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부탁 (살후3:1-5:5)
본문
바울 사도는 지금 편지를 쓰면서 마지막 부분에 들어 갔습니다. 종말로 하는 말은 마지막으로 하는 말과 같습니다. 편지를 마무리 하기 전에 한마디 더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 종말로 형제들아,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서신서를 공부할 때마다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마지막에 무슨 말을 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가장 깊이 들어 있는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꼭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 전에 여러번 했지만 끝으로 한번더 강조하고 싶은 말,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고, 그 말한마디로 그 사람의 사상과 생각을 일부분이나마 검토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후서를 쓰면서 끝으로 당부하는 것 한가지, 그리고 끝으로 한번더 경고하고 싶어 하는 것 한가지를 정리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은 바울이 끝으로 당부하는 말씀 한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끝으로 당부한 말씀은 기도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그 내용은첫째는 복음이 달음질 할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둘째는 악한자들로부터 바울과 그 동료들을 지켜 달라.는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이 시간에 다시한번 기도를 서로 해 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형제를 위해서 할수 있는 최선의 사랑과 봉사는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되,
다른 형제를 위해 기도를 하되, 두가지 사실을 마음에 두고 기도해야 합니다.첫째는 구체적으로 기도해 줄것,둘째는 끊임없이 기도해 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우리 교회의 100명 가까운 교인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로 묶어서 기도해 줄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령님께서 꼭 기도해 주어야 된다는 사람을 내 마음에 생각나게 할 때에, 또 누구를 통해서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을 위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을 때까지 끊임없이,그리고 구체적으로 기도해 주어야 된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셔야 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서 막연히 기도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2가지를 제시했습니다. 그렇죠. 복음이 자기들을 통해서 달음박질 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그 다음에 악한자로부터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여호와 하나님이 보호 해 주시도록 기도해 달라. 아주 구체적으로 기도제목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을 위해서 기도할 때 막연히 주여 하나님 바울을 도와 주십시요하고 끝낼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이 원칙을 잊어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모두 다 기도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기도해 주지 아니한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요구하지 마세요. 기도해 주지 못한 사람을 비판하지 마세요. 기도해 주지 아니한 사람으로부터 감정 상했다고 생각지 마세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기도해 주는 사람을 통해서만 우리는 무엇인가 기도를 요구할 수도 있고, 사랑을 요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평소에 기도해 주지 아니하면서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가지고 마음 상해 하는 것은 신앙적인 사고 방식이 아닙니다. 지금이야말로 나를 위한 기도보다 남을 위한 기도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안되는 아픔을 다 마음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북의 동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그렇게 극악스럽게 동족을 인질로 삼아서 미국과 게임을 벌이는 김일성이와 김정일을 생각하면 너무 불쌍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어떻게 하든지 자기들의 입지를 넓혀 보려는 미,소,일,중,아세안 국가들을 생각해 보면 안타깝기가 그지 없습니다. 요즈음은 좀 정신을 차린 것 같습니다만 온 세계가 들끓고 있는 데도,김일성이 에게는 잘 못한다는 말한마디 못하면서 어떻게 든지 대통령을 걸고 넘어지려는 야당과 지도자들, 전쟁이 나면 다 죽는다는 데도 임금투쟁이다 데모를 하겠다는 사람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우리들은 기도해야 할 빚을 너무나 많이 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위해서도 정말 우리는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한사람이 잘못 생각하므로 인해서 나라가 무서운 도탄 속에 빠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 한사람이 바르게 섬으로 인해서 온 나라가 한결 평화스럽고 즐거운 생활을 할수가 있습니다. 야당지도자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통 당하는 많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에서 우리는 기도의 빚을 많이 지고 있는 거에요.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을 욕하지 마세요. 그건 크리스챤의 자세가 아닙니다. 야당 당수를 위해서 기도해 주지 않은 사람이 그들을 욕하지 마세요. 우리는 양면을 다 포용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선과악, 또 정과반. 이와같은 서로 충돌되는 대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양편을 포용하며 기도해 주는 것이 크리스챤의 자셉니다. 한쪽이 완전히 악이 아니라고 생각되고,상대적인 악이라고 생각 될 때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내려다보는 영안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이 영안을 우리가 어디에서 개발을 합니까 기도하는데서 개발합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되,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일선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는 모든 기도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도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의무에 속하는 것입니다. 최전방에 투입된 보병은 먼저 공격을 하기 전에 후방에 있는 비행대대나,포병대대에 지원을 요청하게 됩니다. 지원사격을 요청할 때에, 제 때에 맞추어서 사격을 해 주면 보병부대는 안심하고 전진을 합니다만, 그 때에 적절한 사격을 하지 못하면, 그 공격부대는 포위 당하든지 괴멸해 버리는 비극을 겪고 맙니다. 지역교회에서 최전방에 서 있는 지휘관은 담임목사와 교역자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위치는 절대적으로 기도의 포격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지원사격이 필요합니다. 제가 언젠가 예화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위대한 설교자 스펄젼은 항상 자랑하기를 나의 교회에는 발전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기도하는 시간에는 저 지하실-기도실에는 몇십명,몇 백명이 모여서 그 설교가 끝날 때까지 기도를 쉬지 아니했던 것을 스펄젼 목사님은 늘 자랑하고, 자기가 그렇게 세계적인 설교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똑똑해서도 아니고, 자기가 특별한 데가 있어서서가 아니라,나를 위해서 기도의 지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늘 말했습니다. 목사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은 가지를 위하는 기돕니다.
