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벧전3:8-12)
본문
지금까지 까닭 없이 핍박하는 위정자, 심지어 총독에게까지 항거하지 말고 순복으로 대하라고 권면 하셨습니다. 또한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역시 순복의 종으로 대할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불신 남편이 괴롭힙니다. 마지막까지 괴롭히는 요소는 가정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 정부에서 예수 믿는다고 정부가 방해하고 핍박하는 나라는 모슬렘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직장의 상사라고 해서 자기 종교까지 박탈하고 종교의 자유까지를 빼앗는 악덕 기업주는 드뭅니다. 그러나 유독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편의 믿음의 핍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역시 순복으로 남편에게 믿음의 자유를 쟁취할 때를 행동으로 보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라는 말은 결론 적으로 위정자 자나 주인이나 남편이 함께 모여 베드로의 서신을 읽는다면 모두 마음을 합하여 함께 영생의 복을 유업으로 받을자라면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1.영생의 복을 받기 위하여 부르심의 복을 받은 자의 최고의 덕목은 사랑입니다. 사랑한다는 것만큼 막연합니다. 구체 적인 사건이 있어야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마음을 다 같이했다는 증거를 가지게 됩니다. 사랑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제사랑의 구체적 사건 5가지를 말합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한다면 이 구체적인 사건을 성경을 통하여 말하여 질 때 내 삶의 형편은 어떤가 점검해 보시기를 원합니다. 본문 8-9절을 읽어봅시다. [9]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부르신 목적은 예수님의 사랑하심을 구체적으로 여러분에게 실현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랑의 구체적인 사건은 무엇입니까
1>체휼하는 것입니다. 체휼한다는 말이 굉장히 어려운 말입니다.직접 경험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당하는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체휼한다는 말을 가장 쉽게 나타내는 말은 한 식구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현대어 번역에는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한 식구가 되십시오.라고 번역했습니다. 대동로 교회 식구라고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뜻이 있습니다.슬프면 함께 슬퍼합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합니다. 그게 바로 식구라는 뜻입니다. 요즘 자기에게 불리하고 불이익이 닥쳐오지 싶으면 쉽사리 피하는 것이 세상 인정입니다. 그러나 아직 까지 식구는 곁에서 함께 그 고통을 함께 하는 것이 식구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식구의 체휼을 보여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도 아무런 변명할 이유가 없는 우리를 형제 삼기 위하여 사람의 형편과 처지를 직접 경험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을 예수님께서는 친히 체휼하셨습니다. 예수님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당신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못난 사람들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셨습니까 사람이 당하는 최악의 고난을 친히 체험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사람은 고통에는 반드시 뜻이 있습니다. 자기 잘못의 뜻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난에는 자기의 잘못이 숨어있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4:1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이 누구십니까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사람을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고 몸으로 이해하려고 하십시오.몸으로 다른 사람에 닥아 갈 때에 이상하게 전에 느껴 보지 못한 사랑이 싹틉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전에까지는 머리로 이해하고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몸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기 전에는 사랑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2>형제를 사랑하며 자기 보다 형편이 조금 못한 사람, 자기보다 처지가 조금 뒤떨어진 것이 공연하게 확인되면 사랑을 보내기란 쉽습니다. 그러나 경쟁의 대상이 되면 선뜻 사랑하기란 매우어렵습니다. 공부를 월등히 잘한 학생이 공부를 월등히 못한 학생을 사랑하기란 매우쉽습니다. 경쟁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어느 자녀를 특별히 더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이 있겠습니까다른 제삼자 앞에서는 형제는 용감히 사랑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막상 사랑의 공급자인 부모 앞에서는 사랑의 눈은 사라지고 경쟁의 대상으로 보여 집니다. 같은 입장에서 사랑이 일어 날 것 같지만 도리어 경쟁의 대상이 되고 시기,질투,일어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형제를 사랑하지만 막상 예수 안에서 역시 사랑의 눈길로 형제를 보고 있는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5:13-14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나의 친구입니다. 죽음의 자리까지 같이 있어 주는 나의 좋은 친구입니다. 공동체가 위기를 만나면 나는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공동체 속에서 정말 사랑을 나타낼 때에 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3>사랑하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사랑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마음에서 스며 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도 그 고통을 감당하면서 불쌍히 여기는마음은 값싼 동정이 아닙니다. 