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기의 위치와 용도 (사10:5-34)
본문
본장은 당시에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유다를 초토 화시킨 앗수르의 존재에 대해 말합니다. 당시 살던 백성들의 눈에 거의 절대적인 세력인 앗수르를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 앗수르만 보이고 여호와 하나님은 마치 없거나 연약한 존재 같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서 무얼하고 계시는가 이 때에 선지 자의 이 말씀은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본 론
1. 앗수르의 역할(1-6절)-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 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5-6절).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에게 여호와의 진노의 막대기로써 이스라엘을 징벌하는 임무를 맡 기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에 빠졌기 때문에 하나님 께서는 앗수를 시켜서 성읍들을 노략하고 그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짓밟 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이 세상에서 그의 목적을 위하여 생각지도 않는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를 징 치하고 정결케 하는 용광로로써 앗수르와 그 밖의 이방 나라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이방 나라가 하나님을 섬긴다거나 그들이 자 기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여호와의 주권으로 이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을 따름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이 유다를 심판하시기 위해 도구로 쓰셨던 앗수르에게 미칩니다. 선지자는 당시 최강국이었던 앗수르마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음을 명백히 선포합니다.
2. 앗수르의 교만(7-15절)-
그런데 앗수르는 그들에게 허용된 도구로서 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훨씬 무자비하고 잔혹한 행동을 자행합니다. 나아가 앗수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멸시하며 이스라엘과 유다도 다른 나라들과 같다고 여겼습니다. 앗수르는 갈로, 갈그미스, 하맛아르밧, 다 메섹과 여러 도시들을 정복했습니다. 앗수르인들의 생각에는 이 도시들 이 예루살렘보다 더 위대한 신을 갖고 있으므로 예루살렘 쯤이야 쉽게 정복되리라 생각했습니다(7-11, 36:19-20, 37:12). 앗수르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일반 신이나 우상들과 동등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 도시들을 지키는 수호신이 자기들보다 약하여 정복당했던 것처럼 예루살렘과 그 수호신인 여호와도 쉽게 이기리라 착각하고 교만해져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요 역사를 주관하는 왕이심을 인정 치 않고 멸시하고 있습니다. 앗수르는 마치 도끼가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며 톱이 그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는 것과도 같고, 막대기 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함 과 일반입니다(15절).
3. 앗수르의 심판(16-27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그 사용 하시고자 하는 목적을 다 이루시고난 후에 그를 꺾어버리실 것입니다. 자녀를 징계하기 위한 부모의 목적이 다 이룬 후 그 부모가 자녀를 때린 그 막대기를 꺾어서 버리듯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인 유다의 죄를 다 징 계하신 후 이제는 쓸모 없고 교만해진 막대기인 앗수르를 꺾어서 심판하 여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의 세력이 아무리 강성 하고 핍박이 혹독하다 할지라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인 그들이 징계를 받아 정결케 보존된 후에는 그 막대기는 버 려질 운명에 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겸손히 회개하고 깨끗이함을 받아 아버지께 돌아오면 되는 것입니다(20-23절). 남은 자는 돌아올 것입니다. 이제 그 막대기는 오렙 반석에서 미디안 사람을 쳐 죽인 것 같이 철저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24-26절). 그 때에는 유다에 지워졌던 무거운 짐도 벗겨지게 됩니다(27절). 이렇게 하나님 의 자녀의 신분과 사용되는 막대기의 처지는 다른 것입니다. 자녀는 정 결케 되어 돌아오나 막대기는 다 사용된 후 꺾어서 버립니다.
결론:이방인 앗수르가 강성해도 역시 하나님의 손에 잡 혀있는 막대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세상 세력의 강성함의 의미가 무엇 이며 그들이 왜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는 이 때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 며 우리와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제 50 과 메시야와 그의 통치 이사야 11:1-16
1. 앗수르의 역할(1-6절)-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 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5-6절).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에게 여호와의 진노의 막대기로써 이스라엘을 징벌하는 임무를 맡 기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에 빠졌기 때문에 하나님 께서는 앗수를 시켜서 성읍들을 노략하고 그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짓밟 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이 세상에서 그의 목적을 위하여 생각지도 않는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를 징 치하고 정결케 하는 용광로로써 앗수르와 그 밖의 이방 나라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이방 나라가 하나님을 섬긴다거나 그들이 자 기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여호와의 주권으로 이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을 따름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이 유다를 심판하시기 위해 도구로 쓰셨던 앗수르에게 미칩니다. 선지자는 당시 최강국이었던 앗수르마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음을 명백히 선포합니다.
2. 앗수르의 교만(7-15절)-
그런데 앗수르는 그들에게 허용된 도구로서 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훨씬 무자비하고 잔혹한 행동을 자행합니다. 나아가 앗수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멸시하며 이스라엘과 유다도 다른 나라들과 같다고 여겼습니다. 앗수르는 갈로, 갈그미스, 하맛아르밧, 다 메섹과 여러 도시들을 정복했습니다. 앗수르인들의 생각에는 이 도시들 이 예루살렘보다 더 위대한 신을 갖고 있으므로 예루살렘 쯤이야 쉽게 정복되리라 생각했습니다(7-11, 36:19-20, 37:12). 앗수르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일반 신이나 우상들과 동등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 도시들을 지키는 수호신이 자기들보다 약하여 정복당했던 것처럼 예루살렘과 그 수호신인 여호와도 쉽게 이기리라 착각하고 교만해져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요 역사를 주관하는 왕이심을 인정 치 않고 멸시하고 있습니다. 앗수르는 마치 도끼가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며 톱이 그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는 것과도 같고, 막대기 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함 과 일반입니다(15절).
3. 앗수르의 심판(16-27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그 사용 하시고자 하는 목적을 다 이루시고난 후에 그를 꺾어버리실 것입니다. 자녀를 징계하기 위한 부모의 목적이 다 이룬 후 그 부모가 자녀를 때린 그 막대기를 꺾어서 버리듯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인 유다의 죄를 다 징 계하신 후 이제는 쓸모 없고 교만해진 막대기인 앗수르를 꺾어서 심판하 여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의 세력이 아무리 강성 하고 핍박이 혹독하다 할지라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인 그들이 징계를 받아 정결케 보존된 후에는 그 막대기는 버 려질 운명에 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겸손히 회개하고 깨끗이함을 받아 아버지께 돌아오면 되는 것입니다(20-23절). 남은 자는 돌아올 것입니다. 이제 그 막대기는 오렙 반석에서 미디안 사람을 쳐 죽인 것 같이 철저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24-26절). 그 때에는 유다에 지워졌던 무거운 짐도 벗겨지게 됩니다(27절). 이렇게 하나님 의 자녀의 신분과 사용되는 막대기의 처지는 다른 것입니다. 자녀는 정 결케 되어 돌아오나 막대기는 다 사용된 후 꺾어서 버립니다.
결론:이방인 앗수르가 강성해도 역시 하나님의 손에 잡 혀있는 막대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세상 세력의 강성함의 의미가 무엇 이며 그들이 왜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는 이 때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 며 우리와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제 50 과 메시야와 그의 통치 이사야 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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