목사가 교인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지만,목사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생명과 여러분의 영적건강에 직결되는 의무중의 의뭅니다. 얼마만큼 여러분들은 황목사를 위해서, 강단에 서서 복음을 전하고,말씀을 가르칠 때 끊임없이 구체적으로 기도합니까 요즈음에 교회들이 고통하고, 진통을 겪는 이유는 마땅히 기도해야 할 대상을 위해서 기도는 하지 않고, 잘 못한다고 비판만 하고, 보기 싫으면 쫒아내고, 기도를 해 주지 않고 지도자를 향해서 이러니 저러니 할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우리 모두가 물어야 합니다. 교인이 100명이면 100명이 기도해 주었으면 벌써 해결 되었을 문제가 기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해결이 안되고 있을 수가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기도를 시킬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루할 정도로 5분을 기도하면서도 교역자를 위해서는 한마디도 기도를 안해요. 너무 긴장을 해서 잘 생각이 안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실수 중에 실숩니다. 그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위치에 있고, 가르칠 위치에 있는 사람의 기도를 빼먹는다는 것은 큰 실숩니다. 어쩌면 이런면도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대중기도 시간에 목사님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면 저 사람은 목사님께 아부하는구나.하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것 때문에 기도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의 중심은 아주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목사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아붑니까 자기의 생명을 위한 것이지. 여러분, 제가 강단을 지키는 이상 저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것 당연한 것 아니껬어요. 제가 힘이 모자라서 저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데, 그것이 어떻게 잘 안됩니까 대중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이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그 시간에 말씀을 전할 사람을 위해서 제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 거에요. 예배에 있어서 다이아몬드처럼 소중한 시간은 말씀을 전하는 시간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밤새워 준비하고,지금 두려운 마음으로 떨고 있는 목회자를 위한 기도는, 적어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 감사하는 기도,교회전체를 위한 기도 다음에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에 가보면요, 성가대를 위한 기도, 안나온 사람, 이런 저런 기도를 하고, 한 것을 또 되뇌이다가 마지막에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기 직전에 목사님을 위한 기도는 덧 붙이듯이 하고는 끝난다 말입니다. 세상에 그런 기도가 또 어디 있어요. 제가 볼 때에는 한국교회가 오늘날 좀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데,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목사를 위한, 담임목사를 위한 구체적이고 끊임없는 기도가 약하다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미워서 안해주고, 꼴보기 싫어서 안해 주고,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기도 한해 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이야기에요. 오늘날 한국교회가 좀더 주님의 손에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는데도,무엇인가 답답하게 막혀 있고, 교역자들이 좀더 뜨겁게 주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데도 교역자가 어떤 면에는 부패일로에 걸어 가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교역자의 잘못도 우선적으로 지적해야 되겠지만, 교회가 구체적으로 끊임없이 기도해 주지 아니한 책임도 물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계시는 여러분들, 얼마만큼 교역자을 위해서 기도했습니까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분명히 자기에게 물어 보세요. 이 황목사를 위해서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목회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하겠지만, 선교사들을 위한 기도는 더욱 시급합니다. 바울은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말을 자주자주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선교사들이야말로 게릴라부대처럼 전방도 후방도 없는 적진 깊숙히 들어가서 지금 복음의 나팔을 부는 사람들 아닙니까 이들을 도와주는 길은 정말로 기도 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여선교회를 통해서 선교사들을 돕고 있습니다. 루마니아,중국,소련의 선교사들을 형제선교회가 돕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도 선교에 더 많은 힘을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물질로 돕지만, 기도로 돕는 일을 더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3장 1절에 보면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달음질친다는 말입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데살로니가에서 막 달음박질을 친 것처럼 온 세계에 달음박질 치기를 원한다고 바울은 지금 이야기 하면서 복음이 달음박질 치는데 속도가 늦어지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달음박질 친다는 말은 복음이 신속하게 전파되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바울이 항상 깊은 마음 속에 담고 있는 생각이라고 저는 봅니다. 바울은 눈을 감아도 이 복음이 언제 저 땅끝까지 증거 될까 눈을 뜨고 무슨 일을 해도 이 복음이 빨리 증거 돼야 할 텐데,어떻게 하면 될까 언제든지 바울의 마음 속에는 이 강박관념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다른 것은 그 다음이에요. 바울의 가장 중심에 있는 생각은 바로 이것입니다. 과학자들은 미국과 서울 사이를 어떻게 하면 12시간에서 1시간대로 줄여 볼까 그것 때문에 늘 고민하고, 밤낮없이 연구하겠지만, 바울은 복음을 그렇게 빨리 전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바울이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이유는 너희가 땅끝까지 이르러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을 한사람이 누굽니까 이 세상의 총 주권자 아닙니까 왕중의 왕 아닙니까 그 분이 바울을 보고, 제자들을 보고,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했으니, 그거야말로 얼마나 엄숙한 명령입니까 어찌 한시간인들 잊을 수가 있습니까 청와대에 드나드는 장관들 보세요. 대통령 앞에 가서 무슨 명령을 들으면 그 사람들이 제정신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되신 그리스도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한 것이니, 가급적이면 빨리 전해야 되겠다는 강박관념이 어찌 없었겠습니까 그 뿐만이 아니라, 청주시에만 복음을 전하라고 했다면 바울은 크게 걱정을 안했을지 모르지만,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 땅끝까지 전하라.고 했으니 걱정이 떠날 날이 없지요. 무슨 재주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합니까 그러니 바울의 마음에는 자나깨나 이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복음이 전해지되 더빨리 더빨리 하는 조급함을 가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은 보면, 다 이와같은 조급함을 가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어떤 목사님은 그런 말을 합니다. 500만 크리스챤이 한 사람씩만 전도해도 1000만이 믿을 것이고, 1000만이 한사람씩만 전도해도 2000만이 믿을 것이고,2000만이 한사람만 전도해도 4000만이 믿을 테니까 남한을 복음화 시키는 것은 3년이면 끝난다.했습니다. 온통 생각이 어떻게 하면 복음이 빨리 100KM,200KM로 달음박질 해서 이 땅위에 있는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우리 백성들이 구원 받을까 이것이 그분의 강박관념이에요. 그런점에서 저는 그 분을 존경합니다.
