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게도니아 교회들에 주신 은혜 (고후8:1-15)
본문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은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할 일 가운데 한가지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6장 "선행에 관하여" 2항에 선행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서 행해지는 이 선행은 참되고 살아있는 신앙의 열매와 증거이다. 이 선행으로 신자들은 그들의 감사함을 나타내며, 그들의 확신을 더욱 굳게 하고, 형제들에게 덕을 세우며, 복음의 고백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대적들의 입을 막으며 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이러한 우리의 아름다운 신앙고백에서 보는 바와 같은 성도들의 선행은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지금 지난 몇 주 동안 우리 나라 서울 경기지역, 충청지역, 경북 지역 등 나라 전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인하여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도로나 다리 등이 무너지기도 하고, 애써 가꾸고 기른 농작물들과 가축들이 죽었습니다. 이러한 형편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자들로서 이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점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우리 교회 믿음의 가족들이 이들에게 아름다운 사랑을 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 성도들은 왜 이 일에 참여해야 하는지를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내용을 통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본문의 주제는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배워서 이웃을 섬기는 일에 참여하자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논의하면서 첫 번째로는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 두 번째는 이 은혜를 소개하는 목적, 세 번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 네 번째로는 봉사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차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 마게도니아 교회들이라고 할 때 빌립보나, 데살로니가, 베뢰아에 있는 교회들을 말합니다. 이들의 당시 형편에 대하여 이 본문에서 "환란의 많은 시련"이나 "극한 가난"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당시에 믿음생활로 인하여 많은 시련을 받고 있었고, 심히 가난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형편 가운데서 마게도니아 교회들은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였습니다. 마게도니아 교회들은 모든 생활 여건이 풍성하거나 사회적인 환경이 좋은 형편 가운데 헌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본문 4절에서는 이 헌금을 드리는 일에 대하여 말하기를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참여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말인데 코이노니아(koinonia)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넓은 의미로 교제라는 뜻입니다만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서로의 삶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전체적인 뜻은 마게도니아 교회가 그들의 외적인 형편은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성도의 필요를 공급해 주는 일에 참여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는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중 가난한 자를 위하여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롬15:25-26)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 중에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마게도니아 교회의 성도들은 이 일뿐만 아니라 복음전도자인 바울의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고, 그의 선교사역을 위하여 후원하기도 하였습니다(빌4:14-16). 그들은 환란의 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 속에서도 성도들을 섬겼고, 주의 나라의 일을 위하여 헌신하였습니다. 이들의 봉사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8:3에서 힘대로 할뿐만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하였으며 자원하여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참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많은 환란과 극한 가난 속에서라도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서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한 동기가 무엇일까요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러한 행동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요 우리는 그 답을 1-2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란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저희의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풍성한 연보를 드리게 하므로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은 모두 하나님께서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주의해 보십시오. 대개의 우리 성도들은 받는 것만 은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합니다. 주는 것도 은혜입니다. 1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들을 알게 한다고 하였고, 그 은혜를 2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는 기쁨으로 환란의 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풍성한 연보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환란과 극한 가난 속에서도 어려움을 당하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도우게 한 것입니다. 마게도니아에 있는 교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하였기 때문에 누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그들이 몸으로 헌신하고, 그리고 헌금하여 사도 바울에게 주었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만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4절은 헬라어 성경의 의미대로 번역한다면 "은혜, 즉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였다"고 해야 합니다. NIV 성경은 이 말씀을 아주 흥미있게 의역하였는데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특권을 우리에게 간절하게 간청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마게도니아에 있는 교회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신자들이 가장 자유롭고도 자발적인 선한 봉사생활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발적이고 헌신적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지배를 받고 있을 때입니다. 신자들이 세상의 가치관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으면 세상적인 사고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봉사생활은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와 우리 교회는 무엇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는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하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나 신자들이 일상적인 삶이나 사회생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다면 은혜가 지배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신자의 세계관이 달라지게 될 것이고 사는 방법도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마게도니아 교회들처럼 환란의 많은 핍박과 시련 가운데서도 성도들 섬기는 일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가 베풀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거리로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환경을 초월하여 주의 일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게도니아 교회들의 연보는 자원한 것이요 자발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게도니아에 있는 교회들의 모범을 보면서 "우리 교회는 형편이 안돼서, 또는 나는 너무 어려워서 다른 성도들을 섬길 이유가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마게도니아 교회들처럼 가난하지 않아도 성도 섬기는 일에 인색합니다. 