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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대림절 (사9:1-6,눅1: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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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느닷없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왔다. 바로 그때의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자기자신도 의식하지 못한채 아기를 잉태하여 불안 하고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천사 가브리엘은 다음과 같은 크리스마스 멧세지를 전해 주었다. "마리아여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너에게 놀라운 은혜를 내리셨다. 너는 이제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니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누가 1:30-31)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절박한 상 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마리아는 당황하지도 않았고 원망 하지도 않았다. 과연 성모(성모)다운 처신으로 이 믿기지 않는, 그러면서도 신비한 현실을 받아들였다. 천사 가브리엘의 크리스마스 멧세지를 들은 마 리아는 다음과 같이 응답하였다.
(1)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누가 1:38)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기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라고 자신을 주장했다. 대림절기에 자주 읽는 성경 가운데 마태 24장의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의 비유 속에서도 사람은 "종"으로 묘사되어 있다. 달란트 비유 속의 달란트 맡은 사람도 " 종"으로 씌어 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종"이다.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치유불능의 질병은 "주님의 종"의식의 결여이다. 그리스도인의 자기정체성은 "나는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에 기초 한다. 종으로서의 그리스도인에게는 다만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 때문에 F.니체는 "그리스도교는 노예의 종교"라고 매도했다. 그러나 그리스도 교가 퇴락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께 대한 복 종의 부재에 그 원인이 있었다.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려면 두가지 사상적 전통을 이해해야 한다. 히브 리 사상과 희랍사상이다. 희랍사상에서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그러나 히브리사상에서는 "인간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도구"이다. 하나님 앞 에서 인간은 복종할 뿐이다.
그러므로 S.베이유는, 그 위대한 자유정신의 소유자이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복종, 그밖의 일은 하나님 의 영역"이라고 말하였으리라. 마리아는 돌팔매의 위험 속에서도 "주님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했다. 처녀의 순결을 빼앗기는 극한상황 속에서도 마리아는 하나님의 현실 앞에 복종했다. 그것은 곧 기성가치에 대한 부정으로 정죄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약혼자에 대한 배신으로 마침내 거리의 여인으로 침뱉음을 받고 돌팔매를 맞을 한계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복종만이 있었을 뿐이다.
(2)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나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누가 1:46-48) 마리아는 자신의 잉태사건이 하나님의 역사이심을 믿게 되자 마음이 설레이게 되었다. 그 사건이 자신의 수치나 위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비천 한 여인을 돌보아 주신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주님을 찬양해 마지 않았다. 위대한 사람이란 가장 곤혹스럽고 위험할 때 자기자신을 잘 다스 리고 이에 도전함으로써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바꾸어 놓는다. 마리아가 바로 그와 같은 인간의 모형이었다. 마리아는 드디어 이스라엘 예언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 을 성취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 라"(이사야 7:14)던 예언을 성취하는 첫번이자 마지막 여인이 되었다. 예 언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그것이 곧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하 나되게 하는 고리이다. 마리아는 바로 그 고리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아기를 잉태했다는 천사 가브리엘의 소식을 듣고 이렇게 노래하였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영 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누가 1:54-55) 마리아는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사건을 하나님의 자 비,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손들에게 베푸시는 자비의 징표로 믿었다. 시인 남상학(왕십리감리교회 장로)씨의 "성탄절에 드리는 기도" 소리는 이렇게 들려온다. "밤마다 거리마다 근심과 걱정이 불을 켜는 기침 소리 가득한 도성 이별과 죽음이 글썽거리고 선혈이 낭자한 땅에 어둠을 밝히는 작은 불씨 가슴에 안고 은빛 꽃가루를 뿌리며 무언(무언)의 말씀으로 오십시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임마누엘 사건을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으로 이 해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요한 3:17) 하나님의 선교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구현이요 실천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사랑 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 의는 자손의 자 손에게까지 미친다"(시 103:17-)
(3)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셨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누가 1:50-53) 마리아가 이해한 예수 그리스도 사건은 역사의 변혁을 의미한다. 사회 체제의 전환을 뜻한다. 권세와 부에 의해 지배되는 인간사회가 "보잘 것 없는 이들"과 "배고픈 사람들"에 의해 재형성된다는 것이다. 빌라도, 헤 롯, 가야바에 의해 지배되던 시대는 사라지고, 갈릴리의 어부들, 목수들, 여인들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육신(성육신)사건이라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 Luther)는 운명에 즈음하여 두 마디 글을 남겼다. "우리는 거지이다", "이것은 진리이다". 우리는 거지라는 사실이 진리라는 것,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말하였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 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로마 3:23-24) 그저 받은 자,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이니 거지임에 틀림없다. 인간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 놓은 그 위대한 인간 루터가 눈을 감으면서 어찌 다른 할 말들이 없었을까 그러나 그에게 있어 더 중요한 진리가 없었 기에 그는 "우리는 거지다"라고 유언했던 것이다. 그는 일상생활 가운데서 도 "나는 거지처럼 내 힘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시여 나를 살려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쉬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는 거지들의 축제의 계절이다. 주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 다 하심을 얻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지이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는 거지들의 잔치날이다. 고 청암 홍현설 목사님께서는 6.25동란시절 크리스 마스 계절이 오면 남 몰래 마을을 서성거리며 동냥 다니는 피난민 거지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었다. 그것이 크리스마스의 뜻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주간 우리에게 모처럼 기쁘고 희망찬 소식이 전해졌다. 남북 총 리회담에서 상호 불가침과 협력을 위한 합의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요란스럽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며 회의와 불신감만 증폭되어 가더 니 드디어 이루어냈다. 훌륭한 업적으로 평가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남북통일을 앞당기는 이정표가 되어야지 결코 정치적 인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1988년 2월 남북의 평화통일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얼마나 고되고 억울한 박해와 오해를 받아왔던가 겨우 두 개의 교회만을 가지고 있는 북한의 기독교도연맹을 대상으로 세계 도처에 찾아다니며 만나고 기도하다가 1995년을 남북 평화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하 였다. 평화와 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하였다. 평화와 통일의 사회분위기 조성 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때 이후 교회는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는 이 단자로 백안시되었다. 이제 우리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문제는 민족의 사활문제로 여겨야 한다. 결코 정치적 술수에 악용되어서는 안된다. 남과 북에 있는 권세나 부자 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름없이 살아가는 이땅의 주인인 민초들에 의해 마 지막 매듭이 지어져야 한다. 남과 북의 분열 때문에 이 땅의 주인들은 자 기 자리를 잃은 채 정치의 울타리 노릇만 거듭해 왔다. 다시는 그런 어리석 음을 거듭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보잘 것 없는 자들을 높이 드시고 이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다스리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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