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라 (신8:11-18)
본문
신앙 생활은 장거리 경주와 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하루 이틀에 끝낼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일평생 죽을때 까지 주님이 이땅에 다시 오실때 까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장거리 경주에 참가한 운동선수가 견디기 힘들다고 해서 도중에 포기하면 메달을 얻지 못하는 것처럼 신앙인이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다고 포기하면 영생의 축복을 잃어 버릴 것입니다. 세상에서 운동선수는 경주를 포기 했을지라도 다시 기회가 있게되지만 신앙생활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여정에 무수한 어려움이 뒤따른다고 할지라도 인내 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좋은것을 주시기 때문에 강도나 도적은 아무리 우리에게 좋게 해줘도 그 마음의 숨은 동기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에게 아무리 나쁘게 대하여도 그마음의 숨은 동기는 좋게 해주려는 것이기 때문에 안심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광야를 지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끊임없이 원망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마음의 동기를 이해하지못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는지, 왜 만나를 먹게하셨는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의심한 그들은 자꾸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사 광야를지나게 한 데는 하나님의 선하신 마음의 동기가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고난과 시험을 통하게 하심은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시고 재물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신8:16)고 성경은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여러가지 삶의 고난과 시련은 그 속에 깊은 의미가 있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유익된 것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 마음속에 깨달아 알아야 되는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수많은 시험과 환난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 하면서 은혜받고자 합니다.
첫째. 고난은 인간을 겸손하게 하고 자아를 깨뜨립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를 지나며 고통을 당하게 한것은 그들의 마음을 낮추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 환경이 항상 좋기만 하여 늘 평안하고 모든 사람의 칭찬만을 받게 되면 교만하고 나태해져서 자기가 제일 잘날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억센 고난과 시험, 환난을 통하게 되면 우리는 그 고난에 의하여 깨어지고 겸손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할 때 자기의 무능력과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고난이 없을 때에는 '예수 믿지 말고 내 주먹을 믿으라'고 큰소리치던 사람도 고난을 당하면 자신의 무능력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발 앞에 엎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주시려면 먼저 '자기' 라는 우상을 깨뜨리십니다. 자기를 우상화하고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줄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고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기가 신이 되어 있고 자기를 우상화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실 수가 없는것입니다. 이 때문에 고난은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고집불통의 마음도 고난 앞에서는 깨어집니다.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을 보십시오. 밤새도록 씨름을 했습니다. 야곱의 고집이 얼마나 센지 밤새도록 씨름해도 굴복하지 아니하자 천사가 야굽의 환도뼈를 쳐버렸습니다. 그러자 쓰러졌습니다. 일어나 보니 절름발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이제 까지 자신을 의지하였던 자아가 깨어져 버렸습니다. 그제서야, 아침 해가 뜰 때 야곱은 절뚝절뚝 절면서 얍복 나루터를 건너갔습니다. 건강할 때는 도망갈 생각을 하고 절대로 굴복을 안했는데 절름발이가 되고 나니 이제 까지의 자아가 깨어져 버린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 품에 안기었으면서도 주일 안지키고 십일조도 드리지 않고 주님 사업을 등한시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태풍이 몰아닥치면 그 자아는 깨어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은 우리에게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3. 고난은 새로운 가치관을 가져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게 합니다. 사람이 고난을 받기 전에는 돈,지위, 명예,권세,쾌락 등이 마음 속의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이것들만을 최고로 생각하고 이를 향해 뜁니다. 그러나 고난이 다가와 돈, 권세,명예,괘락이 다 날라가고 목숨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비로소 그 모든 것이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지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게 되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찾아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참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예수믿고 하나님 섬기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의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나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허수아비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울긋불긋한 옷에 넓직한 모자를 쓰고 팔을 활짝 펼치고 논 한가운데 서 있는 허수아비는 모든 사람과 날아다니는 새의 눈에 보입니다. 멋있게 보입니다. 