빌브라이트 박사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하면 이 세계를 복음화 기킬까 해서 그 사람의 글을 보면, 10년 안에 복음화 시켜야 된다고, 그래서 10년의 마스커플랜을 다 짜놓고는 그는 열심히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꿈이 허황되게 보이고,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이 가급적이면 복음을 빨리 전해야 겠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그런 스케일을 가지고 움직였다는 것은 절대로 우리는 비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는 그와같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문제를 놓고 우리는 자탄해야 되고 고통을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 복음이 빨리 달려야 된다고 하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느냐 그 말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복음이 전파 되어야 할 텐데,어떻게 하나 하고 여러분 잠을 못자고 엎드려서 기도한 때가 있느냐 그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저나,여러분이나 스케일이 너무나 적어서 한국은 전부 생각하지 못하고, 세계는 아예 염두에도 두지 못하지만, 청주라도 복음이 하루라도 빨리 전파 되어서 범죄가 많은 도시가 어떻게 좀 하나님의 나라로 변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으로 잠을 못 이루는 때가 있느냐 그 말입니다. 바울은 주님을 생각하면 항상 이런 쫒기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제가 볼 때에 몇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한사람이라도 빨리 복음을 전해서 구원하는 것인줄 바울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 때에 가정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일손이 바쁠때는 저를 논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래서는 그 고사리 같은 손을 가지고 일을 시킵니다. 국민학교 2-3년 짜리가 무슨 일손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논두렁 좁은 길에도 한톨이라고 곡식을 얻기 위해서 콩이나 녹두 같은 것을 심었습니다. 그래서 콩이 아주 잘 자라는데, 잡초들이 얼마나 잘 자라는지 뽑아 주지 않으면 잘 자라지를 않아요.내가 논을 맬 동안에 너는 이 풀을 베고, 뽑아 주어라 그러면 어떤 때는 게으름을 피울 때도 있지만,아버지를 실망 시켜 드리지 않을려고 아버지가 시키신 일을 다 해놓을려고 어린 것이 정신없이 땀을 뻘뻘흘리면서 김을 매던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니까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아버지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빨리 더 멋있게 해 치우고 싶은 생각이 어린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바울도 그랬다고 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원하는 것을 더 빨리 더 멋있게 해치우고 싶어하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복음이 더 빨리 달음박질 치기를 원했던 것은 바로 이 심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요 또 바울은 행여나 복음이 늦게 전파되면 복음을 듣지 못해서 구원 받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들이 있을까 해서 두려워 하는 마음에서 가급적이면 빨리 복음이 증거 되기를 바랬습니다. 또 하나는 복음이 증거 됨으로 나타나는 영광을 그는 기뻐했습니다. 본문 1절 끝에 보면 영광스럽게 되고라고 했는데요 이 것이 무엇일까요 잠간 행전13:48절에 보면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그러니까 이방인들이 듣자말자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는 다 믿더라. 이것이 복음이 영화롭게 되는 하나의 옙니다. 복음을 듣자말자 들은 사람들이 그 말씀 때문에 그 입에서 찬송이 터지고,그 다음에 그 복음을 통해서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 예수에게로 돌아 오는 그 영광스러운 장면을 바울은 머릿 속에 생각할 때마다 이 복음을 한시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서 견디지 못한 거에요. 그리고 네번째로 바울은 복음이 땅끝까지 한시라도 빨리 전해지면, 그 다음에는 우리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복음을 한시간 늦게 전하면 예수님의 재림도 한시간 늦게 오실 것이요, 우리가 복음을 한시간 빨리 전하면 예수님도 한시간 빨리 오실 것이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만,우리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주님께서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이 끝나면 찾아 오셔서 우리와 함께 결산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이 나타날 그 영광을 생각하면 그 영광스러운 시간을 한시간이라도 단축하기 위해서 자기가 죽기 전에 생전에 자기 혼자라도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정이 불붙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섯번째로는 다른 사람에게 지지 않을려고 하는 개인적인 욕심도-경쟁의식도 작용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복음이 땅끝까지 달음박질 치는데 자기가 늦어서는 안되겠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아,나를 위해서 기도해 다오. 나를 통해서 복음이 좀더 빨리 빨리 달음박질 칠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주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남에게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이와같은 복음의 달음박질을 위한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까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복음전하는 선교사와,설교자를 위해서 기도라도 해 주어야 될 것 아니에요. 내가 기도하는 그만큼 목사님을 통해서 복음은 능력있게 전파 될 것입니다. 내가 기도해 주는 것만큼 우리 사랑의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열정이 더 뜨겁게 불타 오를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왜 기도해 주지 안느냐 복음이 달음박질 해야 되겠다고 하는 갈급증,조급증이 우리 마음에는 없다 그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우리가 회개해야 될 문젭니다. 