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를 대적하자 (눅4:1-13)
본문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성령님 충만을 입으셨습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제일 먼저 가신 곳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과 환호와 갈채가 있는 북적이는 시장 거리가 아니라 한적하고 외로운 광야였습니다. 그분께서 성육신하여 최초로 계신 곳이 마굿간이었던 점을 감안해 볼 때 그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처음 장소가 쓸쓸하고 황량한 광야였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분의 초림 목적은 영광 받으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를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본문은 그 주된 목적이 마귀와의 싸움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사건을 통해서 마귀의 실상을 바로 알 수 있기를 원합니다.
첫째, 마귀 사단은 비열한 유혹자입니다. 서부영화나 액션물을 보면 악당들은 대개 비열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결투를 해도 교묘한 반칙으로 상대방을 해칩니다. 거짓말과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서 함정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낍니다. 마귀 사단도 그렇습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이러한 악행들은 모두 마귀 사단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 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마귀 사단은 정정당당하게 예수님과 겨루지 않았습니다. 금식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허기진 약점을 이용하여 유혹했습니다. 이 당시 예수님께서 광야에 계셨던 것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은 것이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따라서 광야에 있는 동안에 굶주림을 참고 인내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육신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그분 자신의 뜻을 내세우는 것이 됩니다. 결국 사단은 이 첫번째 시험에서 “허기를 채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짓말을 예수님이 암암리에 받아들이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두번째 유혹에서 마귀는 자신에게 꿇어 경배하면 천하만국의 영광을 주겠다는 제의를 예수님께 했습니다. 여기서도 마귀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가 “이 세상 임금”으로 불리는 것은 사실입니다(요12:31). 그러나 인류가 죄 가운데 굴복하는 정도까지만 마귀가 그들을 지배할 수 있게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것이지 세상 권세자를 세우시고 바꾸시는 이는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단4:17 참조). 마귀는 세번째는 성경 말씀으로 유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수퍼맨임을 입증해 보이고 하나님께서 시편 91:11,12의 약속대로 천사를 보내 지켜 주실지 시험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서 완전한 신뢰를 한다면 어떤 시험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시험하게 되는 것은 완전한 신뢰를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마귀 사단은 대범한 유혹자입니다. 마귀가 지금 유혹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어린아이입니까 술에 취한 주정뱅이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입니다. 마귀가 의지가 굳세지 못한 사람만 유혹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가 가난한 사람만 유혹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는 예수님까지 유혹하고자 했습니다. 목사도 유혹합니다. 집사도 유혹합니다. 마귀가 언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까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할 때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틀림없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금식은 필연적으로 기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령님 충만한 가운데 계셨습니다. 가장 하나님과 가까운 중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는 대범하게 예수님께 접근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때에도 마귀는 유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 충만한 가운데 헌신하고 있을 때에도 유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셋째, 마귀 사단은 집요한 유혹자입니다. 2절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받으시더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문에 현재분사로 되어 있습니다. 즉 마귀의 시험(유혹)이 지속적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귀는 40일간 지속적으로 유혹했으며 마지막 날에 본문에 있는 결정적인 세 가지 유혹을 한 것입니다. 결과는 마귀의 실패로 끝났지만 그렇다고 마귀가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모든 시험을 다한 후 얼마 동안 떠났습니다(13절). 그는 적당한 기회에 또 접근했습니다. 히브리서 4:15은 예수님께서 일생에 걸쳐 유혹에 직면하셨다는 사실을 지적해 줍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예수님)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이 광야의 시험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어떻게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을 입고(엡6:10-17), 믿음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는 것뿐입니다(벧전5:8).
첫째, 마귀 사단은 비열한 유혹자입니다. 서부영화나 액션물을 보면 악당들은 대개 비열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결투를 해도 교묘한 반칙으로 상대방을 해칩니다. 거짓말과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서 함정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낍니다. 마귀 사단도 그렇습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이러한 악행들은 모두 마귀 사단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 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마귀 사단은 정정당당하게 예수님과 겨루지 않았습니다. 금식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허기진 약점을 이용하여 유혹했습니다. 이 당시 예수님께서 광야에 계셨던 것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은 것이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따라서 광야에 있는 동안에 굶주림을 참고 인내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육신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그분 자신의 뜻을 내세우는 것이 됩니다. 결국 사단은 이 첫번째 시험에서 “허기를 채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짓말을 예수님이 암암리에 받아들이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두번째 유혹에서 마귀는 자신에게 꿇어 경배하면 천하만국의 영광을 주겠다는 제의를 예수님께 했습니다. 여기서도 마귀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가 “이 세상 임금”으로 불리는 것은 사실입니다(요12:31). 그러나 인류가 죄 가운데 굴복하는 정도까지만 마귀가 그들을 지배할 수 있게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것이지 세상 권세자를 세우시고 바꾸시는 이는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단4:17 참조). 마귀는 세번째는 성경 말씀으로 유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수퍼맨임을 입증해 보이고 하나님께서 시편 91:11,12의 약속대로 천사를 보내 지켜 주실지 시험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서 완전한 신뢰를 한다면 어떤 시험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시험하게 되는 것은 완전한 신뢰를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마귀 사단은 대범한 유혹자입니다. 마귀가 지금 유혹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어린아이입니까 술에 취한 주정뱅이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입니다. 마귀가 의지가 굳세지 못한 사람만 유혹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가 가난한 사람만 유혹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는 예수님까지 유혹하고자 했습니다. 목사도 유혹합니다. 집사도 유혹합니다. 마귀가 언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까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할 때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틀림없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금식은 필연적으로 기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령님 충만한 가운데 계셨습니다. 가장 하나님과 가까운 중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는 대범하게 예수님께 접근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때에도 마귀는 유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 충만한 가운데 헌신하고 있을 때에도 유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셋째, 마귀 사단은 집요한 유혹자입니다. 2절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받으시더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문에 현재분사로 되어 있습니다. 즉 마귀의 시험(유혹)이 지속적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귀는 40일간 지속적으로 유혹했으며 마지막 날에 본문에 있는 결정적인 세 가지 유혹을 한 것입니다. 결과는 마귀의 실패로 끝났지만 그렇다고 마귀가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모든 시험을 다한 후 얼마 동안 떠났습니다(13절). 그는 적당한 기회에 또 접근했습니다. 히브리서 4:15은 예수님께서 일생에 걸쳐 유혹에 직면하셨다는 사실을 지적해 줍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예수님)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이 광야의 시험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어떻게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을 입고(엡6:10-17), 믿음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는 것뿐입니다(벧전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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