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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벧전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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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 새마을금고에 강도가 들었었는데 여자분들 둘이 강도를 몰아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참 대단한 여인들이었습니다. 강도가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들어와서 추춤거리는 모습을 새마을 금고 여직원들이 보면서 수상하다 여기고 곧 가스총을 준비하고 있을 때 강도가 덤벼 들었습니다. 여 직원이 가스총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덤벼들 때 총을 쏠수 있었고, 강도가 무서워 도망 했습니다(그 강도가 나중에 경찰에 잡혀었는데 보니까 실제권총을 가지고 침입한 것이 아니라 라이타 권총을 차고 강도짓을 하려고 덤벼듬). 그들이 강도를 몰아내고, 지킬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부여된 직임에 대한 정신무장이 바로 제대로 되어 있기에 갑자기 강도를 만났음에도 지킬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우리 축구국가대표팀이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나라와 붙어서 처음에 잘 했습니다. 2:0으로 이기고 있다가 후반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때에 3꼴을 먹게 되어 우승후보라고 자청하였던 우리나라가 치욕의 대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우리 나라 선수들이 2골정도 넣고보니까 이 나라도 별 것 아니구나, 이 까짓 팀 쯤이야라는 안일한 생각, 정신무장이 흩어려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속담도 있습니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려도 산다” 정신무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고 있는 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성공시키느냐 실패하느냐는 것은 우리가 어떤 정신무장을 갖고 사느냐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 바른 인생이 되어지려면 어떤 정신무장이 있어야 할 것인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가 성공하는 인생, 성공하는 바른 신앙생활, 축복된 역사를 위하여 이런 정신무장을 갖고 살기를 원하심을 볼수 있습니다. 어떤 정신으로 무장해서 살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종말의식을 가지고 살아라 종말이란 마지막을 말합니다. 아침부터 시작하는 말이 마지막이라는 절망의 말로 시작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마지막이라는 종말 의식은 우리의 삶을 깨우는, 정신을 가다듬게하는 활력소도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종말 의식을 가지고 살아라고 해서, 근래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처럼 집도 팽개치고, 직장도 사업도 그만두고, 교회에 와서 살아라고 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스피노자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분명 말세입니다.
그런데 이 말세라고 해서 세상을 부정하고, 세상을 터부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종말 의식을 가지고 하루하루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1마지막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지막’이라고 하는 것은 끝을 말합니다. 즉, 하고자 하나 더 이상 할 수 없는 시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이 다가옵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이 주어집니다. (전 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전 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그렇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고통이 시작되었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그칠 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무 낙심하지 맙시다. 또 너무 행복하고 좋습니까 그것이 끝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무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시작과 끝을 보면서 세 가지 마지막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어진 날이 끝날때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시간적인 종말) 보세요. 1998년을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끝날이 가까웠습니다. 시작을 할 때는 언제 한해가 가나 했는데 벌써 끝에 와 있습니다. 세월은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덧 없이 지나간 이 시점에서 지난 한해를 돌아보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한것도 없는데 세월만 지났다고 생각안드십니까 계획도 많았고, 꿈도 컸었는데 한 일도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남은 한달이라도 주어진 시간들, 날들을 잘 활용하여 한 해를 잘 마무리 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한 해의 마지막이 가까옴을 보고 우리 인생에는 이렇듯 끝날때가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육체의 생명이 끝날때가 있습니다(개인적인 종말) 전도서 3:2에서도 말하는 것과 같이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지만 그것은 소원일 뿐 길어봐야 7,80년안에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엄숙하게 말합니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한 번 죽는 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내가 아무리 건강하고, 내가 아무리 원한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피해서 도망할 수 없습니다. 내 사전에 불 가능이란 없다고 외쳤던 나폴레옹도 죽음앞에는 불가능했고, 죽지않고 영원히 살기 위해서 불로초를 구하여 먹었던 진시황제는 더 빨리 세상을 떠났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내게 생명이 시작이 되었다면 생명이 끝날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끝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지 않고, 언젠가는 이 땅의 삶을 마칠때가 반드시 옵니다. 