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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가를 통한 그리스도 (창27:13-14)

본문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는 대단히 유명한 이야기 입니다. 에서는 형이었고 야곱은 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장자로서의 권리를 물려받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만 이스라엘에서는 장자와 차자의 축복과 재산의 권리는 대단한 차 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도 차자로서 에서보다는 모든 면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자가 받는 축복을 받았을 뿐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을 잇는 계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종종 당신을 소개하실때 나는 아브 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고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까 평범한 한 사람의 삶을 살고 갈 수밖에 없었던 야 곱이 이스라엘의 3대 족장에 들어갔고, 수 많은 신앙 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리브가의 역할이 절대적 이었습니다. 리브가가 없는 야곱을 생각할 수 있을 까요 절대로 불가능 합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해 주기 위해서 별미를 만들 어 오라고 했을때 그 정보를 알아낸 것도 리브라였 고, 이삭에게 바칠 별미를 만든 것도 리브가였으며,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받으려다가 오히려 저주 받 을 것을 두려워하며 망설이는 야곱에게 용기를 주며 저주를 자신에게 돌리겠다고 말함으로 야곱을 위해 저주까지라도 감수하려고 함으로 야곱을 결정적으로 도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리브가가 없는 야곱은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주인공 되는 리브가와 야곱은 다 름아닌 그리스도와 인류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그리스도는 인류를 위해 희생적인 삶과 일을 하셨습니다. 마치 리브가가 야곱을 위해 희생적 이 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리브가의 행동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서 리브가를 통해 어떻게 주님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재, 리브가는 저주를 자신에게 돌렸습니다. 리브가는 에서가 받을 축복을 야곱이 받게 하기 위해 이삭에게 드릴 별미를 자신이 만들어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망설이며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하며 염려했 던 것입니다. 야곱의 말은 틀림없이 맞는 이야기 였습니다.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채기 위해 그는 눈이 어 두운 이삭을 여러모양으로 속여야 되기 때문에 분명 그 사실을 안다면 이삭은 축복하기는 커녕 분명 야 곱에게 저주를 내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삭이 야곱에게 저주를 내리게 된다면, 마 치 노아가 자신의 수치를 감추어 주지 않았던 함에 게 저주를 하므로 함이 저주의 조상이 되었던 것처 럼 야곱도 저주의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리브가였 지만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기 위해 그 저주를 내게 돌리리니 하며 기꺼이 야곱의 저주를 담당하고 자 하였던 것입니다. 리브가의 이러한 행동은 분명 인류의 저주를 자신 에게 돌리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닙니까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니 (갈 3:10) 하였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라는 나무에 달려서 저주를 받은 자 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 가운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는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뜻 이지 않습니까 주님의 이 외침을 통해서 그가 진정 저주의 대상 이 되어 비록 잠시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자신을 미 워한 적도 없고 싫어한 적도 없었던 하나님께 버림 당하였던 상황이었기에 주님께서는 그 아픔과 괴로 움을 그렇게 표현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저주의 죽음으로 기 억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게 됨으 로 우리 인생들의 저주가 멈추게 된 것 아닙니까 재판의 장면이 벌어지고 있는 한 곳에서 어느 피 고가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수근거리며 끄덕였 습니다. 방청석에 있었던 사람 중 아무도 그를 불쌍히 여 기지도 않았고, 변로해 주고 싶지도 않은 듯 하였습니다. 그때 한 백발의 노인이 그 피고에게 헐레벌떡 뛰 어 나오며 그의 오른쪽 어깨에 자신의 손을 얹고 재판장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요. 우리를 그 노인은 유난히도 우리 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저 흉악한 죄인과는 형제가 되었다는 것도, 또한 일가나 친척이 되었다는 것도 부끄러워할 뿐아니라, 이웃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것도 부끄러워 하는 상황에서 저 노인은 누구이기에 저 죄수와 우리 라는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노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아버지였던 것이지요. 여러분! 그리스도는 금수와 같고 버러지의 형상으로 전락 된 우리와 하나가 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 아닙 니까 그 높고 높은 분이 우리와 하나가 되어 우리의 저 주를 담당하셨던 것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자신에게 돌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있었을 때 어느 마을에서 군 대로 징집할 청년들을 뽑게 되었습니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제비를 뽑게 되었는데, 그 중에 한 청 년은 결혼을 하여 처자가 있을 뿐아니라, 봉양해야 할 부모님도 계셨답니다. 사람들은 그 젊은이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며 안타 까워하고만 있을 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한 청년이 앞으로 나오며 저 청년 대신에 자신이 징집되어 군에 입대 하겠다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장가도 가지 않았으며 봉양할 부모님 도 안 계시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많은 사람은 물론 처음 징집되었던 청년은 그 고 마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를 위해 기도 하였을 뿐아니라, 신문과 방송을 통 하여 전쟁중 부상자나 사망자의 명단을 매일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자신을 대신해서 전쟁에 나갔던 그 청년의 이름이 사망자 명단에서 발견 되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지체없이 병원으로 달려가 그 청년의 시신을 정성껏 안장한 후 그 묘비에 그는 나를 위 해 죽으시다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나를 위해 죽으시다 라는 이 말이 수 많 은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를 위해 저주를 받으신 그리스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십자가를 볼 때마다 마치 그는 나를 위 해 죽으시다 라는 묘비를 바라보는 수 많은 사람들 이 그 청년의 위대한 희생을 생각하며 감동을 받듯 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령에 한없는 은혜와 감사가 넘쳐야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이시면서 우리와 같은 미천한 인생 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저주의 나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확신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리브 가의 그 말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저 주를 받으실 것을 예표하는 말씀이었음을 말입니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하였던 리브가의 희생심 넘치는 그 말을 말입니다. 