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행할 길을 (잠22:4-6)
본문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날처럼 자녀교육을 중시하는 시대는 일찌기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처럼 어린이 교육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도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 아래 평생 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또한 조기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간의 지능은 90% 이상이 4살 이전에 완성되어진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생후 6개월 까지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화이트(White) 박사는 어머니의 행동이 세살 까지의 어린이 정신 발달을 결정하는 것이며, 이 시기는 일생동안 살아갈 토대를 쌓는 시기라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만 옛 어른들께서는 세살 이하의 어린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조기 교육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우리 조상들은 지혜로와서 아주 어려서부터 천자문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우라나라 말에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이나 행동하는 모든 것들은 어려서 부모에게 배워서 그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상도에서 자란 사람은 경상도 사투리를 말하고 전라도에서 태어난 사람은 전라도 사투리를 말하고 충청도에서 자라난 사람은 충청도 사투리를 말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말을 유창하게 잘하지만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은 일본말을 잘합니다. 또한 미국에서 자라난 사람은 영어를 잘합니다. 이와 같이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이에게 꼭 실시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본문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가르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차나크(chanak)인데 문자적인 뜻으로는 “훈련시키다(train up)”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일생을 바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그 일생을 바치기 위하여 훈련하라는 의미입니다. 아이를 훈련시키는 목적이 그의 일생을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기 위함입니다. 또한 어른이 될 때를 대비하여 어린이를 훈련하고 가르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녀에게 잡은 생선을 주지 아니하고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합니다.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돈을 바르게 버는 법과 저축하는 법, 그리고 그 돈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많은 재산을 물려준다 할지라도 그것을 올바르게 관리하지 못하고 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면 소용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돈을 가지고 범죄의 도구로 삼고 탕진해 버리는 방탕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재산을 줄려주는 것보다는 물질을 어떻게 바른 방법으로 벌며, 그것을 어떻게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 웨슬레(Jhon Wesley)는 “돈이란 바르게 벌어야 하며, 저축하여야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르게 사용할 줄 알아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자녀들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신명기 6장 7절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의 핵심은 어떤 상황이든지 항상 주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한 것입니다. 무엇을 가르치라고 했습니까 기능을 교육시켜라,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라는 말씀이겠습니까 그러면 무엇을 가르치라고 한 것입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경외함을 가르치라고 한 것입니다.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을 평생에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켜 행하도록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두가지를 가르치라고 하였는데
첫째는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명령을 삼가 듣고 지켜 행하면 “네 날이 장구하리라, 네가 복되리라, 복을 받고 살리라,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고 주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근본이며, 또 복의 근원인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행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임을 믿으시고 그대로 지켜 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우리 나라가 이만큼 살게 된 것도 많은 주의 종들의 핏값의 결과라고 믿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가듯이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가야만 더욱 복받는 나라가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배운 것이 많아도, 가진 것이 많아도 전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것 가지고 죄만 짓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의 예화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한 자의 차이가 다음 예화의 결과와 같습니다. “1”이라는 숫자를 앞에 두고 “0”을 계속 붙이면 엄청난 숫자로 불어납니다. 그러나 “0”을 앞에 두고 “0”을 계속 붙여 본들 계속 “0”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많은 능력과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앞세우고 그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재산이 더해 지고 공부를 많이 하고 하면 할수록 그 재산과 지식과 학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없는 상태에서 그 사람에게 지식이 더해지고, 학위가 더해지고 물질이 더해지면 그것을 가지고 죄를 더 짓고,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는 요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하는 신앙이 없이 물질이 더해지는 것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결과를 낳게 할 뿐입니다. 금란교회의 한 장로님이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교회 앞에, 목사님 앞에 물질로 헌신하는 생활을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앞에, 주의 종 앞에 헌신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등 믿음의 조상들은 다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들입니다. 본문 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진실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사람이 진실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면 아무리 머리가 좋고, 재주가 많고, 몸이 튼튼하다 할지라도 흘륭한 사람이 될 수 없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할 때에 처음에는 사람을 속일 수 있지만 두번 세번 거듭 거짓말을 하면 마침내 탄로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하는 사람은 망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거짓된 백성은 망하나 진실된 백성은 흥하는 것입니다.