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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가르치라 (잠22:4-6)

본문

성경은 가정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만들어 주신 인류 최초의 집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어떤 단체보다도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특별히 관심을 두고 계시고 섭리하시며 보호하십니다. 십계명을 보아도 가정 보호를 위한 계명이 여섯 가지나 주어져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가정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같이 중요한 가정에서도 더욱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자녀들입니다. 가정이 가정다운 것은 그 곳에 자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티없이 맑고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의 기쁨은 바로 그 곳이 천국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하여 땀을 흘려 일하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기쁨을 주고 효도하고 가정은 그 모두에게 평안을 주고 안식을 줄 때 그 곳을 가리켜서 스위트 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맑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우리들의 자녀들이, 오늘의 청소년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염려스러운 대상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청소년들은 한결같이 온갖 문제점들을 다 안고 자라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시대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배고픔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는데 오늘은 온갖 병리 현상들이 청소년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탈선하고 너무 쉽게 세상을 알아 버립니다. 또 교육 제도도 큰 문제입니다. 공부하기가 보통 여러운 이이 아닙니다. 이것은 공부가 아니고 전쟁입니다. 동료들이 모두 적이 되어 있습니다. 쉼과 정서와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오직 입시만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 세대간의 변화도 극심합니다. 요즘에는 대화가 잘 안 될 정도로 세대간의 차이를 느낍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가치관과 도덕의 기준이 너무 빨리 흔들리고 변화하고 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기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매우 수고로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본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특히 6절의 말씀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무엇을 가르치라는 말인가 하면 세대가 아무리 각박하게 변화되어 가고 흘러 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가르쳐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 격언에도 “아이에게 노동을 가르치라, 가르치지 않는 것은 자식에게 도적질을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땅히 할 일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남의 것을 도적질 해 먹으라는 것과 똑같은 말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 말은 우리가 아이에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이로 하여금 강도가 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입니까
첫째로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교사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버지의 존재는 우상이고 전부입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의 아이들은 아버지를 무조건 따르고 무조건 모방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장차 커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고 물으면 모두가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대답합니다. 이처럼 어렸을 때의 아버지의 존재는 전부입니다. 이 같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서 주일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에 참예하는 것은 아이에게 두고두고 마음에 새겨져 살아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슈바이처의 회고록을 보면 “나는 유년 시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서 성전에 나아가서 예배에 참석함으로써 경건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슈바이처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 같은 아버지의 무릎에서 조석으로 경건의 훈련을 쌓게 된다면 그 아이들의 심성에 얼마나 큰 경건의 힘과 감화가 새겨질 것입니까 미국의 클리블랜드 대통령 때에 농림 장관을 지낸 몰톤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내가 막내 아들을 낳다가 난산하여 죽었습니다. 아내의 제삿날 아버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아내의 묘에 찾아갔습니다. 묘비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스톨링 몰톤의 아내 그리고 조이, 포올, 마크 몰톤의 어머니, 프랑스 여인 캐롤라인 여기에 잠들다.” 아버지가 아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묘비를 읽은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기 잠드신 어머니를 슬프게 하는 일을 하거나 욕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묘비에서 그 이름을 빼버리겠다.” 이 준엄하며 경건한 아버지의 말씀 한 마디, 이 얼마나 멋진 교육이고 훌륭한 교사입니까 그 아이들이 커서 세상에서 그릇되게 살아갈 것입니까 잠언서를 보면 모든 교훈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 아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간직하라. 내 아들아 내 맘에 유의하라.” 이것이 잠언의 형식입니다. 오늘의 본문도 그렇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래서 이 세상에서 자녀에게 제일 좋은 교사는 아버지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자녀들이 이 아버지에게 크게 실망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렸을 때는 위대하게 보였던 아버지들이 점점 커 가면서 바라볼 때 실망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대생들을 상대로 아버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너희들 가운데서 아버지 같은 남자가 있으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40명 중 세 명만이 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0분의 1도 안 되는 숫자입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이 세상의 남자들이 다 네 아버지 같다면 노처녀로 죽으면 죽었지 시집 안 가겠다는 사람 있느냐고 물었더니 40명 중 13명이 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노릇 하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라는 점입니다.