또 이 땅의 삶의 끝이 있어야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가 오늘을 정말 후회 없이 값지게 살려면 ‘오늘이 나의 생애의 주어진 마지막 날이다’라는 개인종말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옛날 로마의 어떤 황제는 자기의 신하들이 자기를 찾아와 알현하고 인사를 할 때마다 이런 인사를 하도록 시켰습니다. “모 멘토리”-‘죽음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그는 자기 삶을 순간 순간마다 최후 앞에 세우는 결단을 행했던 것입니다. 태어날 때가 있듯이 죽을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젊다고, 건강하다고 나는 아직 멀었다고 안심하고 마음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의 그림자는 내게 들리웁니다. 아직 생명있는 이 때에 언제 육체의 생명이 끝이난다 할지라도 부끄러움 없고, 후회함이 없는 일들이 되어지도록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이 있습니다(우주적인 종말)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므로 일어날 현상들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24장은 말세장이라고 합니다. 말세, 즉 세상 끝에 일어날 징조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일어날 일들로서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만 해도 자기가 하나님이라, 예수라고 하는 이가 드러내놓은이가 6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잘못 하다가는 이단에 빠져 가정망치고, 영혼망칩니다. 이런것들이 바로 말세의 징조, 즉 세상 끝에 이루어질 일이라는 것입니다. 각국의 전쟁과 기근, 질병, 지진, 흉년 등이 있을 것을 말씀합니다. 지금도 세계 20여 개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마치 세계 평화가 정착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집계를 보면 군인이 300만 명 이상, 민간인이 그의 수십 배씩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캄보디아만 하더라도 같은 민족끼리 권력투쟁으로 인하여 300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 숫자는 그곳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합니다. 국제기아대책기구의 보고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가난한 나라에서는 1분에 20명이(이중 18명이 어린이입니다)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1시간에 1,400명, 하루에 3만 5천 명, 1년에 1천 300만 명이 굶어죽고 있습니다. 지난 5년동안에 굶어죽은 사람만 해도 무려 지난 150년에 걸쳐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전쟁과 유혈투쟁, 유혈혁명으로 죽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흔히들 전쟁으로 죽는 것, 지진으로 인해서 죽는 것은 큰 사건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용히 굶어죽어가는 사람들, 1년에 1천 300만 명이나 죽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근래에 일어나는 이상기후 현상들, 작년 여름까지는 엘리뇨 현상으로 기상이변을 일으키더니 올 겨울은 라니냐 현상으로 유래없는 추위가 있을 것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처처에 기근과 홍수, 가뭄등이 말세에 일어날 징조들입니다. 무엇보다도 불법이 성행하여 사랑이 식어질 것을 예언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종말적인 사건들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어느 하루도 말세의 조짐을 보이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이런 내용들은 꾸며낸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전설도 아닙니다. 지금 역사 안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과 사람과 일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고, 앞으로 분명히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 이 일은 우리들 가운데 이루어 질 것입니다.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리라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심판하셨듯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시기 전에 유황불로 멸하실 것을 말씀하시고 행하셨듯이, 마지막 심판을 행하실 것을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분명히 이루어 질 것입니다. 롯의 사위들이 믿지 않고 농담으로 여겨 결국 멸망을 당한 것을 우리가 볼진대, 우리에게 다가올 마지막 날에 대해서 우리들은 믿고 그 날에 멸망함을 받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준비되기 바랍니다. 이 날이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의 마지막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예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이 마지막이 어떠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나마 다행스러운 말씀은, 그리고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이렇게 대면하고 있는 모습처럼, 상황이 이미 끝난 상황이 아니고, 이 마지막이 ‘가까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까왔다’라고 하는 것은, 저 먼발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목전에 다다랐다는 표현입니다. 즉 우리의 코앞에 닥쳤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이 우리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가 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의 생명이 연장되고, 주님께서 재림을 하시지 않고 있는 이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셨구나” “오늘 주어진 이 기회를 허송세월하지 않고 기회를 선용해야지” 그래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날들이, 기회가 되어지기 바랍니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다” “이번이 나의 마지막 기회다” 이런 종말 의식을 가지고 산다면 주어진 하루 하루를 정말 보람되게, 가치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경계해야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마지막이 가까이 와 있다라는 말을 듣고 ‘그냥 하는 소리겠거니’여겨 넘겨 버려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니면 마음에도 두지 않고 성경이 말씀하는 것처럼 준비하지 않으면 큰 일이 일어나고야 만다는 사실입니다. 1945년 8월에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되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갔습니다.