로마서9:15-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긍휼여기시는 하나님 때문에 식구를 불쌍히 여겨보았습니까 위정자에게,직장 상사에게, 불신 남편에게 예수의 사랑으로 불쌍히 여겨보았습니까에베소서 4:32절 말씀은 이렇게 우리를 권고합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4>사랑은 겸손으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겸손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정말 형제를 사랑하면 겸손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자기의 본성을 가진 자를 높여 주십니다. 베드로 전서 5: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순복은 손아래 사람의 일방적인 덕목이라면 손위,아래 가릴것없이 누구에나 필요한 덕목은 겸손입니다. 겸손은 사랑의 최고의 극치입니다. 손위, 아래 사람이든지 내가 얼마나 겸손한가는 평가는 사랑의 바로메터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겸손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사랑의 미달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남의 종이 될 때에 사랑할 수 있습니다. 상전이 베푸는 사랑에만 정신이 빠져 있습니다. 겸손히 남을 섬기는 사랑이 필요할 때입니다. 5>다른 사람이 내게 손해를 끼치고 험담을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능히 따질 수가 있습니다. 악으로 욕설로 앙 갚음을 할 수 있고 복수를 할 수 있습니다. 정당 방위는 합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복수하는 자리에는 사랑이 꽃 피지 않습니다. 도리어 복을 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복을 빌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이 쪽에서 평안을 빌고 복을 빌어 주는 것입니다. 나의 의무는 복을 빌어 주고 평안을 빌어 줍니다. 평안을 빌어 줘서 그 사람이 평안을 평안을 누릴 행동을 했으면 그 평안이 그에게로 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에 도로 돌아온다고 말씀은 약속하셨습니다. 마음놓고 옆의 사람의 평안을 마음껏 빌어 줍시다. 마태복음10:12-13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13]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복 받기를 바라고 남에게 복을 빌기를 게으르지 않았습니까 행동이야 어떻던지 관계가 없습니다. 평가는 주님이 하실 일이고 우리는 이제부터 남에게 복 빌어 주기를 좋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20:3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 복 받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복을 주고 빌기를 좋아 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이 사랑의 구체적 모습이 있습니까
2.이 사랑이 충만한 사람은 모습이 달라집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반드시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소망의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생명은 영육 간의 모든 생명을 지칭합니다. 본문 10=11절 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11]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사랑이 충만 사람에게 세 가지 변화를 가지고 소망 가운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1>사랑이 충만한 사람은 말을 조심하고 남에게 유익 되는 말을 합니다. 고전 13장 사랑 장인 것을 누구나 다 압니다. 사랑하게 되면 말의 변화가 옵니다. 방언이 무엇입니까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방언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는 되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우리의 말은 자신과 이웃을 속이는 말을 멀리합니다.시편 38:3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궤휼과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먼저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사랑을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언어의 옛습성을 버리지 못하는가
2>사랑하는 사람은 행동의 변화가 옵니다. 전에게는 야비하고 악한 행동을 하던 사람 속에 사랑이 찾아 들면 선한 행동으로 바뀌어 집니다. 선한 행동에서 사랑을 찾으려면 어렵고 외식이 섞여 있습니다. 사랑이 마음속에 있으면 선한 행동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고 억지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3:19절에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자기 꼬임에 자기가 빠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어 보이고 손해보는 것 같아도 사랑하고 기도로 참으십시오.세상 지혜로 이기려고 하지만 마침내 자기 지혜가 나중에는 올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야보고서 3: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선한 행동이 잠시 오해와 곡해 속에 감추인다고 할지라도 너무 억울해 하지 마십시오. 언제 가는 구름이 걷히고 비바람 걷고 태양이 찬란히 비추이듯 영광이 비추이는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3>사랑하는 사람의 목표가 달라집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융화하는 화평이 그의 궁극적 목적으로 바뀝니다. 전에는 자기 혼자의 안전 자기 혼자의 이익에 급급했습니다. 사랑하면 그것으로 행복을 유지 해나갈수 없다는 것을 알고 화평이 행복을 영원토록 유지해 나갈 길인 것을 알고 그 길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14:1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정결을 유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결을 하려고 지나치게 결백을 혼자 주장하다 보면 화평을 깨뜨리기가 쉽습니다. 