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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변화 (요3:1-15)

본문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그냥 지나가는 피상적인 만남이 아닌 이상, 그 만남을 통하여 상호간의 삶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인간은 영적, 정신적, 문화적 차원에서 서로 만나게 될 때 서로를 변화시키는 큰 영향력을 주고 받게 됩니다. 인간은 일생중 몇 번의 중요한 만남을 체험하게 되는데 그 첫째가 부모와의 만남입니다. 부모와의 만남을 통해서 생명을 얻고,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는 동안 인격의 기초를 이루게 됩니다. 두번째의 만남은 스승과의 만남입니다. 스승과의 만남을 통하여 학문을 알게 될 뿐아니라 인격의 큰 성장과 발전을 가져오게 됩니다. 세번째의 만남은 부부의 만남입니다. 부부의 만남은 가정을 탄생시키고 삶의 공동체의식과 가족에 대한 책임의식과 사람을 탄생시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만남은 종국적으로 죽음을 통하여 다 사라져 버릴 만남입니다. 사람들이 참으로 삶을 삶답게 살고 가치와 목적을 갖고 살며 영원히 살기 위하여는 제4의 만남이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이 제4의 만남을 통해 우리 삶에 어떠한 변화가 다가오는지 성경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1. 예수님과 만난 니고데모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스승이요 훌륭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당시 유대사회를 다시리던 종교재판소인 산헤드린의 회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정직하고 편견이 없는 관찰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역을 눈여겨 보고 예수님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뵙기로 결심을 하고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산헤드린 회원인 그가 예수님을 찾아갔다는 것이 알려지만 파면을 당함은 물론 사회적인 명예와 지위를 박탈당하게 됨으로 이는 굉장한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마 그날은 달이 밝고 바람이 많이 부는 밤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서 계신 주위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이고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나무 그림자에 몸을 숨기며 예수님 앞에 나와 자기를 소개하고난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시지 않고는 선생께서 지금까지 우리가 듣고 본 그 큰 기적들을 행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않고는 하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굉장히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주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하고 질문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날리기 시작하자 예수님께서는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님으로 난 사람은 다이러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수수께끼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주여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이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2-17)
예수님의 말씀 구구절절이 니고데모의 심령에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이 만남을 통해 그의 생애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겉으로는 유대인의 선생이었지만 속은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산헤드린에서 예수님을 정죄하고 심판하려 할 때마다 반대해 무산시켰습니다. 훗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지낼 때 그는 몰약과 침향 100근을 가져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썩지 않도록 방부하고 장사지내는 것을 도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그의 생애는 크게 변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2. 예수님과 만난 사마리아 여인 사마리아 여인은 학자도, 스승도 아니고 사회에서 존경받는 여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다섯 번이나 결혼하고 매번 이혼한 슬픈 과거를 가진 여자였습니다. 그는 심한 열등감을 가지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기피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보통 다른 사람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는 아침을 피해 대낮 햇빛이 쨍쨍 비추일 때, 인적이 없을 때에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그는 삶의 허무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가 정오에 물을 길러 나왔는데 우물가에 한 젊은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우물가에서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 기어코 사마리아를 통해 오셨습니다.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간 동안 예수님은 이 여인의 구원계획을 실행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버림받은 더러운 여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의인을 부르려고 온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러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위해 그 짐을 대신 져주시고 소외받고 굶주린 사람들을 도와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게 물을 좀 주시오”하고 청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원래 유대인들이었으나 이방인과 결혼, 피가 섞임으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로 취급, 상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대 청년이 사마리아인인 자신에게 ‘물좀 달라’고 말을 하자 이 여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어찌 유대인으로서 나같이 천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회를 계기로 대화를 계속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선물과 당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오히려 당신이 내게 물을 달라고 하였을 것이고 내가 당신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얼굴에 비웃음을 띄우며 “생수를 준다고요, 이 우물은 우리 조상야곱이 만든 우물로 매우 깊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물을 길을 두레박도 없는데 어디에서 생수를 길어 준다고 합니까. 이 우물은 우리의 조상 야곱과 그 자손들과 짐승들이 다 마시는데 당신은 우리 조상 야곱보다 크니이까”하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논쟁을 하려는 이 여인에게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를 것이요.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요”하고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기이한 듯 예수님을 쳐다보고 “그러면 내게 그 물을 주십시오. 다시 목말라 하지 않고 또 여기 와서 물을 긷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하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당신 남편을 데리고 오시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나는 남편이 없어요”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은 정직하군요. 당신이 다섯 남편과 살았지만 모두 이혼하고 지금은 오다가다 만난 사람과 결혼도 하지 않고 그냥 살고 있고”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깜짝 놀라서 “당신은 선지자시군요”하고 예수님께 말하더니 종교적인 문제로 대화를 이끌어 갔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셨는데 당신들은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아니요. 이곳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고 참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가 오리니 바로 지금이요. 그대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왔기 때문이요. 