 애굽 에 살려고 내려갔습니다. 아브람은 두려운 생각이 들어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 하였으며, 바로왕이 사래를 누구냐고 물었을 때 자기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였고, 이방 바로왕 앞에서 거짓말이 탄 로되어 망신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신앙심과 체면이다 강 도 만난 것입니다. 릇기 1장에 보면, 나오미는 베들레 땅에 흉년이 드니까 모압지 방으로 내려 갔습니다. 모압 지방은 롯이 취중에 자기 큰 딸과 상간 하여 낳은 부]러운 족속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살려고 남편과 두 아들을 거느리고 갔으나 그 곳에서 사랑하는 남편 또, 두 아들도 잃어 버렸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가정에 세 과부만 남게 되었습니다. 두 자부는 자녀 하나 낳지못한 채 홀로 되었으니 그의 괴로움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내 이름을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괴로움라 칭하라' 하였습니다. 베들레을 떠난 나오미, 가나안을 떠나는 아브람, 이유가 있었 으퍼 그 곳에 흉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은 성도들의 천국 땅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어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요,말씀과은 혜가 있는 곳입니다. 베들레은 떡집입니다. 여기에 흉년이들었다는 말은 성도의 심령에 은혜 기근이 왔다는 것입니다. 다흉년이들 어도 신령한 떡집인 교회가 흉년 들어서는 안됩니다. 사업에 볼황이 휘몰아오고 부도가 나도 심령에 기근이 없기를 바라며 신앙에 부도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인간의 가장 무서운 흉년은 세상의 흉년이 아니라 말씀과 은혜가 우리의 심령 속에 흉년이 들 때입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어 흉년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없어 기갈이라는 이 말씀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에 흉년이 들면 세상 길로 내려 갑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외치라 할 때 니느웨 로 가지 않고 반대 장소인 욥바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다시스로 가려고 배를 탔으나 풍랑을 만나 물 속으로 내려가고 고래 뱃 속까 지 내려갔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풍랑이었고 요나 자신 뿐만 아니라, 자기와 함께 있었던 사람 전체에게 괴로움을 준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내려갔다는 말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성도는 신앙이 내려가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어떤 분은 열심히 내려가 J, 감사의 생활이 쌔려가고, 기도의 생활이 내려가고. 감사와 첫 사랑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인생은 두 길이 있습니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예루살렘에서 여 리고로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 두길 중에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난 인생들, 이것이 오늘의 사회 요 우리 신앙인들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강도를 만났습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동산에 강도가 들어와 하나님께서 입혀준 영광스러운 웃을 벗겨가게 되었습니다.(롬s:2s) 사탄은 에덴의 행복을 도적질 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교만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는 순종의 마음이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난 것입니다. 에덴에서부터 강도를 만나기 시작한 인간들, 배인적으로나 사회적 으로나 가정,교회 국가, 모두 이런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이 나라 이 사회의 모든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이 백성들 가슴 속에 양심이 강도 만나는 사실입니다. 이 나라에 국민 경제가 높아가고 과학적인 지능 개발이 세계 수준에 오른다 해도 국민 양심 이 내려간다면 조국을 지키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국민 양심이 강도 만나고 도덕과 윤리가 내려가면 위험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와 민족 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위하여, 양심이 내려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는 길입니다. 있 훅시 이 가운데 내 신앙이 내려가다가 강도 만났다고 습니까 외로이 흔자 다니다가 강도를 만났음니다. 강도를 만나는 길은 골목길입니다. 외로운 길입니다. 밤길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강도를 만납니다. 흘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지 못하고 흘로 가다 가 강도를 만나게 됩니다. 심령이 어두운 밤길을 걷게 되면 강도를 만납니다. 큰 길에는 강도가 없습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강도를 만 납니다. 신앙의 정문인 교회를 찾지 아니하고 이 제단, 저 가정 제단, 신 앙의 골목길로 걷다가 이단이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들 이 많이 있습니다. 교인들 가운데 신앙의 골목길을 찾아다니는 분 들은 빨리 발걸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납니까 몸에 비싼 귀중품을 망이 지니면 강도를 만나기 쉽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떤 부인이 남편의 일생 동 안 고생하여 받은 퇴직금 이천만원을 은행에서 받아 버스타고 오다 가 쓰리맞았다고 통곡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천만원의 거금 이면 조심하여야 합니다. 세상의 썩어질 세상 보화도 조심하거늘 영 적 보화를 간직한 성도는 더욱 조심하여야 합니다. 또 하늘의 값진 보화를 지닌 성도는 아무데나 가는 것 아닙니다. 안됩니다. 마땅히 예루살렘을 위하여 써야 할텐데 여리고라는 세상을 위하여 쓰려고 내려가다가 강도름 만난 것입니다. 본문에 있는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갔습니까 성도는 하늘나라 새 예루살렘을 위하여 물질, 재능, 시간, 건강, 정력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을 위하여 쓰려고 하다가 강도 만 나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재능과 시간과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지 못한 채 잃어버려 하늘 나라에 보물을 쌓 지 못하고 탄식하고 우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의 모든 것을 예루살렘에서 쓰십시 오. 하늘 나라에 투자하십시오 헌신하십시오 여기에 참 평화가 있고 영원히 후회함 없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살 길이 있다면 사마리아인을 만나야 하는 것 입니다 강도 만난 인생, 여리고 도상에서 죽게된 자가 사마리아인을 만 나서 살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을 만나도 소용 없습니다. 레위인을 만나도 소용 없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비유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강도 만나 피흘려 죽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빼앗기고 온 몸이 피투성이 된 채 죽 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석가가 지나갔습니다. 석가는 피흘려 죽 어가는 사람에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고 지나갔습니다.조 금 있다가 공자가 지나갔습니다. 공자는 '군자는 대로행인데 조심 해야지' 하면서 지나갔습니다.