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 (고전16:15-18)
본문
인간관계 측면에서 볼 때 사람에는 3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즐거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만나면 반갑고 즐겁습니다. 또 이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기쁠 때는 더 즐겁고 슬플 때는 위로를 받게 됩니다.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병이 날 지경입니다.
둘째는,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인 사람이 있습니다. 같이 있으면 그럭저럭 지내고, 없다고 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불쾌감을 주는 사람입니다.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함께 있다는 그것 자체가 지겨움이요, 따분함만 더 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안 만나야 더 좋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과는 잠시만 이야기해도 가슴이 져려 오도록 고통스럽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기쁨을 주는 존재입니까 아니면 괴로움을 주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있으나, 마나한 존재입니까 사실 우리의 느낌은 정직합니다. 사람은 만나자마자 느끼게 됩니다. 이 느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만나면 기분이 좋고, 반가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반갑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람들을 얼마나 보고싶어 했고 반가워했든지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했다 칭찬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스데바나의 가정은 아가야에서 처음 맺은 열매요,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몸을 바친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런 사람들과 또 그들과 더불어 일하고, 함께 수고하는 각 사람에게 순종하십시오. 나는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만나지 못해서 생긴 아쉬움을 이 사람들이 채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나의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놓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시원함이란 영육간에 전인적으로 느끼는 마음입니다. 무겁디 무거운 마음에서 해방되는 것을 말합니다. 몇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과 같이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고서 맛보는 그런 시원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온전한 자유함, 편한함, 그리고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임하는 감격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또한 고난도 교회도 사도바울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사도바울에게 기쁨 못지 않게 아픔도 많이 주었습니다. 분쟁과 불륜으로 교회는 항상 시끄러웠습니다. 은사의 남용 등으로 고린도 교회는 복잡 다단한 문제 가 있었습니다. 여기에다가 사도바울의 사도권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세력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문제들이 사도바울의 마음을 짓누르는 근심과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가능한 한 고린도 교회의 모든 문제들을 평화적으로, 그리고 교회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찾아가서 강제적으로 책벌을 해서 일을 수습하기보다는, 멀리서 기도하고, 편지로 권면 하면서, 인내하고,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노심초사 고린도 교회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한 때 고린도 교회에서 3사람이 찾아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아가야에서 복음을 전파해서 처음 전도의 열매를 거둔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브드나도는 "행운"이라는 뜻으로 주로 종의 신분에게 주어진 이름입니다. 아가이고는 아가이고에 속한 사람으로서 역시 노예를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3사람 모두 출신성분이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유복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이 사람들은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성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기분을 좋게 만듭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섬기는 사람입니다. 자기만 위하는 사람은 피곤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돈, 명예에 노예가 된 사람 만나면 괴롭습니다. 그러나 섬기는 사람은 기쁨을 줍니다. 활력을 줍니다. 시원함을 줍니다. 이 사람들은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했습니다.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 결코 변화가 없습니다. 신앙적 의지가 분명합니다. 변덕스럽지 않습니다. 헌신하기를 결심한 사람 생각만 해도 얼마나 멋있습니까 바로 이런 사람들만이 사람들을 감격시키는 것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리 똑똑해도 필요 없습니다. 긍정적은 사람, 섬기는 사람이 오늘 우리 시대에 절실히 필요합니다. 특별히 스데바나는 사도 바울에게 좋은 이야기만 전한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신앙적으로 해석해서 좋은 소식만 전한다는 것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쁜 소식만 전하는데 문제의 심각함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좋은 소식만을 전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 15:23)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잠 15:30) <눈의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잠 16: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잠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 케 하느니라.> 전적으로 헌신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기쁘게 합니다. 오늘 본문 17절 하반절 말씀에 이 세사람의 위대한 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부족한 것을 채워주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성품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협력을 잘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잘해요. 어려운 일도 거뜬히 해내요.
그런데도 협력하는 일은 잘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말로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 남의 부족을 채우는 협력적인 사람입니다. 흔히들, 한국사람을 모래에 비유합니다. 혼자서는 잘합니다. 근면, 성실, 또 가질도 뛰어납니다. 미국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Jew라고 하고 한국사람을 yew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 팀윅을 이루는 것은 아주 부족합니다. 한국가게가 들어서면 미국사람들 긴장을 합니다. 그러나 한국가게 또 하나 들어 서면 살았다. 물론 앞에서 지휘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뒤에서 조용히 돕고 협력하는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 교회의 문제들 그 내면에는 협력을 가로막는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맹목적 경쟁은 버려야 합니다. 테레사 수녀님, 일생동안 봉사만 한 사람입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수녀님은 잘 사는 사람, 편한 사람,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을 보면 시기하는 마음, 상한 마음이 없습니까 상처 난 아이의 고름을 입으로 뱉으면서 허리를 굽히며 사는 사람은 위를 볼 시간이 없습니다. 정말로, 수고하고, 헌신하는 사람 속을 시원하게 합니다. 또한 이 사람들은 행동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바울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 걱정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바울을 찾아가서 궁금증을 해소해 준 것은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이 세사람뿐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을 직접 찾아가서 위로했습니다. 적극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바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더위로 인해서 지칠 대로 지쳐 있습니다. 피곤하다고, 기분 나쁘다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 힘, 내 의지,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은혜 속에 내가 머무를 때,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우리 주님의 충만한 사랑 가운데 거할 때, 나를 버리고 온전한 마음으로 섬길 때 시원함을 주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모든 사람들에게 반가운 사람, 시원한 사람,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즐거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만나면 반갑고 즐겁습니다. 또 이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기쁠 때는 더 즐겁고 슬플 때는 위로를 받게 됩니다.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병이 날 지경입니다.
