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게도냐의 환상 (행16:6-10)
본문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다시 2차 전도여행을 출발하여 드로아에 머물고 있을 때, 밤에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나타나, 바울에게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말했다. 우리는 바울에게 밤에 나타난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몇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사람이 됩시다. 바울은 개인의 생각으로는 계속 아시아 전도를 시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막으시고 서쪽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세계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를 거쳐 독일, 영국, 미국, 아시아로 서진(西進)했습니다. 복음도 예루살렘, 안디옥, 마게도냐, 로마를 거쳐 영국, 미국, 아시아로 서진했습니다. 바울은 동진(東進)을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길을 막으시고 당신의 길을 가게 만드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길을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 26:42) 우리는 성경과 세계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길을 막으시고 보다 나은 길을 주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으로 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느보산으로 인도하셨고 느보산의 비스가산에서 생을 마치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다시스로 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니느웨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은 아시아로 가기를 원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서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리빙스톤은 인도로 가기를 원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아프리카로 인도하셨습니다. 언더우드는 중국을 택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한국으로 보내셨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바울의 아시아 전도를 막지 않으셨다면 게르만 민족은 야만인으로 남았을 것이며 슬라브 민족은 침략자로 남아 있으며 영국은 바이킹의 후손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2천년 전에 바울을 유럽으로 싣고 온 배는 유럽에 부강함을 운반해 준 황금선(黃金船)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교회부흥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는 교회가 가득 차 있는 데 눈을 뜨면 공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가 원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나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2. 바울이 본 환상을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이 드로아에서 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도 비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더불어 사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교회란 서로 다른 숲 속에 살던 다른 종류의 새가 한 나무 가지에 모여 보금자리를 만들고 같이 사는 곳입니다. 파랑새, 노랑새, 빨강새가 함께 모여 사는 곳입니다. 개성이 다르고 취향과 생김이 다르고 생활 수준이 다르며 자란 환경이 다를지라도 그것들을 초월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기 위해 비전을 가집시다. 우리 교회는 열 가지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1) 푸르고 푸른 말씀의 동산
2) 영감 넘치는 기도의 동산
3) 전도의 요람지 4) 성령님이 폭발하는 성령님의 진원지 5) 사랑의 샘터 6) 예수께 화제를 모으고 사는 화목한 가정 7) 주님을 우리 사업체와 직장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생활 8)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9) 부정적 언어를 지양하고 긍정적 인격을 배양하는 교회 10) 조상들의 아름다운 신앙을 자손에게 상속하는 교회 <하나님의 나팔>로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는 빈농계급 출신으로서 강건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의 효과는 놀랄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은 교황제의 가지들을 쳤으나 그는 뿌리를 쳤다”라고 했습니다. 한 때 프랑스군의 포로가 되어 그는 노예선에서 19개월 동안 죄수로 지냈습니다. 그 배에서 고생하고 있던 어느 날 그는 그 배 위에서 자기가 처음으로 설교했던 성 앤드류 성에 있는 성 삼위일체 교회의 뾰족탑을 바라보았으며, 그 때에 그는 자신이 다시 한 번 더 나은 시기에 그 곳에서 설교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표명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고국에 돌아와 성 앤드류스 성당에서 설교함으로써(1559년 6월 11일) 자기가 프랑스 노예선에서 품었던 소망을 성취시켰습니다. 낙스는 스코틀랜드에서 복음적인 기독교신앙의 확립을 위해 개혁세력의 선두에 섰습니다. 낙스는 임종의 자리에서 교회 직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외치는 그 순간에도 내 마음 속에 그 비판받는 인간들을 미워하는 마음은 없었음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신다. 단지 그 인간들이 범하고 있는 죄악을 참으로 증오하고 혐오한 것인 사실이다. 그러나 나를 부르시고, 기꺼이 은혜를 베푸시사 그의 신비스런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과연 그가 맡기신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는가에 대해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있었다.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이 너무도 컸기에 전혀 인간들의 눈치를 살핌이 없이 주께서 내게 명하시는 대로 너무도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다.” 제임스 멜빌(James Melville)은 낙스를 “우리 민족의 가장 고귀한 선지자이자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섭정 모튼(Morton)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기 그의 일생동안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이 누워 있다”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John Knox)와 같이 비전을 가집시다. 낙스는 “하나님이여, 이 스코틀랜드를 내게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3. 비전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최초의 신자는 누구였습니까 자주장수 루디아는 보따리장수였고 구신 들린 여인은 점쟁이였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로마의 말단 관리로 간수였습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유럽 복음화의 대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맙시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습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자생할 수 있습니다. 비전이 있는 사업은 자생할 수 있습니다. 비전이 있는 교회는 자생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농사와 같습니다. 농사가 잘 되려면 토양과 기후와 종자와 기술이 좋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잘 되려면 토양인 교인들이 좋아야 하며 기후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아야 하며 복음의 전통적 씨앗을 장로나 상담을 담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교역자가 좋은 기술로 잘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부흥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시다. 그리고 바울처럼 우리도 환상(비전)을 가지고, 하나님께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합시다.
