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찬양 (눅1:46-56)
본문
예수님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나사렛에 마리아란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나사렛의 북쪽에 있는 세포리스란 곳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은 1장 26절부터 마리아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처녀"란 말을 유 난히 자주 쓰고 있습니다. 1: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1: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New International Version 같이 현대영어로 번역된 성경들도 이 "처녀"란 말을 예외 없이 "Virgin"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방문해서 아들을 낳을 것을 알려주었고, 마리아는 이에 순종했고, 마리아는 이어 세례 요한을 잉태하고 있는 친족 엘리사벳을 아가서 대화를 나누었고, 그 다음에 부른 찬양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마리아의 찬양"이라고 불리우는 오늘의 본문은 세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첫째, 놀라운 일, 이해가 되지 않는 일, 손해가 되는 일을 마리아는 찬양으로 응답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인 마리아를 보고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 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처녀를 보고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니 도대체 이 처녀는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더구나 정혼을 하고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처지가 아닙니까 앞길을 가로막아도 유분수이지 이 것이 도대체 무슨 소리 입니까 이게 웬 코미디입니까 21세기를 앞두고 유전자 복제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 도 처녀가 아니 낳는 법은 없는데 2천 년 전에 처녀가 아이를 낳는 일이 생 기다니 될 법이나 할 소리입니까 이게 도대체 어찌된 황당무계한 소리입니까 목수인 지아비를 모시고 평 범한 일생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시골 처녀에게 네 아이가 큰 자가 되고 지 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라고 하고 다윗의 왕위를 이어 받고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할 것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여러분이 마리아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때 천사 가브리엘이 어떤 모습으로 마리아를 아 갔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천사의 모습대로 흰 옷을 입고 등에는 날개가 달리고 얼굴에는 광채가 나서 한 번 보고 "아, 이 분은 천사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내게 온 분이다" 알 수 있는 모습으로 왔는지, 아니면 평범한 모습으 로 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만일 평범한 모습으로 왔다면 빗자루를 들고 "아니 어디서 이런 미친 놈이 있느냐!"고 소리를 지르며 내 쫓았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풍습에는 그런 다음에 소금을 뿌리지요. 천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모습으로 왔다면, 그래서 이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놀라고, 원망하고, 거부하고, "왜 하필 나입 니까" 항의하고, 천사가 떠난 다음에는 눈물로 지새우고, 그 때도 인공유산 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인공유산을 시도하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찬양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함은 그 계집종 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찬양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여러 과정이 있었지요.
29절을 보면 놀라기도 했고 34절 을 보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의견도 밝혔습니다. 너만 그런 것이 아니고 비슷 한 케이스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고 엘리사벳을 방문해서 확인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늙어서 아이 낳을 능력이 없는데 천사의 예언대로 수태한 엘리 사벳의 도움도 있고, 여러 과정을 밟았지만 마리아는 찬양으로 이 일을 받아 들입니다. 여러분, 어이 없는 일을 겪었습니까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습니까 다른 사람이 다 겪더라도 나는 피해 갔으면 좋을 일이 다른 사람은 다 피해 가고 나를 겨냥해 아 왔습니까 그 것이 어떤 일입니까 건강의 상실입니까 친구의 배반입니까 자녀 문제입니까 시험에 실패입니 까 가족의 별세입니까 장애를 입었습니까 특별히 요즘 많이 발생하는 직장의 상실입니까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의 서민 여성 가운데 53.6%가 경제위기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정서적 불안감을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겪는 일들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가 아닌 것은 없습니다.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내가 감당하겠습니다"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 로 이루어지이다" 하시기 바랍니다. 나아가서 찬양하는데 까지 이르시기 바랍니다. 충격을 완화하고,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도움을 받 은 것처럼 주변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을 잘 감당하고 찬양하는데 까지 이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그 찬양은 아주 아름다운 찬양이 됩니다. 마리아의 오늘 이 찬양은 베네딕투스라고 해서 초기 기독교부터 교회에서 사랑 받는 찬양이 되었습니다. 베네딕투스라는 것은 "축복 받은"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입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성찬식과 새벽기도회에서는 이 찬양을 반드시 부르게 되어 있었고 수도원에는 이 찬송을 매일 불러야 한다는 규칙 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천주교에서는 이 찬양을 많이 부르는 것을 봅니다. 