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벧전4:7-11)
본문
지난 주에 우리는 이 땅에 육신에만 관심을 가지고 육신 중심적인 사람 이 있고 영에 관심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처럼 살려고 애쓰는 영의 사람이 있는 데 이제 남은 때를 영의 사람이 되어서 남은 때를 하나님께 인정받으 면서 사는 사람이 될 것을 각오하였습니다. 육체의 남은 때 만물의 마지 막 때를 영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근신하여 기도하며 마지막 때를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알기 전에는 방탕하고 되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 때는 사람이 한 번 죽으며 끝이다는 공식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고 영생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생을 방탕하게 이끌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육의 사람을 청산한 영의 사람은 이제는 방탕하게 살수 없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기도가 우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본문 7절 말씀을 읽 어보겠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살아 있는 사람이 밥먹고 잠자는 것이 규칙 적이 듯이 기도가 규칙 적 으로 생활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말을 근성으로 들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시험이 들어서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는 뼈아픈 실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6:41절에 예수님의 권고를 진지하게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 뼈아픈 오늘 우리에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 도다 하시고"그들은 예수님의 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기에 연약한 육신 의 졸음을 참지 못하고 기도 대신에 예수님이 기도하는 급박한 시간에 졸고 말았습니다. 그후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어떻게 변했습니 까 모여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사도행전 1:14절과 3:1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 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최대의 사명으로 알고 기도에 전적으로 힘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 놓고 기도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여서 합심 기도해야 합니다. 영의 사람은 기도 모임 자리를 사모하게 됩니다. 기도는 성도의 필수 과제입니다. 해도 되고 않해도 상관이 없는 선택 과제가 아닙니다. 골로새서 4: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평범하고 수식이 없는 말 같지만 영의 사람에게 생활 신조가 아닐 수 없 습니다. 지금은 전보가 그렇게 정보 통신에 그렇게 유용한 것이 아닙니다만 옛날엔 우리의 희로애락을 전해 주는 중요한 통신 자료였습니다. 전보를 발명한 사무엘 모르스 교수에게 전보를 발명후 기자가 물었습니다. 발명 할 때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될지를 모르는 앞이 캄캄할 때가 있었습니까 그 때 모르스 교수는 "예 그럴 때가 한두 번이 아니 였습니다. 그 때 마다 나는 조용히 주님께 무릅 꿇고 주님 내게 갈 길을 보여 주십시오 기도했습니다" 대답했습니다. 모르스 교수는 전보를 발명한 후 제일 보낸 메시지가 잠언 3:5,6절이 였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6]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모르스 교수가 전보를 발명할 때만 그렇겠습니까 지금 우리에게도 앞이 캄캄할 때를 만나겠지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흔히들 기도하는 사람을 신비하고 비몽사몽간에 빠진 사람을 연상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도하려고 예배당에 모이는 시간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피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아무리 논리에 밝다 하더라도 실제 기도 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 당시에도 기도하고 중 간에 포기하고 낙망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누가복음 18:1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낙망하고 포기하는 사람에게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들여 주셨 을까요 이 비유를 하시고도 예수님은 마지막 때를 예상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 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불의 재판관도 응답 하시거늘 공의로운 재판관이 되는 하나님께서 응답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을 몇 명이나 찾아보겠느냐고 걱정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필요한 것 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 보다 우선적인 기도의 뜻을 정합시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기도를 합시다. 이 기도는 예수님 재림하셔야 완전히 해결되고 응답되는 기도입니다. 아멘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 기도는 카타콤에서 갖은 고난을 받으면서 초대 교회 성도들이 한 절실한 기도 였습니다. 정말 예수그리스도의 나라와 의가 이루워 지기를 진정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번 주 부터라도 모여서 함께 기도의 연주회에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그 리고 여러분의 연주를 기다리겠습니다.
