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의 처를 생각하라 (눅17:22-32)
본문
오늘 본문 32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시 제자들과 그를 따르던 많은 무리들에게 하신 경종의 말씀입니다. 롯의 처에 대해서는 창세기 19장에서 잘 소개되어 나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조카 며느리로서 소돔성에서 호화롭게 잘 살았습니다. 죄악의 도성 소돔이 유황불에 멸망 당할때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의 분부를 거역하고 뒤돌아 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만 여자 입니다. 우리 한국식 표현을 쓴다면 벼락 맞아 죽은 여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롯의 아내를 생각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생각 하란 말인가
첫째:신앙은 결코 좋은 조건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란 말입니다. 롯의 아내는 믿음 좋은 남편과 훌륭한 가문에 시집와서 살면서 경제적 부요를 누리며 좋은 환경에서 생활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소금기둥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종교적 특권이 곧 구원이라든가 축복이라는 등식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을 보십시오. 요압은 다윗의 고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피살체가 되었습니다. 게하시는 선지자 엘리사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데마는 사도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좋다고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가룟유다도 예수의 제자였지만 돈 때문에 자기 스승을 배반하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신앙은 결코 특권층의 산물이 아닙니다. 초를 녹이는 햇볕이 진흙을 단단히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살아있는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햇볕이지만 죽은 나무를 메마르게 하여 더욱 불에 잘 탈수 있게끔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잇점을 가졌다고 천국에 가거나 축복을 누린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진정 참 성도의 모습은 환경적 특권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환난과 핍박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로 만이 성장할수 있음을 기억 합시다.
둘째:온전한 신앙은 마음 중심에 있는 것이지 외모에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란 뜻입니다.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것이 무슨 큰 범죄를 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는 불순종과 세상을 사랑한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결코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소돔성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꿩이 산에 있어도 마음은 콩밭에 있다는 속담처럼 롯의 아내가 그러한 여인이었습니다. 여러분! 주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끼는 것이라고 할찌라도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은 그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밤에는 새가 되고 낮에는 쥐가 되는 일종의 영적 박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롯의 아내는 그래서 망했습니다.
셋째:인생의 종말에는 아름다운 임종과 비운의 임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인생은 스타트 보다 라스트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태어 났느냐 보다 어떻게 죽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신앙인들은 예외 없이 고난의 인생에서 출발하여 살아가 영광스런 죽음으로 마감한 분들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고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영도자 모세가 위대한 임종을 하고 갔습니다. 우간다의 독재자 아민이나,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들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얼마를 살다가 갈 사람인지 모르나 내 마지막 생을 후회 없도록 살다가 자녀들과 성도들의 애도를 받으며 아름답게 눈을 감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롯의 아내의 죽음이 그래서 우리에게 경종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신앙은 결코 좋은 조건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란 말입니다. 롯의 아내는 믿음 좋은 남편과 훌륭한 가문에 시집와서 살면서 경제적 부요를 누리며 좋은 환경에서 생활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소금기둥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종교적 특권이 곧 구원이라든가 축복이라는 등식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을 보십시오. 요압은 다윗의 고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피살체가 되었습니다. 게하시는 선지자 엘리사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데마는 사도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좋다고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가룟유다도 예수의 제자였지만 돈 때문에 자기 스승을 배반하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신앙은 결코 특권층의 산물이 아닙니다. 초를 녹이는 햇볕이 진흙을 단단히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살아있는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햇볕이지만 죽은 나무를 메마르게 하여 더욱 불에 잘 탈수 있게끔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잇점을 가졌다고 천국에 가거나 축복을 누린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진정 참 성도의 모습은 환경적 특권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환난과 핍박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로 만이 성장할수 있음을 기억 합시다.
둘째:온전한 신앙은 마음 중심에 있는 것이지 외모에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란 뜻입니다.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것이 무슨 큰 범죄를 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는 불순종과 세상을 사랑한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결코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소돔성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꿩이 산에 있어도 마음은 콩밭에 있다는 속담처럼 롯의 아내가 그러한 여인이었습니다. 여러분! 주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끼는 것이라고 할찌라도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은 그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밤에는 새가 되고 낮에는 쥐가 되는 일종의 영적 박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롯의 아내는 그래서 망했습니다.
셋째:인생의 종말에는 아름다운 임종과 비운의 임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인생은 스타트 보다 라스트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태어 났느냐 보다 어떻게 죽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신앙인들은 예외 없이 고난의 인생에서 출발하여 살아가 영광스런 죽음으로 마감한 분들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고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영도자 모세가 위대한 임종을 하고 갔습니다. 우간다의 독재자 아민이나,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들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얼마를 살다가 갈 사람인지 모르나 내 마지막 생을 후회 없도록 살다가 자녀들과 성도들의 애도를 받으며 아름답게 눈을 감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롯의 아내의 죽음이 그래서 우리에게 경종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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