천주교 방송인 평 화방송을 들으면 거의 매일 아침 본문 앞인 42절에 나와 있는 엘시사벳의 찬양과 이 찬양이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이해할 수 없는 일, 엄청난 일에 찬양으로 화답할 때 그 것 이 아름다운 찬양이 됩니다. 찬송가에도 그런 찬송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나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이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지 여러분 잘 아시지요 찬송가 256장 "눈을 들어 하늘보라"는 625 사변 때 피난지 부산에서 지어 진 찬송입니다. 판잣집, 슈사인 보이, 꿀꿀이 죽, 이런 것을 배경으로 하고 이 찬송이 탄생합니다. 평소에도 찬양하지만, 좋은 일을 만나서도 찬양하지만, 어려운 일, 이해되지 않는 일, 피하고 싶은 일을 만났을 때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럴 때 더 열심히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마리아는 성경에서 답을 았습니다. 마리아의 이 찬양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디서 본 것 같다' 하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래요, 사무엘상 2장 1절 이하에 나오는 한나의 기도와 비슷합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낳은 다음에 이렇게 찬양하지요.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삼상 2:1,2) 마리아는 한나의 찬양을 마음 속에 떠올리며 찬양했을 것이 거의 틀림 없습니다. 아니 한나의 찬양을 거의 암송하다시피했기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일 속에 서도 찬양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나의 찬양만이 아닙니다. 마리아의 찬양은 여러 군데에서 구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49절의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라는 말씀은 시편 71편 19절의 인용이고, 53절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 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는 시편 107편 9절의 인용입니다. 화요 성경연구반에서 지난 주일에 이사야서 7장을 공부했는데요 저는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동정녀 탄생을 예고 받은 마리아가 왜 이사야서 7장 14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 라" 하는 말씀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 때 이스라엘 가정에서는 예언서 읽는 일은 강조하지 않았는지, 한 번 연구해 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마리아의 찬양은 시편과 형식이 비슷합니다. 시편에서 많이 쓰이는 방법이 대귀법(對句法)이라는 것인데 오늘 본문에도 같은 형식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것은 마리아가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에 아주 통달해 있고 성경말씀대로 살려고 했고 문제의 해답을 성격에서는 경건한 여인이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어려운 일, 충격적인 일,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을 만났을 때 성경에서 답을 아야합니다. 아니 사소한 문제도 성경에서 답을 아야합니다. 크리스천 감독인 차범근 집사가 얼마 전에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저는 매우 부당한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여기에 대해 너무 잠 잠한 것 같습니다. 신앙계 라는 잡지가 이 문제를 다루면서 몇몇 목사님 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그 자리에서 "그 답은 전도서 4장 10절에 있지!" 했습니다. 얼른 아보니까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켜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 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익숙한 말씀 이 아니지요. 그 목사님이 어떻게 이런 말씀을, 아니 이런 말씀까지 기억하 고 있다가 필요한 경우에 제시하는지 참 그 목사님을 다시 보았습니다. 참고 의견들을 들어서 글을 정리하는 일은 제가 했는데요 성경에 제시된 답을 가 지고 정리하니까 좋은 글이 되었습니다. 사실 교회에는 어떤 사람이 잘 하면 박수를 보내다가 그 사람이 넘어지면 붙들어 일으키는 일은 소흘히 하는 좋지 못한 흐름이 있습니다. 이 것을 센 세이서널리즘, 또는 냄비 현상이라고 하지요.지금 교회 안에는 선교에 힘쓰 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최근에 해 병대 사병들이 수양회에 다녀오다가 서울역에서 기타를 치며 복음성가를 부 른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다른 종교에서 이 것을 크게 문제삼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일에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을 붙 들어 일으켜야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많이 읽으세요. 기억하세요. 실제생활에 응용하는 훈련을 하 세요. 그러면 이렇게 큰 일을 당해 탄식, 불신앙적인 발언, 이런 것이 나오기 쉬운 상황에서 찬양이 나오게 합니다. 더구나 이 때는 말씀이 살아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세례요한까지 400년 기간은 말씀이 선포되지 않았다고 해서 말씀의 침묵기라 고 하는데 마리아는 말씀을 간직하고 있다가 실제 상황에서 이렇게 활용합니다. 성경말씀은 원망을 찬양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일로, 충격을 삶의 에너지로 바꿔주는 힘이 있습니다. 평소에 성경말씀을 잘 익혀 그같은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을 철저하게 찬양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마지못해 찬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철저 하게 찬양합니다. 뜨겁게 찬양합니다. 46절에서 48절 까지는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합니다. 49절과 50절은 하나님의 품성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거룩 하심, 자비하심을 찬양합니다. 51절에서 53절까지는 사회의 문제까지 좌우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 을 찬양합니다. 