그러나 마게도니아 교회들은 환란의 시련과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아주 풍성하게 연보함으로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교회 모든 믿음의 가족들도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한다면 많은 어려움과 극한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족들도 있지만 이 가운데서도 여러 성도들과 주변에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을 도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2.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들을 소개하는 목적 그러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들을 소개하는 실제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6-7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 하였노라.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여러분! 이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마게도니아 교회들이 보여준 이 은혜,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은혜에도 풍성하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믿음도 있었고, 말하는데도, 지식에도, 사도 바울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에 열심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를 섬기는 일에도 풍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마게도니아 교회들이 역경과 극한 가난 속에서도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한 은혜를 소개하는 것은 마게도니아 교회들처럼 성도를 섬기는 은혜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열심도 있었고, 믿음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도 풍성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바울은 마게도니아 교회들의 모범을 사용하여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참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마게도니아 교회들의 모범을 배웠다면 어려운 중에 있는 성도들을 도우는 일에 참여하리라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을 8절에서 더욱 간곡한 말로 부탁하고 있습니다.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라." 기근과 핍박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의 간절함을 가지고 권하는데, 이에 참여하므로 고린도교회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랑을 증명해 달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러한 요청을 받는다면 우리가 가진 사랑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마게도니아 교회들처럼 이들도 성도를 섬기고 이웃의 어려움에 동참하리라 약속하였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10절에 보면 이 사상을 잘 볼 수가 있습니다.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만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볼 때 고린도교회는 약속은 해놓고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한 것을 일년이나 미루어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무슨 일로 일년이나 이 일을 미루어 왔을까요 그것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후서를 읽어보면 거의 매장마다 책망과 바르게 하는 일에 관한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당파싸움, 잘못된 성관계, 법정소송, 음란에 관한 무감각, 결혼과 독신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 우상제물에 대한 잘못된 이해, 성찬에 대한 잘못들, 연보에 대한 잘못된 인식, 사랑이 식어지는 문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문제 등이 고린도교회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2:4에 이러한 형편들을 들으면서 눈물로 이 편지를 기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문제가 많은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고린도 교회가 왜 이처럼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지체하였겠는지의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영적인 수준이 낮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문제가 많으면 영적인 수준이 계속 낮아지는 법입니다. 교회가 신령하지 못하면,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면 이웃에 대한 너그러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성도를 섬기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가능한 한 가장 높은 영적수준의 모델인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들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도록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게도니아 교회들이 남에게 베풀며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한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은혜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바울은 성도를 섬기는 은혜에 풍성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사랑을 증명해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 바울은 참 신자들은 어려운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그가 신자라면 가장 결정적이고 회피할 수 없는 모범입니다. 이 모범은 9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고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라는 그 주권과 권위에 있어서도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7:5에 보면 예수님 스스로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수님의 부요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가난하게 되셨다는 것은 주님의 성육신, 곧 베들레헴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태어나신 사건을 말합니다. 그 분은 스스로 인생과 같이 되셨으며 사람의 육신을 취하셨습니다. 주님은 또한 종이 되어 인생을 섬기시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셨습니다. 빌립보서 2:6-8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요함을 누리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신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하늘 나라의 보좌와 영광을 버리시고 십자가에 죽어주심으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부요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부요한 것같으나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사탄과 세상의 철학이 지배하여 사망 가운데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부요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 8:17에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부요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녀이면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모든 풍성함을 누리는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축복입니다. 이러한 삶의 기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의 삶은 베푸는 삶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 한국교회에 많이 알려진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이 쓰신 더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합니다 라는 책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다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하나하나 발견하여 믿음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을 인하여 생명을 얻어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4. 