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증거와 경고 (계22:16-21)
본문
1.밧모섬에서 고난당하던 요한은 뜻하지 않았던 신비한 예언의 말씀을 환상으로 생생하게 체험하였다.
2.우리는 찬송을 부를 때 “저 건너편에 빛난 곳 내 눈에 희미하다”라고 부르고 있지만 요한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체험하였다.
3.예수님은 요한에게 “이 모든 일들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하였다.지금까지 우리가 살펴 본 계시의 말씀들은 속히될 일이며,반드시 될 일들임을 잊지말자.
I.나는 광명한 새벽별이다(16-19).
A.다윗의 뿌리
1.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씀이다.사람의 아들 예수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서 이 땅을 다녀간 것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2.그러나 독일의 신학자들을 중심으로한 일부 신신학자들은 예수가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 전설속의 한 사람으로 의심하는 운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3.또한 어떤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사건이 실제적인 사건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영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예수님의 역사성을 부정하겠다는 의도다.
B.신부
1.17절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이라고 하였다.“신부”는 교회를 일컫는 표현이다.이 말씀은 물론 불신자를 초청하는 말씀이다.그러니까 계시록은 불신자들에게도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아직도 늦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2.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와서 마시라고 생명수를 개방해 놓으셨다.오직 목마른자 만이 그 물을 마실 수 있다.
C.경고
1.18-19절의 말씀은 매우 엄하고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다.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의 경고를 무시했다.기독교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한국에서 계시록과 관련된 이단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2.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의 계시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보태서도 안되고 빼서도 안된다.그저 겸손하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말씀에 대하여 “아멘”으로 응답하면 된다.
II.내가 속히 오리라(20-21).
A.처음과 나중의 대조들
1.창세기의 처음 세장과 게시록의 마지막 두장은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몇가지를 살펴보자.
1)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계21:1또 내가 새하늘과 새 땅을 보니.
2)창1:10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계21:1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3)창1:5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계21:25거기는 밤이 없으리라.
4)창1: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계21:23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5)창2:17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계21:4다시 사망이 없고.
6)창3:16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계21:4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7)창3:17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계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2.사단은 속이는 자로(창3:1),그리고 영원히 사라진다(계20:10).사람은 생명나무 곁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되었고(창3:22-24),누구나 생명나무를 취할 수가 있다(계22:2).
3.사람은 하나님 면전에서 좆겨났고(창3:24),그들은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계22:4).인간이 처음 살았던 곳은 강가였고(창2:10),인간의 영원한 집은 하나님의 강가에 있다(계22:1).
B.마지막이 흥미롭다.
1.무슨 책이든 마지막은 결론을 제시하기 때문에 재미있다.그간의 모든 비밀과 의문점들이 해소되어 진다.
2.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의문점들이 제기된다.이 모든 궁금증은 그날이 오면 해결될 것이다.이제 점점 가까와 오고 있다.그 날을 기다리자. <필자후기> 그간 졸고를 연재했습니다.말은 듣고 사라지면 끝이지만 글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제약을 당합니다.결국 이것 저것 다 빼고 “적당히”하는 것 외에는 별 도리가 없습니다.저는 미국 죤윔버 목사의 “빈야드사역”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습니다.한 때는 제자훈련에 심취해 보기도 했지만 그 사역은 특수한 사역이라는 결론을 내렸고,보다 보편적인 사역이 필요하다고 찾던 중,빈야드사역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10여년의 세월을 오직“강해설교개발”을 위해 노력해 오면서 느낀 것은 “설교만으로는 안된다”는 결론 입니다.물론 제자훈련으로 매꾸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것은 너무 많은 제약을 받는 사역입니다.저는 1월23일 부터 일주일간 라성의 빈야드교회를 다녀오고자 합니다.아울러 다른 교회도 방문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아마 이 자료가 도착되었을 때 저는 한국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지난 1월2일 SBS에서는 “최면술의 세계”라는 특집을 방송했습니다.그리고 1월21에는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또한번 다루었습니다.최근에 한국교회에 소개되는 “능력치유”와 최면술의 관계에 대해 저는 연구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정말 순수한 성령의 능력인지,아니면 인위적인 최면술의 결과인지 말입니다. 빈야드의 사역은 매우 보편성이 강합니다.목회자는 물론 평신도에게도 접목이 쉽습니다.그리고 예배에 갱신을 불러 옵니다.긍정적인 의미에서 한국교회에 널리 소개되기를 기대하면서 “세미나참관기”와 “빈야드사역의 방향”에 대하여 몇주간 특집으로 연재할까 합니다.물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많으신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2.우리는 찬송을 부를 때 “저 건너편에 빛난 곳 내 눈에 희미하다”라고 부르고 있지만 요한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체험하였다.
