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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의 실수와 교훈 (창19:12-22)

본문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시험과 유혹을 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시험을 잘 이겨 내어서 더 믿음이 자라고 축복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넘어져서 죄를 짓기도 하고 실패의 쓴 잔을 마 시기도 합니다. 누구나 시험에 들지 않기를 원하지만 원수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와 주님의 사이를 떼어 놓으려고 발악을 합니다. 결국 어쩌다 우리의 욕심이나 고집이 사탄에게 이용 당하여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 때에도 오히려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고전 10:13에 약속하시기를 우리에게 피할 길을 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 당하기 전에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하여 사탄의 유혹 을 받지 않아야 하겠지만, 혹 시험에 들었더라도 낙담하면 안되겠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바로 주님께 돌아 올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회 복해 주십니다.
성경에는 많은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이들도 한결같이 여러가지 시험을 당했지만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시험을 이겨 하나님 인정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험에 넘어져서 겨우 부끄러운 구원을 받거나 아예 멸망의 자식 으로 전락해 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아브라함, 욥, 삼손, 다윗, 베드로 등 은 훌륭한 사람들이지만 그들도 때때로 사탄의 시험을 받기도 하고 스스 로 범죄하여 넘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하나님을 찾아 돌 아 왔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가 있었고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반면 가 룟유다를 위시하여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울 왕, 아간과 같은 이들은 죄를 짓고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자살과 거짓말과 변명으로 해결하려 다가 결국 멸망의 자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성경은 이들의 범죄의 과정과 문제점들을 낱낱이 기록하여 오늘날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2000년 이전에 이 미 완성되어버린 옛날 이야기 책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때로 유다가 되기도 하고 베드로가 되기도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경 을 가까이 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 사탄과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지혜 를 얻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우리가 잘 아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삼촌을 잘 둔 덕에 아무 공로 없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구원 전이나 그 후나 삼촌과 같이 모범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겨우 구원은 받았지만 비참하고 부끄러운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롯의 실 수와 그 원인 결과를 성경 말씀에 비추어 상고해 봄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그는 은혜를 잊어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형인 하란의 아들이었는데, 아버지가 일찍 죽어서 삼 촌인 아브라함의 양육을 받았습니다. 마침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롯은 친 아들과 같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엾은 조카 롯을 친 아들처럼 사랑하고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 심을 받고 가나안으로 갈 때도 롯을 데리고 함께 갔고 롯이 소돔에서 원수 들의 공격을 받아 재산을 모두 잃고 노예로 끌려가게 되자 친히 특공대를 조직하여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해 주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소돔 을 벌하시겠다고 하시자 아브라함은 롯을 생각하여 염치를 무릅쓰고 중보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은 삼촌의 은혜를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좀 살만 해 지니까 삼촌과 불화하게 됩니다. 창 13:7에 보니까 롯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종들과 다투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롯의 소유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롯의 소유가 많아진 것이 누구의 은혜입니까 그는 지금껏 아브 라함의 양육을 받아 왔으며 또한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으므로 욕심꾸러기들만 모여 사는 가나안 지방에서도 그의 소유가 안전하지 않았습 니까
그러므로 자기의 종들이 삼촌의 종들을 감히 업신 여기고 다투었다면 그들을 엄히 경계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조치를 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롯은 이 일을 방관만 하고 해결할 생각을 아니 했습니다. 결 국은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 평화의 제안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을 모르니까 욕심이 싹이트고 그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하나님은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 육신의 욕심만 좇아 행하였습니다.
삼촌이 분가시켜 주겠다고 제안을 하니까 속으로 옳다 잘 되었다. 이젠 독립이로구나 하고 박수를 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택의 우선권을 이용하 여 사방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의 머리 속에서는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 삼촌과 하신 약속은 잊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촌 에게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겠다고 축복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가나안 땅이 축복의 땅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는데도, 이미 육신의 욕심 때문에 눈이 멀어서 우선 보기에 기름지고 아름다운 땅을 선택하게 되 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가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멋지고 잘 생기고 열쇠 를 네 개 가지고 있지만 신앙이 없는 남자와 비록 키도 작고 돈도 많이 못 벌지만 성실하고 신앙이 있는 남자 중에 남편 감을, 혹 사윗감을 선택하라 면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세째로 그는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 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매일 가족과 함 그 제단에서 하나님을 찬양 하며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형이 되는 가정교회가 바 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롯은 아무 거리낌이 없이 오히려 홀가분한 심정으로 교회를 훌쩍 떠나서 죄악의 세상인 소돔으로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육신의 쾌락과 욕심 을 위해서, 또 삼촌의 간섭이 싫었었는지도 모릅니다. 탕자도 아버지의 간 섭이 싫어서 쾌락을 좇아 아버지 집을 나갔을 때 일시적으로는 즐거움이 있 었지만 결국 궁핍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는 바로 우리의 집이요 영원히 거할 우리의 장막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이 계시거늘 우리가 여기를 떠나 어디로 가겠습니까 요즘들어 교회가 필요 없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덥고 귀챦은데 교회까지 갈 필요가 뭐 있는냐 나 혼자 집에서 성경 보고 기독교 방송 들으면 되지. 또 교회 안에서 문제 일으키고 말썽 부린 다음에 자기가 떠나면 뭐 교회가 망할 것 모양으 로 의기양양하게 나 보란 듯이 빠이빠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신자는 교회를 떠나서는 결코 그 신앙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키로 쌀을 까불면 까불수록 쭉정이는 밖으 로 나가고 알곡은 점점 안으로 모여듭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 어 려움이 많고 문제가 있을수록 더욱 교회에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를 힘씁니다.