봉사에 대한 우리의 태도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마게도니아 교회에 주신 은혜를 소개하고난 뒤에, 고린도 교회가 이 은혜도 풍성하기를 바라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까지 소개하였습니다. 이렇게 권고하는 실제적인 목적을 다시 한번 10-12절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만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과 핍박으로 인하여 큰 고통 가운데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편지를 쓰기 일년 전에 이미 이들에게 구제하기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하지 않음으로 이 일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바울은 이들에게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일은 참 유익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없는 것을 가지고 참여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섬기는 일에 참여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나누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아주 의미있는 말로 13-14절에서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구제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잘 살게 하고 우리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평균케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재산을 똑 같이 가진다는 것은 초대 교회 시에 잠시 있었던 일인데 대단히 이상적인 일입니다. 사실상 오늘날의 우리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적인 능력이 그 사람의 인격과 지위를 평가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를 멸시하고 천하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시를 당하는 것을 물론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칼 막스입니다. 실제로 세계 역사에서 러시아 공산화 혁명 전의 러시아 기독교는 모든 것을 소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누어주지 않고 가난한 소작민들을 학대하였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 이론대로 생산과 노동의 분배로 인격과 지위의 평등을 이루었습니까 오히려 주인의식의 상실로 근로의욕을 저하시키고 생산력을 감퇴시켰습니다. 이것이 구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이 붕괴된 이유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발적으로 평균케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그들을 도운다면 후일에 고린도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평균케 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서로 나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와 우리 교회와 우리 나라, 그리고 미국이 서로 평균케 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나 나라들을 도운다면 이 세계는 달라지겠지요 바울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평균케 하라는 말씀의 근거로 출애굽기 16:18 이하에 있는 만나의 기적을 예로 들었습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사람이 한 오멜씩의 만나를 거두게 하였습니다. 많이 가둔 사람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만나를 많이 저장하려고 하여도 그렇게 할 수 없었는데 저장해 둔 만나는 곧 썩어서 부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꼭 필요한 양식만 거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이 만나의 기적을 근거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일용한 양식으로 만족하고 나머지는 이웃을 위해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신자의 삶의 방식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고, 분명한 위로를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오늘 우리는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마게도니아 교회들은 많은 환란과 극한 가난 속에서도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과 환란으로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힘에 넘치도록 자원하여 연보를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소개하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이 은혜에 풍성하라고 도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듣고 도전을 받아 이 은혜가 우리 가운데 풍성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신 사랑이 우리를 감동시키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 한샘교회 가족들이 이번 집중 호우로 인하여 가족을 잃고 재산을 잃은 사람을 위하여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보여주심으로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이러한 봉사를 통하여 우리 사회가 새롭게 변해가는 꿈을 꾸면서 참여하십시오. 물론 우리 믿음의 가족들 가운데는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극한 가난 속에서도 마게도니아 교회들이 보여준 은혜를 한번 실천해 보십시오. 이 일을 통하여 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1.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 마게도니아 교회들이라고 할 때 빌립보나, 데살로니가, 베뢰아에 있는 교회들을 말합니다. 이들의 당시 형편에 대하여 이 본문에서 "환란의 많은 시련"이나 "극한 가난"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당시에 믿음생활로 인하여 많은 시련을 받고 있었고, 심히 가난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형편 가운데서 마게도니아 교회들은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였습니다. 마게도니아 교회들은 모든 생활 여건이 풍성하거나 사회적인 환경이 좋은 형편 가운데 헌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본문 4절에서는 이 헌금을 드리는 일에 대하여 말하기를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참여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말인데 코이노니아(koinonia)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넓은 의미로 교제라는 뜻입니다만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서로의 삶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전체적인 뜻은 마게도니아 교회가 그들의 외적인 형편은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성도의 필요를 공급해 주는 일에 참여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는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중 가난한 자를 위하여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롬15:25-26)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 중에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마게도니아 교회의 성도들은 이 일뿐만 아니라 복음전도자인 바울의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고, 그의 선교사역을 위하여 후원하기도 하였습니다(빌4:14-16). 그들은 환란의 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 속에서도 성도들을 섬겼고, 주의 나라의 일을 위하여 헌신하였습니다. 이들의 봉사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8:3에서 힘대로 할뿐만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하였으며 자원하여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참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많은 환란과 극한 가난 속에서라도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서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한 동기가 무엇일까요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러한 행동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요 우리는 그 답을 1-2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란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저희의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풍성한 연보를 드리게 하므로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은 모두 하나님께서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주의해 보십시오. 