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도 바르게 믿습니다. 잠언 14장 2절에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거짓말장이요, 하나님은 진실 무망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많은 인 생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도적도 강도도 살인죄를 범한 자도, 간음한 여인도 다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위선자들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위선자들을 향하여 “화있을진저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시편 84편 11절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진실해야 되겠고, 동시에 자녀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도록 키워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에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진실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면 일생을 진실하게 살아갑니다. 교회학교의 교사들이 어린 심령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하며, 교사 스스로가 먼저 행동으로, 말로 본을 보이고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테네시주의 청소년 문제를 다루는 법원 판사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청소년 법정은 17세 이하의 청소년들에게 사법권을 행사하는 곳인데, 나는 지금까지 4,800여건의 사건을 판결하였는 바, 그중에서 규칙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의 사건은 단 29건 뿐이었습니다. 예수믿는 청소년의 범죄율은 0.6% 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청소년 범죄의 법정에서 어머니나 아버지 중 교회에 매일 출석하는 사람이 법정에 서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였습니다. 매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이 진실하고, 자녀들을 정직하고 진실하게 가르치기 때문에 그의 자녀들이 범죄하는 경우가 심히 적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믿고 신앙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여러분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셋째로, 사랑의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사랑의 습관을 자녀들에 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에 사람들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경히 여기며, 마음대로 죽이는 포학한 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횡적으로는 이웃 사람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또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렸을 때부터 자녀를 사랑의 사람이 되어지도록 양육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사랑의 사람으로 키울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가 자식들을 사랑으로 키워나갈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는 자녀들은 남을 사랑할 줄 모르고 거칠고 포학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란 사람은 열등의식이 강한 사람이 되고 부정적이고 반항적인 인간성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열등의식은 대단히 무서운 질병 중의 하나입니다. 흔히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는 경우는 “나는 불행하다, 못배웠다, 다른 사람보다 못생겼다”는 등의 생각으로 열등의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반항적인 언사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들에게 적당하게 칭찬하고 사랑을 베풀어 주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난 사람은 부정적이 아닌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반항적이 아닌 순종의 사람이 되고 파괴적이 아닌 건설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부정적이고, 반항적이고, 파괴적인 인간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히틀러(Hitler)보다 더 무서운 반항자, 파괴자는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그는 어렸을 때 계모 슬하에서 받은 푸대접과 미움과 구박 때문에 그토록 잔인한 인간, 파괴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은 미움으로 키우지 마시고 사랑으로 키워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올바른 사람들로 양육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순종의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부모님과 주의 종, 그리고 윗 어른들에게 순종해야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분이며, 도리입니다. 성령님은 순종의 영이기 때문에 순종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시지만 마귀는 반항하는 영, 불순종하는 영, 거역하는 영이기 때문에 마귀의 사주를 받으면 반항적인 인간이 되고 거역하는 사람이되고 또 불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서 하나님께 반항하고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결국은 선악과를 따먹는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은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까지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멘”으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잠언 22장 5절에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불순종하고 거역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앞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놓여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는 가시와 올무가 없고 형통한 길, 복된 길이 열려진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John Wesley)의 어머니 수산나(Susanna)는 “자녀들에게 제 멋대로 하게 버려두는 부모는 마귀의 일을 하게 하는 사람이며, 신앙을 무의미하게 만들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자녀들의 영혼과 육신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는 자녀들의 영혼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그 자녀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아 속에는 문제의 부모가 있다고 합니다. 자녀의 운명은 부모가 만든다고 합니다. 가출하는 청소년들의 세 가지 큰 이유는
첫째 자녀의 심리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데서가 30%,
둘째 부모의 가정불화로 인해서가 50%,