그런데 원자탄이 갑자기 투하된 것이 아니고, 투하되기 며칠전부터 매일밤 미국 비행기가 경고문을 살포했습니다. “머지않아 이 도시에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폭탄이 투하 될 것이다. 과거에 들어보지도 못한 새로운 힘을 지닌 폭탄이므로 이 도시에 머물러 있다가는 생명이 위험하니 멀리 피난을 가십시오” 라고 적힌 경고문을 매일밤 살포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히로시마 사람들은 경고문을 귀넘어 듣고, ‘그럴리가 있느냐 무슨 그런 괴력을 지닌 폭탄이 있을리가 있겠느냐’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경고문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원자탄이 투하되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목숨을 일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에 롯에게 피하도록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그 말을 들은 롯은 그의 식구들에게 말했지만 그 중에 롯의 사위들은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농담으로 여겼던 그들은 유황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은 분명한 말씀이요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2.그러므로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그러므로” 마지막이 가까이 와 있는 이 때에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나 자신에 대해서는 ㉮정신을 차리고 살아라. ‘정신을 차리라’는 이 말씀 속에 어떤 의미가 들어 있겠습니까 정신을 빼놓고 산다. 정신을 쏟아야 할 곳에 쏟지 않고 엉뚱한데 신경을 쏟고 있다는 말입니다. 마땅히 행할 일을 하지 못하고, 하지 않아야 할 것,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마음 빼앗겨 있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서 되는가 돌아보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마귀는 자기의 때가 다된 줄 알고 우리 사람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신을 엉뚱한데 쏟게 합니다. (계12: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 더라 그래서 사탄이 우리들을 어떤 곳에 정신을 쏟게 합니까 (딤후 3: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딤후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딤후 3: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이런 모습들이 오늘날 우리들의 정신을 혼미케하여 여기에 정신을 집중하게 하며, 신경을 쓰게 합니다. 이런것에 마음 빼앗기면 믿음의 생활에는 관심이 없어집니다. 영적인 성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여러분! 우리가 지금 세상의 마음을 빼앗겨, 세상의 것을 얻는데 혈안이 될 때가 아닙니다. 세상 재미에 빠져 영적인 일을 도모하지 못하는 것에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언제 우리의 생명이 끝이 날지, 주님이 오실 지 아무도 모르잖습니까 하고자 하나 더 이상 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인데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니 “정신 차립시다” 따라서 합시다. ‘정신차리자’ ‘정신 차리고 삽시다’ ㉯근신하는 것입니다. ‘근신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깨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깨어 있는 것은 정신을 차리고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를 말합니다. 사탄이 우리의 영혼을 삼켜 먹으려고 언제 어떤 모습으로 덤벼들지라도 거기에 삼킴 당하지 않고 오히려 대적해서 이길 수 있는 자세를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 입니까 깨어 있지 않으면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잠들어 있으면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도둑을 맞습니다. 마24장에 보면 주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도적이 들어와서 가져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깨어 있어야 도적질 당하지 않습니다. 마귀의 밥이 됩니다. 벧전5장에 깨어 있어야 할 이유를 말하기를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신랑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마25장에 깨어 있는 자가 신랑을 맞이하였습니다. (살전 5:5-8)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그렇습니다. 마지막이 가까운 이때에 우리가 잠을 자면 안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잠자는 모습이 무엇입니까 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다면 잠자고 있는 것입니다. 해야 함을 알고 있으면서 하지 않는 것이 잠자고 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읍시다. 근신합시다. 깨어 있는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가슴에는(흉배) 믿음과 사랑을 가지는 것입니다. 머리에는(투구) 구원의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2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합니까-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생명 줄이 바로 기도라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기도는 쉬지 말고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이 때를 살면서 주어진 생명과 기회를 지혜롭게 값지게 잘 선용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쉬면 우리의 영혼이 답답합니다. 따분합니다. 영적인 의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망이 생기지 않습니다. 왜그렇습니까 기도가 하나님께 연결된 생명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며 삽시다. 