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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라 부르지 마라 (룻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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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자 조선일보 [광장] 란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남의 일 같지않은 이웃의 투신자살] 기사의 내용 은 이렇습니다. [일요일인 지난 24일 오전 7시 부산시 서구의 한 아파트. 다급한 목소리가 관리사무소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 지금 아파트에서 사람이 떨어졌습니다. 가족이 사라진 분은 빨리 나오셔서 확인해주세요 방송을 듣던 주부 김모(42)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돈 때문에 누굴만나야 한다며 조금전 집을 나선 남편(45)이 마음에 걸 렸다. 남편의 가구공장도 작년 말 부도가 났고, 2년전 마련한 아파트와 공장에는 빨간딱지가 붙어있었다. 김씨는 집이 있는 9층에서 1층까지 구르듯 뛰어 내려갔다. [여호와 하나님, 제발아이 아빠가 아니길….] 1층에 내려오니 파랗게 질 린 주민 10여명이모여있었다. 다행히 김씨 남편은 아니었다. 김씨는 그래도 남편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김씨 뺨에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수억원짜리 복권이 당첨된다고 해도,이보다 반갑고 소중할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투신한 사람은 시장에서 의류가게를 하던 40대 가장이었다. 전날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물건을 떼온 부인이 곤히 잠들어있는 새벽, 남편은 베란다 창문을 열고 뛰어 내린 것이다. 다음날인 25일. 김씨는 암으로 투병중인 시아버지(70)를 남 편과 함께찾아가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시아버님이 당신 의 어려웠던 시절을 이야기했어요. 어부였던 시아버지는 겨울철 내의가 없어, 이웃의 장례식날 태우려고 내놓은 내의를 몰래 가져다 입기도 했다더군요 김씨는 시아버지가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많았던 그 시절을 남편에게 얘기하며 혈육들의 가슴에 평생 상처가 될 일을 하지마라고당부했다고 전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시 아버지가 김씨에게는 큰 버팀목이었다.경제위기. 사태가 터진 이후 우리 주변에서 부쩍 많이 들이는 단어가 바로 자살이라는 단어입니다.
자살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자살이유는 바로 자신의 인 생이 너무도 힘들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삶이 실패의 삶이요, 어떤 쓴 약보다도 더 쓴 삶이었다고 생각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쓰디쓴 것이었다고 푸념하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한 여인이 등 장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나오미였습니다. 나오미란 [감미로 움]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 본문 말씀에 이르러 이렇게 절규합니다.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칭하라!" 번역된 언어가 아닌 나오미의 감정이었다면 아 마도 이렇게 예기했을 겁니다. "아! 내이름을 누가 나오미라 하는가! 아니다. 아니야 나는 더 이상 감미로움의 나오미가 아니다. 나는 쓰디쓴 마라이다. 고통과 패배의 괴로운자 마라 라 불러다오!" 아마 제가 나오미였다 해도 그런말을 했을 확률 이 90%이상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베들레헴 출신으로 남편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 두 아들의 네식구가 화목하고 달콤한 삶을 살아가는 가정을 가지 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유대지역에 흉년이 찾아오던 그해 그들 가족은 고향 베들레헴을 뒤로 한채 자신의 재산을 모두 정리해 모압지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남편이 급사했고 두아들 마저 장가든지 얼마 안되어 자손하나 남기지 못하고 급사하여 졸지에 쌍과부도 아닌 삼과부집이 되 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번 기울기 시작한 가문은 남자가 없었 기에 이제 모든 재산을 다 소진하고 완벽한 거렁뱅이의 신세로 전락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잘살아 보겠다는 청운의 꿈 을 안고 정착한 모압땅 타향살이 10년만에 남은 것은 황혼에 홀로되어 외롭게 늙어가는 자신과 청상과부가된 두 자부 뿐이 었습니다. 글자 그대로의 빈손이었습니다. 이 절대 절명의 순 간에 그녀는 고향인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잘 살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녀는 이제 결단합니다. 그래! 고향으로 돌아가자! 타지에서 빈 털털이 과부로 생을 마치느니 차라리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그녀는 자 부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 너희의 고향은 여기이니 이곳에서 하고싶은대로 하거라" 결국 그녀는 끝까지 자신을 따르겠다고 따라붙는 둘째자부 룻과 함께 초췌 한 모습으로 고향을 향해 힘없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고향의 동구밖이 가까워 옵니다. 보이는 몇몇 얼굴중에 어렴풋이 기억 나는 얼굴들도 있습니다. 누군가 말합니다. "나오미! 그래! 나 오미다. 당신 나오미 맞죠 10여년전 고향을 떠난 나오미 맞 죠" 고향의 그리던 얼굴 앞에서 자신의 참담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킨 그녀는 이렇게 절규합니다. "아! 내이름을 누가 나오미라 하는가! 아니다. 아니야 나는 더 이상 감미로움의 나 오미가 아니다. 나는 쓰디쓴 마라이다. 고통과 패배의 괴로운자 마라라 불러다오!" 오늘 우리의 삶을 바라봅시다. 혹시 나의 인생이 마라라고 느껴지고 있지 않습니까 삶의 마라 앞에서 절망하고 고통하 며 신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이름은 과연 무엇입니까 나오미입니까 마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의 삶을 마라라 부르지 말라! 결단코 너희의 삶은 마라가 아니다. 네가 어디에서부터 어그러졌는지를 찾고 그것을 바로 깨달 아 돌아서 결단하라 그리하면 너의 인생이 반드시 나오미임을 깨닫게 되리라!] 다음은 1809년 2월 12일 미국 켄터키 주 하딘이란 작은 마 을에서 태어난 한 남자의 이력서입니다. 