54절과 55절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찬양합니다. 철저하게, 구석구석 찬양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이렇게 철저하게 찬양해 본 일 있습니까 기도를 하는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해 본 일 있습니까 이왕 하나님을 찬양하려면 철저하게 구체적으로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할 때 구체적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찬양한 그 하나님을 우리도 찬양합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숭배하고 찬양합니다. 아까 평화방송 이야기 를 했습니다만 그 방송을 들으면 마리아를 찬양하는 내용이 자주 나옵니다. 천주교에는 마리아와 관련된 지나친 가르침들이 여럿 있습니다.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부르기도 하고, 마리아 평생 동정론을 주장해서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들은 사촌간이라고 하고, 마리아 무원죄 잉태론 을 주장하고, 마리아 승천설도 있습니다. 잘못된 일들입니다.
누가복음 11장 27절과 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리아 숭배를 금하시는 것으로 해석되는 말씀을 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마리아가 그토록 철저하게 찬양한 하나님을 우리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아 니 찬양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한 마리아를 숭배하거나 찬양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경건한 여인이었기 때문에, 말씀에 익숙하고, 말씀에 젖어 있고, 하나님을 철저하게 찬양하는 믿음의 여인이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나님으로 부터 택함을 입어 구원사역에서 예수님의 육친의 어머니가 되는 중요한 역 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뒤의 일들을 잘 감당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풍파를 겪습니다. 위대한 일을 약속 받은 사람이라 도 그 약속이 이뤄지기까지는 험한 고개를 많이 넘어야 합니다. 마리아가 동정녀 탄생을 예고 받은 다음의 일들을 살펴봅니다. 56절을 보면 마리아는 엘리사벳과 석 달 쯤 같이 있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때쯤 되면 임신한 티가 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할 때인데 그러니까 집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마땅한데 마리아는 오히려 집을 아 갑니다. "나는 이 일을 정면에서 감당하겠습니다" 하는 자세입니다. 마태복음1장 19절을 보면 마리아가 잉태하자 요셉이 이를 알고 가만히 끊으 려합니다. 성경에 구체적인 기록이 없지만 마리아는 이 일도 잘 감당했을 것 입니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사실 변명하면 누가 믿어줍니까). 파혼이 되 더라도 할 수 없습니다" 했겠지요. 예수님을 출산하는데 오양간에서 출산해서 구유에 뉘입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있습니까 큰 자이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면 좀 좋은 곳에서 태어나야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좋은 곳은 못되더라도 평균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관방 하나 얻지 못하고 구유에 아기를 눕혀야 하다니요 "속았구나!뭐가 잘못되었구나!" 하기 십습니다. 큰 자이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면 좀 알려진 사람들이 와서 경배해야 하는데 달려온 것은 목동들입니다. 짜증이 날 것입니다. '아이구 챙피해!' 할 것입니다. 목자들이 와서 황당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들이 밤에 양 떼를 지키는데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비췄 습니다, 천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군천사의 이런 찬양을 들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이거 정신병자들이 왔나!' 하기 쉬운 형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2:19) '아, 그렇구나! 천사 가브리엘의 말이 사실이로구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한 뒤 결례를 행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는데 시므 온이 아기를 안고 여러 가지 말을 하는데 부담이 되는 말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는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다"(34절)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35절) 이런 부담이 되는 말들도 감수합니다. 태어나자마자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가는 일도 겪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육신으로는 아들인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죽는 일도 직접 목격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정말 칼이 마음을 찌르듯 하는 일이었지요.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들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찬양하고 성경에서 답을는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14절에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 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리아의 신앙이 더욱 깊어지고 원숙해져서 초대교회의 중요한 지도자 가운 데 하나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목양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은 여선교회 주일인데 특히 여선교회 회원 여러분! 