우리의 고민이 여기에 있고 우리의 고통이 여기에 있습니다. 위정자들 순복 할 수 없는 부정과 부패가 보입니다. 주인의 부조리가 보입니다. 불신 남편에게 항변한 조건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복합니다. 화평을 우리의 목표를 삼고 그것을 좇아가기 때문입니다.화평을 이루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까화평을 이루지 못한 식구가 있습니까 내가 좀 손해 봄으로, 내 자존심을 좀 상함으로 화평을 이루는 길이 있다면 좀 손해 봅시다. 내 자존심 상해서 화평한 길이 보이거든 그 좁은 길을 걸어갑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의 화평한 길을 열고 놓기를 원해서 그 자존심 상하는 길, 손해를 봐도 엄청난 손해인 독생자 죽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디모데전서 2:2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오늘 내가 걷는 이 길이 의의 길인가믿음의 길인가 사랑의 길인가 화평의 길인가 늘 질문하면서 하루하루를 승리하면서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까지 사랑의 구체적 사건도 5가지로 살펴보았고 이 구체적 사랑의 사건이 있는 사람은 3가지 변화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고 악한 행위에 빠져서 사는 사람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결론으로 주의 눈이 내려보고 계십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주무시고 보지 않은 것 같아도 다 보고 계십니다. 잠언15:3절에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의인과 선인의 감찰하시는 여호와의 눈의 목적이 어떻게 차이가 있을까요 1>주의 눈은 지금도 의인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사랑이 충만하여 눈물로 호소하는 기도를 주의 눈동자는 놓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0:2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백부장 고넬료는 이방인이였습니다. 그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무척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믿음을 지켜 나갔습니다. 그 결과 그의 기도가 상달됨을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하나님이 의인이라고 불러 주심을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언젠가는 우리의 간구가 크게 역사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4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주님 오실 날을 소망하며 삽시다. 2>악인의 악행도 주님의 눈은 보고 계십니다. 잠언 3:33을 읽어보겠습니다.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의인과 악인의 집에 보관하고 있는 물건이 다릅니다. 의의 집에는 복을 보관하고 악인의 집에는 저주를 보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인 형통하는 것을 보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시편 73: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오히려 악인이 형통함을 보고 자신이 오만한자를 질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라기는 여기에 사랑하는 여러분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사랑의 사건을 버리지 말고 꾸준히 순복으로 말과 행동과 목표가 바뀌는 의인이 되어 영생의 복을 소유하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영생의 복을 받기 위하여 부르심의 복을 받은 자의 최고의 덕목은 사랑입니다. 사랑한다는 것만큼 막연합니다. 구체 적인 사건이 있어야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마음을 다 같이했다는 증거를 가지게 됩니다. 사랑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제사랑의 구체적 사건 5가지를 말합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한다면 이 구체적인 사건을 성경을 통하여 말하여 질 때 내 삶의 형편은 어떤가 점검해 보시기를 원합니다. 본문 8-9절을 읽어봅시다. [9]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부르신 목적은 예수님의 사랑하심을 구체적으로 여러분에게 실현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랑의 구체적인 사건은 무엇입니까
1>체휼하는 것입니다. 체휼한다는 말이 굉장히 어려운 말입니다.직접 경험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당하는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체휼한다는 말을 가장 쉽게 나타내는 말은 한 식구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현대어 번역에는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한 식구가 되십시오.라고 번역했습니다. 대동로 교회 식구라고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뜻이 있습니다.슬프면 함께 슬퍼합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합니다. 그게 바로 식구라는 뜻입니다. 요즘 자기에게 불리하고 불이익이 닥쳐오지 싶으면 쉽사리 피하는 것이 세상 인정입니다. 그러나 아직 까지 식구는 곁에서 함께 그 고통을 함께 하는 것이 식구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식구의 체휼을 보여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도 아무런 변명할 이유가 없는 우리를 형제 삼기 위하여 사람의 형편과 처지를 직접 경험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을 예수님께서는 친히 체휼하셨습니다. 예수님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당신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못난 사람들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셨습니까 사람이 당하는 최악의 고난을 친히 체험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사람은 고통에는 반드시 뜻이 있습니다. 