1815년 국민학고 입학 했으나 1816년 집안이 완전히 망하여 오하이오주로 이사하며 학교 그만둠 1818년 어머니가 전염병으로 사망 1819년 11살에 서점 점원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짐 1826년 오하이오 강에서 사공일을 함 1831년 사업시작했으나 그해 도산함 1832년 일리노이주 의원 출마했으나 낙선, 법률학교에 입학 하려 했으나 불합격 1833년 친구의 돈을 빌려 사업을 재기하려 했으나 완전히 파산 17년간 그 빚을 갚음 1834년 일리노이주 의원 당선했으나 약혼녀가 갑자기 사망 1836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으나 극도의 신경쇠약증세로 6 개월간 입원 1838년 주 의회 대변인에 출마해서 낙선 1840년 대통령 선거위원에 입후보했으나 낙선 1843년 미합중국 하원의원에 도전했으나 낙선 1846년 미합중국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으나 1848년 재선거에 서 낙선 1849년 고향으로 내려가 국유지 관리인 으로 취업하려 했으 나 실패 1854년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 낙선 1856년 부통령 후보 지명전에 출마했으나 낙선 1858년 상원위원에 출마했으나 낙선 이 이력서는 참으로 성공보다는 실패로 점철된 이력서입니다. 진정 마라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처참한 이력서 입니다. 그러나 1860년 미국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 1864년 재선 이라는 마지막줄이 첨가된 이력서는 결코 마라라 불리워질 이 력서가 아닙니다. 이는 다름아닌 아브라함 링컨의 이력서입니다. 링컨은 자신의 이런 실패의 이력서를 결코 마라로 표현하 지 않았습니다. 더욱 확고한 하나님을 향한 신뢰 속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걷는 길은 험하고 미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미끄러져 길 밖으로 넘어지곤 했다. 그러나 나는 곧 기운을 차리고는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길이 약 간 미끄러울 뿐이지 낭떠러지는 아니야."] 자신의 실패의 원인을 바로 깨달아 돌이킬 수 있을 때, 우리 의 실패와같아 보이던 인생은 감미로운 성공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오미의 삶을 마라로 보일 수밖에 없도록 이끌어 갔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로 자신의 이름값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오미와 그의 남편 엘리멜렉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백성으 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 베들레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베 들레헴은 하나님의 임재의 땅이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이 었습니다. 이곳에 살던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은 바로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란 뜻이요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은 나의 왕이 시다]라는 뜻이었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뜻과 그 기업속에 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이름조차도 [하나님이 자신의 왕] 이라고 선포하던 그 엘리멜렉이 조그마한 시련, 작은 흉년에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인도하심과 뜻을 허신짝처럼 버려버리고 하나님이 안계신 땅, 약속이 없는 땅,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있는 땅인 모압으로 떠나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나오미는 감미롭다는 자신의 이름의 뜻과는 정반대인 고통과 실패의 길 로 한없이 한없이 달려가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 로 나오미가 가졌던 첫번째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으로 돌아와 봅시다. 우리에게는 크리스찬, 즉 그리스도인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고 아름다운 이름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사람] 즉 [그리스도의 것]이란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것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시하는 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지시하는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 원하 시는 목적을 따라,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여야 함을 말해주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과연 오늘 우리의 삶의 그리스도인 다운, 그리스도의 것 다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예"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우리는 마라라는 실패한 인생의 늪에 이미 한발을 딛고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있어야 할 자리에 서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을 왕으로 고백하는 자로서 죽던지, 살던 지, 어떤 어려움을 당하던지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에 서있어 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그 부인으로서 하나님의 은총 을 배반하고 떠나려하는 남편을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의 품속 에, 하나님의 뜻안에,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에 남아있게 해 야 할 자리에 서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 둘은 한 통 속이 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땅으로부터 도망쳐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땅 모압으로 달려갔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결단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로부터 도망친 어떤 사람들도 하나님의 안중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니느웨를 구원하라하시는 하나님 의 뜻으로부터 도망하여 서지 않아야할 곳 다시스로 가는 배의 가장 밑바닥에 숭어있던 요나 조차도 하나님의 낯으로부터 벗 어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바다에 던져지고 물고기 배에 서 하나님의 뜻을 다시 찾았으며,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뜻에 따 라 니느웨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있으라 명하신 그 자리를 벗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의 모든 수고를 허무한 꿈으로 산산히 날려버 린 후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서명하신 그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자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능력과 꿈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펼쳐보려던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마라의 쓴믈을 삼켜야만 하는 불쌍한 인생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순간 흉년가운 데서고 있어야 할 지리를 끝까지 지킨 베들레헴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가를 살펴 봅시다. 