3.예수님은 요한에게 “이 모든 일들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하였다.지금까지 우리가 살펴 본 계시의 말씀들은 속히될 일이며,반드시 될 일들임을 잊지말자.
I.나는 광명한 새벽별이다(16-19).
A.다윗의 뿌리
1.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씀이다.사람의 아들 예수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서 이 땅을 다녀간 것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2.그러나 독일의 신학자들을 중심으로한 일부 신신학자들은 예수가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 전설속의 한 사람으로 의심하는 운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3.또한 어떤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사건이 실제적인 사건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영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예수님의 역사성을 부정하겠다는 의도다.
B.신부
1.17절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이라고 하였다.“신부”는 교회를 일컫는 표현이다.이 말씀은 물론 불신자를 초청하는 말씀이다.그러니까 계시록은 불신자들에게도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아직도 늦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2.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와서 마시라고 생명수를 개방해 놓으셨다.오직 목마른자 만이 그 물을 마실 수 있다.
C.경고
1.18-19절의 말씀은 매우 엄하고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다.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의 경고를 무시했다.기독교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한국에서 계시록과 관련된 이단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2.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의 계시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보태서도 안되고 빼서도 안된다.그저 겸손하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말씀에 대하여 “아멘”으로 응답하면 된다.
II.내가 속히 오리라(20-21).
A.처음과 나중의 대조들
1.창세기의 처음 세장과 게시록의 마지막 두장은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몇가지를 살펴보자.
1)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계21:1또 내가 새하늘과 새 땅을 보니.
2)창1:10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계21:1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3)창1:5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계21:25거기는 밤이 없으리라.
4)창1: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계21:23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5)창2:17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계21:4다시 사망이 없고.
6)창3:16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계21:4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7)창3:17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계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2.사단은 속이는 자로(창3:1),그리고 영원히 사라진다(계20:10).사람은 생명나무 곁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되었고(창3:22-24),누구나 생명나무를 취할 수가 있다(계22:2).
3.사람은 하나님 면전에서 좆겨났고(창3:24),그들은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계22:4).인간이 처음 살았던 곳은 강가였고(창2:10),인간의 영원한 집은 하나님의 강가에 있다(계22:1).
B.마지막이 흥미롭다.
1.무슨 책이든 마지막은 결론을 제시하기 때문에 재미있다.그간의 모든 비밀과 의문점들이 해소되어 진다.
2.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의문점들이 제기된다.이 모든 궁금증은 그날이 오면 해결될 것이다.이제 점점 가까와 오고 있다.그 날을 기다리자. <필자후기> 그간 졸고를 연재했습니다.말은 듣고 사라지면 끝이지만 글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제약을 당합니다.결국 이것 저것 다 빼고 “적당히”하는 것 외에는 별 도리가 없습니다.저는 미국 죤윔버 목사의 “빈야드사역”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습니다.한 때는 제자훈련에 심취해 보기도 했지만 그 사역은 특수한 사역이라는 결론을 내렸고,보다 보편적인 사역이 필요하다고 찾던 중,빈야드사역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10여년의 세월을 오직“강해설교개발”을 위해 노력해 오면서 느낀 것은 “설교만으로는 안된다”는 결론 입니다.물론 제자훈련으로 매꾸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것은 너무 많은 제약을 받는 사역입니다.저는 1월23일 부터 일주일간 라성의 빈야드교회를 다녀오고자 합니다.아울러 다른 교회도 방문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아마 이 자료가 도착되었을 때 저는 한국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지난 1월2일 SBS에서는 “최면술의 세계”라는 특집을 방송했습니다.그리고 1월21에는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또한번 다루었습니다.최근에 한국교회에 소개되는 “능력치유”와 최면술의 관계에 대해 저는 연구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정말 순수한 성령의 능력인지,아니면 인위적인 최면술의 결과인지 말입니다. 빈야드의 사역은 매우 보편성이 강합니다.목회자는 물론 평신도에게도 접목이 쉽습니다.그리고 예배에 갱신을 불러 옵니다.긍정적인 의미에서 한국교회에 널리 소개되기를 기대하면서 “세미나참관기”와 “빈야드사역의 방향”에 대하여 몇주간 특집으로 연재할까 합니다.물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많으신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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