굉장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서 만져보면 그것은 지푸라기일 뿐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믿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은 그 외형을 아무리 찬란하게 치장해도 결국은 지푸라기 인생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푸라기만 있는 텅빈 인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어 우리 속에 주님이 들어오시고 하나님을 모시게 되면 내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삶의 참 가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난 다음에는 돈과 지위, 명예나 권세를 거부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아니나, 삶의 중심이 되지 않고 삶의 액세서리에 불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고 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올바른 곳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부귀영화가 있으면 그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올바른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삶과 시간과 물질 등을 허탄한 데에 쓰고 있습니다. 이들은 생을 다하는 날 주님 앞에 설 때 주께서 '너는 일생을암 한 것 없이 다 소모해 버렸으니 불과 유황 못으로 들어가라'고 하셔서 이를 갈며 통곡하는 일을 당해도 도와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 우리의 생명이 있을 때 우리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일하며 살아야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주는 것이 고난인 것입니다. 큰 고난을 당하면 세상의 헛됨을 깨닫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여러가지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환난과 시험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참 가치있고 영원한 것을 주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흔들어 깨워 일으키는 역사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오기 전에는 아무래도 하나님만을 힘차게 믿기 어렵습니다. 자기의 돈, 지위,명예 청춘, 실력도 믿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제쳐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빈손이 되었을 때 의지할곳은 하나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억센 고난으로 고독해질 때 진짜로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전엔 '주여 믿습니다'하더라도 그것은 자기도 믿고 세상도 믿고 주님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다가와서 모든 것을 제쳐 버리면 참 믿음의 훈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쇠하든지, 천지만물을 지으신 우리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고 나아갑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게 하는 것은 고난이 가르침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가르쳐도 배우지를 못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인간은 세상과 자기를 의지하는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며 하나님이 나의 기쁨이요, 위로와 소망, 능력과 힘이되는 그 사람은 신앙깊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이 와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고 공경해야 할 분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거나 두려워 하지않고 소홀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고 보면 하나님은 늘 좋게만 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불순종하면 채찍을 들어 때린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손자를 귀여워 하니 수염까지 뽑으려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이 있지 않도록 이모저모로 깨닫게 하시고 때리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두려워 하고 공경하도록 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됩니다. 고난을 만나기 전에는 기도하기가 힘듭니다. 목사가 '하루에 한 시간 기도하라'고 하면 그렇게 기도할 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면 한 시간이 아니라 하루종일 기도를 드려도 끝쳐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듭니다. 야고보서에도 '너희중에 고난 당한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임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만큼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것이 없습니다. 고난은 우리를 깨뜨려 기도하게 만듬으로 하나님 앞에 깊이 들어가고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드는것입니다. 이러므로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는 좋은 선생이 됩니다. 고난은 우리가 더욱 주님을 믿고 순종케 하는 참으로 좋은 선생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좋은 성도를 만드는 것이 고난이 하는 일입니다. 고난이란 하나님께서 끝을 가지고 원하는 것을 찍어내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3. 성도의 온전케 하며 영광의 약속이 있습니다. 고난의 채찍은 성도로 하여금 온전케 하는 특효약이다. 히5:8-9에는 예수께서도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하게 되었다고 했으며, 야고보도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다(약1:2-4). (히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은 곧 장차 나타날 영광의 약속입니다. 바울은 "그와 함게 영광을 받기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롬8:17)고 했습니다. 바울이 가진 "예수의 흔적"(갈6:17)은 고난의 흔적이요, 아울러 장차 받을 저 하늘나라에서의 영광의 흔적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영광은 현재 성도가 당하는 고난에 족히 비교할 수 없다. 