2.말세를 당한 영의 사람들이 최우선 적으로 필요한 것이 열심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가정도 그러하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사랑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생각에 목사는 교회에 사람이 필요하게 느낄 것이다. 아니면 재정이 필요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 할 것입니다. 모두 맡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빠진 가운데 많은 무리가 무슨 소용 이 있으며 풍족한 재정이 어디 사용되겠습니까 베드로 사도는 교회에 어떤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본문 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1>꾸준한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열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정열적으로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항상 계속되는 사랑 은근한 쉽게 끝나지 않는 사랑을 말합니다. 어떤 낙관 어려움을 견디면서 사랑을 서로 나누는 그런 사랑을 말합니다. 일시 적으로 정열 적으로 타오르는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열심으로 사랑하라는 말은 꾸 준히 변함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처음 제자들 사이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형제애가 두투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 사랑이 변하여 누가 더 큰가 하는 경쟁심과 시기 로 가득 찼습니다. 누가 복음 22:24절은 제자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우리 또한 이런 다 툼 때문에 사랑해야 할 식구가 경쟁의 대상으로 삼고 시기와 질투가 마음속에 일어 나는 때가 없습니까별로 많지 않은 식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정말 형제를 사랑했노라고 고백하는 식구들이 됩시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명령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34절 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가 형제를 뜨겁게 꾸준히 사랑합니다, 내가 옆 의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내마음 속에 예수의 사랑이 내마음 속을 흔들 어 놓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의 사랑의 동 기는 예수 사랑에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낙망하고 실패 했을 때, 세상이 나를 외면했을 때, 예수는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2>베드로 사도가 아니 성경이 마지막 때에 요구하는 사랑은 포용하는 사랑입니다. 잘못을 따지 않고 덮어 주는 용서의 사랑입니다. 그냥 좋은 게 좋다고 눈감아주자는 그런 얘기가 아니올시다. 공의가 빠진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이 아니라 동정입니다. 연약하고 아무런 힘을 발휘 할 수가 없습니다. 용서가 선행될 때에 사랑으로 덮어 준다는 말씀입니다.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세번씩이나부인 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디베랴 바닷 가에서 용서를 빌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어 시고 내양을 먹이라 치라고 일을 맡겨 주실 때에 베드로는 사랑의 포용성에 감격했을 것입니다. 성도에게 예기치 않은 사랑의 포용성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만물의 마지막을 볼수록 더욱 절실하게 포용적인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느니라 잠언 10:12절 말씀을 베드로는 인용합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모든 허물을 가리우는 사랑의 안경을 끼고 형제를 바라보시기를 원합니다.
3.세상 풍속을 따라 육신에만 관심이 있을 때는 술잔치를 벌리고 남의 것을 착취하는 사람이 영의 사람이 되어 육신의 남은 마지막 때를 살 때 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 봉사합니다. 봉사하기는 하되 자기 것으로 하는 사람은 실컨 봉사하고 섭섭한 마음이 남습니다. 피아노 반주 주님이 주신 은사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독창 자는 하나님의 은사로 기쁨으로 봉사합니다. 섭섭한 마음이 생길 수가 없 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 교회에 이상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봉사는 간데 없고 예배가 아르바이트의 대상으로 전략했습니다. 주의 일 을 하면 필요하신다면 하나님께서 그 필요를 풍성히 채워 주시겠지요 심 지어 예수를 믿지 않은 오케스트라 대원이 아르바이트로 예배 시간을 때 우고 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풍성히 채워 주는 방법이 교회에서 사례하는 것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예수 안 믿는 오케스트라 대원이 찬송 연주하다가 예수 믿을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고 반론 해 오면 더이상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일은 자원해서 봉사하는 것이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1>원망 없이 손님을 대접해야 합니다. 본문 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전도와 선교의 기초입니다.원망 없이 손님을 대접하고 그 뒤에 선교든지 전도가 이루어집니다. 교제가 이루어 지고난 다음 예수가 전달됩니다. 살살 맞게 굴면서 전도를 염두에 두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히브리서 13:2절에도 손님 대접하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로마서 12:8절에도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즐거움으로 손님 대접하는 여러 일들을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손님을 대접 할 때에 나는 원망이 없는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2>은사를 청지기처럼 사용합시다. 마치 성령님께서 교회의 덕을 끼치기 위하여 주신 은사를 주인에 의사에 맞추어서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 10절과 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11]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 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 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주인이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줍니다. 하나님의 힘 으로 봉사하고 하나님이 말하는 것 같이 하라는 것은 신중하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9절에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나님의 은사를 맡은 자의 태도를 말해주고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시한부 종말론 자들은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날짜를 정해 놓 고 거기에 맞추어서 말세를 살려고 하니까 어렵고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깁니다.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짜에 대해서는 성경을 아무리 뒤 져봐도 알 수 없고 말세에 성도가 기도하고 열심히 사랑하고 청지기처럼 봉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영광 받으시도록 사는 것입니다.