마리아의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리아의 경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리아의 찬양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사실 형편 없는 죄인인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마리아가 동정녀로서 아기를 가진 것과 맞먹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양이 우리의 삶에, 이 전(殿)에 가득하기를 찬양 받으시기에 합 당하신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놀라운 일, 이해가 되지 않는 일, 손해가 되는 일을 마리아는 찬양으로 응답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인 마리아를 보고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 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처녀를 보고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니 도대체 이 처녀는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더구나 정혼을 하고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처지가 아닙니까 앞길을 가로막아도 유분수이지 이 것이 도대체 무슨 소리 입니까 이게 웬 코미디입니까 21세기를 앞두고 유전자 복제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 도 처녀가 아니 낳는 법은 없는데 2천 년 전에 처녀가 아이를 낳는 일이 생 기다니 될 법이나 할 소리입니까 이게 도대체 어찌된 황당무계한 소리입니까 목수인 지아비를 모시고 평 범한 일생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시골 처녀에게 네 아이가 큰 자가 되고 지 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라고 하고 다윗의 왕위를 이어 받고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할 것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여러분이 마리아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때 천사 가브리엘이 어떤 모습으로 마리아를 아 갔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천사의 모습대로 흰 옷을 입고 등에는 날개가 달리고 얼굴에는 광채가 나서 한 번 보고 "아, 이 분은 천사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내게 온 분이다" 알 수 있는 모습으로 왔는지, 아니면 평범한 모습으 로 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만일 평범한 모습으로 왔다면 빗자루를 들고 "아니 어디서 이런 미친 놈이 있느냐!"고 소리를 지르며 내 쫓았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풍습에는 그런 다음에 소금을 뿌리지요. 천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모습으로 왔다면, 그래서 이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놀라고, 원망하고, 거부하고, "왜 하필 나입 니까" 항의하고, 천사가 떠난 다음에는 눈물로 지새우고, 그 때도 인공유산 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인공유산을 시도하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찬양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함은 그 계집종 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찬양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여러 과정이 있었지요.
29절을 보면 놀라기도 했고 34절 을 보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의견도 밝혔습니다. 너만 그런 것이 아니고 비슷 한 케이스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고 엘리사벳을 방문해서 확인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늙어서 아이 낳을 능력이 없는데 천사의 예언대로 수태한 엘리 사벳의 도움도 있고, 여러 과정을 밟았지만 마리아는 찬양으로 이 일을 받아 들입니다. 여러분, 어이 없는 일을 겪었습니까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습니까 다른 사람이 다 겪더라도 나는 피해 갔으면 좋을 일이 다른 사람은 다 피해 가고 나를 겨냥해 아 왔습니까 그 것이 어떤 일입니까 건강의 상실입니까 친구의 배반입니까 자녀 문제입니까 시험에 실패입니 까 가족의 별세입니까 장애를 입었습니까 특별히 요즘 많이 발생하는 직장의 상실입니까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의 서민 여성 가운데 53.6%가 경제위기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정서적 불안감을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겪는 일들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가 아닌 것은 없습니다.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내가 감당하겠습니다"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 로 이루어지이다" 하시기 바랍니다. 나아가서 찬양하는데 까지 이르시기 바랍니다. 충격을 완화하고,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도움을 받 은 것처럼 주변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을 잘 감당하고 찬양하는데 까지 이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그 찬양은 아주 아름다운 찬양이 됩니다. 마리아의 오늘 이 찬양은 베네딕투스라고 해서 초기 기독교부터 교회에서 사랑 받는 찬양이 되었습니다. 베네딕투스라는 것은 "축복 받은"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입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성찬식과 새벽기도회에서는 이 찬양을 반드시 부르게 되어 있었고 수도원에는 이 찬송을 매일 불러야 한다는 규칙 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천주교에서는 이 찬양을 많이 부르는 것을 봅니다. 천주교 방송인 평 화방송을 들으면 거의 매일 아침 본문 앞인 42절에 나와 있는 엘시사벳의 찬양과 이 찬양이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이해할 수 없는 일, 엄청난 일에 찬양으로 화답할 때 그 것 이 아름다운 찬양이 됩니다. 찬송가에도 그런 찬송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나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이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지 여러분 잘 아시지요 찬송가 256장 "눈을 들어 하늘보라"는 625 사변 때 피난지 부산에서 지어 진 찬송입니다. 판잣집, 슈사인 보이, 꿀꿀이 죽, 이런 것을 배경으로 하고 이 찬송이 탄생합니다. 평소에도 찬양하지만, 좋은 일을 만나서도 찬양하지만, 어려운 일, 이해되지 않는 일, 피하고 싶은 일을 만났을 때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럴 때 더 열심히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마리아는 성경에서 답을 았습니다. 