이대로 주님 앞에 서면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내가 복음을 듣고 구원 받은 것 생각하면 이것 어디 나혼자 짊어지고 있을 문젭니까 여러분!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이 달음박질 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복음이 달음박질 치면 칠수록 이 세상의 불의는 멀리 도망갑니다. 복음이 빨리 달음박질 치면 칠수록 이 현실의 아픔은 빨리 사라집니다. 우리가 이것을 꼭 믿어야 합니다. 두번째 기도의 제목음 무엇입니까 악한 사람으로부터 보호를 받도록 기도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악한 사람은 누굽니까 3장2절을 보세요.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그리고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무슨 말입니까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복음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복음을 전할 때에,복음을 듣지 않는 사람 가운데서는 복음을 반대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는 악한 자들이 출현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악한자들이 누구냐 복음을 받되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바와같이 기독교 역사 2000년을 통해서 이 무서운 악한 자들이 얼마나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반드시 이 자리에서 우리 모두가 간직해야 될 진리가 있습니다. 복음에는 반드시 악한자의 방해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전도할까 기도하면서 두사람을 정했으면, 두사람의 방해자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10명을 전도하려고 하면 10명의 방해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마세요.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는 반드시 악한자가 따라 옵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핍박이 일어 날 때에는 이 악한자들은 성도들의 생명을 앗아가며, 성도들의 재산을 탈취해 가는 무서운 일을 가지고 핍박합니다마는 오늘날과 같이 자유와 평화를 구가하는 시대에는 이런 직접적인 위협적인 방법보다도 다른 방법을 씁니다. 전에는 칼을 들고 방해했지만, 이제는 미끼를 들고 유혹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마귀의 수법입니다.어떻게 하든지 복음 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섭니다. 예를들면 이런 것입니다. 미국의 지미베커라는 목사님은 대단히 유명한 사람입니다. 유선TV 방송선교를 시작했던 사람이요,지금 미국에서 가장 많은 청취자를 확보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1년 예산이 1억3천만불입니다(1000억원) 대단하지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무실에 있는 자기 비서와위 불륜의 관계 때문에 완전히 물러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가 죄를 범했느냐 물론 사람이지요. 그러면 누가 그렇게 유혹했느냐 왜 유혹했느냐 복음이 전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아니하는 마귀의 역삽니다. 아마 그런 사람이 10년 동안 더 활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통해서 예수 믿고 돌아오는 사람이,적어도 수십만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귀는 계산상으로 일단은 승리했다는 말입니다. 한사람의 유능한 복음 전하는 사람을 꺽으므로 복음의 전파가 멈칫하고 서버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복음을 들고 제1선에 있는 목회자나, 복음을 들고 선교지로 뛰어간 사람들이나,오늘날 복음을 들고 가지각색 방법으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증거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까 사랑의 교회성도 우리 모두는 참으로 조심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작년에 마귀가 10마리가 달려 들었다면, 올해에는 20마리가 달려 든다는 것을 영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소문이 나면 날수록, 황목사가 사람의 입에 오르 내리면 오르 내릴수록 무서운 마귀가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기도해야 될 의무를 가진 여러분이 기도 안해주면, 우리 모두가 당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들에게 요구하는 것 없어요. 제가 여러분에게 부탁하는 것은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랑의 교회를 사랑한다면 목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이 기도요청 한 것처럼 저도 기도요청을 합니다.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는 모든 것을 다 믿음으로 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 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마세요. 한국에 있는 5만의 목사님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요.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기도하지는 못하지만, 여러분의 기도에서 빼서는 안됩니다. 목사가 잘 못 되어서 여럽분들이 좋은 것 무엇있습니까 목사들이 타락해서 여러분들에게 좋은 소리 돌아갈 것이 무엇있느냐 그 말입니다. 한국교회가 부패 되었느니,목사들이 세속화 되었느니 하고 모여 앉아서 비판하지 말고 기도하세요. 기도해야 돼요. 비판을 위한 비판은 마귀의 수단입니다. 비판을 하고 앉아 있으면 자신의 영적상태만 고갈 되어지고 결국은 나의 신앙이 병들어 버리고, 남의 신앙을 병들게 만듭니다. 기도해준 다음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으면 겸손히 이야기할 수 있을수도 있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분명히 알아 두세요. 복음을 들고 강단에 선 주의 종들이, 또 복음을 들고 일선에 나가있는 선교사들이 영적으로 승리하지 못하면, 오늘날 교회는 살아 남지 못합니다.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목사가 영력이 있어야 하고, 목사가 힘을 얻어야 하고, 목사가 자신있게 복음을 전하고 목회비젼을 펼칠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목회자 한사람이 100명,1000명 보다 소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한 내용을 가지고 우리 잠간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도를 다 해 주어야 되겠지만, 우리가 기도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지만, 복음이 빨리 달음박질 치기 위해서는 복음을 맡아 있는 주의 종들을 위한 기도는 필수적이요, 끊임없이,구체적으로 해야 된다는 것을 마음 속으로 꼭 명심하고, 그것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요,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잊어 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형제를 위해 기도를 하되, 두가지 사실을 마음에 두고 기도해야 합니다.