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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찬양 (눅1:46-56)

본문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니닙의 말씀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 한 후에 부른 찬송입니다. 흔히 '마리아의 찬양이라고 불리는 아주 유명한 노래입니다. 중세기에는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만들어진 성곡이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 '마리아의 찬양을 생각할 때 성탄절 을 한 주일 요둔 우리에게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흑시 이 자리에 계시는 여자분들께서 들으시고 섭섭해 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이 타락하게 된 것은 여자로 말미암아 된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도 여자로 말미암아 시작되 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리아를 통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여자가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왔는지도 모르겠 습니다. 사람이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가 하는 것을 보면 대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어쩌면 노래라는 것이 그 사람 의 인격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사이 젊은이들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소위 록 뮤직의 핵심이 사단숭배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런 음악에는 인생을 저주하고, 권위를 부정하고, 질서를 무시 하는 사상과 살인. 마약. 부정한 성행위를 합리화하는 내용들이 들 어 있습니다. 그런 노래를 부르고 듣는 젊은이들의 인격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염려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버스를 타면 요사이 흔히 돌아가는 노래를 듣게 되는데 대중가 요의 내용이나 곡이 건설적이 못 됩니다. 그런 노래를 들으면 맥이 풀리고 삶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같은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 이 저런 노래만 듣고 살면 그 장래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반면에 헨델의 메시아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들어보세요 사람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살아가는 맛이 나게 하지 않습니 까 이처럼 노쌔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노래를 좋아하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말 해줍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 우리는 '마리아의 찬양을 통해서 마 리아의 사람됨과 그의 믿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마리아는 예수님이 구주되심을 찬양했슴니다. 오늘 주신 말씀 46절 이하를 보십시오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이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하니닙의 특별한 계획에 의해서 예수님을 세상에 태어 나게 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이 하니님이 아 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내가 나 의 하나닙 나의 구주를 기뻐하였다'고 찬양합니다. 이것은 자기 마음속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 아니고는 부를 수 없는 찬양입니다. 사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말을 이 세상에서 가장 실감 있게 이해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주 하나님 내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라는 이 말이 얼마나 생생하게 느껴졌겠습니 까 마리아는 이런 감격 속에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 음은' 했습니다. 여기 '주'라는 말과 '구주'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와 주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고는 그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 고백은 기독교의 신앙생활에 들어가는 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 분만 이 나를 구원할 수 있으며 그 분만이 내 의 주인이 되실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세상을 쓸고 있는 세속주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나의 주인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로 생각해야 합니다. 니익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자기의 구 주, 자기의 주님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속에 모시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히니닙 내 구주를 기뻐하였 음은' 여러분,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내 삶 의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시고, 영생을 허락하신 그 주님이 내 안에 들어와 계신다면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은혜와 축복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찬양이 제일 먼저 나오는 부분이 어딥니까 구약 출애굽기 15장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의 영도 자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홍해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쫓아오는 바로의 군대때문에 거의 죽을 뻔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으로 흥 해를 육지처럼 건넌 다음, 바로의 군대가 건너려 하는데 물이 다시 합쳐지는 바람에 바로의 군대는 거기에서 다 몰살당했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기적적으로 구출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니님이 구원해서 살게 된 이 놀라운 사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기 15장 1절 이하의 히니님께 대한 찬양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찬양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찬양할 수 있습니까 구원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서울 음악대학을 다닌다고 해서 다 찬양을 하는 것은 아 닙니다. 노래는 잘 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 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이 구속의 감격과 은총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믿는 사람의 기쁨과 감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 방시키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출하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 신 것 아닙니까 찬송가의 가사대로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 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R네'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구속의 은총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 오늘 주신 말씀을 자세히 보면 그 마음이 그냥 구주를 기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주가 하나닙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을 구주를 기뻐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예수님이 하나님이 시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배에 출석해도 예수가 하니님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쌔 안에 계실 때 내 삶이 완전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까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잉태했다는 말 아 닙니까. 하니님이 마리아 안에 계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 니까.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실때 중풍병 들어 고생하는 사람을 사람들이 메고 와서 예수님께 지붕을 뜯고 내려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내 가 네 죄를 용서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바리새파 사람과 서기관들이 뭐랬어요 ' 참람하도다 저가 누 구이길래 감히 남의 죄를 용서하는가' 했습니다. 왜요 유대인들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 에는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맞습니다. 하니닙외에는 누구도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이 하니님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육신을 입으시 고 아기로 탄생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냉정하게 마리아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마리아는 지금 기뻐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잉태 를 했으니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모욕을 받아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있어서는 사람들로 부터 조롱과 모욕을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왜요 내 속 에 하나님이 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이떻게 사람 들로부터 어떤 박해와 핍박과 조롱이 있을지라도 내 구주이신 하나님이 내 안에 오셨다는 사실 때문에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마리아가 어디서 찬양했습니까 예배당 안에서 찬양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사촌인 엘리자벳의 집 에서 불렀습니다. 찬양은 예배당 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 리에서, 가썽에서. 학교에서, 공장에서, 일터에서, 삶의 한복판에서 이 놀라우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물질문명은 살아가는 데 핀리함을 제공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서 찬양과 노래와 미소를 다 앗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 찬양은 다시 울려 퍼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신론자의 마음에는 찬양이 없습니다. 