마리아의 이 찬양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디서 본 것 같다' 하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래요, 사무엘상 2장 1절 이하에 나오는 한나의 기도와 비슷합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낳은 다음에 이렇게 찬양하지요.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삼상 2:1,2) 마리아는 한나의 찬양을 마음 속에 떠올리며 찬양했을 것이 거의 틀림 없습니다. 아니 한나의 찬양을 거의 암송하다시피했기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일 속에 서도 찬양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나의 찬양만이 아닙니다. 마리아의 찬양은 여러 군데에서 구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49절의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라는 말씀은 시편 71편 19절의 인용이고, 53절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 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는 시편 107편 9절의 인용입니다. 화요 성경연구반에서 지난 주일에 이사야서 7장을 공부했는데요 저는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동정녀 탄생을 예고 받은 마리아가 왜 이사야서 7장 14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 라" 하는 말씀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 때 이스라엘 가정에서는 예언서 읽는 일은 강조하지 않았는지, 한 번 연구해 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마리아의 찬양은 시편과 형식이 비슷합니다. 시편에서 많이 쓰이는 방법이 대귀법(對句法)이라는 것인데 오늘 본문에도 같은 형식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것은 마리아가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에 아주 통달해 있고 성경말씀대로 살려고 했고 문제의 해답을 성격에서는 경건한 여인이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어려운 일, 충격적인 일,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을 만났을 때 성경에서 답을 아야합니다. 아니 사소한 문제도 성경에서 답을 아야합니다. 크리스천 감독인 차범근 집사가 얼마 전에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저는 매우 부당한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여기에 대해 너무 잠 잠한 것 같습니다. 신앙계 라는 잡지가 이 문제를 다루면서 몇몇 목사님 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그 자리에서 "그 답은 전도서 4장 10절에 있지!" 했습니다. 얼른 아보니까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켜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 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익숙한 말씀 이 아니지요. 그 목사님이 어떻게 이런 말씀을, 아니 이런 말씀까지 기억하 고 있다가 필요한 경우에 제시하는지 참 그 목사님을 다시 보았습니다. 참고 의견들을 들어서 글을 정리하는 일은 제가 했는데요 성경에 제시된 답을 가 지고 정리하니까 좋은 글이 되었습니다. 사실 교회에는 어떤 사람이 잘 하면 박수를 보내다가 그 사람이 넘어지면 붙들어 일으키는 일은 소흘히 하는 좋지 못한 흐름이 있습니다. 이 것을 센 세이서널리즘, 또는 냄비 현상이라고 하지요.지금 교회 안에는 선교에 힘쓰 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최근에 해 병대 사병들이 수양회에 다녀오다가 서울역에서 기타를 치며 복음성가를 부 른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다른 종교에서 이 것을 크게 문제삼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일에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을 붙 들어 일으켜야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많이 읽으세요. 기억하세요. 실제생활에 응용하는 훈련을 하 세요. 그러면 이렇게 큰 일을 당해 탄식, 불신앙적인 발언, 이런 것이 나오기 쉬운 상황에서 찬양이 나오게 합니다. 더구나 이 때는 말씀이 살아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세례요한까지 400년 기간은 말씀이 선포되지 않았다고 해서 말씀의 침묵기라 고 하는데 마리아는 말씀을 간직하고 있다가 실제 상황에서 이렇게 활용합니다. 성경말씀은 원망을 찬양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일로, 충격을 삶의 에너지로 바꿔주는 힘이 있습니다. 평소에 성경말씀을 잘 익혀 그같은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을 철저하게 찬양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마지못해 찬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철저 하게 찬양합니다. 뜨겁게 찬양합니다. 46절에서 48절 까지는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합니다. 49절과 50절은 하나님의 품성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거룩 하심, 자비하심을 찬양합니다. 51절에서 53절까지는 사회의 문제까지 좌우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 을 찬양합니다. 54절과 55절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찬양합니다. 철저하게, 구석구석 찬양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이렇게 철저하게 찬양해 본 일 있습니까 기도를 하는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해 본 일 있습니까 이왕 하나님을 찬양하려면 철저하게 구체적으로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할 때 구체적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찬양한 그 하나님을 우리도 찬양합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숭배하고 찬양합니다. 아까 평화방송 이야기 를 했습니다만 그 방송을 들으면 마리아를 찬양하는 내용이 자주 나옵니다. 천주교에는 마리아와 관련된 지나친 가르침들이 여럿 있습니다.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부르기도 하고, 마리아 평생 동정론을 주장해서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들은 사촌간이라고 하고, 마리아 무원죄 잉태론 을 주장하고, 마리아 승천설도 있습니다. 잘못된 일들입니다.