첫째는 구체적으로 기도해 줄것,둘째는 끊임없이 기도해 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우리 교회의 100명 가까운 교인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로 묶어서 기도해 줄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령님께서 꼭 기도해 주어야 된다는 사람을 내 마음에 생각나게 할 때에, 또 누구를 통해서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을 위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을 때까지 끊임없이,그리고 구체적으로 기도해 주어야 된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셔야 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서 막연히 기도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2가지를 제시했습니다. 그렇죠. 복음이 자기들을 통해서 달음박질 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그 다음에 악한자로부터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여호와 하나님이 보호 해 주시도록 기도해 달라. 아주 구체적으로 기도제목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을 위해서 기도할 때 막연히 주여 하나님 바울을 도와 주십시요하고 끝낼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이 원칙을 잊어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모두 다 기도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기도해 주지 아니한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요구하지 마세요. 기도해 주지 못한 사람을 비판하지 마세요. 기도해 주지 아니한 사람으로부터 감정 상했다고 생각지 마세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기도해 주는 사람을 통해서만 우리는 무엇인가 기도를 요구할 수도 있고, 사랑을 요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평소에 기도해 주지 아니하면서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가지고 마음 상해 하는 것은 신앙적인 사고 방식이 아닙니다. 지금이야말로 나를 위한 기도보다 남을 위한 기도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안되는 아픔을 다 마음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북의 동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그렇게 극악스럽게 동족을 인질로 삼아서 미국과 게임을 벌이는 김일성이와 김정일을 생각하면 너무 불쌍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어떻게 하든지 자기들의 입지를 넓혀 보려는 미,소,일,중,아세안 국가들을 생각해 보면 안타깝기가 그지 없습니다. 요즈음은 좀 정신을 차린 것 같습니다만 온 세계가 들끓고 있는 데도,김일성이 에게는 잘 못한다는 말한마디 못하면서 어떻게 든지 대통령을 걸고 넘어지려는 야당과 지도자들, 전쟁이 나면 다 죽는다는 데도 임금투쟁이다 데모를 하겠다는 사람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우리들은 기도해야 할 빚을 너무나 많이 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위해서도 정말 우리는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한사람이 잘못 생각하므로 인해서 나라가 무서운 도탄 속에 빠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 한사람이 바르게 섬으로 인해서 온 나라가 한결 평화스럽고 즐거운 생활을 할수가 있습니다. 야당지도자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통 당하는 많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에서 우리는 기도의 빚을 많이 지고 있는 거에요.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을 욕하지 마세요. 그건 크리스챤의 자세가 아닙니다. 야당 당수를 위해서 기도해 주지 않은 사람이 그들을 욕하지 마세요. 우리는 양면을 다 포용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선과악, 또 정과반. 이와같은 서로 충돌되는 대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양편을 포용하며 기도해 주는 것이 크리스챤의 자셉니다. 한쪽이 완전히 악이 아니라고 생각되고,상대적인 악이라고 생각 될 때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내려다보는 영안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이 영안을 우리가 어디에서 개발을 합니까 기도하는데서 개발합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되,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일선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는 모든 기도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도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의무에 속하는 것입니다. 최전방에 투입된 보병은 먼저 공격을 하기 전에 후방에 있는 비행대대나,포병대대에 지원을 요청하게 됩니다. 지원사격을 요청할 때에, 제 때에 맞추어서 사격을 해 주면 보병부대는 안심하고 전진을 합니다만, 그 때에 적절한 사격을 하지 못하면, 그 공격부대는 포위 당하든지 괴멸해 버리는 비극을 겪고 맙니다. 지역교회에서 최전방에 서 있는 지휘관은 담임목사와 교역자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위치는 절대적으로 기도의 포격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지원사격이 필요합니다. 제가 언젠가 예화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위대한 설교자 스펄젼은 항상 자랑하기를 나의 교회에는 발전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기도하는 시간에는 저 지하실-기도실에는 몇십명,몇 백명이 모여서 그 설교가 끝날 때까지 기도를 쉬지 아니했던 것을 스펄젼 목사님은 늘 자랑하고, 자기가 그렇게 세계적인 설교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똑똑해서도 아니고, 자기가 특별한 데가 있어서서가 아니라,나를 위해서 기도의 지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늘 말했습니다. 목사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은 가지를 위하는 기돕니다.