리브가는 야곱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저주까지 라도 담당하게 된 것처럼 그리스도인 예수께서는 세상속에 있는 인생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인생들의 저 주를 자신에게 돌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다 시한번 기억하고 감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 리브가는 야곱을 위해 별미를 만들어 이 삭에게 드리도록 했습니다. 이 별미는 이삭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삭은 자기의 아들 에서가 사냥을 하여 정성껏 만들어 온 별미인 것으로 생각하며 흡족한 마음으로 야곱을 축복해 준 것입니다. 이삭은 별미를 받아 먹지 않고도 에서를 축복해 줄 수 있었지만 별미가 이삭에게 바쳐질 때만이 명 분과 공의가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귀한 장자의 축복을 받는데, 무언가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되 지 않겠습니까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방에 들어가야 축복을 받는 그 자리와 어울리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별미는 명분을 세웠던 것이고, 아버지와 아들간에 공의를 이루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 별미는 아버지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어 마음 놓고 축복해 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이 별미는 바로 예수님 자신이 되셨던 것 을 깨달을 수 있지 않습니까 별미를 기쁘게 받았던 이삭처럼 하나님도 주님의 죽음과 희생을 기쁘게 받았던 것입니다. 별미가 이삭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어 마음껏 축복해 주었던 것처럼 하나님도 주님을 받으신 것으로 흡족하셨기에 인간에 대한 저주를 거두시고 축복의 날들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한 그릇의 별미가 이삭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다 면, 어찌 인류를 위해 별미가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희생이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별미를 받으시고 저 주 아래 있던 우리 인생들을 다시금 축복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공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이삭이 별미를 받고 축복하고자 하였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별미와 같은 그리스도의 희생이 있어 야 인류를 축복할 수 있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아야 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별미가 되어주신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 하셨는데,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을 충족 시키셨다는 뜻이요, 인류를 다시금 축복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리브가가 야곱을 위해 별미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별미가 되어 주셔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인생들이 되도록 하셨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 로다. 이러한 축복이 선포되게 된 것은 오직 주님이 우리의 별미가 되셔서 하나님을 흡족하게 하셨고, 정 의를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리브가는 야곱을 축복의 사람으로 만들었 습니다. 야곱은 잘난 사람도 아니었고, 장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일생을 마쳐야 되는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한 그가 이스라엘 역 사에 빛나는 족장 중의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본래 장자권이 없었던 그에게 장자의 명분을 얻게 도 하였습니다. 리브가가 야곱을 축복의 사람으로 기필코 만든 것처럼 주님께서도 우리를 축복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인인 우리를 용서하시면서 어두움 가운데서 방 황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빛을 주시면서, 사망 가운데 있었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면서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우리를 얼마나 축복의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까! 실로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축복의 사람으로 만 드신 그 은혜는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세리와 창기들에게 함 께 하셔서 그들을 축복의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중풍병자나 문둥병자, 소경 등 비참 한 처지에 빠진 사람들을 축복의 반열에 세우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을 축복의 사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알콜중독자나, 마약이나, 세상의 방탕한 길에 빠진 사람들을 축복의 자리로 이끌고 있습니다. 영국의 술집에서 술을 따르는 한 사람 빠텐더가 있었습니다. 그의 입술에서는 한시도 욕설이 그치 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상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외로웠으므로 더욱 게걸스럽게 욕설을 퍼 부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어느날 복음을 깨닫고 은혜를 받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유명한 설교가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 동을 주는 설교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에 수만 명의 사람들을 회개시켜 그리스도께 인도 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이 바로 죠오지 화이트 필드 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당시의 요한 웨슬리 목사님과 쌍벽을 이루며 영국을 새롭게 한 인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축복의 사람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만드시는 것을 믿으시고 우리의 주 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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