둘째는,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인 사람이 있습니다. 같이 있으면 그럭저럭 지내고, 없다고 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불쾌감을 주는 사람입니다.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함께 있다는 그것 자체가 지겨움이요, 따분함만 더 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안 만나야 더 좋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과는 잠시만 이야기해도 가슴이 져려 오도록 고통스럽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기쁨을 주는 존재입니까 아니면 괴로움을 주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있으나, 마나한 존재입니까 사실 우리의 느낌은 정직합니다. 사람은 만나자마자 느끼게 됩니다. 이 느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만나면 기분이 좋고, 반가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반갑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람들을 얼마나 보고싶어 했고 반가워했든지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했다 칭찬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스데바나의 가정은 아가야에서 처음 맺은 열매요,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몸을 바친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런 사람들과 또 그들과 더불어 일하고, 함께 수고하는 각 사람에게 순종하십시오. 나는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만나지 못해서 생긴 아쉬움을 이 사람들이 채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나의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놓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시원함이란 영육간에 전인적으로 느끼는 마음입니다. 무겁디 무거운 마음에서 해방되는 것을 말합니다. 몇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과 같이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고서 맛보는 그런 시원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온전한 자유함, 편한함, 그리고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임하는 감격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또한 고난도 교회도 사도바울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사도바울에게 기쁨 못지 않게 아픔도 많이 주었습니다. 분쟁과 불륜으로 교회는 항상 시끄러웠습니다. 은사의 남용 등으로 고린도 교회는 복잡 다단한 문제 가 있었습니다. 여기에다가 사도바울의 사도권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세력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문제들이 사도바울의 마음을 짓누르는 근심과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가능한 한 고린도 교회의 모든 문제들을 평화적으로, 그리고 교회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찾아가서 강제적으로 책벌을 해서 일을 수습하기보다는, 멀리서 기도하고, 편지로 권면 하면서, 인내하고,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노심초사 고린도 교회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한 때 고린도 교회에서 3사람이 찾아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아가야에서 복음을 전파해서 처음 전도의 열매를 거둔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브드나도는 "행운"이라는 뜻으로 주로 종의 신분에게 주어진 이름입니다. 아가이고는 아가이고에 속한 사람으로서 역시 노예를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3사람 모두 출신성분이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유복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이 사람들은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성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기분을 좋게 만듭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섬기는 사람입니다. 자기만 위하는 사람은 피곤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돈, 명예에 노예가 된 사람 만나면 괴롭습니다. 그러나 섬기는 사람은 기쁨을 줍니다. 활력을 줍니다. 시원함을 줍니다. 이 사람들은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했습니다.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 결코 변화가 없습니다. 신앙적 의지가 분명합니다. 변덕스럽지 않습니다. 헌신하기를 결심한 사람 생각만 해도 얼마나 멋있습니까 바로 이런 사람들만이 사람들을 감격시키는 것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리 똑똑해도 필요 없습니다. 긍정적은 사람, 섬기는 사람이 오늘 우리 시대에 절실히 필요합니다. 특별히 스데바나는 사도 바울에게 좋은 이야기만 전한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신앙적으로 해석해서 좋은 소식만 전한다는 것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쁜 소식만 전하는데 문제의 심각함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좋은 소식만을 전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 15:23)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잠 15:30) <눈의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잠 16: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잠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 케 하느니라.> 전적으로 헌신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기쁘게 합니다. 오늘 본문 17절 하반절 말씀에 이 세사람의 위대한 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부족한 것을 채워주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성품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협력을 잘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잘해요. 어려운 일도 거뜬히 해내요.
그런데도 협력하는 일은 잘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말로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 남의 부족을 채우는 협력적인 사람입니다. 흔히들, 한국사람을 모래에 비유합니다. 혼자서는 잘합니다. 근면, 성실, 또 가질도 뛰어납니다. 미국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Jew라고 하고 한국사람을 yew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 팀윅을 이루는 것은 아주 부족합니다. 한국가게가 들어서면 미국사람들 긴장을 합니다. 그러나 한국가게 또 하나 들어 서면 살았다. 물론 앞에서 지휘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뒤에서 조용히 돕고 협력하는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 교회의 문제들 그 내면에는 협력을 가로막는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맹목적 경쟁은 버려야 합니다. 테레사 수녀님, 일생동안 봉사만 한 사람입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수녀님은 잘 사는 사람, 편한 사람,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을 보면 시기하는 마음, 상한 마음이 없습니까 상처 난 아이의 고름을 입으로 뱉으면서 허리를 굽히며 사는 사람은 위를 볼 시간이 없습니다. 정말로, 수고하고, 헌신하는 사람 속을 시원하게 합니다. 또한 이 사람들은 행동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바울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 걱정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바울을 찾아가서 궁금증을 해소해 준 것은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이 세사람뿐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을 직접 찾아가서 위로했습니다. 적극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바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더위로 인해서 지칠 대로 지쳐 있습니다. 피곤하다고, 기분 나쁘다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 힘, 내 의지,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은혜 속에 내가 머무를 때,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우리 주님의 충만한 사랑 가운데 거할 때, 나를 버리고 온전한 마음으로 섬길 때 시원함을 주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모든 사람들에게 반가운 사람, 시원한 사람,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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