고난은 영광과 통합니다. 고난은 진리를 찾게하는 길입니다. 여러분,진리는 깊은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도 깊은 것입니다. 고난의 깊은 길을 통하면 진리의 깊은 곳에 들어갈 수가 있는것입니다. 진리란 평범한 데 있지 않습니다. 금,은 보석같은 광물도 땅 밑에 깊이 파고 들어가야 있지 길거리에서 돌처럼 굴러다니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진리도 깊은 곳에 있지 아무데서나 굴러다니지 않습니다. 고난의 길을 통하면 우리는 진리를 찾게 되고 진리를 찾게 되면 그곳에 기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심한 고난을 통하여 괴로움을 겪고난 후에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서 옛날에 돈이 많고 여유가 있을 때는 기뻐하지 않았는데 고난을 당해 다 잃고난 후 예수믿고 은혜받고난 다음 얼굴이 훤해져서 더 잘 웃고 옛날 보다 더 즐거워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친다'고 한 것입니다. 카프만 부인의 [광야의 샘]이란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나는 누에고치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침 여러 마리의 누에고치가 나비로 탈바꿈을 하는 중이었다. 너무도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오려고 애쓰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불가능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두 마리, 그토록 작은 구 멍을 통해 천신만고 애쓰더니 결국은 빠져 나와서 공중으로 훨훨 날아 올랐다. 나는 마침 또 나오려 고 애쓰는 고치를 발견하고 가위로 그 구멍을 넓게 잘라 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과 자비가 많다고 자족하면서 혼자 웃었다. 내가 넓게 열어준 구멍으로 나비는 쉽 게 나왔으나 문제가 생겼다. 공중으로솟아 오르려고 몇 번 시도하면서도 결국 오르지 못하고 땅바닥 에서만맴돌 뿐이었다. 앗차!! 나는 깨달았다. 작은 구멍에서 고통하며 힘쓰면서 나와야 그 몸의 영양 분을 날개 끝까지 공급하게 되고, 날개가 나올 심하게 마찰되면서 날아 오를 만큼 강건해 진다는 것 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고난당한 것이 내게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아멘" 이러므로 고난의 결과는 주님 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깨어지게 하고 변화받게 하고 우리를 낮추게 하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편안한 길로 인도하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 오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얻기 전에 고난을 통해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겸허하게 하신것입니다. 준비된 그릇에 복이 내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때려서 변화시킨 후에 마침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고 가난한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고 깨뜨리신 후 마침내 복을 주셔서 재물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이주신 것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며 살자고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것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땅이 열매를 맺는 것처럼 고난의 비에 젖어야 비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오솔길을 통해야 축복의 광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여러가지 시험이나 환난이나 고난을 당하거든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감사하고 기뻐하고 그 가운데서 깨어지고 변화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야고보서5장7절로 11절 까지는 3가지 유형의 인내가 나옴을 다 시금 기억 하면서 때를 기다리며 부지런히 수고하는 농부의 인내를 가집 시다. 형언할수 없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오래참은 선지자들의 인내를 배웁 시다까닭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내한 욥의 신앙을본받으면서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여 "신앙생활에 항상 승리 합 시다. 제 목:고난의 유익 자료원:이현목사 구 절:시 119:65-80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나 고난이라는 두 글자를 매우 싫어한다. 이는 고난 그 자체가 괴로움이요, 눈물이기 때문이다. 킥류껙 성경은 많은 말씀으 로 고난의 유익을 말하고 있다. 경건한 성도의 신앙생활은 필연적으로 고난 이 따라다니며 그 고난은 성도의 영적 성장에 있어서 참으로 큰 유익을 주는 것임을 알게 된다(67,71절). 다윗의 고백대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이며, 사도 베드로도 성도의 고난의 가치와 그 유익에 대해 말했으며(벧전1:7), 욥 또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 가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고 했다.
그러므로 경건한 성도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자랑하고 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도가 당하는 값진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 의 징계"(히12:5-13)이며, "믿음의 시련"(벧전1:7)이며, "하나님의 단련하 심"(욥23:10)이기에 그 고난의 유익은 영적 성장에 있어 큰 유익이 됨을 표현해 준다. 성도의 고난의 유익은
1. 성도의 겸손이다(73절). 참 겸손이란 자기의 허물과 죄악을 바로 깨달을 때 이루어진다. 성도들이 고난의 골짜기, 불가마를 통과하면서 겸손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또 겸손하 게 되므로 사실상 하나님의 복이다. 욥의 모습(탓霹2:6)과 바울의 고백(고전 15:9, 엡3:8, 딤전1:15)을 통한 성숙한 겸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 하나님께 대한 전적 신뢰(80절).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고난을 주심은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에 있 다고 바울은 증언했다(고후1:9). 고난 속에서 인간무능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는 신앙의 참 신앙이요, 살아 있는 신앙이다. 성도의 고난은 오 직 하나님만 의뢰하게 한다.