대개의 우리 성도들은 받는 것만 은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합니다. 주는 것도 은혜입니다. 1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들을 알게 한다고 하였고, 그 은혜를 2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는 기쁨으로 환란의 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풍성한 연보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환란과 극한 가난 속에서도 어려움을 당하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도우게 한 것입니다. 마게도니아에 있는 교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하였기 때문에 누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그들이 몸으로 헌신하고, 그리고 헌금하여 사도 바울에게 주었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만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4절은 헬라어 성경의 의미대로 번역한다면 "은혜, 즉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였다"고 해야 합니다. NIV 성경은 이 말씀을 아주 흥미있게 의역하였는데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특권을 우리에게 간절하게 간청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마게도니아에 있는 교회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신자들이 가장 자유롭고도 자발적인 선한 봉사생활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발적이고 헌신적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지배를 받고 있을 때입니다. 신자들이 세상의 가치관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으면 세상적인 사고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봉사생활은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와 우리 교회는 무엇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는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하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나 신자들이 일상적인 삶이나 사회생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다면 은혜가 지배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신자의 세계관이 달라지게 될 것이고 사는 방법도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마게도니아 교회들처럼 환란의 많은 핍박과 시련 가운데서도 성도들 섬기는 일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가 베풀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거리로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환경을 초월하여 주의 일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게도니아 교회들의 연보는 자원한 것이요 자발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게도니아에 있는 교회들의 모범을 보면서 "우리 교회는 형편이 안돼서, 또는 나는 너무 어려워서 다른 성도들을 섬길 이유가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마게도니아 교회들처럼 가난하지 않아도 성도 섬기는 일에 인색합니다. 그러나 마게도니아 교회들은 환란의 시련과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아주 풍성하게 연보함으로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교회 모든 믿음의 가족들도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한다면 많은 어려움과 극한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족들도 있지만 이 가운데서도 여러 성도들과 주변에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을 도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2.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들을 소개하는 목적 그러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들을 소개하는 실제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6-7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 하였노라.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여러분! 이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마게도니아 교회들이 보여준 이 은혜,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은혜에도 풍성하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믿음도 있었고, 말하는데도, 지식에도, 사도 바울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에 열심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를 섬기는 일에도 풍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마게도니아 교회들이 역경과 극한 가난 속에서도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한 은혜를 소개하는 것은 마게도니아 교회들처럼 성도를 섬기는 은혜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열심도 있었고, 믿음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도 풍성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바울은 마게도니아 교회들의 모범을 사용하여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참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마게도니아 교회들의 모범을 배웠다면 어려운 중에 있는 성도들을 도우는 일에 참여하리라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을 8절에서 더욱 간곡한 말로 부탁하고 있습니다.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라." 기근과 핍박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의 간절함을 가지고 권하는데, 이에 참여하므로 고린도교회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랑을 증명해 달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러한 요청을 받는다면 우리가 가진 사랑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마게도니아 교회들처럼 이들도 성도를 섬기고 이웃의 어려움에 동참하리라 약속하였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10절에 보면 이 사상을 잘 볼 수가 있습니다.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만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볼 때 고린도교회는 약속은 해놓고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한 것을 일년이나 미루어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무슨 일로 일년이나 이 일을 미루어 왔을까요 그것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후서를 읽어보면 거의 매장마다 책망과 바르게 하는 일에 관한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당파싸움, 잘못된 성관계, 법정소송, 음란에 관한 무감각, 결혼과 독신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 우상제물에 대한 잘못된 이해, 성찬에 대한 잘못들, 연보에 대한 잘못된 인식, 사랑이 식어지는 문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문제 등이 고린도교회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2:4에 이러한 형편들을 들으면서 눈물로 이 편지를 기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문제가 많은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고린도 교회가 왜 이처럼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지체하였겠는지의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영적인 수준이 낮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문제가 많으면 영적인 수준이 계속 낮아지는 법입니다. 교회가 신령하지 못하면,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면 이웃에 대한 너그러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성도를 섬기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가능한 한 가장 높은 영적수준의 모델인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들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도록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게도니아 교회들이 남에게 베풀며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한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은혜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바울은 성도를 섬기는 은혜에 풍성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사랑을 증명해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 바울은 참 신자들은 어려운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그가 신자라면 가장 결정적이고 회피할 수 없는 모범입니다. 