찬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에게서만 울려 나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찬 양합니다. 내 영흔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니님 내 구주를 기뻐합니다'2.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48절을 보세요.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주님이 나를 돌아보시고 예수님을 잉태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입니다. 마리아에게 무슨 공로가 있어 서 예수님을 잉태했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섬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주님께서 비천한 사람을 돌아보시고 예수님을 잉태하는 특권을 주셨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우리를 구원해 주신 히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 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그것이 마리아를 감격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마 리아는 '이 비천한 계집종을 주께서 돌아 보셨습니다.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고 말했습니다. 복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만세에 기억되는 놀라운 축복을 말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체험한 마리아의 영광 스러운 고백이었고 찬양이었습니다. 49절에 보세요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다'고 말씀했 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자기 안에 하나님을 잉태할 수 있었다는 사실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마리아는 전능하신 하니님이 자기에게 큰 일을 행하셨다 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실은 큰 일이라고 생각하 십니까 히브리서 2장 3절에 보면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 히 여기면 . . 이란 말이 나옵니다. 우리 자신의 구원을 큰 구원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 주셔서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기사가 나옵니다. 고침을 받은 그 사람은 너무 감격해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고 대신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따라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네 집에 돌아 가서 네 친족들에게 주께서 너에게 어떤 커다란 일을 행하셨는지 고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얼마나 큰 일을 행하셨습니까 주님께서 세상의 누구도 줄 수 없는 삶의 분명한 목표와 보람과 의미와 영생을 주신 이 큰 일올 다른 사람에게 가서 고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곧 전도입니다, 사실 마리아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자신의 비천한 몸 안에 거하 신다는 사실보다 더 큰 사건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어떻게 감 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 겸손한 자에게 은해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51절 이하를 보세요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엎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 리는 자를 먹을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잉태될 때 이 세상에는 잘난 여자, 부자 여자들이 얼마 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비천한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 까 겸손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이 주신 어떤 역사도 받을 수 있는 빈 마음을 가진 여자였습니다.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하게 될 사실을 알릴 때 '어떻게 그런 일이 제게 있을 수가 있습니까'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하심을 받 아 들일 수 있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하니첫의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섬 뜻대로 역사하십시오 무슨 역사든지 제가 받아들이겠습니다.' 하는 자세, 이것이 영적인 겸손입니다. 마음의 가난입니다. 마리아의 마음은 가난했습니다. 내가 뭔가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받아 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이 알면 얼마나 알고, 가졌으면 얼마나 가졌 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전 4세기경에 알키비우데스라는 아주 교만한 장군이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의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무술이 뛰어나 눈에 보이는 사람이 없올 정도로 교만했습니다. 어느날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만났습니다. 알키비우베스는 누구를 만나든지 자기의 땅 자랑을 했습니다. 그 날도 소크라테 스 요에서 자기 땅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그 앞에 지도 한 장을 내놓으면서 ' 이 지도에서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 아 리카를 찾아보세요.' 찾아보니 하나의 점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도시에다 당신의 땅을 표시해 보시지요 '보시오.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 땅을 가지 고 자랑하시오" 사람이 무엇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사람이 교만할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내가 가진 물질이 있다면 누가 주신 것입니까 내가 권 력이 있다면 누가 주신 것입니까 내게 지식이 있다면 누가 주신 것입니까 내게 재능이 있다면 누가 주신 것입니까 내게 미모가 있다면 누가 그렇게 만드셨습니까 하니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가지고 어떻게 내 것처럼 뽐내고 교만할 수 있습니까 교만한 사람은 예수님을 못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영흔의 가치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보다 더 귀한 분은 없습니다. 마리아는 지금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감격 해 했습니다.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이 저를 택하셨군요. 아무것도 없지만 받 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있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저를 받아 주셨 군요.' 그저 감격했습니다 여러분 이 마음의 자세, 이것이 영적인 목마름입니다. 주님은 언 제나 목마른 사람에게 하늘의 생수를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배가 고프면서도 배고픈 것을 못 느끼는 사람. 목이 탈 정도로 말라 있으면서도 목마른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만나 뵙고 그 심령 이 변화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듣고 싶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 부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주일 아칭 한번 교회에 나와서 말씀 듣고 가는 것으로 절대로 신앙생활하기가 어렵 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리아에게는 이런 심령의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정말 내 영흔의 깊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대답이 어디 있는가' 할 때 히니닙의 메시지가 천사를 통해 들려 왔습니다. '하나님이 네 속에 들어가있다" '네, 말씀대로 하십시오.' 이것이 마리아의 찬양입니다.
4. 하나님의 작녀가 된 것을 찬양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54절을 보십시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라고 말씀했습니다. 마리아는 지금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 증 한 사람이 되 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주의 지체가 된 나를 도우시 고. 긍휼히 여기시며 기억하셨습니다.' 55절에는 '우리 조상 아브 라함에게 축복하신 하나님이 그 언약의 자손인 나에게 또 기적을 행하셨군요' 하는 찬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니닙의 자녀가 된 사실이 정말 행복 합니까 그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시고 계시다는 사 실이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니닙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 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어떤 축복이 임합니까 영생을 얻는 축복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 참예 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후사가 되는 축복입니다. 그리고 여기 하나님이 그의 자녀를 기억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최후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핀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그때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큰 비극은 히니닙이 나를 기억하지 못한 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지체 높으신 분이 나를 기억해주면 얼마나 영스럽고 감 격스러운 일입니까 하물며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시고 기억해 주신다면 얼마나 행복스러운 일입니까 마리아는 그 행복을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시는 데' 이것처럼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시는데' 이것이 마리아의 행복이요 마리 아의 찬양입니다. 저는 이 시간 부족하지만 이 즐거운 성탄계절에 마리아의 행복 마리아의 찬양을 여러분에게 선사하고 싶습니다. t주님.주님은 나의 주님이 되셨고 나는 하니닙의 자녀가 되었 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찬양합니다. 이런 깊은 의미의 감사와 찬양을 주님께 드리는 크리스마스가 되시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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