3. 성도의 온전(67,80절). 고난의 채찍은 성도로 하여금 온전케 하는 특효약이다. 히5:8-9에는 예수 께서도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픕구 되었다고 했으며, 야고보도 시험 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다(약1:2-4). 단련 후에 전혀 섞이지 않은 정금이 나오듯 성도의 정금 같은 온전은 고난 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히브리서 기자는 말했다(히12:11).
4. 영광의 약속(94절). 고난은 곧 장차 나타날 영광의 약속이다. 바울은 "그와 함게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롬8:17)고 했다. 바울이 가진 "예수 의 흔적"(갈6:17)은 고난의 흔적이요, 아울러 장차 받을 저 하늘나라에서의 영광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 영광은 현재 성도가 당하는 고난에 족탯波비교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여러가지 삶의 고난과 시련은 그 속에 깊은 의미가 있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유익된 것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 마음속에 깨달아 알아야 되는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수많은 시험과 환난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 하면서 은혜받고자 합니다.
첫째. 고난은 인간을 겸손하게 하고 자아를 깨뜨립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를 지나며 고통을 당하게 한것은 그들의 마음을 낮추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 환경이 항상 좋기만 하여 늘 평안하고 모든 사람의 칭찬만을 받게 되면 교만하고 나태해져서 자기가 제일 잘날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억센 고난과 시험, 환난을 통하게 되면 우리는 그 고난에 의하여 깨어지고 겸손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할 때 자기의 무능력과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고난이 없을 때에는 '예수 믿지 말고 내 주먹을 믿으라'고 큰소리치던 사람도 고난을 당하면 자신의 무능력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발 앞에 엎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주시려면 먼저 '자기' 라는 우상을 깨뜨리십니다. 자기를 우상화하고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줄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고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기가 신이 되어 있고 자기를 우상화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실 수가 없는것입니다. 이 때문에 고난은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고집불통의 마음도 고난 앞에서는 깨어집니다.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을 보십시오. 밤새도록 씨름을 했습니다. 야곱의 고집이 얼마나 센지 밤새도록 씨름해도 굴복하지 아니하자 천사가 야굽의 환도뼈를 쳐버렸습니다. 그러자 쓰러졌습니다. 일어나 보니 절름발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이제 까지 자신을 의지하였던 자아가 깨어져 버렸습니다. 그제서야, 아침 해가 뜰 때 야곱은 절뚝절뚝 절면서 얍복 나루터를 건너갔습니다. 건강할 때는 도망갈 생각을 하고 절대로 굴복을 안했는데 절름발이가 되고 나니 이제 까지의 자아가 깨어져 버린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 품에 안기었으면서도 주일 안지키고 십일조도 드리지 않고 주님 사업을 등한시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태풍이 몰아닥치면 그 자아는 깨어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은 우리에게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3. 고난은 새로운 가치관을 가져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게 합니다. 사람이 고난을 받기 전에는 돈,지위, 명예,권세,쾌락 등이 마음 속의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이것들만을 최고로 생각하고 이를 향해 뜁니다. 그러나 고난이 다가와 돈, 권세,명예,괘락이 다 날라가고 목숨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비로소 그 모든 것이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지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게 되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찾아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참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예수믿고 하나님 섬기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의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나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허수아비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울긋불긋한 옷에 넓직한 모자를 쓰고 팔을 활짝 펼치고 논 한가운데 서 있는 허수아비는 모든 사람과 날아다니는 새의 눈에 보입니다. 멋있게 보입니다. 굉장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서 만져보면 그것은 지푸라기일 뿐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믿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은 그 외형을 아무리 찬란하게 치장해도 결국은 지푸라기 인생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푸라기만 있는 텅빈 인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어 우리 속에 주님이 들어오시고 하나님을 모시게 되면 내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삶의 참 가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난 다음에는 돈과 지위, 명예나 권세를 거부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아니나, 삶의 중심이 되지 않고 삶의 액세서리에 불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고 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올바른 곳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부귀영화가 있으면 그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올바른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삶과 시간과 물질 등을 허탄한 데에 쓰고 있습니다. 