11절 하반 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 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우리는 예수 다시오실때 까지 우리의 최종 목표는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절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로 제시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하여 하라" 먹고 마심 등등 생활의 전부가 예수의 영광된 생활을 합시다.
1.근신하여 기도하며 마지막 때를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알기 전에는 방탕하고 되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 때는 사람이 한 번 죽으며 끝이다는 공식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고 영생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생을 방탕하게 이끌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육의 사람을 청산한 영의 사람은 이제는 방탕하게 살수 없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기도가 우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본문 7절 말씀을 읽 어보겠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살아 있는 사람이 밥먹고 잠자는 것이 규칙 적이 듯이 기도가 규칙 적 으로 생활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말을 근성으로 들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시험이 들어서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는 뼈아픈 실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6:41절에 예수님의 권고를 진지하게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 뼈아픈 오늘 우리에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 도다 하시고"그들은 예수님의 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기에 연약한 육신 의 졸음을 참지 못하고 기도 대신에 예수님이 기도하는 급박한 시간에 졸고 말았습니다. 그후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어떻게 변했습니 까 모여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사도행전 1:14절과 3:1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 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최대의 사명으로 알고 기도에 전적으로 힘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 놓고 기도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여서 합심 기도해야 합니다. 영의 사람은 기도 모임 자리를 사모하게 됩니다. 기도는 성도의 필수 과제입니다. 해도 되고 않해도 상관이 없는 선택 과제가 아닙니다. 골로새서 4: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평범하고 수식이 없는 말 같지만 영의 사람에게 생활 신조가 아닐 수 없 습니다. 지금은 전보가 그렇게 정보 통신에 그렇게 유용한 것이 아닙니다만 옛날엔 우리의 희로애락을 전해 주는 중요한 통신 자료였습니다. 전보를 발명한 사무엘 모르스 교수에게 전보를 발명후 기자가 물었습니다. 발명 할 때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될지를 모르는 앞이 캄캄할 때가 있었습니까 그 때 모르스 교수는 "예 그럴 때가 한두 번이 아니 였습니다. 그 때 마다 나는 조용히 주님께 무릅 꿇고 주님 내게 갈 길을 보여 주십시오 기도했습니다" 대답했습니다. 모르스 교수는 전보를 발명한 후 제일 보낸 메시지가 잠언 3:5,6절이 였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6]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모르스 교수가 전보를 발명할 때만 그렇겠습니까 지금 우리에게도 앞이 캄캄할 때를 만나겠지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흔히들 기도하는 사람을 신비하고 비몽사몽간에 빠진 사람을 연상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도하려고 예배당에 모이는 시간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피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아무리 논리에 밝다 하더라도 실제 기도 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 당시에도 기도하고 중 간에 포기하고 낙망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누가복음 18:1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낙망하고 포기하는 사람에게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들여 주셨 을까요 이 비유를 하시고도 예수님은 마지막 때를 예상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 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불의 재판관도 응답 하시거늘 공의로운 재판관이 되는 하나님께서 응답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을 몇 명이나 찾아보겠느냐고 걱정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필요한 것 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 보다 우선적인 기도의 뜻을 정합시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기도를 합시다. 이 기도는 예수님 재림하셔야 완전히 해결되고 응답되는 기도입니다. 아멘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 기도는 카타콤에서 갖은 고난을 받으면서 초대 교회 성도들이 한 절실한 기도 였습니다. 정말 예수그리스도의 나라와 의가 이루워 지기를 진정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번 주 부터라도 모여서 함께 기도의 연주회에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그 리고 여러분의 연주를 기다리겠습니다.
