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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회로 주신 해 (눅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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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은 것이 있어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못했습니다.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는다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이 주인이 무화과 나무에 쏟은 정성과 관심이 지극히 크다고 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동안이나 계속 무화과에서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하였으므로 과원지기에게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때 과원지기는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주님의 비유의 말씀이기 때문에 일단 무슨 상징인지 해석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이미 해석이 되었겠지만, 한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고 과원지기는 예수님, 포도원의 무화과는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찾아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아는대로 율법의 종교인 유대교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3년이란 기간은 구약의 전체 기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3년의 시간을 기다렸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1년을 더 기다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말씀과 같이 과원지기의 말처럼 그의 중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는 마지막 기회로 주신 때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마지막 기회는 금년, 즉 1년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마지막 기회 때에는 땅을 두루 파고 거름을 주는 해 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 이미 땅을 파셨고 거름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다는 것과 성령님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모든 준비를 이미 끝마쳤던 것입니다. 무화과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비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바울의 말처럼 이제 진정 이스라엘은 혈통을 따라 결정되는 곳이 아니고, 즉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며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다’라는 사실이지요.
그러므로 오늘날의 유대인은 우리 예수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오늘 말씀과 같이 열매를 맺게하기 위해 땅을 파고 거름을 주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았는데 요한복음 4장 36절의 말씀과 같이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라는 말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지금 우리는 열매를 온전히 맺어야 된다고 하는 절박감을 더욱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시게 된 이유를 우리는 사실 먼저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이 비유를 가르쳐주신 이유는 바로 앞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의 입에 그 소식은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로서는 대단히 큰 대형사고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만큼이나 큰 사고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사람들은 망대에 치어 죽은 사람들이 자기들보다도 더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만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생각해 볼 때도 그들중에 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 18명과 같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땅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결코 차이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화제로 삼고있는 많은 사람들과 그 속에서 죽은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었기에 예수께서는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였던 것입니다. 실로암 망대의 사건을 통해 예수께서 회개치 않으면 다 망하게 된다는 경고를 하고 있으시다면, 오늘 이 비유를 통해서는 마지막 기회를 강조하시면서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으로 인해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이 다시금 하나님께 긍휼을 입어 한 해를 더 연장 받은 것이지요. 여기서 한 해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고 다시 이 땅에 심판의 주로 강림하실 때까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신약의 전 기간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생각해 보며 구체적으로 이 비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네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이 비유는 마지막 한 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침 12월 31일 이면서 주일입니다. 무척 뜻 깊은 날입니다. 한 해를 온전히 정리하고 새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시간들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이 비유를 지금까지 생각해 본대로 우리가 1996년 한 해를 앞으로 불과 12시간만 지나면 맞이하게 되는데, 그 1996년이 바로 마지막 해라고 생각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성서적인 신앙고백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항상 임박한 종말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밝아오는 1996년을 주님이 주신마지막 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최선을 다하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나, 판사에게 사형언도를 받은 사형수가 그들의 마지막 남은 삶을 정리하기 위해 진실하고도 엄숙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듯이 우리는 그러한 생각으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한 여인이 주일 오후예배전 복음방송을 듣던 중 드라마가 나오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화성인이 지구에 쳐들어와 지구를 멸망시키는 내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너무도 생생한 드라마의 표현에 현실과 드라마를 혼돈하고 방을 뛰쳐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향해 달려갔는데 마침 그 교회 목사의 설교가 진행중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큰 소리로 “지금 설교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화성인이 이 지구에 쳐들어와 우리가 다 죽게 되었단 말입니다.”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리치더라는 것입니다. 잠시후 정신이 든 후 이 여인의 삶은 놀랍게 변했다는 것입니다. 진지하고도 신뢰성 있는 생활을 그때부터 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도 한 해를 맞이하는 이 마지막 시점에서 새해는 하나님께서 내게 마지막으로 주시는 해라는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원지기가 한 말 그대로 아니겠습니까 “금년 한 해만 더 두소서”하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4장 13114절에서는 “들으라 너희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는 미래가 내 생각대로, 또한 내 계획대로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 교만이요, 불신앙의 소치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겠습니다. 이제 96년 한 해를 열매를 맺게하기 위해 주시는 마지막 해라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삶에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열매가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해로 생각하는 사람만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대로 구원을 이루는 삶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마지막 해라고 생각하는 자 만이 진실한 기도와 헌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이 마지막 기도라고 생각하며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문을 열어놓고 기도했지 않습니까 그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하고 진실했겠습니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자 만이 신중하고도 엄숙한 마음으로 96년을 맞이할 뿐아니라 일년동안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둘째, 이 비유는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한 해라고 생각할 때 누구든 최선을 다하고자 할 것입니다. 마지막이기 때문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으므로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지요. 종종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운동선수들이 운동을 마감하는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최선을 다하여 경기에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그러한 심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96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기도생활에 최선을 다하도록 합시다.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에 최선을 다하는 한 해가 되도록 합시다. 마지막까지의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라는 교훈이 오늘 비유를 통해 증거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에게 주어질 96년도는 주님의 은혜와 중보로 주어짐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한 해를 맞이하도록 합시다. 과원지기가 한 해만 더 시간을 달라고 애원했던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되셔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이 대제사장 되시는 주님의 은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아니라 우리가 범죄하고 불순종 했을때도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심판을 유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비유말씀 그대로 우리가 열매 없는 생활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참아주신 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중보기도가 지금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들려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과원지기의 간청으로 무화과 나무는 일년동안 다시금 은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메마른 땅이 일구어졌고 비옥한 거름더미가 주어져 충분한 영양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96년 한 해를 주시기로 작정했을까요 그것은 과원지기와 같은 예수그리스도의 중보의 은총인 것입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아무런 자격이 없었습니다. 지난 일년간 하나님께서 찾으시던 열매가 전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은혜로 새해는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늘 감사하며 이제 새해를 살아가도록 합시다. 한번 더 기회를 주시고 살려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넷째, 이 비유는 오직 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비유가 만들어진 핵심적인 사항은 열매를 구하고자 하는 한 주인의 소명으로 인하여 포도원에 무화과를 심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엇때문에 무화과를 심었으며, 3년동안이나 열매를 맺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찾아와서 열매를 구했고 또한 1년을 더 기다려 주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오직 열매를 찾는 이의 간절한 심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땅만 버리고 있는 무화과를 즉시 찍어버리고 싶었지만, 행여나 금년에는 열매를 맺을까하여 다시금 땅을 파고 거름을 주는 수고와 투자를 아끼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도 열매 맺지 않는 가지마다 모아 불에 사른다 하였고, 세례요한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운다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들어가시기 전에 무화과 나무에서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하자 그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고, 저주받은 무화과는 그만 말라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속으로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음으로 버림받은 민족이 된 것처럼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의 합당한 열매와 부르심에 합당한 성도가 되어있지 못하다면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이제 96년도에는 성령님의 풍성한 열매와 더불어 기도와 봉사와 전도와 희생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풍성히 맺히도록 합시다. 무엇보다도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힘쓰십시요. 우리가 주를 위해 아무리 많은 것을 했다 할지라도 사랑의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면 울리는 꽹가리가 되고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 유익도 없음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언제나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처럼 오직 사랑의 열매를 맺어 오래참고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열매가 맺혀질 수 있도록 합시다. 오직 열매를 구하였던 그 한 사람은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의 모습임을 다시금 기억하도록 합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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