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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의심을 떨쳐버리고 (눅7:18-35)

본문

물가나 습지에서 자라는 갈대는 줄기가 길고 가느다랗게 솓구쳐 있기 때문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쉽게 흔들립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갈대는 종종 연약함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파스칼은 사람을 이 갈대에 비유하며 “인간은 자연 중에서 가장 연약한 하나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익스피어는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보니 예수님도 갈대를 언급하고 계십니다. 침례 요한을 언급하면서 그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사람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지적하셨습니다. 요한은 주님의 은혜로 더욱 견고한 나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첫째로, 침례 요한은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장차 제사장이 되어 성전 사역에 참여하여 특권을 누리고 백성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실하기 위하여 광야로 나가 척박한 음식을 먹으며 유대 민족의 죄를 강도 높게 지적하며 그리스도의 출현을 위해 길을 예비했습니다. 특히 종교 지도자들과 최고 통치자의 죄를 통렬히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는 또한 예수님을 메시야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백성에게 소개했으며,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좇도록 격려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나는 그분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간증하면서 예수님을 높이기 위하여 개인적인 명예와 욕망을 전부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선지자보다 나은 자”(26절),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28절)라고 부르며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사람의 칭찬보다 주님의 칭찬이 더 영광스러운 것일진대 그는 정말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침례 요한도 의심을 품은 적이 있습니다. 요한은 최고 통치자의 죄가 일반인의 죄보다 여러 사람에게 미치는 파급 효과가 더 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분봉왕 헤롯의 문란한 사생활을 큰 소리로 비판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아내와 이혼하고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유혹하여 결혼한 파렴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마14:3-4). 요한은 통치자의 죄를 비판하기 전에 그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충분히 예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갇혀 지내면서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그의 마음에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간간이 면회 오는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고 있지만 그가 기대한 것과 예수님의 사역이 일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은 임박한 심판을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물론 메시야의 출현으로 이루어질 심판입니다.
그런데 그가 전해 듣는 예수님의 사역은 사랑과 자비와 용서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분에게서, 메시야의 사자로서 사명을 감당하다 옥에 갇혀 있는 자신을 풀어주시려는 노력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아직도 헤롯을 심판하시지 않고 계신 것입니다. 급기야 요한은 자기를 찾아온 제자 중 두 사람을 예수님에게 보내어 의구심을 표현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셋째로, 예수님은 요한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를 극진히 칭찬하셨습니다. 한 때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당당하게 증거했던 요한이 그분을 의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를 책망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처지를 이해해 주셨습니다. 요한의 경우에 그의 질문이 의도적인 불신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감금 생활로 인한 육체적 정서적 긴장에 의해 조장된 의심에서 나온 것임을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치유 현장을 목격하게 하시며 요한에게 그것을 전하도록 하여 약속된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말씀(사29:18-19; 35:4-6; 42:1-7)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가 굳센 확신을 갖도록 도와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뿐인가요 주님은 요한을 극진히 칭찬까지 하셨습니다. 주님은 요한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로 보신 것이 아니라 뿌리를 깊게 내리고 줄기가 굵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로 보신 것입니다(24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와 같은 주님의 은혜와 믿어주심은 틀림없이 훗날 요한이 순교하게 될 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심과 불신앙에 대해서 구별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종종 하나님의 사람들이 극한 상황에 처하여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본심과 다른 말을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자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에 견디다 못해 죽기를 구했던 적이 있습니다(민11:10-15).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씀 선포로 인하여 백성들로부터 조롱과 모욕을 심하게 당하게 된 나머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신의 생을 비관했습니다(렘20:14-18). 그들의 믿음이 형편 없었기 때문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 솓구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뇌에 찬 그리스도인의 말을 액면대로 받아들여 섣불리 정죄하고 비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극한 상황으로 격동된 마음 상태를 헤아리십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함부로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도 좋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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