이들은 생을 다하는 날 주님 앞에 설 때 주께서 '너는 일생을암 한 것 없이 다 소모해 버렸으니 불과 유황 못으로 들어가라'고 하셔서 이를 갈며 통곡하는 일을 당해도 도와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 우리의 생명이 있을 때 우리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일하며 살아야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주는 것이 고난인 것입니다. 큰 고난을 당하면 세상의 헛됨을 깨닫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여러가지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환난과 시험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참 가치있고 영원한 것을 주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흔들어 깨워 일으키는 역사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오기 전에는 아무래도 하나님만을 힘차게 믿기 어렵습니다. 자기의 돈, 지위,명예 청춘, 실력도 믿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제쳐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빈손이 되었을 때 의지할곳은 하나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억센 고난으로 고독해질 때 진짜로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전엔 '주여 믿습니다'하더라도 그것은 자기도 믿고 세상도 믿고 주님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다가와서 모든 것을 제쳐 버리면 참 믿음의 훈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쇠하든지, 천지만물을 지으신 우리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고 나아갑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게 하는 것은 고난이 가르침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가르쳐도 배우지를 못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인간은 세상과 자기를 의지하는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며 하나님이 나의 기쁨이요, 위로와 소망, 능력과 힘이되는 그 사람은 신앙깊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이 와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고 공경해야 할 분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거나 두려워 하지않고 소홀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고 보면 하나님은 늘 좋게만 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불순종하면 채찍을 들어 때린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손자를 귀여워 하니 수염까지 뽑으려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이 있지 않도록 이모저모로 깨닫게 하시고 때리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두려워 하고 공경하도록 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됩니다. 고난을 만나기 전에는 기도하기가 힘듭니다. 목사가 '하루에 한 시간 기도하라'고 하면 그렇게 기도할 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면 한 시간이 아니라 하루종일 기도를 드려도 끝쳐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듭니다. 야고보서에도 '너희중에 고난 당한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임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만큼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것이 없습니다. 고난은 우리를 깨뜨려 기도하게 만듬으로 하나님 앞에 깊이 들어가고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드는것입니다. 이러므로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는 좋은 선생이 됩니다. 고난은 우리가 더욱 주님을 믿고 순종케 하는 참으로 좋은 선생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좋은 성도를 만드는 것이 고난이 하는 일입니다. 고난이란 하나님께서 끝을 가지고 원하는 것을 찍어내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3. 성도의 온전케 하며 영광의 약속이 있습니다. 고난의 채찍은 성도로 하여금 온전케 하는 특효약이다. 히5:8-9에는 예수께서도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하게 되었다고 했으며, 야고보도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다(약1:2-4). (히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은 곧 장차 나타날 영광의 약속입니다. 바울은 "그와 함게 영광을 받기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롬8:17)고 했습니다. 바울이 가진 "예수의 흔적"(갈6:17)은 고난의 흔적이요, 아울러 장차 받을 저 하늘나라에서의 영광의 흔적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영광은 현재 성도가 당하는 고난에 족히 비교할 수 없다. 고난은 영광과 통합니다. 고난은 진리를 찾게하는 길입니다. 여러분,진리는 깊은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도 깊은 것입니다. 고난의 깊은 길을 통하면 진리의 깊은 곳에 들어갈 수가 있는것입니다. 진리란 평범한 데 있지 않습니다. 금,은 보석같은 광물도 땅 밑에 깊이 파고 들어가야 있지 길거리에서 돌처럼 굴러다니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진리도 깊은 곳에 있지 아무데서나 굴러다니지 않습니다. 고난의 길을 통하면 우리는 진리를 찾게 되고 진리를 찾게 되면 그곳에 기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심한 고난을 통하여 괴로움을 겪고난 후에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서 옛날에 돈이 많고 여유가 있을 때는 기뻐하지 않았는데 고난을 당해 다 잃고난 후 예수믿고 은혜받고난 다음 얼굴이 훤해져서 더 잘 웃고 옛날 보다 더 즐거워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친다'고 한 것입니다. 