목사가 교인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지만,목사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생명과 여러분의 영적건강에 직결되는 의무중의 의뭅니다. 얼마만큼 여러분들은 황목사를 위해서, 강단에 서서 복음을 전하고,말씀을 가르칠 때 끊임없이 구체적으로 기도합니까 요즈음에 교회들이 고통하고, 진통을 겪는 이유는 마땅히 기도해야 할 대상을 위해서 기도는 하지 않고, 잘 못한다고 비판만 하고, 보기 싫으면 쫒아내고, 기도를 해 주지 않고 지도자를 향해서 이러니 저러니 할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우리 모두가 물어야 합니다. 교인이 100명이면 100명이 기도해 주었으면 벌써 해결 되었을 문제가 기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해결이 안되고 있을 수가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기도를 시킬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루할 정도로 5분을 기도하면서도 교역자를 위해서는 한마디도 기도를 안해요. 너무 긴장을 해서 잘 생각이 안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실수 중에 실숩니다. 그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위치에 있고, 가르칠 위치에 있는 사람의 기도를 빼먹는다는 것은 큰 실숩니다. 어쩌면 이런면도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대중기도 시간에 목사님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면 저 사람은 목사님께 아부하는구나.하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것 때문에 기도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의 중심은 아주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목사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아붑니까 자기의 생명을 위한 것이지. 여러분, 제가 강단을 지키는 이상 저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것 당연한 것 아니껬어요. 제가 힘이 모자라서 저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데, 그것이 어떻게 잘 안됩니까 대중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이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그 시간에 말씀을 전할 사람을 위해서 제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 거에요. 예배에 있어서 다이아몬드처럼 소중한 시간은 말씀을 전하는 시간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밤새워 준비하고,지금 두려운 마음으로 떨고 있는 목회자를 위한 기도는, 적어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 감사하는 기도,교회전체를 위한 기도 다음에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에 가보면요, 성가대를 위한 기도, 안나온 사람, 이런 저런 기도를 하고, 한 것을 또 되뇌이다가 마지막에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기 직전에 목사님을 위한 기도는 덧 붙이듯이 하고는 끝난다 말입니다. 세상에 그런 기도가 또 어디 있어요. 제가 볼 때에는 한국교회가 오늘날 좀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데,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목사를 위한, 담임목사를 위한 구체적이고 끊임없는 기도가 약하다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미워서 안해주고, 꼴보기 싫어서 안해 주고,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기도 한해 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이야기에요. 오늘날 한국교회가 좀더 주님의 손에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는데도,무엇인가 답답하게 막혀 있고, 교역자들이 좀더 뜨겁게 주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데도 교역자가 어떤 면에는 부패일로에 걸어 가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교역자의 잘못도 우선적으로 지적해야 되겠지만, 교회가 구체적으로 끊임없이 기도해 주지 아니한 책임도 물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계시는 여러분들, 얼마만큼 교역자을 위해서 기도했습니까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분명히 자기에게 물어 보세요. 이 황목사를 위해서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목회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하겠지만, 선교사들을 위한 기도는 더욱 시급합니다. 바울은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말을 자주자주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선교사들이야말로 게릴라부대처럼 전방도 후방도 없는 적진 깊숙히 들어가서 지금 복음의 나팔을 부는 사람들 아닙니까 이들을 도와주는 길은 정말로 기도 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여선교회를 통해서 선교사들을 돕고 있습니다. 루마니아,중국,소련의 선교사들을 형제선교회가 돕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도 선교에 더 많은 힘을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물질로 돕지만, 기도로 돕는 일을 더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3장 1절에 보면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달음질친다는 말입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데살로니가에서 막 달음박질을 친 것처럼 온 세계에 달음박질 치기를 원한다고 바울은 지금 이야기 하면서 복음이 달음박질 치는데 속도가 늦어지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달음박질 친다는 말은 복음이 신속하게 전파되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바울이 항상 깊은 마음 속에 담고 있는 생각이라고 저는 봅니다. 바울은 눈을 감아도 이 복음이 언제 저 땅끝까지 증거 될까 눈을 뜨고 무슨 일을 해도 이 복음이 빨리 증거 돼야 할 텐데,어떻게 하면 될까 언제든지 바울의 마음 속에는 이 강박관념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다른 것은 그 다음이에요. 바울의 가장 중심에 있는 생각은 바로 이것입니다. 과학자들은 미국과 서울 사이를 어떻게 하면 12시간에서 1시간대로 줄여 볼까 그것 때문에 늘 고민하고, 밤낮없이 연구하겠지만, 바울은 복음을 그렇게 빨리 전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바울이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이유는 너희가 땅끝까지 이르러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을 한사람이 누굽니까 이 세상의 총 주권자 아닙니까 왕중의 왕 아닙니까 그 분이 바울을 보고, 제자들을 보고,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했으니, 그거야말로 얼마나 엄숙한 명령입니까 어찌 한시간인들 잊을 수가 있습니까 청와대에 드나드는 장관들 보세요. 대통령 앞에 가서 무슨 명령을 들으면 그 사람들이 제정신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되신 그리스도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한 것이니, 가급적이면 빨리 전해야 되겠다는 강박관념이 어찌 없었겠습니까 그 뿐만이 아니라, 청주시에만 복음을 전하라고 했다면 바울은 크게 걱정을 안했을지 모르지만,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 땅끝까지 전하라.고 했으니 걱정이 떠날 날이 없지요. 무슨 재주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합니까 그러니 바울의 마음에는 자나깨나 이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복음이 전해지되 더빨리 더빨리 하는 조급함을 가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은 보면, 다 이와같은 조급함을 가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어떤 목사님은 그런 말을 합니다. 500만 크리스챤이 한 사람씩만 전도해도 1000만이 믿을 것이고, 1000만이 한사람씩만 전도해도 2000만이 믿을 것이고,2000만이 한사람만 전도해도 4000만이 믿을 테니까 남한을 복음화 시키는 것은 3년이면 끝난다.했습니다. 온통 생각이 어떻게 하면 복음이 빨리 100KM,200KM로 달음박질 해서 이 땅위에 있는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우리 백성들이 구원 받을까 이것이 그분의 강박관념이에요. 그런점에서 저는 그 분을 존경합니다.