이 모범은 9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고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라는 그 주권과 권위에 있어서도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7:5에 보면 예수님 스스로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수님의 부요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가난하게 되셨다는 것은 주님의 성육신, 곧 베들레헴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태어나신 사건을 말합니다. 그 분은 스스로 인생과 같이 되셨으며 사람의 육신을 취하셨습니다. 주님은 또한 종이 되어 인생을 섬기시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셨습니다. 빌립보서 2:6-8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요함을 누리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신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하늘 나라의 보좌와 영광을 버리시고 십자가에 죽어주심으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부요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부요한 것같으나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사탄과 세상의 철학이 지배하여 사망 가운데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부요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 8:17에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부요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녀이면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모든 풍성함을 누리는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축복입니다. 이러한 삶의 기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의 삶은 베푸는 삶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 한국교회에 많이 알려진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이 쓰신 더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합니다 라는 책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다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하나하나 발견하여 믿음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을 인하여 생명을 얻어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4. 봉사에 대한 우리의 태도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마게도니아 교회에 주신 은혜를 소개하고난 뒤에, 고린도 교회가 이 은혜도 풍성하기를 바라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까지 소개하였습니다. 이렇게 권고하는 실제적인 목적을 다시 한번 10-12절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만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과 핍박으로 인하여 큰 고통 가운데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편지를 쓰기 일년 전에 이미 이들에게 구제하기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하지 않음으로 이 일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바울은 이들에게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일은 참 유익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없는 것을 가지고 참여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섬기는 일에 참여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나누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아주 의미있는 말로 13-14절에서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구제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잘 살게 하고 우리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평균케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재산을 똑 같이 가진다는 것은 초대 교회 시에 잠시 있었던 일인데 대단히 이상적인 일입니다. 사실상 오늘날의 우리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적인 능력이 그 사람의 인격과 지위를 평가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를 멸시하고 천하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시를 당하는 것을 물론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칼 막스입니다. 실제로 세계 역사에서 러시아 공산화 혁명 전의 러시아 기독교는 모든 것을 소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누어주지 않고 가난한 소작민들을 학대하였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 이론대로 생산과 노동의 분배로 인격과 지위의 평등을 이루었습니까 오히려 주인의식의 상실로 근로의욕을 저하시키고 생산력을 감퇴시켰습니다. 이것이 구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이 붕괴된 이유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발적으로 평균케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그들을 도운다면 후일에 고린도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평균케 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서로 나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와 우리 교회와 우리 나라, 그리고 미국이 서로 평균케 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나 나라들을 도운다면 이 세계는 달라지겠지요 바울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평균케 하라는 말씀의 근거로 출애굽기 16:18 이하에 있는 만나의 기적을 예로 들었습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사람이 한 오멜씩의 만나를 거두게 하였습니다. 많이 가둔 사람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만나를 많이 저장하려고 하여도 그렇게 할 수 없었는데 저장해 둔 만나는 곧 썩어서 부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꼭 필요한 양식만 거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이 만나의 기적을 근거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일용한 양식으로 만족하고 나머지는 이웃을 위해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신자의 삶의 방식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고, 분명한 위로를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오늘 우리는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마게도니아 교회들은 많은 환란과 극한 가난 속에서도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과 환란으로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힘에 넘치도록 자원하여 연보를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소개하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이 은혜에 풍성하라고 도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듣고 도전을 받아 이 은혜가 우리 가운데 풍성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신 사랑이 우리를 감동시키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 한샘교회 가족들이 이번 집중 호우로 인하여 가족을 잃고 재산을 잃은 사람을 위하여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보여주심으로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이러한 봉사를 통하여 우리 사회가 새롭게 변해가는 꿈을 꾸면서 참여하십시오. 물론 우리 믿음의 가족들 가운데는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극한 가난 속에서도 마게도니아 교회들이 보여준 은혜를 한번 실천해 보십시오. 이 일을 통하여 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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