1.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사람이 됩시다. 바울은 개인의 생각으로는 계속 아시아 전도를 시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막으시고 서쪽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세계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를 거쳐 독일, 영국, 미국, 아시아로 서진(西進)했습니다. 복음도 예루살렘, 안디옥, 마게도냐, 로마를 거쳐 영국, 미국, 아시아로 서진했습니다. 바울은 동진(東進)을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길을 막으시고 당신의 길을 가게 만드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길을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 26:42) 우리는 성경과 세계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길을 막으시고 보다 나은 길을 주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으로 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느보산으로 인도하셨고 느보산의 비스가산에서 생을 마치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다시스로 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니느웨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은 아시아로 가기를 원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서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리빙스톤은 인도로 가기를 원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아프리카로 인도하셨습니다. 언더우드는 중국을 택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한국으로 보내셨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바울의 아시아 전도를 막지 않으셨다면 게르만 민족은 야만인으로 남았을 것이며 슬라브 민족은 침략자로 남아 있으며 영국은 바이킹의 후손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2천년 전에 바울을 유럽으로 싣고 온 배는 유럽에 부강함을 운반해 준 황금선(黃金船)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교회부흥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는 교회가 가득 차 있는 데 눈을 뜨면 공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가 원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나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2. 바울이 본 환상을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이 드로아에서 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도 비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더불어 사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교회란 서로 다른 숲 속에 살던 다른 종류의 새가 한 나무 가지에 모여 보금자리를 만들고 같이 사는 곳입니다. 파랑새, 노랑새, 빨강새가 함께 모여 사는 곳입니다. 개성이 다르고 취향과 생김이 다르고 생활 수준이 다르며 자란 환경이 다를지라도 그것들을 초월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기 위해 비전을 가집시다. 우리 교회는 열 가지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1) 푸르고 푸른 말씀의 동산
2) 영감 넘치는 기도의 동산
3) 전도의 요람지 4) 성령님이 폭발하는 성령님의 진원지 5) 사랑의 샘터 6) 예수께 화제를 모으고 사는 화목한 가정 7) 주님을 우리 사업체와 직장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생활 8)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9) 부정적 언어를 지양하고 긍정적 인격을 배양하는 교회 10) 조상들의 아름다운 신앙을 자손에게 상속하는 교회 <하나님의 나팔>로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는 빈농계급 출신으로서 강건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의 효과는 놀랄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은 교황제의 가지들을 쳤으나 그는 뿌리를 쳤다”라고 했습니다. 한 때 프랑스군의 포로가 되어 그는 노예선에서 19개월 동안 죄수로 지냈습니다. 그 배에서 고생하고 있던 어느 날 그는 그 배 위에서 자기가 처음으로 설교했던 성 앤드류 성에 있는 성 삼위일체 교회의 뾰족탑을 바라보았으며, 그 때에 그는 자신이 다시 한 번 더 나은 시기에 그 곳에서 설교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표명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고국에 돌아와 성 앤드류스 성당에서 설교함으로써(1559년 6월 11일) 자기가 프랑스 노예선에서 품었던 소망을 성취시켰습니다. 낙스는 스코틀랜드에서 복음적인 기독교신앙의 확립을 위해 개혁세력의 선두에 섰습니다. 낙스는 임종의 자리에서 교회 직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외치는 그 순간에도 내 마음 속에 그 비판받는 인간들을 미워하는 마음은 없었음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신다. 단지 그 인간들이 범하고 있는 죄악을 참으로 증오하고 혐오한 것인 사실이다. 그러나 나를 부르시고, 기꺼이 은혜를 베푸시사 그의 신비스런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과연 그가 맡기신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는가에 대해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있었다.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이 너무도 컸기에 전혀 인간들의 눈치를 살핌이 없이 주께서 내게 명하시는 대로 너무도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다.” 제임스 멜빌(James Melville)은 낙스를 “우리 민족의 가장 고귀한 선지자이자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섭정 모튼(Morton)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기 그의 일생동안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이 누워 있다”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John Knox)와 같이 비전을 가집시다. 낙스는 “하나님이여, 이 스코틀랜드를 내게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3. 비전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최초의 신자는 누구였습니까 자주장수 루디아는 보따리장수였고 구신 들린 여인은 점쟁이였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로마의 말단 관리로 간수였습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유럽 복음화의 대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맙시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습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자생할 수 있습니다. 비전이 있는 사업은 자생할 수 있습니다. 비전이 있는 교회는 자생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농사와 같습니다. 농사가 잘 되려면 토양과 기후와 종자와 기술이 좋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잘 되려면 토양인 교인들이 좋아야 하며 기후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아야 하며 복음의 전통적 씨앗을 장로나 상담을 담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교역자가 좋은 기술로 잘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부흥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시다. 그리고 바울처럼 우리도 환상(비전)을 가지고, 하나님께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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