빌브라이트 박사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하면 이 세계를 복음화 기킬까 해서 그 사람의 글을 보면, 10년 안에 복음화 시켜야 된다고, 그래서 10년의 마스커플랜을 다 짜놓고는 그는 열심히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꿈이 허황되게 보이고,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이 가급적이면 복음을 빨리 전해야 겠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그런 스케일을 가지고 움직였다는 것은 절대로 우리는 비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는 그와같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문제를 놓고 우리는 자탄해야 되고 고통을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 복음이 빨리 달려야 된다고 하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느냐 그 말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복음이 전파 되어야 할 텐데,어떻게 하나 하고 여러분 잠을 못자고 엎드려서 기도한 때가 있느냐 그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저나,여러분이나 스케일이 너무나 적어서 한국은 전부 생각하지 못하고, 세계는 아예 염두에도 두지 못하지만, 청주라도 복음이 하루라도 빨리 전파 되어서 범죄가 많은 도시가 어떻게 좀 하나님의 나라로 변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으로 잠을 못 이루는 때가 있느냐 그 말입니다. 바울은 주님을 생각하면 항상 이런 쫒기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제가 볼 때에 몇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한사람이라도 빨리 복음을 전해서 구원하는 것인줄 바울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 때에 가정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일손이 바쁠때는 저를 논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래서는 그 고사리 같은 손을 가지고 일을 시킵니다. 국민학교 2-3년 짜리가 무슨 일손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논두렁 좁은 길에도 한톨이라고 곡식을 얻기 위해서 콩이나 녹두 같은 것을 심었습니다. 그래서 콩이 아주 잘 자라는데, 잡초들이 얼마나 잘 자라는지 뽑아 주지 않으면 잘 자라지를 않아요.내가 논을 맬 동안에 너는 이 풀을 베고, 뽑아 주어라 그러면 어떤 때는 게으름을 피울 때도 있지만,아버지를 실망 시켜 드리지 않을려고 아버지가 시키신 일을 다 해놓을려고 어린 것이 정신없이 땀을 뻘뻘흘리면서 김을 매던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니까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아버지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빨리 더 멋있게 해 치우고 싶은 생각이 어린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바울도 그랬다고 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원하는 것을 더 빨리 더 멋있게 해치우고 싶어하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복음이 더 빨리 달음박질 치기를 원했던 것은 바로 이 심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요 또 바울은 행여나 복음이 늦게 전파되면 복음을 듣지 못해서 구원 받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들이 있을까 해서 두려워 하는 마음에서 가급적이면 빨리 복음이 증거 되기를 바랬습니다. 또 하나는 복음이 증거 됨으로 나타나는 영광을 그는 기뻐했습니다. 본문 1절 끝에 보면 영광스럽게 되고라고 했는데요 이 것이 무엇일까요 잠간 행전13:48절에 보면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그러니까 이방인들이 듣자말자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는 다 믿더라. 이것이 복음이 영화롭게 되는 하나의 옙니다. 복음을 듣자말자 들은 사람들이 그 말씀 때문에 그 입에서 찬송이 터지고,그 다음에 그 복음을 통해서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 예수에게로 돌아 오는 그 영광스러운 장면을 바울은 머릿 속에 생각할 때마다 이 복음을 한시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서 견디지 못한 거에요. 그리고 네번째로 바울은 복음이 땅끝까지 한시라도 빨리 전해지면, 그 다음에는 우리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복음을 한시간 늦게 전하면 예수님의 재림도 한시간 늦게 오실 것이요, 우리가 복음을 한시간 빨리 전하면 예수님도 한시간 빨리 오실 것이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만,우리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주님께서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이 끝나면 찾아 오셔서 우리와 함께 결산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이 나타날 그 영광을 생각하면 그 영광스러운 시간을 한시간이라도 단축하기 위해서 자기가 죽기 전에 생전에 자기 혼자라도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정이 불붙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섯번째로는 다른 사람에게 지지 않을려고 하는 개인적인 욕심도-경쟁의식도 작용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복음이 땅끝까지 달음박질 치는데 자기가 늦어서는 안되겠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아,나를 위해서 기도해 다오. 나를 통해서 복음이 좀더 빨리 빨리 달음박질 칠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주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남에게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이와같은 복음의 달음박질을 위한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까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복음전하는 선교사와,설교자를 위해서 기도라도 해 주어야 될 것 아니에요. 내가 기도하는 그만큼 목사님을 통해서 복음은 능력있게 전파 될 것입니다. 내가 기도해 주는 것만큼 우리 사랑의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열정이 더 뜨겁게 불타 오를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왜 기도해 주지 안느냐 복음이 달음박질 해야 되겠다고 하는 갈급증,조급증이 우리 마음에는 없다 그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우리가 회개해야 될 문젭니다. 이대로 주님 앞에 서면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내가 복음을 듣고 구원 받은 것 생각하면 이것 어디 나혼자 짊어지고 있을 문젭니까 여러분!