오늘날 하나님은 누구든지, 어디에서든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고 있어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드리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잘 모르겠어요. 장차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시면 상세히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바로 당신이 말한 그 메시야요”하시자 여자는 영의 눈이 활짝 열리며 자기같이 천한 여자와 대화하시고 구원으로 이끌어 주신데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인은 물동이를 던져두고 마을로 뛰어 들어가 자기가 기피하던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와 보라. 여기 메시야가 나타났다. 그가 나의 한 모든 일들을 낱낱이 내게 말했다. 와 보라” 사람들은 그 여인의 말을 듣고 뛰어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병고침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자기들과 함께 계시기를 청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천한 여자는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그의 생애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허무와 절망에서 소망을 얻고 삶의 가치과 목적을 얻게 되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3.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우리와의 만남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직접 찾아가 만났고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만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를 십자가 밑에서 만나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죄인된 우리들을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상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야웨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히키셨도다”(사 53:5, 6) 십자가에서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맺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위대한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님을 내 구주로 모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순식간에 내 일생의 죄가 다 사라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허물이 다 용서를 받고 죄악의 누더기 옷을 벗어던져 버리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지으신 의의 옷을 입혀주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인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예수님 십자가 우편, 좌편에는 똑같이 강도가 못박혔는데 좌편 강도는 예수님을 저주하고 욕했으나 우편 강도는 “주께서 주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즉시로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순신간에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또하나의 새로운 차원의 만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만나자마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 막혔던 원수의 담이 무너지고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화해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성령님이 우리에게 비같이 쏟아져 임하시고 이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하늘나라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지성소가 우리 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하늘의 모든 계시를 가지고 마음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자마자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천국의 영광을 얻게 되어서 보이는 세계로 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슴에 안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보이는 세계와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살던 우리들의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얻어 가슴에 품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살 수 있는 소망 찬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서 우리는 또다른 차원에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모든 질병을 다 청산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면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들아 내가 너희 질병의 고통을 다 짊어졌으니 나의 이름으로 치료함을 받으라” 주님은 병을 미워하시고 그 병을 멀하기 위해서 우리 병을 짊어지고 온갖 고초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힌 것입니다. 치료는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받은 성도 여러분은 모두 질병에서 놓임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에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하였는데 주님은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저주를 받아서 나무에 매달려 죽을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저주받을 일을 한 적이 있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축복받은 하나님의 아들이 왜 저주를 받아 나무에 매달립니까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은 이에 대해 강력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이는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신 것은 아담의 자손들이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만난 여러분은 절대로 저주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만난 여러분은 절대로 저주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못났다, 못산다, 안된다’하는 저주의 누더기 옷을 여러분의 생각 속에서 벗어버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최후의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내가 다 이루었다”하며 죽으시고 삼일 동안에 사망과 음부의 세력을 멸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의 절망과 음부와 죽음이 철폐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는 영생과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음부에 가서 영원히 불탈 수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셔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고 부활해서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 되신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와 만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속에 모셔들일 때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충만케 해 주시고 천국복음 전파의 사명자로 만들어 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의 시민으로 만들어 주시고 그 소망이 마음속에 가득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하신 말씀 그대로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우리 개개인에게 천지창조의 기적만큼이나 크고 위대한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철학도 아닙니다. 의식도 아닙니다. 여러분과 제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고 천국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런 은혜를 받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천국을 상속받아 함께 살 자녀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총을 여러분께서 깊이 간직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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