둘째로 아버지보다 더 좋은 교사는 어머니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보다 더 좋은 정다운 사람은 없습니다. 어머니! 요즘에는 어머니도 아닙니다. “엄마”입니다. 아이들도 엄마, 시집가서도 여전히 엄마입니다. 어떤 분은 60이 되었으면서도 엄마라고 부르는 이도 있습니다. 포악했던 연산군도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호소하기를 “나도 어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연산군이 그렇게 포악했던 것은 그에게 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만큼 어머니의 비중과 역할과 존재는 큰 것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도 학교에 갔다가 오면 문을 열자마자 엄마부터 찾습니다. 아버지가 그 곳에 있는데도 엄마를 찾습니다. 그 이유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하였다고 하는 사람들의 배후에는 으레 이름 있는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자식의 운명은 언제나 그 어머니가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강조한 말이 “프랑스 여인들이여, 훌륭한 어머니가 되도록 합시다. 그래야 모든 자녀가 훌륭해 질 수 있습니다.” 하고 강조하였다고 합니다. 베르그송은 “어머니의 웃음에는 신비가 들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앙드레 모로아는 “어머니는 아이에게 있어서는 신과 같고 어린이는 어머니에게 신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서양의 격언에 보면 “한 사람의 훌륭한 어머니는 백 사람의 교사보다 낫다”고 한 말도 있습니다. 백 사람의 스승한테서 받는 영향이 지대하지만 그러나 그보다도 한 사람의 훌륭한 어머니한테서 받는 영향은 이보다 더 크다는 말이 됩니다. 어머니의 존재와 그 영향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링컨은 9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는 어린 아드을 두고 임종하기 직전에 불러 놓고 이렇게 유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늘 성경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기도하기를 힘써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부탁이다.” 링컨이 노예 해방을 하게 된 동기가 어머니의 이 최후의 부탁 때문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훌륭한 교사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교사가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품에 안고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쳐 준다면 얼마나 큰 감화를 받겠습니까 그래서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스승이고 어머니의 무릎은 학교이고 어머니의 말씀은 교과서이고 어머니의 눈동자는 교육의 정신인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어머니가 잘못을 하였을 때 그 악영향 또한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네로의 어머니는 성품이 그렇게 거칠고 포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네로가 역사상 가장 포악한 군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히틀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경멸하는 사람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여자이고 두 번째는 유태인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가정 환경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행상을 하기 위하여 물건을 해서 멀리 가서 팔아 오느라고 한두 달 만에 집에 들어오곤 하였습니다. 그 사이 어머니는 고독을 견디다 못해서 이웃에 사는 유태인 남자와 불륜 생활을 합니다. 히틀러는 어려서부터 이 같은 광경을 보고 자라났고 어머니에게 제발 그러지 말라고 호소해 보았지만 그 어머니는 돌아서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히틀러는 평생을 여자와 유태인을 경멸하는 한을 품게 되었고 그 결과 히틀러는 역사상 악명 높은 폭군이 된 것입니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여성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교사들인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가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어머니보다 더 좋은 교사는 가정입니다. 가정은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피와 애정으로 뭉쳐진 곳입니다. 가정은 상호 경쟁하는 이해 집단이 아닙니다. 시기와 질투가 있는 세상도 아닙니다. 네 것 내 것이 없는 혈육의 집단입니다. 그래서 페스탈로찌는 “가정은 도덕의 학교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곳에는 안식이 있습니다. 평안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일하던 사람이 저녁이 되면 모두 다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곳에는 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환경이라면 그 곳이 초막일지라도, 궁핍이 있는 곳일지라도 그 곳은 훌륭한 학교요 스승이요 교사입니다. 비행 청소년들에게는 한 가지 뚜렷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좋은 가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부모가 있어도, 부자 아버지와 유명 인사인 어머니가 있어도, 좋은 교육처로서의 가정이 없고 안식할 만한 곳이 못 되면 그 가정은 잘못된 곳입니다.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영어에서 두 가지 가장 부러운 단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Gentlem이라는 단어이고 또 하나는 Home이라는 단어입니다. 독일어의 Das Haus라는 말은 영어의 Home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은 Christian Home이어야지 그냥 집으로서의 Hous는 무의미하다는 말입니다. 그 Home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곳은 분명 천국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이렇게 좋은 곳입니다.
넷째로 가정보다도 더 좋은 교사는 성경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무엇을 가르치라는 말씀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가르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학교에 갔다 오면 피아노, 컴퓨터, 주산, 웅변, 미술 등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르치라는 말씀은 어떤 기능을 가르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아우구스투스는 “하나님이 없는 교육은 약삭빠른 악마를 생산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교육을 하되 요령만 가르치고 기능만을 가르치면 고등 사기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촌감삼(內村鑑三)은 가정 건설에서 예수가 빠진 가정은 “집단이지 가정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2차 대전 때 유태인 600만을 학살한 히틀러의 일급 참모였던 괴링은 사형을 당하기 직전에 남긴 유서에서 말하기를 “내 어린 딸을 교회에 보내 달라”고 당부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는 비로소 하나님을 안 것입니다. 종교 심리학에서 말할 때 회심은 6-8세 때에 시작되고, 10-11세 때에 가장 많이 변화하고, 12-16세 때에는 가장 확고하게 변화의 경험을 갖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0세가 넘으면 이 변화의 가능성이 급속하게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20세 이전에 성경을 가르치기가 가장 좋다는 말입니다. 사실 어머니가 아이들을 시간에 맞추어 교회에 데리고 가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주일 날 아침이 되면 정신이 없습니다. 어느 성가대원 어머니는 아이가 여섯입니다.
그런데도 언제나 보면 제시간에 도착합니다. 그것도 여섯 아이를 모두 데리고 옵니다. 그래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쩔쩔매는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여섯 아이를 모두 데리고 늦지 않게 오는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그랬더니 아주 쉽게 대답을 합니다. “쉽지요, 토요일 밤에는 옷을 모두 입혀서 재우면 되거든요.” 다이제스트에 소개 되었던 이야기입니다. 옷은 좀 구겨질지 모르지만 그 대신 자녀들의 영혼은 구겨지지 않게 키우는 비결을 이 어머니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자녀는 낳아 놓으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처럼 자녀 교육하기가 어려운 때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크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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