네째로 롯은 전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 마저도 전도하지를 못해서 함께 도 망가자고 하니까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가 여섯 명만 더 전도했어 도 그 가족과 함께 열명의 의인을 채웠을 테니 성 전체가 그로 인해 구원 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섯 커녕은 단 한 명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전도하는 일은 신앙의 운동과도 같습니다. 적당한 운동이 건강의 비결이 되듯이 전도는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전도를 하려면 먼저 자신이 진리를 잘 알아야 하니까 성경을 열심으로 공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스스로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전도할 수 있습니다. 전도해서 교인이 불어나면 신앙생활이 재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소돔과 같은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된 직분을 다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로 그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소돔 사람들이 와서 천사들을 내어 놓으라고 요구하자 롯은 하나님을 의 지하지 않고 인간적인 잔꾀를 내어서 타협하려고 합니다. 그는 자기의 두 딸을 대신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롯의 이 행위를 희생정신이라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이 타협안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만일 두 딸이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고난을 피해 가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이것을 합리화 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베드로도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와지니까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일시적인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범죄와 타협하는 행위는 옳은 것이 아닙니다.
롯이 이런 타협안을 내어 놓은 것은 그에게서 이미 믿음이 떠나 있고 소 돔의 죄악된 상황에 점차 물들어 버렸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는 어느 새 소돔의 추악한 성적 타락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났으니 그 믿음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섯째로 그는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함께 보신 대로 천사가 얼른 나가라고 재촉하는 데도 롯 은 지체하였다고 했습니다. 아마 롯은 물질적으로는 아브라함보다 더 부유 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까운 것들을 버려두고 떠나기가 아쉬웠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롯에게 들에 머무르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셨습니다. 산은 곧 믿음을 상징하며 교회를 상징합니다.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미련을 가지고 들에 머무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뻔뻔스럽게도 산에까지 갈 수 없다고 떼를 썼습니다. 그는 결국 소알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죄악과 심판을 경험하고서도 아직도 세상에 미련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끝내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 이 되어 버렸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결코 뒤를 돌아 보아서는 않됩니다. 그리스도만 바라 보고 앞만 향해서 열심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일곱째로 신앙의 지도자를 찾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위안을 얻으려 했습니다.
알몸으로 구원을 얻고 보니 살 길이 암담했습니다. 아내마저도 죽고 이 젠 자기와 두 딸만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소알 땅도 싫어졌습니다.
자기의 재산이 다 타버린 소돔의 폐허가 아예 안 보이는 곳, 아내가 변한 소금기둥이 안 보이는 곳으로 피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리 고 허탈한 심정을 달랠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롯은 어디로 가야하겠습니까 탕자가 아버지 품을 떠나 외 국으로 가니 처음에는 돈도 많았고 재미도 있었지만 그의 결국은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망하게 되자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염치체면 불구하고 아버지의 종이 되겠다는 심정으로 아버지께로 돌아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보 같은 롯은 여기에서도 뼈 아픈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도 당 연히 아브라함의 은혜를 다시 기억하고 아브라함의 품으로 돌아왔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 염치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는 자존심도 허락하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떠나 올 때는 잘 살겠다고 나왔는데, 이제 빈털털이가 되 어서 다시 찾아가기가 내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패한 부끄러운 모습을 보 이기가 싫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동굴 속으로 숨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 판국에는 염치나 체면이나 자존심 같은 것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탕자처럼 완전히 두 손 들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 와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롯은 더욱 타락하여 자포자기가 되니 술을 마시게까지 되었습니다. 그것도 자기 딸이 들어 와서 동침을 하는 것도 모를 정도로 만취가 되 게 마셔 댔습니다. 하루도 아니고 연 이틀을 그리 하였으니 거의 날마다 술 로 마음을 달래며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불륜의 관계로 말미암 아 모압과 암몬 족속이 생겨 났는데 이들은 후에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괴롭 힌 이방 족속입니다.
노아는 술이 취해 실수를 함으로 흑인 노예의 역사를 만들었고, 롯은 술 에 취해 실수함으로 하나님의 택한 족속에게 올무가 되는 이방 족속을 만들 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술과 마약과 성적 타락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은 물론 그 가족과 후손에게까지 나쁜 유전을 전하는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 어려움에 처한 성도가 있습니까 고난 가운데 고독을 느끼며 괴로워 하고 있는 심령은 안계십니까 술과 같은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로 치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을 찾아야 하며 또한 목사님이나 장로님과 같은 교회의 지도자를 찾아 상담하여야 할 것입니다.
롯은 어려울 때에 아브라함을 찾지 아니하고 술을 찾다가 결국 실수로 끝냈습니다. 그러나 탕자는 어려움을 느끼자 곧 아버지를 찾으므로 다시 모 든 것이 회복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또한 교회의 지도 자를 가까이 하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이렇듯 롯은 반복적인 실수로 말미암아 인생을 실패로 끝내었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은혜를 저버리지 않아야겠습니다.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 말 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교회 안으로 모여야 합니다.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힘써서 전도하며 신앙을 지켜 빛과 소 금의 직분을 다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주님만 바라 보고 앞만 향해서 열심으 로 달려가야겠습니다. 늘 하나님과 가까이 행하며 교회의 지도자의 가르침 을 존중하여야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29절 말씀을 또 보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소돔을 벌하실 때에 롯을 그 속 에서 건져 내셨는데 이는 롯의 공로가 아니라 순전히 아브라함의 중보 때문 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나의 공로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고, 실수 투성이이고 죄인 중의 괴수 같은 나를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므로 구원을 받 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넘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죄책감에만 사로잡혀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십자가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물론 넘어지기 전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하여 실수할 때가 아주 많습니다. 일단 내가 넘어졌구나 생각이 되면 바로 예수님을 불러야 합니다. 그 길만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칠전팔기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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