자기 잘못의 뜻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난에는 자기의 잘못이 숨어있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4:1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이 누구십니까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사람을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고 몸으로 이해하려고 하십시오.몸으로 다른 사람에 닥아 갈 때에 이상하게 전에 느껴 보지 못한 사랑이 싹틉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전에까지는 머리로 이해하고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몸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기 전에는 사랑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2>형제를 사랑하며 자기 보다 형편이 조금 못한 사람, 자기보다 처지가 조금 뒤떨어진 것이 공연하게 확인되면 사랑을 보내기란 쉽습니다. 그러나 경쟁의 대상이 되면 선뜻 사랑하기란 매우어렵습니다. 공부를 월등히 잘한 학생이 공부를 월등히 못한 학생을 사랑하기란 매우쉽습니다. 경쟁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어느 자녀를 특별히 더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이 있겠습니까다른 제삼자 앞에서는 형제는 용감히 사랑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막상 사랑의 공급자인 부모 앞에서는 사랑의 눈은 사라지고 경쟁의 대상으로 보여 집니다. 같은 입장에서 사랑이 일어 날 것 같지만 도리어 경쟁의 대상이 되고 시기,질투,일어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형제를 사랑하지만 막상 예수 안에서 역시 사랑의 눈길로 형제를 보고 있는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5:13-14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나의 친구입니다. 죽음의 자리까지 같이 있어 주는 나의 좋은 친구입니다. 공동체가 위기를 만나면 나는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공동체 속에서 정말 사랑을 나타낼 때에 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3>사랑하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사랑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마음에서 스며 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도 그 고통을 감당하면서 불쌍히 여기는마음은 값싼 동정이 아닙니다. 로마서9:15-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긍휼여기시는 하나님 때문에 식구를 불쌍히 여겨보았습니까 위정자에게,직장 상사에게, 불신 남편에게 예수의 사랑으로 불쌍히 여겨보았습니까에베소서 4:32절 말씀은 이렇게 우리를 권고합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4>사랑은 겸손으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겸손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정말 형제를 사랑하면 겸손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자기의 본성을 가진 자를 높여 주십니다. 베드로 전서 5: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순복은 손아래 사람의 일방적인 덕목이라면 손위,아래 가릴것없이 누구에나 필요한 덕목은 겸손입니다. 겸손은 사랑의 최고의 극치입니다. 손위, 아래 사람이든지 내가 얼마나 겸손한가는 평가는 사랑의 바로메터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겸손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사랑의 미달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남의 종이 될 때에 사랑할 수 있습니다. 상전이 베푸는 사랑에만 정신이 빠져 있습니다. 겸손히 남을 섬기는 사랑이 필요할 때입니다. 5>다른 사람이 내게 손해를 끼치고 험담을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능히 따질 수가 있습니다. 악으로 욕설로 앙 갚음을 할 수 있고 복수를 할 수 있습니다. 정당 방위는 합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복수하는 자리에는 사랑이 꽃 피지 않습니다. 도리어 복을 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복을 빌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이 쪽에서 평안을 빌고 복을 빌어 주는 것입니다. 나의 의무는 복을 빌어 주고 평안을 빌어 줍니다. 평안을 빌어 줘서 그 사람이 평안을 평안을 누릴 행동을 했으면 그 평안이 그에게로 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에 도로 돌아온다고 말씀은 약속하셨습니다. 마음놓고 옆의 사람의 평안을 마음껏 빌어 줍시다. 마태복음10:12-13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13]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복 받기를 바라고 남에게 복을 빌기를 게으르지 않았습니까 행동이야 어떻던지 관계가 없습니다. 평가는 주님이 하실 일이고 우리는 이제부터 남에게 복 빌어 주기를 좋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20:3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 복 받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복을 주고 빌기를 좋아 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이 사랑의 구체적 모습이 있습니까