다음에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오셔서 골목길로 가서는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하려고 함이 라'고 말씀하시고 자기의 피를 쏟아 강도 만난 자를 살리고 자기는 죽었다고 비유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잘 묘 사한 아름다운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잘못 만나 불행할 수록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 만나도 예수를 만나지 못하면 그 만남은 허무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유명한 신학자 말틴 부버는 참된 삶은 만남이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너와 나]라는 만남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고독한 존재입니다. 한번 참된 만남에 참여하고난 뒤에는 죽어도 한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만남은 I and Thou나와 너라는 만남이 아니고 I anJ It나와 그것이라는 관계로 만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남이 나와 너와의 만남이 아니라, 나와 그것과의 만남이 될 때에 불행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인 존재로 여기십니다. 온통 세상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대로 이용하고 그리고 내버럼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처나고 쓸모 없이 된 인간들을 찾아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최상의 만남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만남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던 어부 베드로는 예수를 만나 자기의 모 든 것을 버림으로 교회의 반석이 되었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 기까지 충성하끄로 그는 영원한 생명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관 에 앉아 있던 마태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세관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록하는 제자 마태가 되었습니다. 여리고성의 바디메 오는 예수를 만남으로 눈을 떴고 눈을 뜬 이후에는 그 눈 전체를 주 님을 위해 바쳤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부정한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외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과거의 토색하던 삶을 버리고 자기의 소유 절반을 하나님을 위해 바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주십니다.
셋째, 여리고도상의 사마리아인은 곧 우리의 예수님이십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겨서 기름과 포도주 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리 고 도상에서 죄악에 쓰러지고 인생고에 쓰러진 인간들에게 보혈을 홀려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피흘려 주신 것 이상의 큰 선물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는데 십자가 없이 만날 수 없습니다. 에덴 동산 에 선악과를 따먹고 거의 죽게 된 인생들에게 그가 피흘려 우리를 살려 주신 것입니다. 신령한 의미로 그가 가져온 것은 포도주와 기 름인데 포도주는 보혈이요, 기름은 성령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피홀려 주셨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나 위하여 지 한 방울 홀린 일이 없습니다. 로마서 s장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 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하셨고, 히브리서 lO장19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하셨으며, 요한 복음 s장5s절에,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히 인자의 피를 마지 지 아니하면 너회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 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라고 말하셨읍니다. 강도 만난 인생은 죽게되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생명 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 생명을 살리려고 그리스도는 피흘려 주신 것입니다. 레위기 17장11절에, '모든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 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 였느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_s_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들을 교회로 인도 하십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자기 나귀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 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피흘려 우리를 구원하셨고 죄로 말미암아 상처난 인간들에게 보혈의 능력으로 치료하여 주셨읍니다. 예수님은 이 땅씨 계시지 않고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은 이 땅에 몸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옛날에 길손들은 먼 길을 걷다가 지치고 피곤하면 주막 집에 들어가서 쉬어가곤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를 주막집으로 데려다가 치료 하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험악한 인생 나그네 길에서 지치고 피곤한 심령들이 쉬어갈 만한 안식처로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주막집은 또 먹을 것이 있고 술이 있습니다. 주린 심령들이 여기 와서 빵을 먹고 생수를 마시는 곳입니다. 또한 주막집은 술을 마시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피로하고 지칠 때 술을 마 시는 곳이 주막집입니다. 성도는 교회에 가서 새 술(성령님)씨 취하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새 술에 취하면 험악한 인생길에 피 곤치 않습니다. 성령님의 새 술에 취하면 담대해집니다.
새 술에 취한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으면서도 예수를 증언하며, 사 도들은 순교의 형틀에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성령님 충만한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담대하게 순교할 수 있는 힘은 성령님의`새 술에 취 한 사람들입니다. 끝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이런 만남의 은총을 입었다면 이제 우리는 은 만남을 이루는 은 이웃이 되어야 활 것입니다. 이토록 강도 만난 자들이 우리 주변에 수 없이 있으며, 지금도신 음 소리를 하고 있는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좋은 아내를 바라는 남자는 먼저 좋은 남편이 되어 주기를 힘쓸것 이며, 좋은 남편을 바라는 아내는 먼저 착한 아내가 되어야 하며, 좋은 종업원을 원하는 사업가는 자기 편에서 먼저 좋은 기업주가되 어 주기를 노력할 것이며, 먼저 좋은 종업원이 됩시다. 좋은 목자를 원하는 교인은 내가 먼저 좋은 교인이 되어 주기를 힘 써야 할 것입니다. 좋은 목자는 좋은 교인을 만나게 됩니다.은사람을 만나는 은총을 입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또한 나를 만남으 로 복 받았다는 사람이 많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들을 보혈로 씻 으시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싸매어 주십니다. 우리를 교회 안에서 쉬 게 하시며 우리들에게 성경을 유일한 자본으로 주셨습니다. 짧은 생애를 통하여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신 예수님을 만나십시 오. 그리고 모든 은혜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은혜를 베푸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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