누가복음 11장 27절과 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리아 숭배를 금하시는 것으로 해석되는 말씀을 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마리아가 그토록 철저하게 찬양한 하나님을 우리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아 니 찬양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한 마리아를 숭배하거나 찬양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경건한 여인이었기 때문에, 말씀에 익숙하고, 말씀에 젖어 있고, 하나님을 철저하게 찬양하는 믿음의 여인이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나님으로 부터 택함을 입어 구원사역에서 예수님의 육친의 어머니가 되는 중요한 역 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뒤의 일들을 잘 감당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풍파를 겪습니다. 위대한 일을 약속 받은 사람이라 도 그 약속이 이뤄지기까지는 험한 고개를 많이 넘어야 합니다. 마리아가 동정녀 탄생을 예고 받은 다음의 일들을 살펴봅니다. 56절을 보면 마리아는 엘리사벳과 석 달 쯤 같이 있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때쯤 되면 임신한 티가 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할 때인데 그러니까 집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마땅한데 마리아는 오히려 집을 아 갑니다. "나는 이 일을 정면에서 감당하겠습니다" 하는 자세입니다. 마태복음1장 19절을 보면 마리아가 잉태하자 요셉이 이를 알고 가만히 끊으 려합니다. 성경에 구체적인 기록이 없지만 마리아는 이 일도 잘 감당했을 것 입니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사실 변명하면 누가 믿어줍니까). 파혼이 되 더라도 할 수 없습니다" 했겠지요. 예수님을 출산하는데 오양간에서 출산해서 구유에 뉘입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있습니까 큰 자이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면 좀 좋은 곳에서 태어나야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좋은 곳은 못되더라도 평균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관방 하나 얻지 못하고 구유에 아기를 눕혀야 하다니요 "속았구나!뭐가 잘못되었구나!" 하기 십습니다. 큰 자이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면 좀 알려진 사람들이 와서 경배해야 하는데 달려온 것은 목동들입니다. 짜증이 날 것입니다. '아이구 챙피해!' 할 것입니다. 목자들이 와서 황당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들이 밤에 양 떼를 지키는데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비췄 습니다, 천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군천사의 이런 찬양을 들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이거 정신병자들이 왔나!' 하기 쉬운 형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2:19) '아, 그렇구나! 천사 가브리엘의 말이 사실이로구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한 뒤 결례를 행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는데 시므 온이 아기를 안고 여러 가지 말을 하는데 부담이 되는 말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는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다"(34절)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35절) 이런 부담이 되는 말들도 감수합니다. 태어나자마자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가는 일도 겪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육신으로는 아들인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죽는 일도 직접 목격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정말 칼이 마음을 찌르듯 하는 일이었지요.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들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찬양하고 성경에서 답을는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14절에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 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리아의 신앙이 더욱 깊어지고 원숙해져서 초대교회의 중요한 지도자 가운 데 하나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목양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은 여선교회 주일인데 특히 여선교회 회원 여러분! 마리아의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리아의 경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리아의 찬양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사실 형편 없는 죄인인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마리아가 동정녀로서 아기를 가진 것과 맞먹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양이 우리의 삶에, 이 전(殿)에 가득하기를 찬양 받으시기에 합 당하신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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