2.이 사랑이 충만한 사람은 모습이 달라집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반드시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소망의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생명은 영육 간의 모든 생명을 지칭합니다. 본문 10=11절 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11]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사랑이 충만 사람에게 세 가지 변화를 가지고 소망 가운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1>사랑이 충만한 사람은 말을 조심하고 남에게 유익 되는 말을 합니다. 고전 13장 사랑 장인 것을 누구나 다 압니다. 사랑하게 되면 말의 변화가 옵니다. 방언이 무엇입니까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방언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는 되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우리의 말은 자신과 이웃을 속이는 말을 멀리합니다.시편 38:3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궤휼과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먼저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사랑을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언어의 옛습성을 버리지 못하는가
2>사랑하는 사람은 행동의 변화가 옵니다. 전에게는 야비하고 악한 행동을 하던 사람 속에 사랑이 찾아 들면 선한 행동으로 바뀌어 집니다. 선한 행동에서 사랑을 찾으려면 어렵고 외식이 섞여 있습니다. 사랑이 마음속에 있으면 선한 행동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고 억지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3:19절에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자기 꼬임에 자기가 빠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어 보이고 손해보는 것 같아도 사랑하고 기도로 참으십시오.세상 지혜로 이기려고 하지만 마침내 자기 지혜가 나중에는 올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야보고서 3: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선한 행동이 잠시 오해와 곡해 속에 감추인다고 할지라도 너무 억울해 하지 마십시오. 언제 가는 구름이 걷히고 비바람 걷고 태양이 찬란히 비추이듯 영광이 비추이는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3>사랑하는 사람의 목표가 달라집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융화하는 화평이 그의 궁극적 목적으로 바뀝니다. 전에는 자기 혼자의 안전 자기 혼자의 이익에 급급했습니다. 사랑하면 그것으로 행복을 유지 해나갈수 없다는 것을 알고 화평이 행복을 영원토록 유지해 나갈 길인 것을 알고 그 길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14:1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정결을 유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결을 하려고 지나치게 결백을 혼자 주장하다 보면 화평을 깨뜨리기가 쉽습니다. 우리의 고민이 여기에 있고 우리의 고통이 여기에 있습니다. 위정자들 순복 할 수 없는 부정과 부패가 보입니다. 주인의 부조리가 보입니다. 불신 남편에게 항변한 조건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복합니다. 화평을 우리의 목표를 삼고 그것을 좇아가기 때문입니다.화평을 이루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까화평을 이루지 못한 식구가 있습니까 내가 좀 손해 봄으로, 내 자존심을 좀 상함으로 화평을 이루는 길이 있다면 좀 손해 봅시다. 내 자존심 상해서 화평한 길이 보이거든 그 좁은 길을 걸어갑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의 화평한 길을 열고 놓기를 원해서 그 자존심 상하는 길, 손해를 봐도 엄청난 손해인 독생자 죽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디모데전서 2:2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오늘 내가 걷는 이 길이 의의 길인가믿음의 길인가 사랑의 길인가 화평의 길인가 늘 질문하면서 하루하루를 승리하면서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까지 사랑의 구체적 사건도 5가지로 살펴보았고 이 구체적 사랑의 사건이 있는 사람은 3가지 변화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고 악한 행위에 빠져서 사는 사람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결론으로 주의 눈이 내려보고 계십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주무시고 보지 않은 것 같아도 다 보고 계십니다. 잠언15:3절에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의인과 선인의 감찰하시는 여호와의 눈의 목적이 어떻게 차이가 있을까요 1>주의 눈은 지금도 의인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사랑이 충만하여 눈물로 호소하는 기도를 주의 눈동자는 놓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0:2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백부장 고넬료는 이방인이였습니다. 그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무척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믿음을 지켜 나갔습니다. 그 결과 그의 기도가 상달됨을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하나님이 의인이라고 불러 주심을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언젠가는 우리의 간구가 크게 역사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4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주님 오실 날을 소망하며 삽시다. 2>악인의 악행도 주님의 눈은 보고 계십니다. 잠언 3:33을 읽어보겠습니다.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의인과 악인의 집에 보관하고 있는 물건이 다릅니다. 의의 집에는 복을 보관하고 악인의 집에는 저주를 보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인 형통하는 것을 보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시편 73: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오히려 악인이 형통함을 보고 자신이 오만한자를 질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라기는 여기에 사랑하는 여러분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사랑의 사건을 버리지 말고 꾸준히 순복으로 말과 행동과 목표가 바뀌는 의인이 되어 영생의 복을 소유하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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