카프만 부인의 [광야의 샘]이란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나는 누에고치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침 여러 마리의 누에고치가 나비로 탈바꿈을 하는 중이었다. 너무도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오려고 애쓰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불가능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두 마리, 그토록 작은 구 멍을 통해 천신만고 애쓰더니 결국은 빠져 나와서 공중으로 훨훨 날아 올랐다. 나는 마침 또 나오려 고 애쓰는 고치를 발견하고 가위로 그 구멍을 넓게 잘라 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과 자비가 많다고 자족하면서 혼자 웃었다. 내가 넓게 열어준 구멍으로 나비는 쉽 게 나왔으나 문제가 생겼다. 공중으로솟아 오르려고 몇 번 시도하면서도 결국 오르지 못하고 땅바닥 에서만맴돌 뿐이었다. 앗차!! 나는 깨달았다. 작은 구멍에서 고통하며 힘쓰면서 나와야 그 몸의 영양 분을 날개 끝까지 공급하게 되고, 날개가 나올 심하게 마찰되면서 날아 오를 만큼 강건해 진다는 것 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고난당한 것이 내게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아멘" 이러므로 고난의 결과는 주님 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깨어지게 하고 변화받게 하고 우리를 낮추게 하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편안한 길로 인도하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 오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얻기 전에 고난을 통해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겸허하게 하신것입니다. 준비된 그릇에 복이 내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때려서 변화시킨 후에 마침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고 가난한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고 깨뜨리신 후 마침내 복을 주셔서 재물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이주신 것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며 살자고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것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땅이 열매를 맺는 것처럼 고난의 비에 젖어야 비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오솔길을 통해야 축복의 광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여러가지 시험이나 환난이나 고난을 당하거든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감사하고 기뻐하고 그 가운데서 깨어지고 변화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야고보서5장7절로 11절 까지는 3가지 유형의 인내가 나옴을 다 시금 기억 하면서 때를 기다리며 부지런히 수고하는 농부의 인내를 가집 시다. 형언할수 없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오래참은 선지자들의 인내를 배웁 시다까닭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내한 욥의 신앙을본받으면서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여 "신앙생활에 항상 승리 합 시다. 제 목:고난의 유익 자료원:이현목사 구 절:시 119:65-80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나 고난이라는 두 글자를 매우 싫어한다. 이는 고난 그 자체가 괴로움이요, 눈물이기 때문이다. 킥류껙 성경은 많은 말씀으 로 고난의 유익을 말하고 있다. 경건한 성도의 신앙생활은 필연적으로 고난 이 따라다니며 그 고난은 성도의 영적 성장에 있어서 참으로 큰 유익을 주는 것임을 알게 된다(67,71절). 다윗의 고백대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이며, 사도 베드로도 성도의 고난의 가치와 그 유익에 대해 말했으며(벧전1:7), 욥 또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 가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고 했다.
그러므로 경건한 성도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자랑하고 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도가 당하는 값진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 의 징계"(히12:5-13)이며, "믿음의 시련"(벧전1:7)이며, "하나님의 단련하 심"(욥23:10)이기에 그 고난의 유익은 영적 성장에 있어 큰 유익이 됨을 표현해 준다. 성도의 고난의 유익은
1. 성도의 겸손이다(73절). 참 겸손이란 자기의 허물과 죄악을 바로 깨달을 때 이루어진다. 성도들이 고난의 골짜기, 불가마를 통과하면서 겸손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또 겸손하 게 되므로 사실상 하나님의 복이다. 욥의 모습(탓霹2:6)과 바울의 고백(고전 15:9, 엡3:8, 딤전1:15)을 통한 성숙한 겸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 하나님께 대한 전적 신뢰(80절).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고난을 주심은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에 있 다고 바울은 증언했다(고후1:9). 고난 속에서 인간무능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는 신앙의 참 신앙이요, 살아 있는 신앙이다. 성도의 고난은 오 직 하나님만 의뢰하게 한다.
3. 성도의 온전(67,80절). 고난의 채찍은 성도로 하여금 온전케 하는 특효약이다. 히5:8-9에는 예수 께서도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픕구 되었다고 했으며, 야고보도 시험 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다(약1:2-4). 단련 후에 전혀 섞이지 않은 정금이 나오듯 성도의 정금 같은 온전은 고난 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히브리서 기자는 말했다(히12:11).
4. 영광의 약속(94절). 고난은 곧 장차 나타날 영광의 약속이다. 바울은 "그와 함게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롬8:17)고 했다. 바울이 가진 "예수 의 흔적"(갈6:17)은 고난의 흔적이요, 아울러 장차 받을 저 하늘나라에서의 영광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 영광은 현재 성도가 당하는 고난에 족탯波비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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