기도하여 영적인 생명을 충분히 공급을 받읍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자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느냐 하면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기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야고보 4:2에 너희가 얻지 못함음 구하지 아니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또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러니 구하여 받아서 주어진 기회를 잘 선용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까(8-11)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지막이 가까운 이 때에 열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무엇입니까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만이 아닙니다. 주고, 받고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여러분! 사랑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먼저 주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서로 사랑이 되어집니다. 그러니 성도들간에 서로 사랑합시다. 미워하지 말고, 싫어하지 말고 사랑만 해도 부족합니다. 왜요 오늘이 마지막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어떻게 하는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까 물론 사랑하는 표현은 여러 모양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세를 사는 우리들이 해야할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허다한 죄를 덮는 것’ 즉, 허물을 덮어 주는 것입니다. 실수를 덮어 주는 것입니다. 사탄은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의 허물과 죄, 상대방의 허물과 죄를 보고 들추어내어 우리의 기를 죽이기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대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그의 피로 덮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덮어 주심으로 의인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형제의 허물과 실수를 주의 사랑으로 덮어 줍시다. 물론 여기서 덮자고 하는 것은 그 죄에 대해서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잘했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해결할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런 허물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주의 사랑으로 덮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들추어내어서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든지, 괴롭히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죄를 아무 말없이, 조건 없이 덮어 셨듯이, 내가 지은 죄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듯이 우리도 그렇게 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마지막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모습입니다. ㉯서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봉사한다고 하는 것은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를 위하여 수고한다는 것입니다. 왜 봉사를 하는 것입니까 두 가지의 유익이 있습니다. 먼저는 상대방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세움을 입는 것입니다. 이 봉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만이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봉사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봉사를 어떻게 해야 잘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9절-원망 없이 하라 억지로, 불평하면서, 짜증내면서 하지 말고, 즐거움으로 하라. 자원함으로 하라 ⓑ10절-청지기같이 하라 청지기는 맡은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내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11절-믿음으로 하라 주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입니다. 즉 헛것입니다.
3.왜 정신을 차리고,기도하며,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심판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이 땅에서 내가 산 것에 대해서 결산을 하게 됩니다. 결산할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만큼 갚아 주십니다. 믿음으로 많이 심은자에게는 하나님나라의 영광과 상급으로 갚아주시지만, 믿음없이 내 뜻과 내 자의로 행하는 삶을 살았다면 우리들은 영광과 상급을 받지 못하고 슬피울며 이를 갈수밖에 없습니다. 보십시오. 이 땅에서도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 있는자와 없는자의 얼마나 많은 차이들이 있습니까 있는 사람들은 있으니까 기를 펴고 살고, 없는 사람들은 없으니까, 못하니까 기가 죽어 삽니다. 하물며 영원히 거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우리가 없는자로, 못하는자로 살아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주어진 기회를 잘 선용해서 당당하게 심판대 앞에 설수 있는자 세워지기 원합니다. 그럴려면 지금, 기회 주셨을 때에 정신차리고, 근신하고, 기도하며,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며 살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에게 기회가 마냥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언제 내게 무슨 일을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 믿음으로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여 복된 사람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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