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 즉 하나님의 정한 구역내에 남아있 던 자들에게권고하셔서 양식을 주셨다는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승리의 길을 베풀어 주심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나의 발은 과연 지금 어느곳을 밟 고있습니까 내가 서있는 곳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구역 안 (內)입니까 가지말아야 할곳을 가고, 하지말아야 할 생각을 하고,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며, 해서는 안될 일들을 하는 그 잘못된 자리의 한복판에 나의 인생이 내동댕이쳐져있지는 않습 니까 외모로 보면 틀림없는 그리스도인인데 나의 생각은, 나 의 언행은, 나의 발길은 어느덧 비그리스도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에 서있어야 합니다. 남을 돕는자리, 복음을 전하는 자리, 기도하는 자리,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 사랑의 자리, 화목의 자리에 서있지 못하 고, 싸움의 자리, 저주의 자리, 죄악의 자리, 착취의 자리에 서 있다면 우리의 삶은 이미 마라라는 실패한 인생의 늪에 이미 두발을 다 딛고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삶의 목적이 잘못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흉년이라는 아주 작은 물질적인 환란 이 다가 오자 바로 그 돈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자 리를 버려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인간의 방법 으로 그것도 오직 물질적인 풍요를 찾아서 그들은 죄악의 땅 모압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흉년 때문에 굶어죽을만큼 힘 들어서 베들레헴을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한해 흉년을 빌미로 하나님 없는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베들레헴을 등진 것입니다. 본문말씀을 살펴보면 나오미 스스로가 "이땅을 떠날 때에 풍족하게 나갔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 이 이 잘못된 가치관과 물질 제일주의적인 잘못된 목적을 향해 죽음의 행진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른 인생의 목적만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성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목적이 잘못 된 일은 아무리 성공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한 실패로 허물어져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높은 탑을 건설해 하나님을 만나보겠노라는 교만되고 잘못된 목적으로 뭉쳤던 인간들이 당시 최고의 기술과 최고의 노력으 로 거대한 탑을 완성하는 듯 했으나 결국 들의 노력은 하나님 의 한마디 앞에서 철저히 부숴지고 혼란의 나락으로 빠질 수밖 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오직 하나님을 즐거워 하고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분 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만이 이 ㅁ는 것을 더욱 누릴 수 있는 승리자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목적속에서 자신의 정력을 낭비하는 사람 그는 이미 마라라는 실패한 인생의 늪에 이미 가씀까지 빠져 허우적 거리 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인생을 절대로 마라 라 부르지 마라 네가 돌아서는 순간 이미 너의 인생은 나오미 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 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광야에서 마라의 쓴물을 먹고 괴로워하는 이 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나뭇가지를 드셔서 나오미의 감미로운 생수로 변화시켜주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마라의 쓴 물 속에 서 헤매이고 있을 때에 나무에 달리신 예수를 통해 반드시 우리의 삶을 나오미의 삶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이 쓴 마라의 늪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 지 않습니까 자신의 이름값을 하지못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 이 아닌 푹푹 썩은 냄새가나는 그런 삶속에 있지 않습니까 있어야 할 자리, 해야할 일들을 외면한 채 있어서는 안될 자리 를 향해 매일 발걸음을 옮기지는 않습니까 잘못된 인생의 목 표를 향해 줄달음질 치고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찢긴 인생 과 상처나 곪아터진 삶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을 향해 돌이킵시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마라로부터 나오미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철저히 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여 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나오미에게 아직도 남아있는 무엇인 가가 있었다면 그녀는 아직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이 없어 져 자신의 부촉함을 처절하게 깨닫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계획 과 생각과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일으키려 헛 수고에 정력을 소진하였을 것입니다. 나오미에게 모든 인생의 가능성이 없어 져 철저히 낮아졌을 때 그래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할 수밖 에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 그래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겼을 때 하나님께서는 보아스를 준비하셨고 하나님의 약속의 반열에 설 수 있도록 다시 인도해 주셨습니다. 언제까지 실패의 쓴물을 삼키며 나의 인생을 마라라고 한탄 하겠습니까 강하고 힘찬 목소리로 우리에게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을 들어 보십시오. [너의 인생을 절대로 [마라]라 부르지 마라. 내게모든 것을 맡기기만하면 내가 너를 나오미의 감미로움으로 회복시켜 주리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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