셋째 갈증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데서가 20%라고 하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부모가 밤낮 싸우면 그 슬하에서 자라난 자녀들은 가출 소년이 되어지고 문제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가슴을 뜨끔하게 하는 엄청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들에게 본을 보여주고 사랑하는 본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였을 때에 자녀들이 부모의 본을 받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훌륭한 사람들이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부모는 마땅히 자녀들에게 들어주는 귀, 칭찬하는 입, 채찍을 드는 손, 기도하는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며 키운 자녀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녀들을 기도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진실된 사람, 사랑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 되어 몸된 교회를 잘 섬기며,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는 훌륭한 자녀로 키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하며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한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말을 유창하게 잘하지만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은 일본말을 잘합니다. 또한 미국에서 자라난 사람은 영어를 잘합니다. 이와 같이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이에게 꼭 실시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본문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가르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차나크(chanak)인데 문자적인 뜻으로는 “훈련시키다(train up)”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일생을 바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그 일생을 바치기 위하여 훈련하라는 의미입니다. 아이를 훈련시키는 목적이 그의 일생을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기 위함입니다. 또한 어른이 될 때를 대비하여 어린이를 훈련하고 가르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녀에게 잡은 생선을 주지 아니하고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합니다.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돈을 바르게 버는 법과 저축하는 법, 그리고 그 돈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많은 재산을 물려준다 할지라도 그것을 올바르게 관리하지 못하고 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면 소용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돈을 가지고 범죄의 도구로 삼고 탕진해 버리는 방탕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재산을 줄려주는 것보다는 물질을 어떻게 바른 방법으로 벌며, 그것을 어떻게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 웨슬레(Jhon Wesley)는 “돈이란 바르게 벌어야 하며, 저축하여야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르게 사용할 줄 알아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자녀들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신명기 6장 7절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의 핵심은 어떤 상황이든지 항상 주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한 것입니다. 무엇을 가르치라고 했습니까 기능을 교육시켜라,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라는 말씀이겠습니까 그러면 무엇을 가르치라고 한 것입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경외함을 가르치라고 한 것입니다.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을 평생에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켜 행하도록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두가지를 가르치라고 하였는데
첫째는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명령을 삼가 듣고 지켜 행하면 “네 날이 장구하리라, 네가 복되리라, 복을 받고 살리라,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고 주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근본이며, 또 복의 근원인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행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임을 믿으시고 그대로 지켜 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우리 나라가 이만큼 살게 된 것도 많은 주의 종들의 핏값의 결과라고 믿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가듯이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가야만 더욱 복받는 나라가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배운 것이 많아도, 가진 것이 많아도 전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것 가지고 죄만 짓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의 예화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한 자의 차이가 다음 예화의 결과와 같습니다. “1”이라는 숫자를 앞에 두고 “0”을 계속 붙이면 엄청난 숫자로 불어납니다. 그러나 “0”을 앞에 두고 “0”을 계속 붙여 본들 계속 “0”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많은 능력과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앞세우고 그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재산이 더해 지고 공부를 많이 하고 하면 할수록 그 재산과 지식과 학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없는 상태에서 그 사람에게 지식이 더해지고, 학위가 더해지고 물질이 더해지면 그것을 가지고 죄를 더 짓고,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는 요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하는 신앙이 없이 물질이 더해지는 것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결과를 낳게 할 뿐입니다. 금란교회의 한 장로님이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교회 앞에, 목사님 앞에 물질로 헌신하는 생활을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앞에, 주의 종 앞에 헌신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등 믿음의 조상들은 다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들입니다. 본문 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진실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사람이 진실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면 아무리 머리가 좋고, 재주가 많고, 몸이 튼튼하다 할지라도 흘륭한 사람이 될 수 없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할 때에 처음에는 사람을 속일 수 있지만 두번 세번 거듭 거짓말을 하면 마침내 탄로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하는 사람은 망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거짓된 백성은 망하나 진실된 백성은 흥하는 것입니다.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도 바르게 믿습니다. 잠언 14장 2절에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거짓말장이요, 하나님은 진실 무망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많은 인 생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도적도 강도도 살인죄를 범한 자도, 간음한 여인도 다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위선자들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위선자들을 향하여 “화있을진저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시편 84편 11절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진실해야 되겠고, 동시에 자녀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도록 키워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에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진실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면 일생을 진실하게 살아갑니다. 