2.말세를 당한 영의 사람들이 최우선 적으로 필요한 것이 열심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가정도 그러하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사랑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생각에 목사는 교회에 사람이 필요하게 느낄 것이다. 아니면 재정이 필요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 할 것입니다. 모두 맡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빠진 가운데 많은 무리가 무슨 소용 이 있으며 풍족한 재정이 어디 사용되겠습니까 베드로 사도는 교회에 어떤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본문 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1>꾸준한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열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정열적으로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항상 계속되는 사랑 은근한 쉽게 끝나지 않는 사랑을 말합니다. 어떤 낙관 어려움을 견디면서 사랑을 서로 나누는 그런 사랑을 말합니다. 일시 적으로 정열 적으로 타오르는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열심으로 사랑하라는 말은 꾸 준히 변함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처음 제자들 사이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형제애가 두투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 사랑이 변하여 누가 더 큰가 하는 경쟁심과 시기 로 가득 찼습니다. 누가 복음 22:24절은 제자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우리 또한 이런 다 툼 때문에 사랑해야 할 식구가 경쟁의 대상으로 삼고 시기와 질투가 마음속에 일어 나는 때가 없습니까별로 많지 않은 식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정말 형제를 사랑했노라고 고백하는 식구들이 됩시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명령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34절 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가 형제를 뜨겁게 꾸준히 사랑합니다, 내가 옆 의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내마음 속에 예수의 사랑이 내마음 속을 흔들 어 놓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의 사랑의 동 기는 예수 사랑에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낙망하고 실패 했을 때, 세상이 나를 외면했을 때, 예수는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2>베드로 사도가 아니 성경이 마지막 때에 요구하는 사랑은 포용하는 사랑입니다. 잘못을 따지 않고 덮어 주는 용서의 사랑입니다. 그냥 좋은 게 좋다고 눈감아주자는 그런 얘기가 아니올시다. 공의가 빠진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이 아니라 동정입니다. 연약하고 아무런 힘을 발휘 할 수가 없습니다. 용서가 선행될 때에 사랑으로 덮어 준다는 말씀입니다.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세번씩이나부인 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디베랴 바닷 가에서 용서를 빌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어 시고 내양을 먹이라 치라고 일을 맡겨 주실 때에 베드로는 사랑의 포용성에 감격했을 것입니다. 성도에게 예기치 않은 사랑의 포용성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만물의 마지막을 볼수록 더욱 절실하게 포용적인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느니라 잠언 10:12절 말씀을 베드로는 인용합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모든 허물을 가리우는 사랑의 안경을 끼고 형제를 바라보시기를 원합니다.
3.세상 풍속을 따라 육신에만 관심이 있을 때는 술잔치를 벌리고 남의 것을 착취하는 사람이 영의 사람이 되어 육신의 남은 마지막 때를 살 때 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 봉사합니다. 봉사하기는 하되 자기 것으로 하는 사람은 실컨 봉사하고 섭섭한 마음이 남습니다. 피아노 반주 주님이 주신 은사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독창 자는 하나님의 은사로 기쁨으로 봉사합니다. 섭섭한 마음이 생길 수가 없 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 교회에 이상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봉사는 간데 없고 예배가 아르바이트의 대상으로 전략했습니다. 주의 일 을 하면 필요하신다면 하나님께서 그 필요를 풍성히 채워 주시겠지요 심 지어 예수를 믿지 않은 오케스트라 대원이 아르바이트로 예배 시간을 때 우고 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풍성히 채워 주는 방법이 교회에서 사례하는 것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예수 안 믿는 오케스트라 대원이 찬송 연주하다가 예수 믿을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고 반론 해 오면 더이상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일은 자원해서 봉사하는 것이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1>원망 없이 손님을 대접해야 합니다. 본문 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전도와 선교의 기초입니다.원망 없이 손님을 대접하고 그 뒤에 선교든지 전도가 이루어집니다. 교제가 이루어 지고난 다음 예수가 전달됩니다. 살살 맞게 굴면서 전도를 염두에 두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히브리서 13:2절에도 손님 대접하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로마서 12:8절에도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즐거움으로 손님 대접하는 여러 일들을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손님을 대접 할 때에 나는 원망이 없는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2>은사를 청지기처럼 사용합시다. 마치 성령님께서 교회의 덕을 끼치기 위하여 주신 은사를 주인에 의사에 맞추어서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 10절과 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11]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 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 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주인이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줍니다. 하나님의 힘 으로 봉사하고 하나님이 말하는 것 같이 하라는 것은 신중하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9절에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나님의 은사를 맡은 자의 태도를 말해주고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시한부 종말론 자들은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날짜를 정해 놓 고 거기에 맞추어서 말세를 살려고 하니까 어렵고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깁니다.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짜에 대해서는 성경을 아무리 뒤 져봐도 알 수 없고 말세에 성도가 기도하고 열심히 사랑하고 청지기처럼 봉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영광 받으시도록 사는 것입니다.
11절 하반 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 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우리는 예수 다시오실때 까지 우리의 최종 목표는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절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로 제시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하여 하라" 먹고 마심 등등 생활의 전부가 예수의 영광된 생활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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