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이 달음박질 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복음이 달음박질 치면 칠수록 이 세상의 불의는 멀리 도망갑니다. 복음이 빨리 달음박질 치면 칠수록 이 현실의 아픔은 빨리 사라집니다. 우리가 이것을 꼭 믿어야 합니다. 두번째 기도의 제목음 무엇입니까 악한 사람으로부터 보호를 받도록 기도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악한 사람은 누굽니까 3장2절을 보세요.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그리고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무슨 말입니까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복음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복음을 전할 때에,복음을 듣지 않는 사람 가운데서는 복음을 반대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는 악한 자들이 출현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악한자들이 누구냐 복음을 받되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바와같이 기독교 역사 2000년을 통해서 이 무서운 악한 자들이 얼마나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반드시 이 자리에서 우리 모두가 간직해야 될 진리가 있습니다. 복음에는 반드시 악한자의 방해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전도할까 기도하면서 두사람을 정했으면, 두사람의 방해자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10명을 전도하려고 하면 10명의 방해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마세요.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는 반드시 악한자가 따라 옵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핍박이 일어 날 때에는 이 악한자들은 성도들의 생명을 앗아가며, 성도들의 재산을 탈취해 가는 무서운 일을 가지고 핍박합니다마는 오늘날과 같이 자유와 평화를 구가하는 시대에는 이런 직접적인 위협적인 방법보다도 다른 방법을 씁니다. 전에는 칼을 들고 방해했지만, 이제는 미끼를 들고 유혹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마귀의 수법입니다.어떻게 하든지 복음 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섭니다. 예를들면 이런 것입니다. 미국의 지미베커라는 목사님은 대단히 유명한 사람입니다. 유선TV 방송선교를 시작했던 사람이요,지금 미국에서 가장 많은 청취자를 확보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1년 예산이 1억3천만불입니다(1000억원) 대단하지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무실에 있는 자기 비서와위 불륜의 관계 때문에 완전히 물러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가 죄를 범했느냐 물론 사람이지요. 그러면 누가 그렇게 유혹했느냐 왜 유혹했느냐 복음이 전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아니하는 마귀의 역삽니다. 아마 그런 사람이 10년 동안 더 활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통해서 예수 믿고 돌아오는 사람이,적어도 수십만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귀는 계산상으로 일단은 승리했다는 말입니다. 한사람의 유능한 복음 전하는 사람을 꺽으므로 복음의 전파가 멈칫하고 서버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복음을 들고 제1선에 있는 목회자나, 복음을 들고 선교지로 뛰어간 사람들이나,오늘날 복음을 들고 가지각색 방법으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증거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까 사랑의 교회성도 우리 모두는 참으로 조심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작년에 마귀가 10마리가 달려 들었다면, 올해에는 20마리가 달려 든다는 것을 영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소문이 나면 날수록, 황목사가 사람의 입에 오르 내리면 오르 내릴수록 무서운 마귀가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기도해야 될 의무를 가진 여러분이 기도 안해주면, 우리 모두가 당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들에게 요구하는 것 없어요. 제가 여러분에게 부탁하는 것은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랑의 교회를 사랑한다면 목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이 기도요청 한 것처럼 저도 기도요청을 합니다.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는 모든 것을 다 믿음으로 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 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마세요. 한국에 있는 5만의 목사님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요.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기도하지는 못하지만, 여러분의 기도에서 빼서는 안됩니다. 목사가 잘 못 되어서 여럽분들이 좋은 것 무엇있습니까 목사들이 타락해서 여러분들에게 좋은 소리 돌아갈 것이 무엇있느냐 그 말입니다. 한국교회가 부패 되었느니,목사들이 세속화 되었느니 하고 모여 앉아서 비판하지 말고 기도하세요. 기도해야 돼요. 비판을 위한 비판은 마귀의 수단입니다. 비판을 하고 앉아 있으면 자신의 영적상태만 고갈 되어지고 결국은 나의 신앙이 병들어 버리고, 남의 신앙을 병들게 만듭니다. 기도해준 다음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으면 겸손히 이야기할 수 있을수도 있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분명히 알아 두세요. 복음을 들고 강단에 선 주의 종들이, 또 복음을 들고 일선에 나가있는 선교사들이 영적으로 승리하지 못하면, 오늘날 교회는 살아 남지 못합니다.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목사가 영력이 있어야 하고, 목사가 힘을 얻어야 하고, 목사가 자신있게 복음을 전하고 목회비젼을 펼칠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목회자 한사람이 100명,1000명 보다 소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한 내용을 가지고 우리 잠간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도를 다 해 주어야 되겠지만, 우리가 기도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지만, 복음이 빨리 달음박질 치기 위해서는 복음을 맡아 있는 주의 종들을 위한 기도는 필수적이요, 끊임없이,구체적으로 해야 된다는 것을 마음 속으로 꼭 명심하고, 그것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요,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잊어 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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