교회학교의 교사들이 어린 심령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하며, 교사 스스로가 먼저 행동으로, 말로 본을 보이고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테네시주의 청소년 문제를 다루는 법원 판사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청소년 법정은 17세 이하의 청소년들에게 사법권을 행사하는 곳인데, 나는 지금까지 4,800여건의 사건을 판결하였는 바, 그중에서 규칙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의 사건은 단 29건 뿐이었습니다. 예수믿는 청소년의 범죄율은 0.6% 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청소년 범죄의 법정에서 어머니나 아버지 중 교회에 매일 출석하는 사람이 법정에 서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였습니다. 매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이 진실하고, 자녀들을 정직하고 진실하게 가르치기 때문에 그의 자녀들이 범죄하는 경우가 심히 적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믿고 신앙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여러분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셋째로, 사랑의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사랑의 습관을 자녀들에 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에 사람들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경히 여기며, 마음대로 죽이는 포학한 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횡적으로는 이웃 사람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또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렸을 때부터 자녀를 사랑의 사람이 되어지도록 양육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사랑의 사람으로 키울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가 자식들을 사랑으로 키워나갈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는 자녀들은 남을 사랑할 줄 모르고 거칠고 포학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란 사람은 열등의식이 강한 사람이 되고 부정적이고 반항적인 인간성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열등의식은 대단히 무서운 질병 중의 하나입니다. 흔히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는 경우는 “나는 불행하다, 못배웠다, 다른 사람보다 못생겼다”는 등의 생각으로 열등의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반항적인 언사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들에게 적당하게 칭찬하고 사랑을 베풀어 주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난 사람은 부정적이 아닌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반항적이 아닌 순종의 사람이 되고 파괴적이 아닌 건설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부정적이고, 반항적이고, 파괴적인 인간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히틀러(Hitler)보다 더 무서운 반항자, 파괴자는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그는 어렸을 때 계모 슬하에서 받은 푸대접과 미움과 구박 때문에 그토록 잔인한 인간, 파괴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은 미움으로 키우지 마시고 사랑으로 키워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올바른 사람들로 양육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순종의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부모님과 주의 종, 그리고 윗 어른들에게 순종해야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분이며, 도리입니다. 성령님은 순종의 영이기 때문에 순종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시지만 마귀는 반항하는 영, 불순종하는 영, 거역하는 영이기 때문에 마귀의 사주를 받으면 반항적인 인간이 되고 거역하는 사람이되고 또 불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서 하나님께 반항하고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결국은 선악과를 따먹는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은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까지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멘”으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잠언 22장 5절에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불순종하고 거역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앞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놓여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는 가시와 올무가 없고 형통한 길, 복된 길이 열려진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John Wesley)의 어머니 수산나(Susanna)는 “자녀들에게 제 멋대로 하게 버려두는 부모는 마귀의 일을 하게 하는 사람이며, 신앙을 무의미하게 만들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자녀들의 영혼과 육신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는 자녀들의 영혼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그 자녀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아 속에는 문제의 부모가 있다고 합니다. 자녀의 운명은 부모가 만든다고 합니다. 가출하는 청소년들의 세 가지 큰 이유는
첫째 자녀의 심리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데서가 30%,
둘째 부모의 가정불화로 인해서가 50%,
셋째 갈증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데서가 20%라고 하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부모가 밤낮 싸우면 그 슬하에서 자라난 자녀들은 가출 소년이 되어지고 문제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가슴을 뜨끔하게 하는 엄청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들에게 본을 보여주고 사랑하는 본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였을 때에 자녀들이 부모의 본을 받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훌륭한 사람들이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부모는 마땅히 자녀들에게 들어주는 귀, 칭찬하는 입, 채찍을 드는 손, 기도하는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며 키운 자녀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녀들을 기도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진실된 사람, 사랑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 되어 몸된 교회를 잘 섬기며,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는 훌륭한 자녀로 키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하며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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